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09)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09화
엎드려 절하라. (4)
내 합도영역엔 이름은 붙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우주에서 합도영역에 이름을 붙여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내 무색유리검이 완전하지 않아 합도영역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라 더 의미없었다.
나는 얼마간 어둠에 잠겨있다가, 합도영역을 다시 거두고 바깥으로 나갔다.
싸아아아아-
무수한 묘역이 늘어서 있는 행성.
내가 기억하는 이들의 묘는 전부 써놓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 천역에 있었던 이들 중 절대 다수는 죽었을 테니까.
아직도 그 거대한 다섯 개의 중경계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빛과 열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잊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진인들까지 미친듯이 도망쳤음에도 아무도 태산의 존재가 일으킨 종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본래 중경계나 진인들은 종말에도 안전하다고 알고 있었다만…’
아무래도 자연적인 종말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는지.
태산 위의 존재가 일으킨 종말 이후에는 중경계도 사라지고 기존 진인들도 싹 다 영멸한 듯 했다.
우우우웅-
나는 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해 무색유리검의 파편 조각을 찾던 와중, 행성 예닐곱개를 붙여놓은 것 같은 애벌레같은 뭔가가 우주를 유영하는 것을 보며 잠시 월수궁무록을 사용했다.
그것은 허공에 있는 천지영기와 성운을 먹어치우는 듯 하더니, 얼마 후 뱃속에서 커다란 행성을 꺼내 토해놓았다.
“……”
딱히 내게 관심은 없는지, 내가 월수궁무록을 펼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도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저 존재의 격을 느끼며 저것이 뭘 하는 존재인지를 알았기에 소름이 돋았다.
‘준선…’
개열기 진인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보았다.
이 천역이 탄생하고 난 후, 준선들이 돌아다니며 성운을 먹어치우고 별을 만들어내는 것들을 꽤 본 적이 있었다.
아직 나이로 치면 나보다도 어린 것이 저 개열기 진인들인 탓인지, 아직은 지성이나 이성이 없이 본능만으로 저러는 것 같긴 했으나, 그 자체로 간담을 섬뜩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인들은 별들을 만들어내는군.’
저뿐이 아니었다.
간혹 돌아다니던 중 성사나 존자급 생명체도 만난적이 있었다.
딱히 수련하여 등극한 것이 아닌, 태생적으로 태어날때부터 존자, 성사, 준선인 괴물들.
나는 그들이 그냥 쑥 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 천역의 안정에 대한 어떠한 명을 부여받고 태어났음을 눈치챘다.
개열기 준선급 생명체는 별을 만든다.
성반기 성사급 생명체는 별들을 찾아가 법칙을 정돈하고, 항성과의 거리를 조절해 궤도를 적당히 조정해주며, 생명체가 싹트기 좋게 바꾼다.
쇄성기 존자급 생명체는 우주공간을 돌아다니며 기괴한 천기현상을 마구잡이로 흩뿌리며 그 자체로 천지영기와 준선들이 별을 만드는 데에 쓸 먼지구름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존자와 성사, 준선들은 하나같이 우주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운명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성사들의 경우에는 우주에 생명이 태어나도록 하는 명 자체를 너무나 노골적으로 받고 태어난 것이 느껴져서 조금 꺼림칙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딱히 그들에게 먼저 접근해서 그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면 그들 역시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존자나 성사, 준선들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게 피해다니며, 때로는 그들을 관찰하며 그렇게 무색유리검의 조각을 계속 찾아헤멨다.
2만년이 흘렀다.
* * *
회귀하면서 쌓은 나이까지 따지면 이제 5만번째 생일이었다.
절걱, 절걱…
나는 지난번 행성에서 찾은 무색유리검 파편 세 조각을 이어붙이며 무색유리검을 수리했다.
무색유리검은 찾으면 찾을수록 점차 속도가 붙었다.
2만년의 세월에 걸려, 나는 열 자루의 무색유리검을 복원할 수 있었다.
촤아아아아-
나는 파편 조각들을 붙인 후 만상인연도를 발동했다.
만상인연도 역시 이전만큼 썩 정교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어느덧 내가 기억하는 무극교단 교도들의 무덤만 해도, 내가 머무는 행성의 지표면 절반 이상을 뒤덮었다.
나는 슬픈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 5만번째 생일.
아마 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었다면, 축하한다는 말을 해 주었을텐데.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온기를 느끼며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을텐데.
아직 새로운 천역의 역사는 많이 흐르지 않았고, 이 세상에 이성을 가진 건 아직도 나밖에 없었다.
준선들, 성사들, 존자들은 아직도 그저 본능에 충실하며 우주를 더 번성하게 만들어나갈 뿐이었다.
추웠다.
마음 속이 너무나 시려서, 죽을 것만 같았다.
“아…아아…”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아아아아…”
내 입에서 김빠진 듯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슴이 아팠다.
고환을 뽑는 것조차 충분히 수용 가능한 범위의 일이 되었고, 무슨 고문을 받아도 눈 깜짝하지 않을 수 있게 된 나조차 아파서 신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병에 걸린 것이었다.
그리고, 병의 이름은 고독이었다.
* * *
다시 만 년이 지났다.
나는 무색유리검 일백 개를 복원해 냈다.
무색유리검의 복원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져, 만상인연도의 인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만상인연도에는 예상외로 나조차 몰랐던 강력한 인력이 숨어져 있었다.
나는 무색유리검을 복원하며, 만상인연도를 복원하며 이전에는 몰랐던 만상인연도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었다.
’31번째 초식도, 만상인연도를 복원하면 훨씬 제어가 쉬워지겠군.’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우우웅-
그런 후 무색유리검에 의식을 집중하고, 무색유리검과 이어져 있는 무수한 인력의 고리들을 찾아 복원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쿠구구구!
나는 유황이 쩔쩔 끓는 행성의 유황바다.
그 한 가운데 있는 섬의 바위 밑에서 무색유리검의 파편을 발견하고,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건…?”
나는 흠칫 놀라며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철컹-
오싹!
나는 문득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왜냐하면, 내가 발견한 것은 붉은 색의 검(劍)이었으니까.
검의 검면에는 역수(曆數)라는 상서로워보이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굉장히 상서로워 보이는 이 보검을 보며 나는 몸을 떨었다.
“이, 이게 어떻게…”
문명의 흔적이다.
그것도 상당한 고위문명!
이건 평범한 검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준의 신검(神劍)이었으니까.
‘그, 그렇다면… 벌써 이 세상 어딘가에 이런 검을 만들 정도의 문명… 혹은 ‘이성’을 가진 존재가 있단 건가!’
그러나, 그 때였다.
우우우웅!
나는 문득 내 저물도 안에서 강력한 공명이 일어나는 물건이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어떻게 부활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의복과 저물도도 같이 복원되어 있었고, 본명법보인 무색유리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법보들은 멀쩡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저물도에서 염정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순백의 신검, 개력을 꺼내들었다.
개력(改曆)과 역수(曆數).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은 한 쌍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허…”
나는 살짝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이것들이 한 쌍으로 만들어진 것이하면, 역수라는 검은 선보의 모조품.
그것도 실패작 주제에 종말을 견디고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이건 대체…”
나는 도무지 개력과 역수가 선보의 모조에조차 실패한 실패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진짜 선보라고 해도 믿겠거늘.’
도대체 아무리 염정이 귀하다고 해도, 그 어떤 법보가 종말을 견딘단 말인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일단 개력과 역수를 저물도 안에 넣어놓았다.
* * *
오천 년이 지났다.
무색유리검 일천 개를 모았다.
우우우웅!
이제 만상인연도는 8할 이상 복원해냈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500년 안에 모든 무색유리검의 조각을 찾을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인력이 확실한 것을 넘어서, 천천히 무색유리검의 조각들이 인력에 이끌려 내게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아마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진 않을 터다.
나는 씁쓸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역대급으로 길게 생존한 회차다.
하지만 동시에, 역대 손에 꼽을만큼 괴롭고 아픈 삶이었다.
10만년이든, 100만년이든 나이를 먹으면 무얼 하는가.
사람은 결국 인연 속에서 헤엄치는 존재다.
인연이 없는 곳에서는 성장할 수 없다.
이후 수만년간 저 괴물같은 준선과 성사, 존자들만이 있는 이 세계에서, 나는 그때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을 터였다.
* * *
쿠구궁!
나는 마침내, 수만년에 걸쳐 천역 전체로 흩어졌던 무색유리검 삼천자루를 모두 모았다.
잘각-
마지막 무색유리검의 파편 중 하나가 무색유리검에 맞춰졌다.
그러나, ‘검을 모두 모았다’가 ‘무색유리검을 전부 복원했다’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 무색유리검의, 칼 끝.
꼭짓점의 작은 파편 하나를 아직 찾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 파편을 찾은 동굴에서 일어났다.
우우우웅!
그런 후 만상인연도의 인력을 통해, 정말 마지막.
최후의 무색유리검 조각을 찾고자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음?”
이상했다.
분명 마지막 무색유리검 조각은 이 세계에 있는 게 느껴졌다.
이 천역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러나 만상인연도로도 그것을 찾을 수 없다.
고작해야 마지막 한 조각일 뿐인데도!
나는 크게 당황하며 다시금 만상인연도를 끌어올려서 인력을 감지해 보았다.
‘너무 먼 거리에 있어서 그런건가?’
그러나 이상했다.
지금 실시간으로 천역이 팽창하며 크기가 커지고 있다곤 했지만, 그래도 만상인연도는 항상 무색유리검의 조각을 추적해 냈다.
이런 일은 너무나도 기이한 일이었다.
나는 크게 당황하며 발을 굴렀다.
콰과과과광!
내 발길질에 이 행성의 대륙이 갈라지고, 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내가 있던 동굴은 그대로 무너져서 없어져 버렸다.
나는 동굴이 무너지기 전 찰나의 세계에서 돌덩이를 전부 피하고 빠져나와 분노에 찬 비명을 질렀다.
“어디 있다는 거냐!!!”
만상인연도는, 내 만상인연도는,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
구할구푼 이상 복원하였다고는 할지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만상인연도는, 그래.
서은현.
나 자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만상인연도를 티끌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내 인연을 티끌만큼 잊어버리는 것.
“안 돼… 찾아야 해… 찾아야 해…!”
티끌만큼의 인연도 잊기 싫다!
먼지 한톨만큼의 추억조차 내 손을 빠져나가게 둘 수 없었다!
“반드시 다시 손에 넣을 거란 말이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는 잔뜩 충혈된 눈으로 고함을 쳤다.
그리고.
쿠구구구구!
무너진 동굴의 잔해에서, 뭔가를 발견하였다.
“…저건…?”
그것은 명백히 인위적인 커다란 원반이었다.
방패같아 보이기도 했다.
또다.
또 이런 것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원반의 앞에 섰다.
원반에는 이름이 없었다.
그냥 원판일 뿐이었다.
그러나 분명 문명의 존재가 만든 것.
그리고 지금 이 우주에서 이성을 지닌건 나뿐이었으니,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내 앞에 뿌려줬거나.
그도 아니라면 개력과 역수처럼 종말을 건너뛴 물건인 것.
그리고.
우우우웅!
나는 저물도 내에서 미친듯이 울부짖는 개력과 역수를 보며, 후자의 경우라는 것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