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10)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10화
엎드려 절하라. (5)
우우우웅!
개력.
역수.
그리고 정체불명의 원판.
세 개의 기물이 공명한다.
나는 원판의 정체를 짐작해 보았다.
‘알겠군. 진인이 만들었다는 모조품의 실패작.’
총 세 개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들이 그것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파아아앗!
철컥, 철컥, 철컥!
순백의 신검 개력.
적색의 신검 역수.
정체불명의 원판.
세 개의 기물이, 한 군데로 모이더니 맑은 빛을 뿌리며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지남반(指南盤)?”
지남반.
또는 나침반이라고 불리우는 물건이었다.
역수는 북쪽을.
개력은 남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쿠웅!
나는 내 몸보다 한참 큰 이 거대한 지남반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게 뭐지?”
뜬끔없이 나타난 법보.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문명의 잔흔.
지성의 족적이었으나, 나는 그런 것에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불쾌함과 오싹함이 목 뒤를 핥는 기분을 느꼈다.
처음 개력을 얻은 것은 육린의 보물창고.
그러나 생각해보면, 개력의 성능은 ‘무기 자체만으로’ 합체기급 전력이 더 생기는 미친 성능이었다.
괴군의 기묘성채만큼은 아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흉악한 법보인 것이었고, 아무리 육린이 법보를 쓰지 않는 요족이라지만 이 정도 법보를 그냥 보물산에 틱 하고 박아놓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진마열과 내가 싸울때도 조금 이상했다.
염정은 훌륭한 광물이긴 했지만 그렇게 단단한 편은 아니었다.
염정의 대궐의 기둥을 육린이 잘라 먹어치워 수행을 쌓거나, 염골 호의 용골로 가공되는 둥 가공될만큼의 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염정이었다.
그러나, 염정으로 가공된 개력은 내가 약체화되기 이전 전력의 총천검으로 베어냈을 때도 상처 하나 없었다.
끝끝내 다른 무구들처럼 박살나지 않고, 진마열의 손에서 퉁겨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에 얻은 신검 역수.
역수는 마침 무색유리검의 파편이 있던 곳 바로 아래에 놓여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가 무색유리검을 찾으러 올 것을 알고 숨겨놓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
그리고 그것은 원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색유리검의 조각을 꺼낸 동굴이 무너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것이 원반이었고, 세 법보는 순식간에 합쳐져서 나침반이 되었다.
마치, 어떤 존재가 내 앞에 이 나침반을 가져다놓기 위해 나를 이끄는 것 같은 느낌도 났다.
문제는, 이런 기분이 든다면 절대 기분탓이 아니라 십중팔구 높은 확률로 [위대한 존재]들이 내 운명을 인도하고 있을 거란 말이었다.
‘어떤 존재가 지금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이 나침반을 통해서.
그 존재의 목적은 무엇일까.
단순히 호의일수도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세상은 재액의 덩어리 그 자체다.
적어도 우리에게만은 호의가 돌아올 수 없다.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어느때보다 연위의 사상을 긍정하며, 합도영역을 펼쳤다.
우우우웅!
합도영역 내부의 모든 영기와 용맥.
그리고 인력을 동원하며, 나는 삼태극과 함께 총천검을 들고, 산심연후도의 초식과 함께 나침반을 내리쳤다.
꾸과과과과광!
합도영역 안에서 내리친 나침반은 영역 바깥을 뚫고 나가, 그대로 행성의 내핵에 박혀버렸다.
그래.
그 자리에서 박살난 것이 아니라, 튕겨나가 박혀버렸다.
나는 영역을 거두며 나침반을 노려보았다.
나침반에는 상처하나 없었다.
지금의 내 전력이라면, 준 쇄성기와도 어느 정도 합을 겨룰 수 있다.
분명 합체기급 법보인 개력과 역수, 정체불명의 원판 셋이 모인 기물이다.
합체기 대원만급 법보라 생각하면 될 터.
그러나 방금 내리친 일격은 직격한다는 가정하에 농담이 아니라 현음조차 일격에 골로 보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침반은 방금의 일격을 맞고서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나침반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알 수 있었다.
저건 합체기 수준의 법보 따위가 아니다.
개열기 준선의 실패작 같은 거라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게 큰 편은 아닌 나침반이었지만, 나는 저 나침반에서 봉명주와 같은 정체불명의 압박을 느껴야만 했다.
진룡의 사체의 머리를 내리찍고 있는, 전설 속의 폐기 선보 봉명주.
처음 봤을 때의 위용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했다.
그리고 저것이 그 수준의 압박감을 내보이는 듯 했다.
한참을 나침반을 노려보던 나는 나침반을 무시하고 반대방향의 행성으로 향했다.
‘됐다, 저건 버리자.’
어떤 진선이나 고위 존재가 또 나를 농락하려는지는 몰랐으나, 순순히 당해줄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행성 하나를 지나칠 때였다.
쿠구구구구!
“…!”
나는 행성 뒷면에 달라붙어 있던, 전신에 눈알이 돋아있는 개구리 형태의 진인과 눈이 마주쳤다.
꿈뻑-
개구리 형태의 준선은,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벌렸다.
촤아아악!
“이런 미친!”
나는 사색이 되어서 준선의 혀를 피했다.
아니, 혀라고 해야할까?
저것은 말미잘같이 생겼고, 은은한 별빛이 맴돌고 있었다.
마치 창호자의 창령성광오채대법이 혀의 형태로 존재하면 저런 느낌일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
별빛 말미잘 형태의 혀가 나를 뒤쫓는다.
‘빌어처먹을!’
평소에는 공격성은 없었는데 왜 갑자기 내게 이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황급히 도망치던 와중 인근에 있는 행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내가 나침반을 버린 그곳이었다.
쿠구구구!
하늘에서 준선의 말미잘이 꿈틀거렸다.
나는 숨을 곳을 찾다가, 내가 나침반을 후려쳐 내핵까지 길을 뚫어놓은 곳으로 뛰어들었다.
쿠웅!
나는 순식간에 내핵까지 떨어져, 나침반을 밟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구리 준선은 그냥 재미로 혀를 날려본 것인지, 말미잘 같은 혀를 거두고 다시 사라졌다.
나는 이를 악물며 다시 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붕어 형태의 대륙만한 쇄성기 존자가 나를 쫓아왔고, 나는 다시 나침반 옆으로 와서 숨었다.
두 번의 사건을 겪은 나는 깨달았다.
“…운명인가.”
나는 이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내가 아직 어린 시절이었을 때.
등선향에서 어떻게든 동료들을 서휼이나 괴군, 천인기 3인방에게 맡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을때의 그 느낌이었다.
내가 무슨 발버둥을 치든, 운명이 움직여 나를 막아서고 [원래대로] 흐름을 유도한다.
무슨 짓을 해도 동료들은 각자와 연결된 인물들에게 끌려갔었었다.
나는 그 때를 떠올리며, 내 앞에 나침반을 인도한 누군가가 내 운명을 어떻게 해 놓았다고 이해했다.
“…그래. 나침반을 사용하라는 건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긴 했다.
나는 씁쓸한 얼굴로 나침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우웅!
의식을 불어넣자, 나침반의 이름과 사용법이 뇌리로 흘러들어왔다.
나침반의 이름은 남극반(南極盤).
인력으로 연결된 존재에게 향하는 최선의 길을 안내하는 것이 이 법보의 능력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작위적이다.
때마침 무색유리검의 마지막 파편을 찾을 수 없고,
때마침 내 눈 앞에 무색유리검을 찾을 수 있을 도움을 주는 법보가 나타난다?
명백히 누군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남극반에 손을 대고, 무색유리검의 인력을 등록하였다.
누군가가, 남극반을 통하여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가진 힘과 명은, 지금의 나로서는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솔직히 정말 싫어하는 말이지만, 그 말대로 따를 수밖에.
-이 세상은 운명의 아래에서 이뤄지는 연극이고, 우리는 연극 안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들일 뿐입니다.
-연기자답게,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대에서 쫓겨나고 말지요.
서휼의 말.
그러나, 나는 짜증날지언정 이런 상황이라면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며 나침반을 노려보았다.
‘좋다, 누가 나를 어찌하려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연기를 해 주도록 하지.’
일단 지금은, 네가 부여한 역할에 충실히 놀아나 주도록 하겠다.
* * *
파아아앗!
나는 남극반을 타고 우주를 가로질렀다.
우우우웅!
남극반의 바늘, 개력이 어느 한 곳을 가리켰고, 나는 그곳을 향해 인력을 조종하여 축지법으로 날아갔다.
우우우웅!
그리고 얼마 후.
남극반이 ‘목적지에 도달했다’ 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남극반은 지구의 네비게이션처럼 어떤 목표를 설정해두고, 그 목표까지 가는 데에 최선의 안내를 하는 법보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런 식으로 신호를 보냈다.
나는 남극반의 안내에 따라 어떤 행성의 바위동굴 앞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의식으로 주변을 휩쓴 나는, 일단 이 행성 전체에 만상인연도를 운용시켜 무색유리검의 파편이 있는지를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무색유리검들을 전부 풀어서 만상인연도의 인력으로 당겨보아도 나오는 게 없다.
“……”
나는 무색유리검들을 회수한 후, 다시금 무색유리검의 인력을 남극반에 등록한 후 말했다.
“안내해라, 남극반.”
남극반의 바늘이 빙글빙글 돌더니, 웬 우주 저 먼 곳을 가리켰다.
무색유리검의 파편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지만 화를 다스리며 남극반을 몰고 남극반이 안내하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도 무색유리검의 조각은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남극반은 또 엉뚱한 곳을 가리켰다.
나는 남극반을 박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박살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화를 못 참고 버려버리면 그 즉시 준선들이나 존자들에게 쫓기게 되어버리는 기이한 액운이 생겨나 나를 남극반의 옆에 묶어놓았다.
그렇다고 액운이 생겨나도 이전처럼 액운을 무화할 수도 없었다.
액운을 무화하는 멸법진언을 사용하면, 태산의 주인이 나를 다시 찾아올 테니까.
지금으로서는, 이 의도를 알 수 없는 꼭두각시놀음에 어울려줘야 할 때였다.
그리고, 수만년의 세월이 흘렀다.
* * *
10만.
나의 십만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이상한 곳을 가리킨 남극반의 멍청함에 한숨을 쉬며, 다시 남극반을 조정하여 우주로 여행을 떠났다.
몇만년째다.
남극반을 내게 보낸 존재는 목적이 무엇인지.
나에게 왜 이러는건지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이 나를 남극반에 엮어두고 개처럼 끌고다니며 우주 곳곳을 강제로 여행시켰다.
“오늘은 또 무슨 개 같은 곳을 여행할 거냐.”
남극반과 함께 여행을 다니기를 수만년째.
나는 여행을 하며 틈틈히 해온 수행만으로도 벌써 천지족 수행 모두 합체 중기에 들었다.
새로운 천역은 아직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일까.
우주 곳곳에 천지영기가 어마어마하게 넘쳐났다.
그 덕에 나도 수만년을 들이면 그럭저럭 걸맞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허탈한 눈으로 오늘도 남극반에 의해 웬 별레 도착해, 그날도 여지없이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무색유리검의 마지막 파편을 찾기 위해 별 전체의 용맥을 움직여 만상인연도를 시전해 보는 둥 고생을 하였다.
쿠구구구구!
행성의 용맥이 나에 의해 들끓어오르며, 만상인연도의 구결대로 아주 잠시간 운용되었다.
“여기도 없나.”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남극반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때였다.
우우웅-
“…?”
나는 문득, 별 전체에 끓어올랐던 용맥의 기운이 별 너머로 뻗어있는 듯한 풍경을 보았다.
‘뭐지, 잘못 본 건가?’
눈을 비비자 그 풍경은 금세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만상인연도에 기억한 기록을 본 후 그것이 헛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분명 제대로 봤다. 그건 도대체 뭐였지?’
다시 행성을 돌아보자, 행성의 용맥은 얌전히 행성의 내부에 잠들고 있는 게 보였다.
* * *
시간이 지났다.
나는 점차 남극반과 함께 우주를 여행하며, 이전에 보았던 환영을 보는 빈도수가 늘어났고, 어느 순간 그게 환영이 아니란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우우웅-
용맥이, 별 바깥으로 뻗쳐있다.
그 별 바깥으로 뻗쳐있는 용맥은, 마치 거대한 기둥과도 같이 다른 별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별도 역시 다른 별과 연결이 되어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환각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렇군.”
나는 그제야, 남극반이 왜 나를 천지사방 우주홍황 곳곳을 데리고 돌아다녔는지를 이해했다.
‘내게, 이 시야를 얻게 해 주려고 했던 건가?’
아무래도 그런듯 했다.
이 용맥의 시야는 특수했다.
이 우주의 모든 별들은, 내부에 천지영기의 맥인 영맥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영맥 정도는 일반적인 결단기 정도만 되어도 다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별 바깥으로 뻗친’ 영맥의 기둥은 쉽사리 볼 수 없었다.
오직 수백만개에 달하는 별들을 다녀보고, 그 별들의 기운을 분석하고, 용맥을 끊임없이 활성화시켜본 이들만 이 기둥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기둥을 보는 시야에 익숙하지 않아 몰랐으나, 이 시야에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저 기둥의 정체와 생성 원리를 알 것 같았다.
“별들의 용맥이 극점에 달해, 계위를 초월해 명의 계위에 걸쳐있는 거로군.”
별이 가진 무궁무진한 영맥에 의해 혼의 계위를 그냥 뛰어넘었기에 처음에는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별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으나 아니었다.
실상은 명의 계위에서 서로가 인력을 내뿜으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명의 계위로 치솟은 영맥을 통해 그걸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다.
이 우주의 모든 별들은, 무수한 빛의 기둥으로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이것은 인다라망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나는 이 빛의 기둥.
즉 ‘별들을 잇는 용맥’에 한 가지 이름을 붙여주었다.
별의 용맥, 성맥(星脈).
파아아아앗!
나는 남극반과 함께 성맥을 따라 남극반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역시 이번에도 무색유리검 조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성맥을 보는 눈을 명확히 가지게 된 날 이후.
나는 남극반이 나를 마냥 무의미하게 끌고다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남극반과 한 번의 여정을 거칠 때마다, 성맥을 보는 눈.
성맥안이 더욱 더 강화된다.
나는 더욱 더 먼 곳의 성맥을, 더욱 더 자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16만.
나도 이제 16만년이나 먹은, 살아있는 화석이었다.
합체기로서 받은 수명도 거의 다 써가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내 피부와 얼굴에 조금씩 주름이 늘기 시작했다.
아마 3만년만 있으면 곧 죽으리라.
꾸우우욱…
내 경지는 이제 합체 후기였다.
좌탈입망의 성취는, 이제는 충분히 일격들을 난사 가능한 경지였다.
‘언제까지 이 여행은 계속되는 거지.’
죽기 전에, 무색유리검을 찾을 수는 있을까?
나는 약간 허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남극반과 함께 계속하여 성계를 여행하였다.
* * *
성맥안은, 어찌보면 명각보다도 훨씬 얻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명각이야 귀도공법을 익히거나 죽은 이라면 누구든 볼 수 있지만, 성맥안을 얻으려면, 수백만개의 별에 들른 경험이 있고, 그 별들 모두에서 용맥을 끌어내 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 둥 어마어마한 전제조건이 있었으니까.
거기에 명각과는 달리 성맥안은 쉽게 성장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성맥안을 성장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추정되는 남극반을 타고 수만년을 떠돌아다녔는데에도 불구하고, 성맥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참 동안이나 우주 전체에 펼쳐진 별자리의 그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날 남극반과의 여행을 마친 날, 내 성맥안은 어떠한 ‘임계점’을 돌파하였고, 나는 그 임계점을 넘어서며 어마어마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역(歷)이었다.
용맥을 통하여, 별자리가 지금껏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그 기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깟 기록이 뭐가 대단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오혜서처럼 모든 기록을 되는대로 열람하는 것도 아니고, 별자리의 기록이라니?
그러나 분명 이는 대단하였다.
별자리들의 기록은, 모두 최초의 거대한 폭발.
천역의 시작을 알리는 폭발지점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우우우웅-
나는 그 [길]을 보며 마침내 깨달았다.
무색유리검의 마지막 파편이 어디에 있었는지.
저 [길] 너머에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마, 이 천역을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을 터였다.
그래, 무색유리검의 마지막 조각은 처음부터 이 천역의 바깥에 존재했던 것이었다.
파라라라락!
그 사실을 깨닫자, 그제야 남극반은 [길]을 정확히 가리키는 안내를 시작하였다.
내 나이는 현재 19만 202세.
내 수명이 다하기까지, 400년이 남았다.
* * *
천역을 나갈 수 있는 출입구에 도달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정확히 400년이었다.
차라리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딱딱 맞았다.
나는 얼굴에 있는 주름살과 수염을 어루만졌다.
내 경지는 현 시점에서 천지쌍수, 심족의 힘 모든 것이 합체기 대원만 급이었다.
즉, 전성기 [그녀]와 동급 그 이상이란 의미였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며, 경지도 있는 힘껏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눈앞의 [문]을 보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쿠구구구구!
천역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
나는 저 너머에 두 갈래의 갈림길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하나는 그냥 천역 바깥으로 나가는 평범한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딘가]로 통하는 수상쩍은 길이었다.
그리고, 무색유리검의 마지막 파편은 그 [어딘가]로 통하는 길 쪽에 있었다.
미지가 두렵진 않았다.
진정 두려운 것은.
‘저 너머의 있을 존재…’
알 수 있었다.
저 너머에, 나에게 남극반을 안겨주고 나를 수십만년 동안 운명으로 끌고당기며 강제로 성맥안을 안겨준 존재가 있다.
그 존재가 나를 만나려함이 느껴졌다.
아직도.
아직도 태산의 주인이 내 동료들을 모조리 몰살하고 우주를 태초로 돌리던 그 모습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남극반을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어차피 잃을 것은 없다.
잃을 것은 오직, 나의 기억.
비록 티끌만한 조각일지언정, 그 무색유리검 조각에는.
그 만상인연도에는.
나의, 모두의 역사가 담겨있었으니까.
나는 남극반을 타고, 이 천역의 바깥으로 발을 디뎠다.
파아아아앗!
천지사방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쿠구구구구구!
은하!
무수한 은하수의 중심.
그곳에 어떠한 옥좌가 있었고, 남극반은 나를 그 옥좌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번쩍!
지금껏 나를 태우고 왔던 남극반이, 새하얗게 빛나더니 한 명의 노인으로 변화하였다.
나는 그를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당신이십니까? 저를 보고자 하신 분이?”
느껴진다.
눈 앞의 존재는, 최소 진선이다.
“아니, 나는 본체의 화신일 뿐이다. 네가 본체를 직시하면 미칠까봐 배려했지.”
“…하실 말이 있으시면 바로 불러내시면 될 것을, 어찌 이렇게 긴 세월을 들여 불러내셨나이까.”
“하하, 긴 세월이라.”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나는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질문했다.
“누구십니까?”
“많은 호칭이 있지. 누구는 역법의 신이라 부르며, 누구는 세월의 주인이라 부른다.”
따악!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은 무릉도원 같은 누각으로 변화했다.
그는 누각에 앉으며 말했다.
“너는 나를 시간의 천존이라 불러라.”
나는 그의 근엄함에 절로 무릎을 꿇었다.
“엎드려 나에게 절을 올려라. 나는 너를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봐왔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