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21)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21화
망가진 자들 (1)
우웅-
나름 지역 하나를 갈아 버릴 법한 수준의 오의로 성장한 것이 지금의 단악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오의의 힘을 일점에 터트렸거늘, 서휼은 보란 듯이 내 뒤쪽에 나타나 엿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냐, 또.”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전이라면 녀석의 탁혼만천에 당할까 노심초사했겠으나 이젠 탁혼만천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았다.
서휼 역시 그 사실을 알아챘는지, 이제는 대놓고 나를 세뇌하려 탁혼만천을 쓰는 게 느껴졌다.
“더 안 통한다.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목적이나 밝혀.”
[후후, 이거 참. 이전에는 좋은 분이셨는데 어찌 이리 변하신 것인지… 통탄스러울 지경이군요.]그의 말에, 나는 눈매를 꿈틀거렸다.
저것 역시 내 속을 떠보기 위한 한마디.
하지만 그 말이 맞다.
내 마음은 잿더미요, 내 영혼은 타고 남은 숯이었다.
서휼의 탁혼만천이 두렵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자혼만천을 얻어서? 멸법진언을 가져서? 어전 이보의 가능성을 얻게 되어서?
그런 것들은 모두 외적인 요인일 뿐.
진실은 하나다.
이제는, 나 역시 괴군, 서휼에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닥치고 왜 온 건지나 말해라, 이제 앞도 못 보게 된 거머리야.”
부웅!
나는 손을 휘저어 눈 앞의 서휼을 베어 냈다.
그러나 서휼은 한 번에 베여 나갔음에도, 허공에서 흐트러지는 듯하더니 다시금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투영인가? 아니, 투영이라기엔 너무 손맛이 생생한데….’
서휼이 죽은 자리에는 여전히 서휼의 시체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시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녀석이 내 주변에 이렇게 허깨비처럼 나타나는 원리를 알아챘다.
‘시체가, 기의 계위에밖에 걸쳐 있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은 기, 혼, 명 삼계에 걸쳐 있다.
무생물도 마찬가지였다.
흙에도 백이 있고, 산에도 혼이 있으며, 별에도 영이 있었다.
생명이 없는 무생물들조차 혼의 계위에 존재했고, 성맥안으로 보는 것과 같이 그 모든 것들 역시 명의 계위에도 걸쳐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것은 기의 계위의 음양의 흐름만이 서휼의 시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혜서군. 그녀가 너를 위해 능력을 빌려줘서, 그녀의 힘으로 투영을 보낸 건가?”
분명 오혜서의 힘이었다.
서휼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왕 올 거면 오혜서랑 같이 오지 그랬나. 그녀 성격에, 이런 재미있는 구경을 할 기회를 놓치진 않았을 텐데.”
오혜서에게 처음으로 배신당했을 때를 떠올리자면, 그녀는 자극과 흥미를 쫓는 인물상으로 보였다.
그러니만큼, 천족의 영역이 강민희에게 멸망하는 이런 상황이라면 구경이라도 하러 올 법했으나, 인근 수십만 리 내에서 오혜서의 존재는 감지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후후, 아무래도 그녀는 지난번의 만남 덕에 공포감이란 걸 조금 알게 된 것 같더군요.]“….”
확실히, 이 시점에서의 오혜서는 수석판관장이니 뭐니 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를 직관했었다.
아무리 감정이 읽히지 않는 그녀라도 초월적인 존재의 힘은 감히 쳐다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리라.
[덕분에 최근에는 제게 꽤나 의존적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서로에게 꽤나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지요.]나는 서휼의 말에, 천 년 이후 시점을 떠올렸다.
‘부인이라고 불렸었지.’
서휼과 아무래도 결혼을 한 모양.
그때는 세뇌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어떻게든 운명은 둘이 맺어지도록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으르렁거리며 서휼을 노려보았다.
울컥, 울컥!
조금 감정이 격해지니, 내 그림자 곳곳에서 뭔가들이 벗어나려는 듯 마구 발버둥 쳤다.
내 심마들이 저주로 구현화되어 내게서 도망치려는 것 같았다.
[후후… 원래 그녀와 저는 단순한 이용 관계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실험하며 배반을 준비하는 관계였지요. 하지만 제 시야가 봉인되고, 그녀는 정신에 상처가 생긴 이후.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동맹이란 것을 맺어야 했지요. 아시겠습니까, 서 도우?]그의 말에 나는 눈매를 꿈틀거렸다.
[복을 잃은 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구멍을 메꿔 주기 위해 충분히 뭉칠 수 있다는 겁니다. 당신도, 저나 조 노야만큼 마음이 망가졌으니…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메워 줄 동맹이 될 수도 있겠지요.]나는 그 말에 서휼을 보며 웃었다.
“그건… 마치 네가 마음을 인정한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하하… 설마 제가 마음이 정말로 없다고 여기겠습니까?]나는 서휼의 말 이면에 숨겨진 의지를 읽었다.
-마음이란 것은 필요에 따라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는 것일 뿐.
지금은 나를 설득해야 하니, 마음을 긍정하는 척하는 듯했다.
이전이라면 이것을 알아채고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서휼이란 녀석은 마음이 없는 괴물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경지에 이른 내게는 뭔가 다른 것이 보였다.
수만 년의 세월을 거치며, 너무나 고통스러워 한 차례 망가져 버렸던 나였기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서휼은 어쩌면, 마음이란 것을 필사적으로 부정해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마음은 분명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안겨 줄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가 나만큼이나 망가져 있다면, 어쩌면 그가 마음을 부정하는 이유는 이 고통에서 누구보다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일지도….
나는 서휼의 그러한 본질을 통찰하며 쓰게 웃었다.
“알았다. 알았으니 혀를 놀려 보아라, 가엾은 서휼아. 내 잠시나마 들어 주마.”
나는 불쌍함을 담은 말투로 그를 동정하며 말했다.
그리고 내 동정이 서휼의 무엇을 건드렸는지.
그는 실실 웃는 것을 멈추고 눈을 떴다.
그의 눈은 흐리멍텅해서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견 감정이 없어 보여 소름 끼치는 눈이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서휼에게 했던 어떤 도발보다도, ‘그를 동정하는 것’이 가장 크게 먹혔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미소를 멈추고 잠시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듯했다.
[…과연 높으신 분이시군요, 서 도우는… 어디까지 통찰하셨습니까?]“네놈이 조금은 불쌍한 존재라는 것 정도는 통찰했다.”
[…그렇다면 얘기하기가 편해지겠군요.]서휼은 감정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이쪽으로 날아오는 강민희를 가리켰다.
[처음에는 저 존재가 날뛰어 주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여 내버려 두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의 힘을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혼란이 필요하지만… 멸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저와 힘을 합쳐, 저 존재를 광한계 바깥으로 방출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나는 서휼의 제안에 고민을 해 보았다.
평소라면 서휼의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었기에 무시했겠으나, 지금은 달랐다.
‘강민희를 공허간이나 성계에 배출하면, 훨씬 사상자가 적어지긴 할 터.’
사실 천역이란 절대 다수의 영역이 성계였다.
중경계는 성사의 말대로 위대한 존재의 시체였기에, 성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인력을 가져서 중경계일 뿐.
넓이 자체는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인 성계에 절대로 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지난 회차에서 무색유리검 조각을 모을 수 있던 것 역시, 당시가 창세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지, 아마 수십만 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면 나는 절대 무색유리검을 찾을 수 없었을 터였다.
그런 점에서 그 무한히 넓은 성계나, 시들밖에 없는 공허간에 강민희를 배출하면 사상자는 적어질 터였다.
적어도 그녀를 광한계 바깥으로 보낸다면 내가 쇄성기 승급에 도전할 때까지의 시간은 벌어 주리라.
“…의견이야 좋다만.”
강민희가 슬슬 가까이 왔기에, 나는 도망치며 물었다.
서휼은 오혜서의 도움으로 용맥 그 자체와 동화된 건지, 용맥이 있는 대지에서 계속해서 투영체를 드러내며 나와 대화를 이어 갔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쇄성기인 강민희를 광한계에서 배출시킨단 말이지?”
[제가 부인과 함께 성계에서 저것을 당기겠습니다. 서 도우가 밀어 주십시오.]‘오혜서는 지금 성계에 있는가.’
나는 정색하며 물었다.
“얌전히 성계로 배출될 거라 생각하진 않을 터. 계획은 있겠지?”
[예… 뭐. 바라던 바는 아니었습니다만, 저 존재가 발버둥 칠 때 잡아 줄 만한 존재가, 어찌어찌 탄생해 버렸으니까요.]“…설마.”
나는 서휼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뭘 짐작하셨는지는 알 것 같군요. 바로 그 설마입니다.]“괴군 조연과 힘을 합치자는 거냐?”
나는 어이가 없어 질문했다.
확실히 지금 시점 괴군은 탈합체기 수준 괴뢰를 2체 가지고 있었다.
[그녀]와 기묘성채가 바로 그것.그리고 괴군은 기묘성채와 [그녀]의 연계를 통해 현시점에서도 준쇄성기 수준의 전력은 낼 수 있다.
거기에다가 천 년 이후 시점에는 [그녀]와 기묘성채 둘 모두 준쇄성기 수준으로 올라가기에, 천 년 이후 시점의 괴군은 준쇄성기 수준의 괴뢰를 2체나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전력만으로 본다면 나, 서휼, 괴군이 힘을 합치면 강민희를 광한계에서 배출시킨다는 건 허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괴군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자를 설득시키는 게 어찌 가능하다는 말인가?
서휼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서 도우. 제가 쓰는 비술의 이름과 능력은 아시겠지요.]“…그래.”
[제 탁혼만천으로는 서 도우나 괴군을 세뇌할 수는 없습니다. 두 분 다 미치광이이기 때문에 제 배열을 흘려 넣어 봤자 정상적인 의식 흐름이 아니기에 배열이 자리를 못 잡기 때문이지요.]“….”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서 도우는 심족이시지요? 거기에 동료로는 괴군의 의식공법을 익힌 그의 제자를 두고 있고 말입니다. 서 도우와 저, 그리고 부인과 도우의 동료분이 힘을 합치면 일시적으로 괴군의 의식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나, 김연, 오혜서, 서휼이 힘을 합치면 괴군의 의식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라.’
수상쩍었다.
“네가 괴군이 의식을 정상으로 되돌린 틈을 타 괴군을 세뇌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않나?”
[후후… 그 점에 있어서는 걱정 마시지요. 괴군을 세뇌하진 않을 겁니다.]-어차피 못 합니다.
나는 서휼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읽으며 약간의 안심을 했다.
‘아마 괴군의 광기는, 일시적으로 되돌린다 해도 기묘성채 덕에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높으니 서휼이 세뇌해 봤자 의미가 없을 테지.’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서휼은 뭘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놈이었으니까.
“그걸 어떻게 믿지?”
[…부인과 함께 제게 걸린 저주를 해석하며 알아낸 사실입니다. 위대한 존재가 제 눈에 건 저주는, 제 ‘악행’에 따라 실시간으로 기간이 늘어나더군요. 처음에는 단순히 천 년이었지만, 이제는 대략… 20억 년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저주를 벗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지요. 이 저주는 제 본체가 아닌 제 ‘가면’에 걸린 저주. 즉, 본체 외의 인격은 전부 지워 버린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저주를 벗을 수 있습니다.]“내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 저주와 관련된 건가?”
[그렇습니다, 서 도우. 이 저주 덕에, 저는 제 본체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위대한 존재께서 건 저주는 단순한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닌, 제가 제 본체를 찾을 수 없도록 한 것이더군요.]나는 서휼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단순히 녀석의 언행과 심상이 일치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녀석은, 언제나 자신의 본질에 관한 것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빛냈다.
[그러므로 제안드리겠습니다, 서 도우. 저 존재를 광한계에서 몰아낸 이후, 제가 제 본체를 되찾는 것을 도와주시지요.]서휼의 본체를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가 무표정하던 얼굴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며 빙긋 웃었다.
[본체를 찾기 이전까지는 절대 서 도우를 배신하지 않겠습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