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27)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4)
쿠릉, 쿠르르릉!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서휼, 귀도성모를 끌어당기려면 얼마나 걸리지?
[…그것이… 원래 예정된 좌표에서 끌어당기기로 한 것이라, 갑작스레 좌표가 바뀐 지금은 좌표를 수정하는 데에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얼마나 잡아 둬야 하나.
[…하루는 잡아 두어야 합니다만….]나는 그 말에 이를 짓씹으며 외쳤다.
“이 쓸모없는 것이….”
[잠깐, 진정하시지요 서 도우. 좌표를 고정할 수단이 있다면 획기적으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어떻게 하라는 거냐.”
내 말에 서휼이 저 먼 곳에서 웃으며 말했다.
[저와 같은 해룡족의 피, 혹은 주혼(主魂)이라면 빠르게 좌표를 잡을 수 있지요. 제가 알기로 현재 서 도우의 동료 중에 제 후손이 있는 걸로 압니다만… 그 아이의 피 한 줌이나 혹은 분혼 정도만 제게 보내 주시면 한 시진 안에 좌표를 변형할 수 있습니다.]‘서란의 피나 혼백 조각을 달라는 건가.’
내가 고민할 때였다.
쿠구구구구!
기묘성채가, 마침내 목적지에 완전히 정착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푸쉬이이이-
기묘성채에 설치된 계멸축지진이 열기를 삭혔고, 나는 동료들.
그리고 섭명함 갑판에 서 있는 인족 총연맹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섭명함의 갑판 위.
준제를 비롯한 인족 총연맹 수뇌부는 나와 기묘성채를 번갈아 보며 당황하는 모습이었고, 나는 그들을 비롯한 모두에게 말했다.
“지금 귀도성모가 이곳으로 강림하려 하니, 그대들은 일단 내가 준 좌표로 이동하시오!”
내 말에 허곽이 소리를 질렀다.
“아직 안 됩니다! 기운이 축적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리고, 괴군이 나섰다.
“흑 제후!”
쿠구구구구!
거대한 어둠이 기묘성채에서 빠져나왔다.
흑룡왕 현음의 사체로 만들어진 괴뢰에서 어마어마한 어둠의 힘이 흘러나왔다.
본디 그의 합도영역 내부에 있던 검은 바닷물과, 섭명함 동력원들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섭명함의 동력장치를 노심으로 가진 [그녀]를 비롯해, 두 대의 섭명함의 기운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뭣… 아니 이게 무슨….”
허곽은 괴군이 본인들을 도와주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괴군을 올려다보았고, 나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충전됐으면 가동해라!”
내 말에 허곽은 정신을 차리며 외쳤다.
“섭명함 가동!”
허곽의 명과 함께, 수천 수만 마리의 귀신들이 섭명함의 위쪽에서 끓어오르며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섭명함이 공간 도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 도우,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전달해 주셔야 합니다.]저 앞쪽에서는 강민희가 차원을 뚫고 강림하는 게 보였으며, 서휼이 나에게 서란의 혼 조각을 독촉했다.
하지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서란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닌가.’
단일 개체인 서휼을 상대로라면 걱정이 없지만, 서휼은 복수의 존재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역병이었다.
놈에게 서란의 흔적을 주면 무슨짓을 할지 몰랐다.
‘배신은 하지 않겠다 했지만….’
내가 미친 듯이 고민할 때였다.
“주인님!”
홍범이 내게 날아왔다.
“주인님께서도 섭명함에 타시지요!”
“…난 여기서 강민희를 막아야 한다.”
“끄음… 알겠습니다. 뭔가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나는 홍범에게 간략하게 지금 상황을 말해 주었고,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란 공을 꺼내 올 시간은 없으니 그냥 제가 좌표를 만들어서 서휼이란 자에게 보내겠습니다.”
“무슨, 그게 가능….”
츠츠츠츳!
그와 동시에 홍범이 그 자리에서 단로를 꺼내서는 순식간에 기이한 약재들을 던져 넣으며 뭔가를 제련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홍범이 약초와 독액을 단로에 집어넣자, 단로가 달아오르더니 그 안쪽에 시뻘건 액체가 출렁이게 되었다.
“지난번에 서란 공이 먹고 남긴 해란과 껍질을 받아 만든 약재로, 해룡족의 진혈과 가장 유사한 성분을 지닌 액체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약재의 배합과 비율. 약재가 지닌 기(氣)의 기질을 조합하며 해룡족의 것과 완벽히 같게 만들 터이니 이걸로 좌표를 잡으라 전하십시오!”
“알겠다!”
나는 홍범의 말을 서휼에게 전달했고, 서휼은 살짝 어이없다는 듯 내 제안을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 줄은 또 처음 알았군요. 그럼 좌표를 잇겠습니다!]파아아앗!
동시에 내 그림자에서 서휼의 탁혼만천 조각이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홍범이 만든 액체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홍범은 액체의 기운을 조정하며 서휼에게 좌표를 보내 주기 위해 애썼고, 얼마 후 액체가 더욱 더 핏빛으로 달아오르더니 밝게 빛났다.
[혈제비식 혈음귀향.]우우웅!
서휼의 탁혼만천 조각이 들어난 액체가 붉게 타오르는 듯 끓어올랐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액체에서 생겨난 인력에 닿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났다.
곧이어 서휼의 목소리가 울렸다.
[얼마 후 그 존재가 귀환하면 그 액체를 그 존재에게 뿌리십시오.]“알겠다.”
쿠구구구구!
다시금 공간이 우그러지며, 나와 서휼에 의해 잠시 공허간으로 쫓겨났던 강민희가 돌아왔다.
오싹!
나는 그런 강민희를 보며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런 미친….’
이전에는 쇄성기 초기에서 힘이 들쭉날쭉한 편이었다면, 다시 강림한 그녀의 힘은 명백히 쇄성기 중기였다.
‘공허간에서 따로 천겁을 맞고 승급한 건가….’
어둠 안쪽에서 나를 지나, 공간도약을 준비하는 섭명함을 향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 나는 빠르게 무색유리검을 휘둘렀다.
강민희가 내가 인지하기조차 힘든 속도로 섭명함을 향해 공격을 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단악검법, 공곡전성!
나는 검에 모든 힘을 비워 낸 후, 강민희의 일격을 검에 담아 하늘로 흘려 내어 버렸다.
투웅!
하늘로 퉁겨 나간 그녀의 일격.
쩌어어어억!
그리고, 하늘이 갈라졌다.
촤아악!
지평선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하늘에 검은 선(線)이 그려지며, 마치 김영훈이 고력계의 해역 하나를 가르며 보여 줬던 분천의 묘기 같은 광경이 나타났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김영훈이 갈랐던 고력계에서의 분천은, 고작해야 인족 영역 수준인 해역 하나를 가른 것이고, 강민희의 일격은 그보다 훨씬 광대한 광한계의 천공을 갈라 버린 것이었다.
쿠구구구구!
나는 허공에 생겨난 검은 계곡을 보며 홍범에게 외쳤다.
“부어라! 홍범! 출발해라! 귀골곡!”
번쩍!
흑색귀골곡의 섭명함 두 척이 공간을 도약했고, 나는 홍범 쪽을 바라보았다.
‘어?’
그리고 홍범은 어쩐지, 여지껏 보여 준 적 없던 멍한 표정으로 강민희가 두른 어둠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홍범! 빨….”
콰아앙!
순간, 나는 잠시 기절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 으으으윽!”
뭔가 거대하고 강력한 것이 내 몸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수백 마리의 귀왕들로 이뤄진 결계였다.
‘뭐지? 지금 뭐가 어찌 된… 이, 이건…!’
난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를 인지하고 눈을 부릅떴다.
강민희가, 축지법을 통해 공간을 왜곡하며 차원을 도약해 난계 지역으로 가는 섭명함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섭명함 사이에 있던 나는 여지없이 그녀의 돌진에 의해 그녀가 두른 결계에 치인 채로 같이 날아가는 모양새가 된 것이었다.
‘이게 쇄성기의 축지법….’
사축기, 합체기 수사의 축지법이 단순히 공간을 접어 비둔술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이동하는 수준이었다면, 쇄성기 수준의 축지법은 차원이 달랐다.
피이이이잇!
주변의 모든 것이 빛무리처럼 보였다.
마치 수계에서 광한계로 비승할 때처럼, 공간 전체가 내게 강한 압박을 주고 있었고 주변의 모든 것이 실선처럼 얇아 보였다.
그리고, 저 뒤쪽으로 차원도약을 통해 심족 영역으로 피난을 가는 섭명함이 보였다.
‘이런 제기랄! 따라잡히겠어!’
난 차원 자체를 접어, 무량한 시공간을 여행하는 섭명함의 차원도약을, 단순한 축지법으로 따라잡고 있는 강민희를 보며 이를 갈았다.
‘홍범이 시간을 못 맞췄다.’
녀석이 뭔가를 홀린 듯이 보고 있던 사이, 그녀가 축지법을 시작해 버려서 서휼이 그녀를 당길만한 좌표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이대로라면 계획은 시작조차 되지 않을 터.
‘그렇게는 안 되지.’
꾸드드드득!
나는 등 뒤로 삼태극을 띄워 올리며 영역을 몸에 씌우고 본체로 변화했다.
[그아아아아아!]쿠구구구구!
본체로 변한 상태의 내가 강민희의 인력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미는’ 힘 자체가 나와는 그렇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내 모든 공법이나 투법은 전부 ‘베고 찌르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지금까지 연구해 오고 깨달아 온 내 모든 것은 절대 다수가 검(劍)을 기반으로 한 것.
그러나 검의 정수란 결국 베기나 찌르기, 막기일 뿐.
‘밀치는 것’ 자체는 검으로 달성할 수 있는 정수가 아니었다.
그나마 상대가 이지가 있는 대상이라면 눈알이나 성기 같은 곳을 찢거나 뜯어서 잠시 멈출 수도 있을 터였으나, 상대는 귀도성모 강민희였다.
그녀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없는 건 둘째치고, 한다 쳐도 귀물화한 상태라 그런 약점이 의미가 없어졌다.
‘저주도 소용이 없군.’
나는 어둠 안쪽을 향해 약한 저주를 몇 번 쏘아 봤지만, 저주의 고통이 수억 수조 수경에 달하는 원혼들에게로 분산되며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졌다.
진심을 다한 내 저주라면 수경에 달하는 원혼들조차 움찔거리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뿐일 터다.
우우웅-
나는 기묘성심전을 통해, 괴군이 기묘성채를 이끌고 계멸축지진을 발동시켜 홍범과 함께 강민희의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단 걸 알았다.
괴군의 심어가 내게 날아왔다.
-잠시만 잡고 있어라! 그리하면 괴뢰군단을 보내 사갈 놈의 피를 뿌리겠다! 아주 조금만 움직임을 늦추면 가능할 게야!
뒤쪽을 감응해 보니, 괴군의 계멸축지진은 현재 강민희와 우리 쪽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한 번 사용한 터라 연속으로는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잠시 늦추라고?’
그러나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해 막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민희를 보며 막막함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도대체 어떻게!
사라락-
그때였다.
뭔가 부드러운 것이 강민희를 막아서는 내 손끝을 스쳤다.
[…너…!]김연이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내 옆에 나타난 김연의 모습을 보았다.
화르르르륵-
불타고 있었다.
내 옆에 온 것은 본체가 아닌 의식체.
새하얀 의식이 밀집된 불꽃같은 모습의 그녀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15회차 당시.
규련의 광한지약을 주재했던 당시의 김연의 의식체와 같은 모습.
물론 그때와 달리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불안정했고, 연분홍빛이던 당시의 모습과 달리 아직은 그저 의식이 밀집되었을 때 나오는 백색의 빛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한순간 그때 그 경지에 도달하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연은 여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이에요.]의식의 집합 그 자체나 다름없는 상태의 김연.
그녀의 손이 내 손에 닿은 순간, 나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의식을 넘어서 바로 전해져 왔다.
나는 홀린 듯 김연의 지시에 따라 총천검을 그녀에게 꽂았다.
[모두 오세요!]그리고, 총천검의 계위 조절이 빛을 발하며, 김연이 기묘성심전으로 연결해 놓았던 동료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촤라라락!
오현석, 창호자, 김영훈, 전명훈 등의 동료들이 일제히 혼의 계위에서 의식을 드러냈다가, 총천검에 의해 기의 계위로 내려왔다.
김연에 의해 일시적으로 모두가 본체나 다름없는 분체를 가지고 도달한 것이었다.
가장 앞에 나선 것은 오현석과 창호자였다.
[흐하하! 놀랍군. 의식으로 몸을 상상해 혼의 계위에 구현하고, 계위를 낮춰 본체나 다름없는 분체를 만들 수 있다니…!]창호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전설의 기술을 시험할 수 있겠구나! 현석아!] [예! 스승님!] [본문의 역사를 보여 주자꾸나!]창호자와 오현석의 등 뒤에서 날개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일익, 이익, 삼익….
점차 그들의 몸이 거대하게 변화하며 별빛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날개는 푸른 창천의 빛을 뿜었기에, 그들의 몸은 낮과 밤.
하늘 그 자체로 이뤄진 듯 빛났다.
칠익, 팔익, 구익….
점차 그들의 기운이 강해졌다.
일순간, 창호자와 오현석의 기운은 사축기 대원만을 넘어 합체기 초기까지 내달았다.
그리고, 창호자가 입고 있는 갑옷이 빛났다.
[보여 주마, 이것이, 대창천개벽문 이천 년 역사의 정수이다…!!!]치이이이이!
그리고, 아홉 번째 날개 아래로 열 번째 날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붉은 날개였다.
창호자의, 오현석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생명의 날개였다.
창천의 날개와 생명의 날개의 기운이 섞이며 오현석과 창호자의 몸이 자색으로 물들었다.
‘저것은….’
14회차 당시 보았던, 창호자 최후의 창익천쇄.
십익(十翼)의 태세!
보랏빛 거인으로 변한 오현석과 창호자가, 일제히 강민희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밀었’다!
[네 특기는 베기지, 서은현!]오현석이 나를 돌아보며 외쳤다.
[이런 류는 우리에게 맡겨라! 김연의 능력으로 만든 분체이니 소멸해도 문제는 없어!]창호자는 청천갑의 힘을 끌어 올리며 존자와 합체했던 흑룡왕을 잠시 막았던 힘을 보여 주었고,
오현석은 일문성체의 공능과 십익의 힘을 합쳐 창호자에 비견될 정도로 힘을 증폭시켰다.
두 명의 거인들이 내 앞을 막아 주었다.
[인다라망!]콰지지지직!
전명훈은 이두육비의 뇌신으로 변화하며, 뇌전으로 이뤄진 그물을 펼쳤다.
곧이어 그 그물에 기묘성채와 우리가 걸렸고, 기묘성채가 전명훈의 힘에 힘입어 이쪽으로 더더욱 빨리 끌려오는 게 느껴졌다.
[강민희에게 뭘 뿌려야 한다고 들었다!]김연은 내 의식과 연결되어 있었고, 동료들은 김연의 의식에 연결되어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상황은 실시간으로 요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료들에게 공유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김영훈은 그런 사정으로 인해 우리의 계획을 알아채고 말했다.
[홍범과 합류해 같이 뿌리겠다!] [부탁드립….]그리고, 강민희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꾸우웅!
쿠구구구구구!
그녀가 한 번 몸부림치자, 앞서가는 섭명함이 뒤흔들렸고, 뒤따라오는 기묘성채가 미친 듯이 진동했으며, 그녀를 막고 있던 우리 전부가 칠공에서 피를 토했다.
‘강민희가 계속 움직이면 홍범과 김영훈이 힘을 합쳐도 힘들어.’
나는 결심했다.
[가십시오! 제가, 찰나뿐이라도 강민희의 움직임을 제약하겠습니다!] [믿는다!]파앗!
김영훈은 사라졌고, 나는 무색유리검을 손에 쥐며 짧은 순간 의식을 집중했다.
‘상대는 벨 수 없는 존재.’
지금 통하는 것은 검수의 베기나 찌르기가 아닌 밀기나 막기다.
그렇다면 내 검은 지금 쓸모가 없는가.
‘아니야.’
몇 번이나 하늘 앞에서, 운명 앞에서 절망해 왔다.
항거할 수 없는 거력 앞에서 절규해 온 게 한두 번인가.
이런 순간에마저도 쓸 수 있도록 발전시켜 온 것이 나의 검이 아니던가.
‘아직 벨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베기가 의미가 없고, 베어도 아픔을 못 느끼는 존재라면 무엇을 베어야 하는가.
츠츠츠츠츳!
나는 의식을 검에 담았다.
본래는 원영을 담고 휘두르는 절초이지만, 원영이 영역으로 진화한 지금은 세계를 통째로 밀어넣는 절초가 되어 버릴 터였다.
단악검법
제이십오초
의해은산(義海恩山)
내 모든 힘이 검 안에서 통합되며, 힘들의 계위가 완전히 혼의 계위로 올라갔다.
‘저주는 원혼들에게 분산되었었지.’
츠츠츠츳-
의해은산이 검게 물들었다.
‘그렇다면, 저주를 박아 넣어 고통이 분산되는 순간 반전시키면, ‘저주의 분산’이 아닌 ‘축복의 집약’이 일어날 터다.’
축복을 오롯이 강민희에게만 집약시켜, 찰나 동안일지라도 그녀를 멈춰 세운다.
‘의해은산 정도론 안 돼.’
의식이 없다 뿐이지 쇄성기나 다름없는 그녀다.
의해은산이 좌탈입망의 일격에 준하는 빠르기일지라도 그녀에게는 모자란다.
어쩌면 펼치는 도중에 막힐 수도 있는 것이었다.
‘못 막을 속도로 날려야 한다.’
의해은산에 더불어, 하나의 초식을 다시 합친다.
의해은산.
그리고….
산심연후도(山深然後道)!
응용기
은심교교백(恩深皎皎霸)
검은 검기가 초승달의 형태로 뻗어 나갔다.
산심연후도의 속도로 날아간 의해은산의 검기는, 순식간에 강민희의 가슴 속을 파고들어 그녀의 안에 저주를 흩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안에 들어 있던 나의 의지와 함께 저주가 반전된다.
고통이 흩어지지 않고, 축복이 오롯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파아아아앗!
강민희의 가슴에 맑은 초승달이 피어오른 듯한 광경.
마치 한밤 중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른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파아아앗!
다음 순간.
나는 강민희의 심상에 들어섰다.
그 안에서 그녀의 안쪽에서 괴성을 지르는 귀신들의 고통을 일순간 밀어낸 나는 강민희의 의식과 마주했다.
새하얀 공간.
잠시나마 제정신으로 마주한 우리는 말이 필요없이 서로를 보고 쓰게 웃었다.
“…부끄러워 미치겠네.”
강민희가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내 안쪽까지 이렇게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그럼 내 마음도 다 봤겠네.”
“다 보진 못했어.”
“거짓말 마. 봤잖아. 뭘 봤는지 말해.”
스스스스-
내가 축복을 통해 강민희의 심상 속에 잠시 만들어 낸 공간이 어둠에 물들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손으로 가린 상태에서 물었다.
나는 잔잔히 웃으며 답했다.
“…[그때].”
특별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마음이 통했으니까.
우리가 두 번째 사귀었다가, 마지막으로 헤어진 날 저녁.
흡연장에서의 모습.
그때 강민희가 숨기고 있었던, 그리움과 아쉬움을 보았다.
강민희는 손을 내렸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주변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제 의해은산으로 얻었단 짧은 시간도 끝나 갈 것이었다.
“그거 알아, 서은현?”
나는 강민희를 담담히 바라보았고, 강민희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제야 안 건데 말이지.]파아앗!
다시금 의식이 강민희의 심상 밖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에 의해 짧게나마 의식을 찾았던 강민희의 목소리가, 귀곡성 속에서 작게 울려 퍼졌다.
[삶은 곧… 슬픔이야.]촤아악!
그리고, 그녀의 위로 서휼의 붉은 물이 흩뿌려졌다.
번쩍!
좌표가 연결됐고, 서휼과 오혜서가 있는 성계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