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2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5)
철컹-
편의상 ‘문’이라고는 칭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낙인이었다.
강민희의 몸에 붉은 용의 낙인이 찍혔다.
‘저건….’
봉명성 최상층에서 봤던 것 주술진이었다.
그녀의 몸과 그녀 주변 귀왕들에게 덧씌워진 주술진은 성계와의 통로가 되어 그녀를 묶기 시작했다.
즈우웅!
강민희의 뒤쪽으로 희미한 성계의 잔영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낙인이 별들이 가득한 우주의 정경을 불러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정경을 통해, 어째서 서휼이 천 년 동안의 실명이라는 저주를 20억 년이라는 기간으로 늘렸는지 알 수 있었다.
‘서휼 이 미친놈이….’
성계의 정경.
저 너머에는 성계라는 그 이름답게 무진장한 별들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별들의 바다 속.
항성과 행성들 속에서 무수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다.
항성 속에서 사는 불꽃의 고래들부터 시작해, 푸른 별에 사는 문명의 존재들, 독구름이 가득한 행성에 사는 벌레를 닮은 종족들 등.
온갖 문명과 온갖 생명이 가득한 성해(星海).
그곳에 서휼이 있었다.
척!
인간을 닮은 종족이 있는 행성.
그곳에 있는 종족의 족원 중 한 명이, 뒷짐을 지며 그 자리에 서서 빙긋 웃기 시작했다.
척, 척, 척, 척!
[후후….]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종족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자세로 똑같이 웃기 시작했다.
[후후후후….]척척척척척척!
가면 쓴 것 같은 이질적인 웃음이 별 전체에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별들도 마찬가지였다.
독구름 행성에서 독을 뿜던 독충들이 일어서서 더듬이를 더듬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항성에 사는 불고래들 역시 헤엄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웃기 시작했다.
지금 강민희의 뒤쪽에 드러난 정경에 있는 모든 별들에 사는 생명체들은 이미 서휼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 숫자는 단순히 계산해 봐도 수천억.
아니 어쩌면 수조에 달할지도 몰랐다.
‘이 미친놈. 눈이 먼 상태에서 저 지랄을 해 뒀다고?’
탁혼만천에 완전히 침식당하면, 그 후부터는 사실상 서휼과 동일인이나 다름없었다.
수조에 달하는 서휼들이 하루에 한 번씩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어깨를 치고 지나다니기만 해도, 그 악행들이 모이면 20억년은 충분히 채우리라.
내가 아연해할 때였다.
‘잠깐, 서휼 이 자식 설마….’
나는 성계 저 먼 곳 어딘가.
그곳에서 뿜어지는 익숙한 기척에 서휼이 뭘 하려는지를 이해했다.
오혜서가, 힘을 쓴다.
나와 김연이 기묘성심전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의도를 알고 대응하며, 힘을 주고받을 수 있듯이.
오혜서는 서휼과 탁혼만천으로 연결되어 권능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우우웅-
그녀의 권능에 의해 탁혼만천이 걸린 무수한 별의 주민들의 위쪽으로 태극이 떠올랐다.
탁혼만천이 혼을.
탁혼만천과 연동된 오혜서의 권능이 기(氣)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척!
서휼들이 일제히 수결을 맺었다.
곤충들은 더듬이로, 요수들은 앞발이나 꼬리, 지느러미로 모두가 같은 수결을 맺는다.
이어지는 광경에 나는 입을 벌렸다.
‘성맥이… 변화한다.’
오싹!
서휼에게 대강 듣기는 했지만 정확히는 어떤 방법인지 몰랐던 나는 서휼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탁혼만천으로 오염시킨 행성 주민들의 혼을, 오혜서의 권능을 통해 기의 계위와 연동시켜 용맥을 장악하고, 그렇게 해서….’
별을, 세뇌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별들에도 혼이 있지만 그 혼은 지성체나 생명체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혼이 가진 의지와 이성이 많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서휼은 일시적으로 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세뇌하고, 그 생명을 통하여 이성이 희박한 별 위에 자신의 인격을 덧씌우는 방법인 것이었다.
푸확!
마침내 섭명함이 차원도약을 하며 잠시 광한계 바깥의 공허간에 도달했다.
강민희 역시 서휼의 낙인이 찍힌 상태에서도 섭명함을 쫓아 차원 바깥으로 함께 도약하였다.
뒤쪽에서 괴군의 기묘성채는 쫓아오려던 중 갑자기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서휼!!!]괴군이, 기묘성채 쪽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부르짖고 있었다.
[네가! 내 가장 중요한 기억을 지웠었느냐!]괴군에게 걸어 놓았던 탁혼만천이 풀리고 있었다.
‘이런…!’
그가 발광하기 시작했고, 김영훈이 움직이며 기묘성채에 있던 홍범을 섭명함으로 데리고 갔다.
[서휼! 서휼! 서휴유우울!!!]괴군의 의식이 불안정해지더니, 그가 발광하며 우리를 따라오던 기묘성채가 다시 차원 안쪽으로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서휼을 향한 저주를 부르짖는 괴군이었으나 정작 서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술법을 이어 갔다.
‘성맥이… 움직인다.’
서휼이 세뇌한 별들의 인력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성맥이 변화하였다.
데엥-
성맥안의 감각을 가진 내게, 성맥이 움직임과 함께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 범종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성맥들이 움직이며 우주에 거대한 진(陣)을 그려내었다.
데엥-
범종 소리가 울리며, 우주에 그려진 진 위로 흑룡을 비롯한 유리공작, 청붕 등 신령한 선수들의 빛이 떠올랐다.
오혜서의 권능이었다.
그리고, 선수들의 형상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
쿠구구구구!
선수들이 우짖자, 진의 중심에서부터 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강민희의 속도가 느려졌다.
이제 서휼이 당기고, 내가 미는 것만 남았다.
하지만 괴군이 떨어져 나가 버린 상황.
‘나 혼자 해내야 한다.’
강민희가 몸을 꿈틀거려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밀쳐내야 한다!
“미안. 강민희.”
나는 어둠 속에서 검푸른 눈물을 흘리는 강민희를 보며 삼태극을 띄우고 쌍장을 밀어냈다.
“잘 가.”
서휼과 오혜서가 당기고, 내가 밀어낸다.
쿠구구구구국!
강민희가 점차 뒤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우주의 정경을 향해 강민희가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번쩍!
강민희의 손에서 청광이 이는 듯하더니, 앞서가는 두 개의 섭명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구구구국!
가히 우주적인 수준의 인력이 그녀에게로 끌려들며 섭명함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강민희가 품고 있는, 무수억에 달하는 원혼들이 섭명함에 탄 인류의 핏값을 원하는 것이다.
물론 인류의 은원 말고도 섭명함의 귀기는 강민희가 수련한 것과 같은 기운이었기에 인력이 생기기 더욱더 쉬운 것이긴 했고 말이었다.
[아아아아아아!!!]강민희의 비명소리가 공허간을 울렸다.
‘미안해, 강민희.’
그녀에겐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다.
그녀가 얼마나 괴로울지도 몰랐다.
내가 지옥 같은 경험을 많이 해 봤다곤 하지만 감히 수경에 달하는 원혼들의 고통을 모두 품고 있는 그녀에게 비할지는 알 수 없었기에….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위로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너무도 많이 잃었다.
더 잃기엔 내 마음이 너무 닳아 버린다.
재액을 맞을 인간족도, 내 동료들도, 그리고 나의 삶도.
이제는 지킬 것이다.
우우우웅!
그러나 나는 아득할 정도의 힘을 가진 강민희를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너무… 강해.’
예상이 잘못되었다.
단순히 그녀의 힘이 강한 게 끝이 아니었다.
섭명함과 강민희는 같은 귀기를 가졌다.
그녀는 흑색귀골곡의 제자로서, 흑색귀골곡 자체와 인력을 가진 것이었다.
즉, 저 앞에서 앞서가는 게 흑색귀골곡의 섭명함인 이상 그녀를 완전히 떨쳐 내는 건 너무나도 아득한 일이었다.
‘힘을 아낄 때가 아니야!’
쿠구구구궁!
나는 강민희의 인력에 의해 끌려오는 섭명함들을 바라보며 결단을 내렸다.
‘할 수 있는 걸 전부 해서, 그녀를 밀어낸다!’
나는 무색유리검을 꺼내 들고, 검의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때였다.
부웅!
쿠과과광!
강민희의 안쪽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힘이 튀어나오더니 나를 그대로 튕겨 내어 버렸다.
“커헉!”
나는 그대로 튕겨 나가며 귀조의 참격에 의해 섭명함 한 척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꽈과과광!
나는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방금의 충격으로 인해, 섭명함의 허리가 반파되어 버렸다.
다행히도 섭명함은 완전히 갈라지진 않고 아슬아슬하게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허곽에게 소리쳤다.
“섭명함을 폭주시켜라! 최대한….”
그리고.
번쩍!
청색의 빛과 함께 허곽 및, 흑색귀골곡의 천인기 장로와 귀왕들 몇몇이 일제히 달려들어 반쯤 끊어진 섭명함의 허리를 완전히 박살 내어 버렸다.
“뭣….”
내가 당황할 때였다.
척, 척, 척, 척!
허곽을 포함한 흑색귀골곡의 장로진들은 일제히 남은 반 척의 섭명함을 앞서가는 다른 한 척의 섭명함으로 밀었고, 반대쪽 섭명함의 귀왕들이 반 척을 인력으로 끌어당겨 받았다.
그들이 밀어낸 반 척의 섭명함 쪽에는 대다수가 경지가 낮은 어린 수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쿠구구구구!
허곽 등 흑색귀골곡의 장로진들은, 무너지며 강민희에게 끌려가는 섭명함 위쪽에서, 저 멀리 도망치는 섭명함을 향해 흑색귀골곡 특유의 예를 표하였다.
쿵, 쿵, 쿵, 쿵!
각자의 가슴을 치며 예를 표하는 장로진을 향해, 반대쪽 흑색귀골곡 측에서 허령을 중심으로 한 장로진들이 똑같은 예를 취해 주었다.
나는 허곽에게 물었다.
“…어찌 여기 남았나. 자네 선조와 같이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허곽은 쓴웃음을 지었다.
“…기억하시겠지만, 민희는 제가 데려온 아이입니다.”
그가 뒤를 돌며 이쪽을 향해 손을 뻗는 강민희를 보았다.
허곽과 장로진들이 일제히 귀왕으로 변화했다.
허곽의 몸에서 돛이 돋아났다.
그는 돛을 단 귀왕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선주(船主)는 배와 운명을 함께해야 하는 법. 무언가의 위에 선다는 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민희의 책임자는 저였고, 이 섭명함의 책임자 역시 저입니다.]허곽을 비롯한 흑색귀골곡의 귀왕들은 의연하게 섭명함 위쪽에서 강민희를 보며 귀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책임 앞에서 도망치진 않을 것입니다!]파아아앗!
일제히 그들이 강민희가 있는 어둠 속으로, 망설이지 않고 몸을 던졌다.
허곽은 마지막까지 반으로 쪼개진 섭명함을 조종하며, 반만 남은 섭명함을 강민희에게 돌진시켰다.
나는 섭명함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해 주었다.
콰과과광!
섭명함이 자폭하며, 섭명함의 기운을 끌어안은 강민희가 익숙한 기운의 폭발에 아주 잠시 멈칫하였다.
흑색귀골곡의 장로진 중 수계에서 올라온 이들은 모두 남김없이 목숨을 잃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내 영역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우우웅!
새하얀 빛으로 뒤덮인 머리통만 한 영체 덩어리.
천련과였다.
우적, 우적, 우적….
그냥 먹는 것만으로도 범인을 사축기로 만들 수 있다는 미친 영과.
진선들이 즐겨 먹는다는 간식.
해녕이 기르던 멀구슬나무의 영과, 진 천련과가 내 뱃속으로 들어가자 어마어마한 영기의 폭풍이 영역 속에 휘몰아쳤다.
범인을 사축기로 만들 수 있는 영력이란 어느 정도일까.
못해도, 천원과 지방의 축들을 영력을 모아 강제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영기는 필요할 터였다.
그리고 그 정도의 영기라면….
‘초기, 중기, 후기… 대원만!’
어차피 내 경지는 회귀 이전에 대원만까지 올리고 왔다.
회귀를 하면서 경지가 조금 떨어졌을 뿐.
콰르르르르릉!
주변에서 쿠릉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뇌전이 일렁였다.
‘경지를 깎아 낼 기세로….’
개열기 진인들의 액운을 베어 냈던 그 일격을 펼칠 것이다.
쇄성기는 하나의 별이다.
합체기 태수나 요왕들의 체내에 영역이 생기는 것과 같이, 쇄성기 존자들은 체내에 별이 생기니까.
달 정도 위성의 크기이지만 그래도 필멸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별이라고 할 만한 크기다.
즉, 애당초 쇄성기에게 유효한 일격을 먹이려면 별을 베어 낼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제게 별을 베어 내란 과제를 주신 것이겠지요, 함천존자시여.’
나는 강민희에게 달려들며 검식을 펼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아….’
나는 마치 내가 새하얀 공간에 진입한 것 같은 느낌을 알 수 있었다.
극고의 강적을 만나 상대하는 와중에 각성의 단계에 도달한 것이리라.
나는 이 새하얀 공간 속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인지하였다.
느껴진다.
별을 베어 낼 거력이 내 안에서 끓어오른다.
천련과에 담긴 영성이 내 정신을 도야시키고 있었다.
이 앞으로 한 발을 디디면 나는 지고의 깨달음을 얻고 강민희를 베어 낼 수 있을 터!
눈 앞에 새 경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명동하는 깨달음을 향해 손을 뻗으며, 검무(劍舞)를 추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나는 내가 여태껏 적진성산의 초식을 완전히 엉망으로 펼치고 있었음을 알아챘다.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