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2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6)
새하얀 빛무리 속.
나는 새로운 지평을 홀린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검을 휘두르던 것을 멈칫했다.
“…아냐.”
본능이 속삭였다.
이 깨달음의 순간은 지금뿐이다.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하리라.
내 뇌리로 일류 후기 시절, 절정경에 오르려다가 깨달음을 놓쳤던 때의 일이 기억났다.
또다시 그때의 회한을 반복할 셈인가?
점차 내 주변에 만발한 백광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본능이 더더욱 경고했다.
내 귓가에서 뭔가가 소근거리며 내 마음을 마구 뒤흔들었다.
평생을 갈구해 왔던 경지가 아닌가?
어찌 이 자리에서 멈춰 서느냐.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신념이 네 안에서 사그라들었느냐.
그리고, 나는 내 마음 안쪽에서 들려오는 질문들을 향해 강하게 외쳤다.
“역시 아니다!”
콰칭!
그와 동시에 내 주변에 있던 백색의 세계는 그대로 깨져 나갔다.
나는 내 안쪽에서, 또는 내 귓가에서 속삭이며 나를 어딘가로 인도하려 했던 그 목소리를 향해 외쳤다.
“이건 내 방식이 아니다!”
츠츠츠츳-
그와 동시에 몸 안에서 폭발할 듯 끓어오르던 힘들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깨달음을 놓쳐 버린 병신 같은 상황.
하지만 나는 이 치명적인 유혹을 이겨 낸 후에야 확신할 수 있었다.
잘못되었다.
‘뭐가 잘못되었지?’
나는 내 자신에게 되물었다.
‘더욱더 높은 경지로 갈 수 있었다. 너는 그 기회를 놓쳤어! 일류에서 절정의 기회를 놓쳐 한 번의 생을 통째로 갈아 넣었듯이, 이번에도 생을 또 갈아 넣겠구나! 이번 생에도 또다시 19만 년의 고통을 겪어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나는 나 자신에게 독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빛 속에서 빠져나와 어둠 속 강민희와 눈을 마주친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갑자기 내 깨달음을 걷어차 버린 이유.
그것은….
“…내가 베어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절정경의 깨달음을 놓칠 때 베지 못한 것은 나뭇잎이었다.
그때 나뭇잎을 베었다면 절정경에 올랐을 터.
그러나 지금 베어야 하는 것은 강민희였다.
‘이상한 소리다. 어전 이보에 오르려면 모든 연을 끊어야 하지 않느냐!’
나는 나 자신에게 외쳤다.
‘베어라! 끊어라! 모든 미련과 집착을 끊고 다음 경지에 올라라!’
“…틀려.”
나는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며 검을 들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새하얀 빛의 공간은 벗어났을지언정, 그 빛 속에서 얻었던 각성 효과는 남아 있는 탓인지 강민희의 공격 궤도를 비롯한 무수한 무(武)의 가능성이 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이 무의 가능성대로 계속해서 적진성산을 펼친다면 분명 그녀를 베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어전 이보에 올라, 이성 없는 쇄성기인 강민희를 죽여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본능의 영역에서 내려오는 깨달음을 무시하며 강민희에게 달려들었다.
‘베어 내라, 서은현!’
“베지 않는다.”
‘네 손에 들린 것은 칼이 아니더냐!’
나는 내 자신의 외침에, 내 검을 바라보았다.
무색유리검은 연허법보가 되었다.
연허법보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연허법보는 심상과 일정 부분 동화되었기에, 박살 나거나 멀리 날아가 버려도 심상 속에 법보의 형상이 남아 있다면 심상을 통해 얼마든지 법보를 부활시키고,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법보 자체가 수사의 원영(元靈)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계위에 걸쳐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다는 말은, 얼마든지 축과 같이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
내 무색유리검은 어느새 총천검과 완전히 동화(同化)하여 얇은 선처럼 변해 있었다.
선(線)이란 베기에 최적화된 형태다.
‘베기’라는 개념을 내 손에 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
그러나 선이란 것은 과연 베기만을 하는 것일까.
나는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강민희를 베라는 소리를 무시하며 참오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창호자와 오현석에 의해 시간을 벌었을 때.
나는 내가 베는 것 외엔 전력을 내기 힘들어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생각했다.
방금 전 허곽과 수계 출신 흑색귀골곡 귀왕들이 강민희에게 자폭했을 때.
나는 내가 검무를 펼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습지 않은가.
검이 베고 찌르는 물건으로 만들어졌을지언정, 진정한 검수라면 칠 줄도, 막을 줄도, 흘려 낼 줄도 알아야 하지 않는가.
검의 한계는 베기의 한계가 아니다.
‘하지만 베고 찌르기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 말 또한 맞았다.
이것은 베고 찌르고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하지만 베고 찌르고 죽이는 것 모두 목적에 따라 다르다.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채소나 고기를 썰 수도, 검무를 펼치기 위해 공기를 가를 수도, 단련을 위해 자신의 한계를 가를 수도 있는 것이 검이다.
결국 베고 찌르고 죽이기 위한 것이 검일지라도 펼치는 것은 사람.
검을 든 사람으로서, 말한다.
“나는 내 인연을 베지 않는다!”
파아아앗!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나는 내 안쪽에서 뭔가가 부숴지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그런가….’
천련과다.
방금 전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 착각했던 것은, 진선의 음식.
천련과가 내어놓은 심마(心魔)였던 것이었다.
그 심마의 음험함은 너무나 깊어, 어지간한 심마는 내게 잡아먹힐지언정 천련과가 준 심마는 나 자신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였다.
정교하며, 강인했다.
천련과의 심마는 내 대답을 들으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내 눈앞에서 새로운 경지의 가능성을 펼쳐 주었다.
더욱더 확실해진 적진성산의 위력.
더욱더 자유로워진 적진성산의 가능성!
그것은 너무나 확실한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나는 천련과의 가능성을 무시하며 내 손에 들린 것을 완전히 놓아 버렸다.
‘검사가 검을 놓다니, 미쳐 버린 거냐 서은현!’
“이미 내 안에 있다. 한 번도 놓은 적 없다.”
심마가 내 마음을 강력하게 흔들었다.
방금 검을 놓은 행위가 너무나도 어리석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놓은 채로 강민희를 향해 나아갔다.
‘검을 놓았는데 무슨 수로 강민희를 막을 거지!’
그러나 나는 주변으로 적진성산의 초식을 피워 올리며 말했다.
“이미 내 안에 있다. 이것으로 막을 수 있어.”
만상인연을 구현한 적진성산의 희뿌연 구름이 내 주변을 덮었다.
‘틀려… 검을 놓았다는 것은 베어 냄을 놓았다는 것. 네 적진성산은 아무것도 베어 낼 수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검을 놓고 펼치는 초식에서는 예기가 사라져 있었다.
본래는 검기의 구름으로 만상인연도의 안개를 구현하는 기술이거늘.
이번에 펼쳐지는 것은 단순한 잿빛 안개 같았다.
나는 눈을 반개하며, 강민희를 뒤덮은 원혼들의 구름 속으로 파고들어 가며 알아챘다.
이것은 이미, 단순히 강민희와 나의 다툼이 아니었다.
이제 지금의 내 행위는 심마와 나의 싸움이었다.
어느새 심마에 의해 김연과 연결되었던 기묘성심전도 전부 끊어진 것을 인지한 나는 심마에게 말했다.
“네가 연결을 끊었나.”
‘끊은 것은 너 자신이다. 모든 인연의 관계를 끊어 내고 무정해져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기에, 너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김연의 의식을 떼어 낸 거야!’
“…끊는 것만이 공(空)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야.”
나는 내게 달려드는 원혼들을 쳐 내기 시작했다.
희뿌연 구름이 원혼들을 뚫고 중앙에 있는 강민희에게로 길을 뚫기 시작했다.
“인연을 품에 안아 무상이 되어라. 세계의 극점에 도달한 존재의 깨달음이다.”
‘너 자신도 무슨 뜻인지 체화하지 못한 채 읊조리기만 하는 말이 아니냐! 그건 깨달음이 아니라, 그저 주문(呪文)이다!’
“…맞다. 나도 진언의 구결의 뜻을 정확히 알진 못해.”
투웅!
원혼을 쳐 낸다.
베어 내 소멸시키지 않고 쳐 내기만 하니, 달려드는 원혼의 양은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한번 쳐 낸 것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하니 버티기가 점차 힘들어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잖아.”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도(道)는 결국 길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뜻한다.
그리고 조문도석사가의의 뜻은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을 찾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더욱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 길은 인연을 끊을 순 없는 길이다!”
그러니.
“연이 끊기지 않는다면, 다음 경지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파사삭-
그와 함께 나는 더 이상 심마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대신 느끼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있는 나의 인연들.
나와 강민희 그 자체를 느낀다.
그녀는 속정이 많고, 배려가 많았다.
까칠하고 사회성이 없어 보여도 늘 속은 따뜻했다.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겉으로는 딱딱하게 굴지라도 사적인 공간에서는 부드러워지는 것이 그녀였다.
그런 그녀였으니, 이 무수억 원혼들의 원한을 가슴에 품어 준 것일 터였다.
원통하디 원통한 귀신들의 고통을 품어 줄 정도로 마음이 넓은 것이 결국 강민희였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의 고통을 자신이 품어 주면….
그녀 자신의 고통은 누가 품어 준단 말인가.
쿠웅!
나는 마침내 원혼들을 뚫고, 강민희를 뒤덮은 결계에 도달했다.
귀왕들의 혼체가 모여 뒤덮인 결계.
이 결계를 건너고 싶으면 결국 베어야 한다.
그러나 심마의 영향인지 내 공격에 예기는 사라졌다.
베지도 찌르지도 않고 이 벽을 뚫어야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래, 마치….
장익이 내준, 별을 베라는 과제처럼.
나는 하늘로 집어 던진 총천검을 떠올렸다.
언제든지 총천검은 소환할 수 있다.
그리고 총천검으로 베기만 하면 결계를 뚫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멍청하긴. 아무것도 못 하고 여기서 개죽음당할 생각이냐.’
“개죽음이 아니다.”
나는 심마의 말에 눈을 빛내며 말했다.
강민희의 귀조가 내게 날아왔다.
나는 그 참격들을 회피하며 외쳤다.
“그 누가, 어떻게, 무슨 이유로 죽더라도, 이 세상에 개죽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죽음은 모두 의미가 있다.
그 죽음에 도달하기까지 삶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삶은 어째서 의미가 있는가.
텅 빈 듯 공허해 보이는 삶은, 죽음의 입장에서 보면 축복이든 저주든 투명해서 보이지도 않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를 모두 모아 무색이 되듯, 인연을 모두 품에 안아 무상이 되어라.
그것은 어쩌면, 삶이란 텅 빈 것이 아닌 꽉 채워졌기에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빈 것과 채워진 것에는, 어쩌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의념이 합쳐지면 무색의 영역이 되듯.
인연이 합쳐지면 무상의 의미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서 죽지 않아.
파아아아앗!
내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적진성산의 희뿌연 안개가, 만상인연도를 구현한 희뿌연 안개가 밝게 빛났다.
그 빛은 천련과의 빛을 내 몸에서 모조리 몰아냈다.
웃기게도 천련과는 기운을 보충해 주는 것 외에, 내게 완전히 방해만 되었다.
진선의 것은 그 음식조차 내게 액이 되기라도 하듯, 어마무시한 심마의 덩어리가 천련과였던 것이었다.
꿈틀, 꿈틀….
나는 천련과 속 심마의 정체.
정확히는 심마가 생겨나게 한 ‘원인’을 알아챘다.
검붉은 작은 안개였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천고의 영과라지만 유호덕의 찌꺼기인 혈음의 권능을 수만 년간 봉해 둔 나무의 열매다.
혈음의 기운이 씌이지 않았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서휼의 탁혼만천이 내 그림자에서 빠져나가, 혈음과의 인력을 형성시키는 ‘혈제비식’을 발동한 것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어느 순간 서휼에게 유도당하여, 혈음에게 오염된 천련과를 먹은 것.
그것이 지금의 심마를 만들어 낸 것일 터였다.
하지만 되었다.
어쨌든 심마를 거쳐 낸 끝에 답을 찾았으니까.
번쩍!
빛이 휘몰아쳤고, 다음 순간 나는 구름과 함께, 혼(魂)의 계위로 완전히 도약했다!
육신 전체가.
영역 전체가!
이 너머의 영역에 완전히 일보(一步)를 디딘다.
이것이, 누군가는 어전 제이보라고 부르는 경지.
나는 빛무리 속에서 혼의 영역을 밟은 채, 내 마음속의 검을 꺼내 들었다.
검은 누구도 베지 않은 채 검막(劍幕)이 되어 강민희의 결계를 포함한 주변 무수억 귀신들을 그대로 강렬한 빛과 함께 튕겨 내었다.
츠츠츠츳!
그리고 나는 마침내, 결계 속 귀신들의 기운을 받아들여 천공도 하나만큼이나 크기가 거대해진 강민희의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촤악!
강민희의 가슴 속.
귀기로 이뤄진 어둠은 질척거리고 끈적였다.
이 어둠은 혼의 계위에도 걸쳐 있는 것이라 오히려 혼의 계위에 완전히 발을 들인 내게는 더더욱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애물들을 모조리 뚫어 버리며 일직선으로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아앗!
나는 희뿌연 구름과 함께 익숙한 곳에 도달하였다.
강민희의 영역.
새하얀 구름들이 만천한 노을 속.
그 새하얀 구름들의 중심에서, 강민희의 본체가 울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처럼 변한 그녀가 푸른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강민희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다치는 게 싫어.
이미 혼의 영역에 접어든 내 눈에는, 그녀가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조차 모조리 들려왔다.
-제발 저리 가.
파앗!
강민희가 손을 휘두르자 강력한 척력이 쏟아져 왔다.
아랑곳하지 않고 가까워졌다.
그녀가 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공격을 맞으면서 다가갔다.
그리고 3장 거리를 남겨 두고 그녀의 앞에 섰을 때.
파아앗!
그녀의 몸에서 뻗어 나온 가시가 내 가슴을 찔렀다.
푸콱!
혼의 계위에 걸쳐 있으면서 죽음의 기운이 진득한 이 가시는 내 가슴을 뚫고, 등을 관통하여 내 영역을 찢고 영역에 거대한 상흔을 남겼다.
-오지 마!
그리고, 나는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가슴에 가시가 박혀 있는 상황에서도, 더욱더 깊게 가시가 몸에 박혀도.
그녀가 나를 밀쳐도, 더욱더 아프게 하여도.
마침내 그녀의 앞에 선 나는, 무릎을 꿇고 강민희를 꼬옥 안아 주었다.
파아아아앗!
혼의 영역에 이른 나는, 의지만으로 의해은산을 사용해 강민희의 마음에 불어넣었다.
그녀가 잠시 의식을 차리며 울었다.
“뭐 하는 짓이야… 멍청아.”
나는 대답 대신, 더욱 더 그녀를 꽉 안아 주었다.
세상 모든 망인의 고통과 원한을 품어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의 고통과 원한은 누가 품어 주는가.
“강민희.”
조문도석사가의란 뜻은, 단순히 강해지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린단 뜻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 줘.”
“…하지 마, 서은현.”
내 길을 찾고자 목숨을, 혹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내던지는 용기를 뜻했다.
이미 내 길을 찾았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것이 조문도석사가의.
모두의 고통을 품어 주는 존재의 고통은, 그 존재가 맺어 온 또 다른 인연이 품어 주면 될 터다.
나의 길은 인연.
‘미안해, 모두.’
느껴진다.
천련과의 심마를 몰아낸 후부터, 심마를 통해 내 몸을 차지하려던 존재가 노골적으로 인력을 드러내며 이쪽으로 오려 하고 있었다.
심마의 잔재가 그 존재와 나 사이에 인력을 형성해 주고 있었다.
높은 확률로, [혈음계를 관장하는 존재]일 터.
이대로라면 나는 물론이고 강민희와 동료들 모두 휩쓸릴 터.
다시는 태산의 주인 사태와 같은 일이 없기를 위해.
그리고… 강민희의 고통을, 이번 생에서나마 막아 주기 위해….
운명을 바꾸는 멸신겁천(滅神劫天)을 발동한다.
나 자신을 제물로 바치자, 주변의 구름이 어둡게 물들었다.
먹장구름이 우리를 뒤덮었고,
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안으며 속삭였다.
“내려라.”
다음 순간.
“총천(總天).”
푸확!
하늘로 던져 보냈던 총천검이, 원혼과 결계, 강민희의 영역과 멸신겁천의 먹장구름을 뚫고 하늘에서 나와 그녀에게 떨어져 내렸다.
좌탈입망 너머, 장익은 어전이보라고 부르는 경지에 도달한 나의 첫 일격은 빛의 기둥이 되어 우리를 동시에 꿰뚫었다.
나는 그녀를 안으며 스러졌고, 내 검은 겁천과 함께 그녀의 혼백 안쪽 명계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연결을 끊어, 그녀의 구멍을 메워 냈다.
고통 속에서도 나는 웃었다.
그녀는 삶을 곧 슬픔이라 했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아침에 도를 얻기 위해 산다.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도는 무엇인가.
그 도의 이름은 인연이다.
삶은 곧 슬플지언정, 인연이 있는 이상 마냥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스물한 번째 회귀(回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