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30)
21회차의 첫날
익숙한 시간의 강.
익숙한 좌(座)들.
익숙한 정경들이 눈앞을 스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
파아앗!
나는 회귀했다.
“…뭐?”
쿠구구구구!
섭명함이 스러지고, 내가 천련과를 막 집어 든 그 시점.
그러니까….
‘이게 무슨!’
촌각(寸刻) 이전의 시점으로!
나는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회귀 시점이, 다시 한번 고정되었다.
쿠구구구구!
저 앞쪽에선 강민희가 섭명함을 완전히 집어삼킨 후 다시 이쪽으로 도약해 오려 하고 있었다.
‘왜? 도대체 왜?’
나는 어이없고 기이한 상황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지금 회귀가 고정되었단 말인가?
너무나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고정 조건이 뭐지?’
수계에 다녀오는 것이 고정 조건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것보다 지금까지 공허간에서 고정이 된 적은 없었는데.’
광한계 비선대든, 시의 체내든.
능히 세계(世界)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의 안에서 고정이 되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회귀였었다.
그러나 이번 회귀 고정은 너무나 뜬끔없고 당혹스러웠다.
“우욱….”
‘뭐지?’
나는 순간 뭔가가 내 몸을 샅샅이 훑고 가는 듯한 역겨운 느낌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강민희와 저 멀리 나아가는 나머지 한 척의 섭명함뿐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움과 당혹스러움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메슥거리는 속을 정돈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생각할 것은 많지만, 천재일우의 기회다.’
총천검을 잡아든다.
츠츠츠츠츳!
적진성산의 희뿌연 구름이 검에서 일어났다.
나는 모든 의식을 검에 집중시키며, 새 경지에 올라 얻은 일격을 사용하였다.
희뿌연 구름이 빛을 뿜었다.
구름은 그대로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강하게 강민희를 밀어내었다.
서휼이 반대쪽에서 그녀를 당겼고, 내가 밀며 그녀의 몸체가 점차 성계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서 도우시군요. 믿고 있었습니다!]서휼이 반대편에서 빙긋 웃으며 나를 띄워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반대편에서 빙긋 웃으며 손에 든 천련과를 띄웠다.
지난 삶에서는 미처 이 영과 속의 악의를 눈치채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다르다.
구태여 내가 안에 있는 혈음의 조각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다.
우우웅!
천련과는 그대로 강민희를 향해 날아가 그녀의 품속에 자연스레 꽂혔다.
[…서 도우?]“강민희에게 성계에서 무슨 짓을 하려 하면 천련과에 깃든 [그]의 분혼(分魂)이 너를 침식할 터다.”
[….]강민희는 이제 우리들과 떨어져 서휼이 가득한 성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서휼에 의해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녀의 품에 서휼이 껄끄러워하는 혈음의 조각을 넣어 줄 것이다.
강민희가 혈음의 조각에게 침식당할 거란 걱정은 없었다.
지난 회차에 강민희의 품에서 나타났던 명계 수석판관장!
그 존재와 강민희가 연결되어 있는 한, 혈음의 조각은 강민희의 품속에서 어떤 수작도 부리지 않고 얌전히 잠들어만 있을 테니까!
[….]내 말에 서휼이 전음 너머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손을 잡자고 하며 태연하게 내게 혈음의 조각이 깃든 천련과를 유도해서 먹인 것이 서휼.
내가 깨달음을 얻으며 심마를 물리치고 혈음의 분혼을 배출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쯤 회귀하는 것이 아닌 혈음의 꼭두각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분명 뒤통수를 맞은 상황이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로 인해서 깨달음을 얻었고, 무엇보다 혈음의 조각을 배출시키며 혈음과 서휼의 관계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혈음은 서휼을 같은 편이라 인식한다.
그러나 서휼은 오히려 혈음을 어마어마하게 껄끄러워하고, 심지어 일견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나, 서휼. 혈음에게서 태어난 무언가여.”
서휼은 혈음에게서 뻗어 나온 가지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혈음의 조각과 접촉한 덕택에 몇 가지 지식이 흘러들어 왔고, 그 당시 앵룡도에서 본 벽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혈음이 자혼만천을 이용해 현음을 낳았고, 그 현음의 자혼만천이 다시 자음을 낳았으며, 그 자음을 통해 퍼져 나간 무수한 해룡족이다.
그러므로, 해룡족이란 결국 혈음이란 나무에게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 [혈음의 가지]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혈음의 가지]들 중 무언가가 비틀려 탄생한 것이 바로 서휼이다.
나와 서립의 경우처럼 자의식을 가지게 된 분체라고 해도 좋으리라.
분체는 본체가 원한다면 다시 흡수당할 확률이 굉장히 높았으므로, 서휼이 혈음계와 혈음을 껄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의 심기를 거슬려 흡수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라 보아도 좋았다.
내 말에 서휼은 성계 쪽에서 말없이 나를 직시하였다.
그는 더 이상 후후거리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지 않았다.
성계의 정경 너머, 별이 된 서휼과 그 별의 모든 주민들이 일제히 나를 무표정하게 올려다보는 그 모습은 꽤나 소름끼치는 형태였다.
그러나 나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내게 혈음의 조각을 집어넣고 무엇을 하려 했는지 변명이라도 할 수 있느냐.”
내 말에 서휼들은 말없이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꿈뻑!
서휼들의 손에서, 전부 하나의 눈알이 드러났다.
놈이 나를 작정하고 세뇌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동맹이 끊기기 이전까지는 배신하지 않겠다더니. 네놈은 입에 담는 것마다 거짓이군.”
내 말에 서휼이 답하였다.
[이번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제 본질에 대고 한 맹세였으니까요.]“그럼….”
[애당초 한 번도 같은 편이 된 적이 없었더라면, 어찌 그것을 배신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서 도우.]“하하… 서휼이여….”
나는 총천검을 들어 올렸다.
휘이이이이!
강민희를 밀어낸 나는 그 반작용으로, 동료들이 향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다시금 광한계 안쪽으로 돌아가 심족 영역에 떨어지리라.
막 경지에 올랐기에,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어전이보의 공격은 삼 초식 정도였다.
그것도 강민희를 밀어내느라 적진성산을 한 번 사용했으니 남은 것은 이 초.
그리고, 이 초면 충분했다.
‘아니, 충분한 것도 아니지.’
즈우우우웅!
‘과하다!’
성계에서 놈이 오혜서와 힘을 합쳐, 별들의 힘을 장악한다.
강민희를 완전히 성계로 던져 놓은 녀석의 인력이 이번에는 나를 얽어매었다.
동시에 놈들이 내게 뻗은 손들의 눈동자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나는 검(劒)을 이 마음에 담았다.
검사의 극의는 무엇인가.
수계의 무림인이나 김영훈, 그리고 홍수령 같은 검계 신통을 익힌 수도자들에게 물어도 만이면 만, 답은 똑같을 것이다.
심검지도(心劍之道)!
마음의 검을 움직이는 경지!
그것이, 검을 수련하는 모든 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였으니까.
극고의 경지를 단순히 상상하는 것에는 무림인이든 수도자든 구분이 없었고, 검수들은 평생을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검에 매진한다.
나는 월도입천에 올라 무형검을 얻으며 심검에 한 발짝 다가갔고, 총천검을 얻으며 조금 더 다가갔다.
그러나 좌탈입망에 도달하여도 심검의 길은 너무나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어전이보라고 불리우는 이 경지에 오른 순간, 나는 마침내 알 수 있었다.
‘심검(心劍)이 정녕 코앞이다.’
끝이 없어 보였던 드높은 산의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검의 길을 좇는 검수들은 하나같이 심검에 다다르기 위한 자신만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심검이란 무엇인가.
마음만으로 베는 검을 심검이라 한다.
어찌 이 세상에 마음만으로 벨 수 있는 것이 있단 말인가!
간단했다.
마음을 베는 것은, 마음만으로 충분했다.
무형검이, 총천검이 속삭여 왔던 [벤다]라는 의지가 나와 완전히 하나 되었다.
나는 [벤다]라는 의지를 혼의 계위에서 서휼을 향해 관철시켰다.
촤악!
성계의 정경 너머.
무수한 서휼들 중 한 명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놈의 탁혼만천이, 베여 나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촤악, 촤악, 촤악!
처음 베인 서휼을 시작으로, 마치 놈의 탁혼만천이 전염되듯 심검이 전염되기 시작했다.
좌탈입망의 일격은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일종의 심어(心語)였다.
자신의 마음을 응축시켜 상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좌탈입망의 일격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좌탈입망의 경지에서 일격을 난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난사할 수 있게 된 그 경지 너머의 경지는 어떤 공격을 할 수 있는가.
“도망쳐 보아라, 서휼.”
사람은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매 순간 변화한다.
그렇기에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나는 무조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쉽게는 도망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선보인 심검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변화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내 마음속의 심검을 상대의 마음속에 각인(刻印)해, 그 검기에 의해 끊임없이 상대의 마음을 베이게 하는 것이었다.
이 심검에서 벗어나려면 방법은 하나.
‘나와 만남으로 인해 생성된 변화’를 가라앉히면 심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쉽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 심검에 맞은 후부터 ‘나를 떠올리면’ 무조건 검기에 마음이 베이는 구조인 것이다.
심검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심검을 쏘아 낸 주체인 나를 완전히 잊어 청정한 공(空)의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난이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을 때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기에 평생을 마음수련에 매진한 심족조차 쉽지 않을 터였다.
이것이, ‘진정한 심검지도’에 이르기 위한 나의 대답.
떠올릴수록 산세가 거칠어지는 마음의 봉우리.
단악검법, 제삼십이초.
아심검(亞心劍).
영유월감(嶺踰越嵌)이었다.
‘심연을 쳐다보면 나 역시 심연을 닮는다던가.’
서휼을 떠올리며 만든 심검은, 얄궂게도 서휼의 탁혼만천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쿠구구구구!
수억에 달하는 서휼들의 탁혼만천이 일거에 베여 나가기 시작했다.
놈의 세뇌파는 분명 위험하다.
나라도 세뇌되어 버릴 정도로.
하지만, 세뇌파를 쏘기 전에 그 의지 자체를 베어 버리면 어찌할 것인가!
내가 담아 보낸 마음의 검은, 나를 떠올리는 서휼들을 베어 내어 갔다.
마치 ‘인지하면 충격을 주는’ 진선들의 시선이나 이름.
혹은 그 존재와도 비슷하게, 서휼이 나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더더욱 심검은 그의 탁혼만천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점차 성계의 정경이 옅어졌다.
성계 속으로 떨어진 강민희와, 심검에 고통스러워하는 서휼을 마지막으로 나는 미소 지으며 광한계의 차원장막으로 떨어졌다.
투웅-
서휼이 모종의 방법으로 내 아심검을 벗어난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아심검 영유월감의 식(式)은 녀석에게 다시없을 치명타였으니까.
‘다음번에는 나를 만나지 않기를 기도해라, 서휼.’
아심검과 자혼만천을 사용하면, 서휼의 본체를 알아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겼으니까.
촤악!
그렇게 동료들이 지나간 섭명함의 흔적을 따라 광한계의 차원장막 안으로 진입한 나는, 저 아래쪽의 ‘심족 영역’으로 떨어지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갑작스레 이뤄진 시점의 고정.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회귀의 법칙이었지만 나는 마음 깊이 감사하였다.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더욱 다가갔으니까.
‘다음번에는 강민희를 구할 수 있다.’
이제 거칠 것은 없다.
삼백 년의 시간 동안, 무조건 쇄성기에 도달하여 반드시 그녀를 구할 것이다!
쿨럭!
기침에서 피가 섞여 나온다.
경지에 이른지 얼마 안 되어 상당히 무리한 일격을 펼친 탓일까, 전신에서 힘이 빠져 왔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결국 도달했다….’
장익은 어전 이보라고 부르는 경지에 드디어 도달하였다.
김영훈이 만들었던 월도입천무는 그 자체로 희망을 노래하는 무의 구결.
삶은 곧 기쁨임을 증명하며 무를 수련하는 기쁨에 대한 구결이 월도입천무의 구결이었다.
나는 무를 수련해 온 무구한 세월 동안 느꼈던 기분 중, 가장 감격스러운 기쁨을 느끼며,
그리고 가장 월도입천무의 구결에 공감하며.
그렇게 심족 영역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