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32)
그녀 (2)
파앙!
불꽃이 튀기며, 김영훈이 환희의 웃음과 함께 땀방울을 흘렸다.
솨아아아아-
바람이 삼목숲을 훑고 지나가며 대련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나는 바람을 맞으며 김연의 말을 기다렸다.
“괴군이 알려 줬어요. 그 애가 괴군의 성채에 갔을 때….”
그녀의 말이 이어졌고, 나는 묵묵히 말을 들었다.
얼마 후 김영훈과 대련을 마친 최고지도회의 인사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익히 들었다. 네놈이… 천족의 몸으로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경지에 도달했다지?”
나는 김연의 설명을 모두 귀에 새긴 후, 말없이 심족 최고지도회를 향해 한 걸음을 디뎠다.
척-
내 한 걸음에 나를 향해 여러 의념을 쏘아 보내던 최고지도회의 인사들이, 단번에 얼어붙었다.
그들은 얼어붙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은 심지어 그들 너머에 있던 김영훈도 마찬가지였다.
김영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그들을 보며 검을 늘어뜨렸다.
까딱-
말은 필요 없었다.
고개를 까딱이자, 빛이 번뜩이며, 김영훈을 상대로는 투영만 보내왔던 최고지도회의 수뇌 22인이 장내에 본체를 드러냈다.
“고인(高人)을 몰라뵐 뻔했군. 용서해 주시오.”
나는 묵묵히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바라볼 뿐이었음에도 그들은 내 기세를 견디기 힘들어하며 전신을 떨며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 갔다.
나는 그 상태에서 말없이 한 걸음을 더 디뎠다.
그와 동시에 22명의 최고지도회는 대다수가 덜덜 떨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심검을 깨달은 내 혼(魂)을 직시한 탓에 너 나 할 것 없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심검은 오히려 월도입천, 답천쯤 되면 인지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경지가 높기에 볼 수 있는 것이 많아져 하나같이 큰 충격을 받는 것이었다.
특히나 김영훈은 가장 충격을 많이 받고 있는지, 도를 땅에 박고서 식은땀을 미친듯이 흘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심족을 이끌어 가는 22인의 지도자답달까.
그들은 모두 내 기세를 정면에서 쐬면서도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내 기세에 잘 대응하는 5인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면면은 초라했다.
자그마한 소인족, 시금치처럼 말라비틀어진 몸의 화초족, 새우를 닮은 하곡족, 새끼원숭이 같은 미원족, 작은 버섯처럼 생긴 약균족 등으로 이뤄진 이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장 허약해 보이는 그들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강대한 이들로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
그는 소인족(小人族)의 인물로, 한 뼘 정도 되는 키를 가진 난쟁이 심족이었다.
소인족은 유명한 노예종족 중 하나로, 인간족과 닮았지만 인간족에 비해 너무나 약하고 가진 신통이 하잘것없어 수시로 사냥당해 애완동물로 키워지는 종족이었다.
그러나 내 앞에 선, 얼굴이 흉터로 가득한 소인족 노인은 전혀 작아 보이지 않았다.
소인족 노인이 바늘을 한 손에 검처럼 쥔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한 수 배우겠소!”
“하!”
노인의 외침과 함께, 다섯 심족은 일제히 기합을 넣으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부터 말은 필요 없었다.
그들의 합공이 시작되었다.
파앗!
바늘을 든 소인족 노인은 검사인듯, 이쑤시개 같은 바늘을 휘두르며 내 앞에서 검식을 펼쳤다.
꽤나 귀여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결과는 전혀 귀엽지 않았다.
투웅!
난쟁이 노인의 바늘에서 뿜어져 나온 참격을 하늘로 튕겨 내자, 그대로 하늘이 갈라졌다.
김영훈이 보여 준 것 같은 분천의 묘기!
말 그대로 심족 영역 전체를 베어 내 버리겠다는 각오로 펼친 일격인 것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몸의 화초족은 내 위쪽으로 날아드는 듯하더니, 천근추의 묘리로 나를 내리찍었다.
슈웅!
보법을 밟으며 피하자, 일순간 빛이 번뜩이는 듯하더니 화초족 심족이 천근추로 내리찍은 자리가 폭발하며 일대의 지형이 마구 변화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나는 폭발의 폭광 속에서 검을 들어 올리며 담담하게 나에게 쏘아져 오는 하곡족 심족을 쳐다보았다.
그는 권사였는지, 새우 같은 몸체의 두 주먹을 내게 쭉 뻗었다.
분명 고작해야 새우 한 마리가 주먹을 뻗는 웃기지도 않은 모양새.
하지만 나는 빙긋 웃으며 전력을 다해 검을 후려쳤다.
꾸구구궁!
내 일검과 하곡족 권사의 권이 부딪히며, 무형의 충격파가 일대를 뒤덮었다.
일대의 소리가 지워진 듯한 느낌.
충격파 덕택에 육신이 재기능을 잠시 잃고, 귀로는 ‘삐’ 소리가 들려왔다.
부웅!
물론 금세 균형감을 되찾은 나는 다음 공격에 대비했고, 새끼원숭이 같은 미원족이 내게 달려들어 내가 밟은 땅을 움켜쥐었다.
후웅!
동시에 그는 내가 밟은 땅 그 자체를 마구 휘두르며 내 균형을 깨 버렸고, 버섯을 닮은 약균족이 나를 향해 쌍장을 내밀었다.
키기기기긱-
그의 쌍장에는 어마어마한 기(氣)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그 기운의 안쪽에서는 모든 것이 소멸에 가깝게 분해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등 뒤에서는 소인족 노인이, 머리 위에서는 화초족 투사가, 발 아래에서는 미원족, 정면에서는 약균족과 하곡족의 권사들이 달려들고 있다.
그 너머로는 17인의 다른 최고지도회 수뇌들이 각기 자신들의 주제를 파악한 채 내 ‘시선’을 끌기 위해 원거리에서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유화처럼 음(音) 계통의 구현을 각성한 이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날카로운 가야금 소리와 함께, 그대로 몸이 베여 갔고, 피할 수 없는 무형의 그물이 나를 덮으며 전신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어둠이 눈을 가렸고, 몸 속에 흐르는 피가 뜨거워지며, 몸을 도저히 가눌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에서 말없이 검을 내밀며, 이들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
투웅-
내 검이 명동하며 이들의 공격을 튕겨 내고, 때로는 흘려 내며, 때로는 받아쳐 갔다.
스며든다.
나의 검은 마치 시냇물이 바위틈으로 스며들듯이 그들의 중앙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나와 그들은 검무 속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어 춤사위를 추었다.
그들의 의념이 느껴졌다.
격외의 강자와, 고수와 겨룰 수 있다는 환희.
기쁨과 환호. 경외와 존경 등….
그들의 의념을, 나의 의념으로 뒤덮는다.
그들의 무(武)를 나의 무(武)로 덮어씌운다.
암울하다.
고통스럽다.
비참하다.
답답하다.
앞이 캄캄하다….
태수회는 내게 검마(劒魔)라는 별호를 붙여 주었다.
나는 그 흉악한 별호에는 아무 관심 없었으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 별호가 내게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의 내 검은, 끔찍한 절규와 비탄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허허롭지만 끔찍한 검세가, 절제된 나의 검식 안에서 휘몰아치며 심족 최고지도회의 최고수들과 합을 맞췄다.
귓가로 방금 전 김연의 얘기가 아른거렸다.
-괴군과 처음 만났을 때, 괴군은 향화를 자신의 혈족 중 하나로 착각했다는군요.
바늘을 든 노인이 내 검 끝에 내려앉으며, 그 자리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일곱 번 회전하고 그 회전력을 더한 참격을 날렸다.
-그가 말하길, 수계에서의 기문법재는 오로지 자신의 혈족만이 가지는 천형(天刑)이라고 했으니까요.
오른발을 축으로 나 역시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노인을 떨쳐 버리고 그가 날려 버린 참격의 회전력을 흩어 버린다.
-하지만 그는 곧 향화가 자신의 혈족이 아님을 눈치챘다고 해요. 그가 말하기를, 기문법재를 가진 자들은 ‘저주’를 가지게 된다네요. 그 저주는 기문법재가 속한 혈족에 따라 모두 다르기에, 괴군이 가지고 있는 ‘저주’를 향화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그 애가 그의 혈족이 아니란 근거가 된 셈이지요.
웅웅웅웅-
검이 진동한다.
나는 아무런 기도 흘리지 않고 최고지도회와 대련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나의 감정이 검식을 통해 표현되며, 나의 고통이 혼의 계위에서 기의 계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주변이 점차 마기(魔氣)로 물들기 시작했다.
-괴군은 기문법재란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고 하더라고요. 새장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새… 처음 안 사실이지만, 기문법재를 지닌 이들은 모두 태어난 세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해요. 그들이 지닌 천형이자 저주는, 그들이 ‘세계를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죠. 즉… 하계에서 태어난 기문법재들은 절대로 비승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주변이 어둠으로 물들고, 검기가 사방을 가른다.
체내의 기나 천지영기를 끌어 쓰는 것이 아닌, 그저 강하게 염상하는 것만으로도 혼의 계위의 의념이 기의 계위로 내려와 탁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기의 격류 속에서 황금빛 서광이 22개의 의념 사이로 끼어들어 왔다.
카앙-
구경하고 있던 김영훈이 참지 못하고 끼어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김영훈의 도를 밀쳐 내며 마구 검기를 난사했다.
-조씨세가의 저주는… 그들의 성(姓)과 관련이 있다고 하죠.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쨌든. 향화와 그의 저주는 분명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네요.
처음에는 담담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대련의 검무는, 어느새 살인검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어두운 감정을 참기가 힘들어 더욱 더 검에 살기를 불어넣었다.
-저주에 걸린 이들은, 결국 죽는다고 해요. 괴군은 [그녀]의 심장과 자신의 심장을 연결해서, 섭명함 동력장치의 귀기로 혼을 억지로 지상에 잡아 놓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하더군요. 그리고 향화는….
카앙-
내 검이 바늘을 든 노인을 튕겨 냈다.
그리고 마침내.
번쩍!
내 검에서 퍼져 나온 검압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22명의 심족 최고지도회와, 김영훈을 떨쳐 낸 후에야 나는 진정할 수 있었다.
-점차, 몸의 감각이 흐려지고 있다 하더군요. 이대로라면, 수백 년이 아니라 수십 년 내로 모든 오감이 사그라들어, 종래에는 숨 쉬는 감각마저 없어져 죽게 될 거예요.
콰악!
나는 검을 땅에 박았다.
“하….”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의 나와 북향화는, 아무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답답했다.
이유는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10회차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다른 사람이라지만, 또다시 그녀의 죽음을 보는 것은 괴로우니 말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정확히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당장 태산에게 교도들을 잃은 것도, 강민희를 안아 주며 죽은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다시 내 인연 중 하나가 떠나간다는 것이 확정되어 있단다.
그래, 이것은 고독이다.
원래부터 인연이 떠나감에 고통스러워했던 감정의 둑이, 북향화의 시한부 선고를 확정으로 점차 넘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꾸우욱….
나는 무색유리검을 거세게 쥐며, 복잡한 심경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소인족의 노인을 필두로 한 심족 최고지도회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였다.
“위대한 솜씨를 견식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부끄럽군.”
나는 쓰게 웃으며, 차마 그들과도, 뒤쪽에서 나를 보는 김연과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검로에 탁기가 끼였소.”
“그렇습니까.”
“…왜 이런 건지 묻지는 않소?”
“원하시면 말하소서. 저희 심족들은 절대 다수가 학대당하며 살아온 이들이기에, 모두가 품속에 고통은 백 가지 천 가지 이상 품고 있습니다. 때문에 삼목숲에서는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부러 캐묻는 관습은 없나이다.”
“…고맙소.”
나는 내게 예를 취해 주는 이들을 보며, 부끄러우면서도, 분노와 슬픔,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황에 걸린 채 쩔쩔매다가 허리를 숙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소인족 노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하튼, 검을 나눠 보니 알겠습니다. 저분도 그렇고 당신도… 악한 분은 아니더군요. 마음을 다잡지 못하실지언정 끝끝내 살초는 사용치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그 상냥한 마음에 경의를 표하며, 귀하와 능광신마를 저희 삼목숲 소속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만….”
나는 북향화 때문에 심란해진 마음을 가라앉히며 질문했다.
“그래서 인족의 거취는 어찌할 생각이오?”
결국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방금 전 나와 그들이 겨뤘던 것은, 순수한 무의 경지로 겨뤘기에 내가 이겼던 것이었다.
만약 정말로 서로가 전력을 개방하고 싸우면 내 쪽이 필패일 터였다.
왜냐.
우우웅-
‘전부 장익의 제자군.’
그들의 심상에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장익의 박도가 한 자루씩 꽂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들쯤 된다면, 충분히 자신의 의지로 장익의 박도를 뽑아, 장익이 쓰던 ‘원래의 위력대로’ 박도를 휘두를 수 있을 터였다.
한마디로 저들을 적대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는 쇄성기 존자 수준의 일격을 최소 22초 버텨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웅-
나는 체내의 기운을 관조해 보았다.
‘어전이보에 올랐다.’
이제 쇄성기급 공격도 사용하는 게 가능이야 했다.
물론… 아직은 단 삼초식 정도였지만.
이 경지에 익숙해지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런 만큼 나는 지금 심족과의 관계에서는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내 물음에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는 듯 하더니 말했다.
“본래라면 재판을 거쳐 형을 집행해야 하지요.”
“재판은 어떤식으로 진행되지?”
“간단합니다. 경지별로 진행되지요. 합체기 태수들과 사축기 노괴들은 일단 저희 최고지도회가 대련하며 그들의 감정과 사상, 본질, 그리고 그들의 행적을 밝혀냅니다. 그 과정에서 악행을 한 적이 밝혀지면 즉결 처형합니다.”
“….”
“천인기와 원영기는 열흘 동안 면벽을 시키며 심문을 진행합니다. 심문 과정에서 켕기는 것이 나오는 이는 모두 사형이지요. 결단기부터는 상세하게 심문을 하여 그들이 행해 온 죄질에 따라 사형의 종류를 나눕니다. 편안한 참수형부터 시작해 무기도형이나 팽형 등 할 것이 많습니다. 축기기와 수사는 제대로 심문 기간을 거쳐 극악한 자는 사형, 악행의 횟수가 적은 이는 징역형 및 노역형을 부과합니다. 연기기 수사들은… 대체로 노역형을 부과하지요.”
“너무 사형이 많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있어 천족이나 지족은 갱생과 구제의 대상이 아닌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정말로 관계없는 약자들을 이유 없이 학대한 적이 없는 호인이라면 마공을 익힌 합체기 태수라 해도 아무런 제재는 하지 않습니다.”
소인족 노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천족 육대족 중 하나인 인간족이라면… 연기기 수사라 해도 절대 다수가 남의 희생을 너무나도 당연히 깔고 들어가는… 악(惡)이 대부분이지만 말이지요.”
경멸 어린 말이었지만 나는 감히 저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강민희가 인족 영토에서 빨아 마신 원혼의 수만 해도 인류의 악행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소인족 노인을 보며 물었다.
“정말로 그런 짓을 행할 예정이었다면 그대들은 내가 깨어나기 전에 인족을 몰살해 버렸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구태여 내가 나온 후에야 그런 사실을 알려 줬단 것은, 뭔가 내게 바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닌가?”
내 말에 소인족 노인이 빙긋 웃었다.
“옳습니다.”
“바라는 것을 말하시오.”
내 말에 소인족 노인은 내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방금 전의 대련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시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긴 했지.”
내가 제대로 힘을 쓰기 시작하면, 심족 영역은 완전히 박살 나 심족들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진심 어린 일격을 저희 중 한 명과 주고받아 주십시오.”
“…허?”
“당신의 일격을 몸으로 받아 낼 수 있다면, 인류의 죄악에 대한 심판은 잠시 뒤로 미뤄 두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눈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윗 경지의 고수와 상대할 수 있는 기회는, 저희에게는 정말로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특히나 이미 어전일보의 극한에 이른 저희에게는 말이지요. 그렇지 아니하십니까. 존자(尊者)시여?”
그들의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뻐끔거리다, 음울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 그대들의 깨달음은 존중하오. 겨뤄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되오.”
“어찌 아니됩니까?”
“…내 심기가 불안정하여, 진심을 내면 그대들을 죽일 수도 있으니까.”
태산에게 교도들을 잃고,
강민희를 껴안고 자살한 것이 불과 얼마전의 일!
거기다가 이제는 북향화의 시한부 선고까지 들어 버렸다.
하나하나!
내 인연들이!
내 곁을 떠나고 있다!
스스스스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다시금 내 주변으로 탁기와 귀기, 마기 등이 피어올랐다.
“…나를 객으로 대접해 준 그대들을 죽이고 싶지 않소. 부디 가능하다면 본인이 심상을 안정시킨 후에 와 주시기 바라오.”
그리고, 내 말에 22인의 최고지도회 수뇌들의 얼굴이 모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존자시여, 한 말씀 진언하여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감히 저희는 존자가 어떤 심정일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는 서로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소인족 노인의 말은 꽤나 재밌는 소리였다.
남들의 심상을 읽어 내는 시야를 가지고 있기에 심족이라 불리는 것이 우리가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그런 시야를 가진 심족의 입에서 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니?
기이한 발언이었다.
‘알 것 같군.’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희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졌지만, 그것은 아무리 읽어 봤자 표상에 불과할 뿐. 진정으로 남과 같은 입장이 되어 위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저희 삼목숲에서는 남의 감정을 캐묻는 것 외에도, 남을 함부로 위로하는 것 역시 불문율로 금지되고 있습니다. 남을 위로하는 것은 서로 상당한 친분을 지닌 이들만 가능한 것이지요.”
그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므로, 저희 중 누구도 존자를 위로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중 누구도 존자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오나! 저희가 존자를 함부로 판가름하지 않았듯이, 존자께오서도 저희를 함부로 판가름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중 그 누가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습니까!”
쿵!
22인의 최고지도회는 일제히 내 앞에 나서며 일갈했다.
“저희 모두 이 너머의 경지를 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몸!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진심 어린 힘을 보여 주십시오!”
“….”
나는 그들을 보며 살짝 어이가 없어졌다.
‘나를 존자라 부르면서도 일반적인 수도자들처럼 존자로 취급하지는 않는군.’
일반적인 수도자들에게, 존자들은 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존자를 대함에 있어 감히 신을 함부로 직시하려 들지도 않았고, 신의 명에 복종하는 신도의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좋은 제자를 두셨군요. 스승님….’
하나같이, 죽을지언정 신에게라도 할 말은 하고 죽는다는 기개를 가진 이들이었다.
아니, 애당초 그런 이들이었으니 심족이 되고, 입천에 올라, 이 경지까지 온 것일 터였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소.”
“무엇입니까.”
나는 그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함천존자의 제자요.”
“음…!”
“즉, 내가 그대들을 혹여라도 죽이게 되면, 사제로서 사형 사저들을 죽이게 되는 것. 그리….”
“어쩌라는 것입니까!!!”
소인족의 노인은 다시 한번 크게 일갈하며 외쳤다.
“예식이 아닌 진심에 마음을 써 주시지요! 그리고 어차피 사형제 관계라 할지라도, 사형제끼리 깨달음을 논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앞서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느린 사형제들을 구해 주시지요!!!”
노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음유한 눈으로 말했다.
“…알겠소.”
꿈틀, 꿈틀….
나는 내 가슴 속에서 살기를 끌어 올리는 어둠을 제어하며 물었다.
“그럼 어떤 분께서 사제의 진심 어린 일격을 받을 것이외까?”
이어서 나온 것은 아니나 다를까 소인족 노인이었다.
“내가 나가도록 하지.”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 말했다.
“후회하지 마시오.”
“후회는 없습니다.”
“그럼 가겠소.”
츠츠츠츳-
점차 우리 둘이 의식을 가속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순식간에 주변은 어두워지고 이 세상에는 나와 그만이 남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이제 크고 작은 신체적 조건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남은 것은, 누가 누구의 절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일 뿐.
[아심검.]나는 처음부터 전력의 절기를 선보였다.
이만큼의 결의를 보인 자 앞에서 애매모호한 절기를 던져 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모욕!
내 모든 것을, 이 한 번에 쏟아부을 뿐!
[영유월감(嶺踰越嵌).]내 심상에 떠오른 심검은 인지의 속도로 그의 심상에 파고들었다.
나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을 베어 내 버리는 일검!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영유월감 응용기
파아앗!
[천섭월심(川涉越深).]재는 넘을수록 험해지고 내는 건널수록 깊어지나니.
사람 마음도 한 길 들어가면 열 길만큼 깊어 끝을 모를지어라.
혼의 계위에서 그의 마음을 베었던 아심검이, 총천검의 공능과 함쳐지며 기의 계위로 내려왔다.
한마디로….
푸콰각!
본래는 나를 인지하는 것으로 마음만을 베어 고통을 주던 아심검 영유월감은, 이제 나를 인지하는 것으로 육신마저 베어 낸다는 뜻이었다.
콰각-
그가 들고 있던 바늘이 부러졌다.
하지만 나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대응했다.’
분명 한참이나 모자랐지만, 영유월감의 식에 ‘맞대응’한 것이었다.
아마 출력이 천, 지족만큼이나 높았다면 어쩌면 내 아심검을 완전히 으스러트리는 게 가능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뿐.
그것을 끝으로, 최고지도회의 수뇌부 중 일인.
소인족의 노인은 선 채로 죽었다.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심검을 펼칠 때, 감정을 완벽히 제어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소인족 노인이 진정 전력으로 부딪혀 왔기에, 이것은 저 노인의 반발력에 의한 죽음이었다.
“편히 잠드시오, 사형.”
“사형.”
“사형….”
최고지도회의 수뇌부들은 일제히 소인족 노인을 향해 예를 취하였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장익의 현 제자 중 가장 배분이 높은 이.
심족 최고지도회, 부지도자.
장익이 없는 현 시점 심족의 실질적 최고지도자.
“경창 사형! 그대의 의기는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오!!!”
소인족의 검사, 경창!
나는 심족 영역인 삼목숲에서 정신을 차린 첫날.
장익의 가장 오래된 제자를 죽인 것이었다.
작가의 말: 우공이산의 묘(妙)는, 그 분량이 늘어남과 함께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