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46)
괴(怪), 군(君)(1)
드드드드드!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하늘이 시뻘겋게 물든다.
중경계 전체의 그림자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일렁이기 시작한다.
오오오오-
부정적인 힘에 일시적으로 인격들이 투영되며, 심천마들이 우수수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내 주변에서는 모조리 도망치기 일쑤였지만, 일반적인 광한계 생령들에겐 치명적일 터.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위를 보았다.
느껴진다.
[빛]이 끊겼다.마치 고력계마냥, 하늘에서 천기기 읽히지 않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내 체내에서 화혼만천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이건….’
알 수 있었다.
저 하늘에는 더 이상 천기가 흐르지 않았다.
대신 흐르는 것은, 자혼만천의 구결!
[…이제 알겠군.]나는 육린을 떠올렸다.
육린의 앵룡도에 있던 혈음과의 인력을 형성하던 비술.
그 비술은, 분명 자혼만천과의 인력을 형성하는 비술인 것이었다.
‘애시당초 자혼옥새에서 발견된 자혼만천은 혈음의 것이었단 건가.’
자혼만천은 전승을 통해 완성된다.
그리고, 자혼옥새에 깃들어 있던 자혼만천은 ‘혈음으로부터’ 전승된 것이었다.
나는 화혼만천의 구결이, 하늘 위의 자혼만천에 반응할지언정 동화되진 않는단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화혼만천이 된 순간부터, 이 비술은 혈음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리라.
‘고맙소, 려화.’
려화 덕에 내 영혼은 무사하다.
그러나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세계가 변화한다….’
쿠구구구구!
짙은 혈마기.
우우우웅!
내 영역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원유가 미친 듯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별 쓸모가 없어져서, 원유의 조각 하나 정도만 따로 보관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 원유가 혈음계의 힘에 반응한다.
내가 원유를 바깥으로 내보내자, 원유는 미친 듯이 혈마기를 흡수하며 몸을 재생시키기 시작했다.
꿀럭, 꿀럭!
순식간에 재생한 원유의 경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원영기 수준을 뛰어넘어, 천인기 대원만, 준사축기 수준까지 원유의 수행이 폭증한다!
스아아아아-
동시에 원유의 눈에 요사스러운 눈빛이 흘렀다.
[…너는 뭐냐.]난 원유의 몸이 뭔가에게 장악당했다는 걸 알고 물었다.
그리고 원유가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도….”
콰악!
서휼이었다.
나는 물을 것도 없이 무색유리검을 꺼내 놈의 입에 쑤셔 박았다.
꿈틀 꿈틀….
그러나 서휼은 원유의 몸을 통해 목젖 쪽에 입을 하나 더 형성하더니 말을 이었다.
“과격하시군요. 도우… 후후….”
“왜 찾아왔지.”
나는 아심검을 놈의 혼에 들이밀며 겁박하듯이 말했다.
놈은 빙긋 웃었다.
“제 주인이신 혈음(血陰) 어르신의 명에 따라 도우를 잠식하러 왔습니다. 쇄성기 수준 심족은 따로 공들여서 잠식해야 하니 말이지요.”
“….”
나는 서휼의 눈을 바라보았다.
녀석도 내 눈을 보며 웃었다.
“….”
스릉-
난 놈의 입에 박아 넣었던 검을 다시 빼냈다.
미치광이들은 미치광이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법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서휼의 어둠 속에서, 녀석의 본의를 읽어 내며 인력으로 놈의 몸을 우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서휼은 나를 잠식하려는 듯 양손을 뻗으며 내게 엉겨 붙어 왔다.
그리고, 나는 심어를 통해 물었다.
-네 말뜻은 잘 알겠다.
서휼어로 해석해 보자면, 저 말뜻이란 다음과 같다.
‘혈음이란 내 주인도 아니고 따르고 싶지도 않으니, 놈을 같이 죽이자. 쇄성기 수준 심족이라면 방법이 있다.’
웃기는 일이다.
예전에 서휼이 자신을 혈음이라고 자칭한 게 엊그제 같았는데 말이었다.
-그런데 내가 널 어찌 믿어야 하지. 강민희 때도 내 뒤통수를 친 게 네놈이건만.
서휼은 빙긋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육신은 잘 가져가겠습니다, 서 도우… 후후….”
-모조품 현고지를 구해 왔습니다. 계약의 주재자를 서 도우 당신으로 한 다음 계약을 하게 되면 당신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며 배신 걱정은 없을 겁니다.
나는 눈을 흘겼다.
“네 뜻대로 될 것 같으냐.”
-네가 배신을 안 한다고?
“받아들이시지요. 이게 운명입니다. 이제 광한계는 끝이고, 이 세계는 혈음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신을 할 거라는 상정 하에 계약을 하지요. 믿지 말고 이용하십시오. 지금의 제게도 서 도우가 필요하고, 서 도우에게도 제 지식이 필요합니다.
“광한계가 혈음계가 된다고…?”
-나는 수틀리면 다 터트려 버릴 수단이 있다만? 네놈을 확실히 믿어야 할 이유를 내놓아 봐라. 네놈 본체에 대고 한 맹세조차 처음부터 같은 편이 아니었단 헛소리로 회피하는 걸 보니 못 믿겠군.
“저희 어르신의 목적을 알려 드려야겠군요. 애당초, 어째서 혈음계 천마들이 그렇게 광한계를 노렸는지 아십니까? 그들에게 더 잘 맞는 진마계나 명귀계를 놔두고 말이지요. 고력계나 자금계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데 굳이 광한계를 노리는 이유를 아시냐는 겁니다.”
-으음, 좋습니다. 지금은 제가 아쉬운 처지이니 한 수 물러나 드리지요. 저를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서 도우의 ‘선수 진혈’을 모조 현고지에 떨어뜨려 보십시오. 그럼 저희 사이에 신뢰가 싹틀 겁니다.
나는 수상쩍은 눈으로 서휼을 바라보았다.
현재 ‘붉은 하늘’로 변한 위쪽을 조심하며, 우리는 입으로는 서로를 침식해 가는 천마와 그 천마에게 대항하는 연기를 해 가고 있었고, 내 심어를 통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이게 진짜로 ‘제대로 된 대화’인지 알 수 없었다.
‘거짓부렁만 내뱉는 놈…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지.’
난 놈을 의심하면서도, 내 영역 내에 있는 모조 현고지 중 하나에 내 선수 진혈을 넣어 볼 준비를 했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 크게 이상한 건 없었다.
놈의 탁혼만천도 없었고, 수상쩍은 정황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놈은 또 모르는 놈이지.’
푸콱!
나는 기묘성심전을 서휼의 의식과 연결했다.
“뭐냐… 혈음이… 광한계를 노리는 이유를 말해라…!”
-내 의식과 네 의식을 연결했다. 연결을 끊고 도망치려 해도 소용없다. 내 아심검이 끝까지 쫓아가 다시 연결할 테니까. 만약 이 현고지로 인해 내 정신이 어떤 진선의 영역에 연결된다거나 시선을 받게 된다면, 너도 나와 함께 부작용을 감내해야 할 거다.
“…너무나 뻔하지 않습니까. 잘 아시겠지요. [명계 수석판관장 명마진군 유호덕]과 [광한천군], [차석판관장 해녕], [환생판관장 유수련], [자금천군]! 다섯 군(君)들이 [무언가]와 일월천역에서 전쟁을 벌였고, 죽었다는 것을….”
“크아아아악!”
‘이 뱀 새끼가….’
나는 전신에서 검은 피를 줄줄 흘렸고, 서휼 역시 만만찮은 충격을 받았는지 원유의 몸 곳곳이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혈마기들이 놈의 몸에 들어가며 놈은 빠르게 회복하는 중이었다.
-감내하겠습니다. 그러니 현고지에 선수 진혈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혹시라도 현고지에 선수 진혈을 넣자마자 정신이 지배당할 걸 대비해 의식을 미리 나눠놓고 현고지에 선수 진혈을 떨어뜨렸다.
촤아아악!
그와 동시에, 나는 정신 일부가 어딘가로 이동함을 느꼈다.
‘이곳은…?’
철컹!
정신을 차리자, 내 의식은 어떤 저울의 추 위쪽에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저울의 반대쪽 추에는, 서휼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나는 놈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네놈… 여기는 또 어디냐…!”
“걱정할 것 없습니다, 도우. 여기서라면 성가시게 대화할 필요는 없겠지요. 우선, [저울을 잡고 계신 분]을 한번 봐 주시지요.”
나는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저울 위쪽을 바라보았다.
서휼의 말을 따른 것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보인 것은 거인(巨人)이었다.
아니, 그것은 거인 따위의 단어로 칭해도 될 존재가 아니었다.
거신(巨神)!
그것은 혼돈의 증기로 이뤄진 거대한 신(神)이었다.
그 크기는 너무나 아득하여 막연히 ‘크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진체의 크기는 얼마나 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서휼이 반대쪽 추에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예를 갖추시지요, 서 도우. 인간족 선수(仙獸)이시자 [이름의 신]. 모든 계약과 언약의 주재자… 선수(仙獸) 현고(玄古)… 상령고도구천사명보생천상대제
(上靈高道九天司命保生天上大帝)이시나이다.”
서휼은 반대쪽 추에서 [현고]를 향해 예를 올렸고, 나 역시 흠칫하며 그에게 예를 올렸다.
그러나 [현고] 측에선 딱히 반응이 없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본체가 아닌 어떠한 법칙의 일종인 듯했다.
나는 거대한 증기의 거신을 올려다보며 이상함을 눈치챘다.
‘진선격 이상의 존재가 분명한데… 왜 봐도 아무렇지가 않지?’
내가 의아해할 때였다.
서휼이 웃으며 해답을 알려 주었다.
“조신(祖神)을 뵈니 어떻습니까. 인간족 선수의 씨앗이시여.”
인간족 선수, 현고.
그렇다는 말은 나와 저 거신은 어찌 보면 같은 종족이란 의미였다.
“…그래서, 이게 네가 말한 방법이냐?”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도우께서 고(古)의 진혈을 가지고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현고지와 고의 힘이 만나면, 그 대상들을 현고가 관리하는 계약과 언약의 성소(聖所)로 끌고 오니 말입니다. 이 안에서라면 혈음의 시선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쿠구구구구!
나는 웅장한 현고의 기세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거신에게서 은은히 느껴지는 신성함과 신령함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혈음 같은 존재라도 함부로 염탐할 수 없단 것이 유전자 단위에서부터 느껴졌다.
나는 서휼에게 질문했다.
“여기서 계약하면 너를 신뢰할 수 있단 거냐?”
“그렇습니다. 여기서 맺은 계약은 제가 필멸자인 이상 [절대로] 어길 수 없으니까요. 아니, 설령 진선이 되어 불멸자가 되더라도 현고의 격을 초월하지 못하는 이상 어기는 건 불가능합니다. 운명(運命)이 계약을 보조하여, 계약을 어기고자 하여도 ‘어길 수 없도록’ 천운이 조정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사갈 같은 놈도 믿을 순 있겠지.’
그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안색을 굳혔다.
“…말해 봐라. 절대 신뢰라는 걸 하지 않는 네놈이 이런 패까지 꺼내 들며 나와 손잡으려고 하는 이유… 혈음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유 등.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것이길래 네가 이런 짓까지 해서 나와 손을 잡으려는 거지?”
그리고, 서휼의 웃음이 옅어졌다.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녀석의 웃음이 완전히 없어질 때는 자신의 본질과 맞닿을 때뿐이란 걸 생각하면 지금의 사안이 어마어마하게 심각하단 의미였다.
“방금 전 혈음의 시선을 피하는 척하며 말씀드렸지요. 다섯 대존재가 [무언가]와 전투를 벌인 후, 다섯 대존재는 죽었다고.”
“그랬지.”
“확실히 다섯 대존재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두 번째로 강했던 유호덕은 ‘찌꺼기’나마 남는 데에 성공했지요.”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진선들의 이름을 마음대로 말해도 문제없는 모양.
서휼의 입에서 혈음의 진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선악의 좌를 거머쥔 도덕의 심판자, 유호덕. 그의 찌꺼기는 유호덕의 거대한 권능 중 일부인 ‘악덕’의 좌만을 움켜쥐어 새로이 재탄생했습니다.”
어렴풋이 짐작해 왔던 사실들이 서휼의 입에서 재확인된다. 예전에도 짐작해 왔던 사실들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어진 사실에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강한 그가 찌꺼기를 남겼다면, 첫 번째로 강했던 광한천군은 무엇을 남겼는지 아십니까?”
“무얼 남겼지?”
“목숨.”
“…?”
“50만 년 전 최강의 신(神)이라 불리웠던 광한천군은, [무언가]와 싸우고도… [목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벌떡!
나는 혼란에 찬 눈으로 서휼을 바라보았고, 그가 말을 이었다.
“광한천군의 혼(魂)은 어딘가로 사라져 뇌사(腦死) 상태나 다름없습니다만, 그 육신만은 식물인간 상태일지언정 [살아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말이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