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54)
연의 마음(5)
“…나와 함께해 주어 고맙소, 언젠가… 그대와 제대로 된 혼례를 치를 것이오. 당신.”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저야말로… 부….”
그리고 그녀에게서 ‘부군’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였다.
콰아아아앙!
뜨거운 열기가 근처의 눈을 전부 녹여 버리고, 나무를 모조리 태워 버렸다.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열기가 주변을 메웠다.
“노옴…!”
조씨세가의 결단기 장로.
조연을 세뇌하며 흑색귀골곡과의 정략혼을 추진했던 바로 그였다.
파앗, 파바바밧!
그의 주변으로 무수한 조씨세가의 후기지수들 역시 나타났다.
“이 추잡하고 멍청해 빠진 자식이… 결국 그새를 못 참고 발정이 나서 가축과 수간을 하러 왔단 말이냐! 오냐, 정 그렇다면 둘을 완전히 떼어 놓아 주마. 가축이 죽어 버린다면 네놈도….”
조연은 장로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법술을 준비해 자신의 머리통에 들이대었다.
“만약 그녀를 죽이거나 해코지를 한다면 즉시 자살하겠습니다.”
“뭐, 뭬야!?”
“말씀 주신 정략혼은 받아들이겠습니다. 흑색귀골곡의 수사와 혼인하여 자식도 낳아 드리지요. 하지만, 그녀의 목숨은 살려 주시고, 어떠한 해도 가하지 않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제 머리를 터트려 죽겠습니다. 아무리 장로님이라 할지라도 이걸 막을 순 없으실 겁니다.”
조연은 날카로운 눈으로 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기문법재가 더 탄생했다면 지금 저희를 그냥 죽이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최근에 더 각성한 기문법재는 없는 것 같더군요.”
조연은 마냥 멍청하게 자신의 목숨을 협박하는 건 아니었다.
조씨세가를 탈출하기 전 면밀히 조사를 하고 탈출한 것이었다.
“저주일맥 장로의 여식과의 정략혼을 파혼할 생각이셔도 저를 죽이실 수 있겠지요. 아무렴, 저따위 축기기 기문법재 하나 따위야 정말로 쓸모없지 않겠습니까. 저를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죽게 놔두시고, 파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조연은 알고 있었다.
지난 세월간 의식공법으로 독방 바깥의 얘기를 엿들으며 확신했다.
조씨세가의 가주는 이번 정략혼을 통해 조씨세가를 수도계의 황실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빈틈없는 동맹이 필요했고, 조연이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건 가주의 대계에 빈틈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기문법재가 며칠 새 하나 더 탄생했으면 조연을 죽여 버리고 정략혼 상대를 바꿔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장로는 시뻘개진 얼굴로 조연을 노려보았고, 조연은 하은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머리에 법술을 더 가까이 들이대었다.
결국 장로는 조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알겠다! 이 개 잡놈의 자식. 내 명예와 조씨세가의 명예, 그리고 내 금단에 대고 맹세하마. 네놈의 그 애완동물은 손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 죽이지도 않고 학대하지도 않겠다. 단!”
그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조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흑색귀골곡 측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으면 안 되니, 네 애완동물은 동방 끝에 잠시 데려다 놓겠다. 정략혼 후, 신혼 이십 년간은 절대 서로 만나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이십 년….’
조연을 침음성을 흘렸다.
길다.
너무나 길다.
하지만 그는 눈앞 장로의 의념을 읽었다.
‘이 정도가 한계겠군.’
더 이상 조건을 달려고 하면 그대로 폭발해 하은을 죽여 버릴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대신…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만나게 허락해 주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좋다! 그것도 약조해 주지. 내 금단과 명예, 조씨의 명예를 걸고! 됐느냐!?”
조연은 장로 뒤쪽의 후기지수들에게도 말했다.
“장로 대인과 함께 온 분들도 약속하게 해 주십시오.”
그 말에 그들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우리도 약속하지. 너희가 나중에 다시 만나게 해 주마. 우리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정말로….”
“그만!”
쿠구구구!
조연은 자신의 의식공법으로 후기지수들의 의념을 읽어 진정성을 보려 했으나, 장로의 일갈에 그의 의식공법이 막혔다.
“이제 됐다. 잡설은 그만해라! 내 앞에서 약속했으니 이 녀석들도 약조를 지킬 것이다. 너도 적당히 해라, 계속 의심한다면 내 명예를 의심한다는 말로 받아들이겠다.”
“…알겠습니다.”
조연은, 마뜩잖으나 장로를 믿어 보기로 했다.
꿈틀-
무언가.
이상하게도 장로와 후기지수들에게서 기괴한 흉(凶)함이 느껴졌으나, 지금 상황 탓이라고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옛날 그 원영기 요족 사내를 만났을 때와 같은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올랐지만, 그는 억지로 상황을 납득했다.
‘이게 최선이다.’
조연은 하은을 바라보며 그녀를 안아 주었다.
“이십 년은 길지만… 서로를 그리면 길지만은 않은 세월이오.”
“네. 알고 있습니다. 강산이 두 번은 변할 시간일지언정,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두 사람은 잠시 포옹을 한 후, 그 자리에서 떨어졌다.
조연은 결단기 장로와 함께 조씨세가로 향했다.
그리고 하은은 후기지수들과 함께 저 멀리 동쪽으로 향했다.
동방 먼 곳에 이십 년 동안은 떨어져 있어야 하리라.
먼 곳일지언정 조연은 반드시, 언젠가는 그녀를 만나러 가리라 다짐하며 조씨세가에 도착했다.
‘언젠가… 언젠가 당신을 만나겠소.’
그리고 사흘 후.
조연은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파, 파혼… 이라는 겁니까?”
결단기 장로는 크게 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흑색귀골곡 측에서 네 과거를 조사해, 네가 수간을 했단 걸 알아낸 모양이더군.”
뿌드득….
장로는 조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만약 그것 때문에 동맹에 빈틈이 생겼다면, 너와 네 애완동물을 친히 찢어 죽이려 했다만… 네겐 정말 운이 좋게도 네 상대에게도 과실이 발견되었다.
흑색귀골곡 저주일맥 장로의 여식… 남성 편력이 심하다곤 했지만, 설마 혼례 전날에 남자를 끌어들여 놀고 있을 줄은 몰랐지. 그걸 본가의 원로께서 발견하셨고, 그 결과 파혼이 결정됐다. 원래는 흑색귀골곡 측에서 너를 선심 쓰듯이 받아들여 주어서 우리 동맹에 우위를 점하려 했으나… 상대 여식의 그런 심각한 과실을 우리 측에서도 발견했으니 양측이 잘못한 게 되어 그냥 서로 말없이 파혼하기로 했지.”
“그, 그럼….”
조연의 얼굴이 활짝 펴지려던 그때.
장로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헛된 생각 마라! 네 정략혼 상대는 다시 정해질 거다. 다만… 네 수간 소문이 퍼져 버려서 상대를 찾기가 더 힘들어지겠지.”
퍼억!
장로는 조연의 얼굴을 거세게 후려쳤다.
퍼억, 퍽, 퍽!
그는 손수 자신의 손으로 조연을 두들겨 패며 말했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쓰레기 놈! 상대측이 문란하지 않았다면 너희 둘은 내 친히 녹여 내 법보 재료가 되었을 것이니! 제길, 열불이 나는군. 이런 쓰레기 놈의 상대를 찾으러 또 뛰어다녀야 하다니!”
그는 화를 내며 조연을 죽기 직전까지 구타하고는 방을 나가며 말했다.
“자숙하고 있어라. 그리고 경지를 빨리 올리는 게 좋을 것이야! 네 경지라도 올려서 네 가치를 드높이지 않으면, 수간이나 해대는 놈과 혼인할 상대는 아무도 없을 테니… 만약 네 수간 문제로 인해 결국 아무와도 정략혼을 하지 못하면 네놈 애완동물은 내 친히 데려와 네놈 앞에서 찢어 죽여 주마!”
“…알겠습니다.”
조연은 그리 말하며 방을 나서는 장로를 향해 읍하였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경지를 높이자.’
이것은 기회이기도 했다.
장로는 경지를 높여야만 조연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경지를 높인다는 것은 그에게 선택권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기도 했다.
‘결단기… 아니, 축기기 대원만만 되더라도, 세가에선 이전처럼 벌레처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전력이 된다.’
그때가 되면, 정략혼 자체는 피할 수 없을지언정, 누구도 하은을 데리고 함께 사는 걸 막을 자는 없으리라.
범인과 함께하는 것이 수간이라고?
무슨 상관인가.
축기기 대원만쯤 되는 이들 중 마공을 익히는 몇몇 진짜 괴팍한 가원들은 ‘진짜 수간’을 하기도 했으니까.
장로는 조연이 경지를 높여 봤자 축기 중기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연은 이미 소싯적에 결단기 수준의 깨달음은 전부 체화하고 있었다.
단지, 수명이 너무 늘어나면 하은에게 영약을 아무리 먹여도 그녀와 같은 날에 죽을 수 없었기에 일부러 경지를 올리지 않기 위해 축기 초기를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금단기를 찍어 수명이 600년을 넘게 되고, 그리하여 하은과 같이 늙지는 못하게 될지라도… 경지를 올려야 할 때다!’
조연은, 반드시 경지를 올리겠다고 맹세하며, 그날부터 자신의 방에서 거의 폐관에 들어갔다.
* * *
세월이 흘렀다.
약 5년의 세월이 지났고, 아직도 조연의 혼처는 정해지지 않았다.
결단기 장로는 10년 안에 혼처가 정해지지 않으면 하은을 찾아와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지만 조연은 두렵지 않았다.
우우웅!
장로에겐 수행을 숨기고 있었지만 이미 그의 수행은 축기 후기였으니까.
‘결단도 머지않았다.’
심지어 그의 기문법재는 또다시 진화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지난 5년간 열심히 법기 제작도 연습하며 재능을 개화했기 때문일까, 그의 문양 여섯 개 중 두 개가 다시 합일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 덕에 조씨세가에서도 조연의 혼처를 조금 더 신중히 알아보느라 혼처를 정하는 기간이 늦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조연은 장로가 나간 후 빙긋 웃으며 연공을 했다.
‘그녀와 정말로 함께할 날이, 머지않았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어이, 꼽추.”
조연의 방으로 후기지수들이 들어왔다.
“…?”
조연은 의문을 품으며 그들을 보았다.
그날 장로를 따라 조연과 하은을 목격했던 후기지수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전부 흑색귀골곡의 고위층과 혼례를 올려, 가문 내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조연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목함을 하나 건넸다.
“요새 법재가 진화하려 한다며? 하하, 이거 예전 그 모지리가 맞나 싶군. 오문법재가 되면 우리와 드디어 동급이 되는 거잖냐!”
태어날 때부터 오문법재였던 한 명의 후기지수는 친근한 듯 조연과 어깨동무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조연을 괴롭혔던 것이 바로 그 후기지수였다.
“이전에 괴롭힌 건 미안하게 됐다. 이제 오문법재가 되면 그래도 사람이 되는 건데, 예전처럼 앙금이 남아 있어선 안 되지.”
그는 불쾌하게 웃으며 조연에게 목함을 들이밀었다.
“먹어, 영약이다.”
문득, 조연은 알 수 없는 불쾌감과 혐오감이 마음속에서 일어 오르는 걸 느꼈다.
“…이건 …무슨 영약입니까?”
“너도 아는 거야. 정진단(情進丹).”
“…!”
정진단.
기문법재들을 가지고 있는 조씨세가가 만들어 낸, 오직 기문법재들을 위한 영약!
그 제조법은 조씨세가의 단약사들 중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다는 뛰어난 단약이 그것이었다.
“우리 숙부가 본가의 극품 단약사잖냐. 숙부에게 귀한 재료를 건네드리고, 특별히 훌륭한 정진단을 의뢰해 드렸지. 숙부도 이렇게 특별한 재료는 처음이라면서 아주 좋아하시며 단약을 만드셨다.”
후기지수는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 먹어라. 육, 칠문법재야 병신들이지만 오문법재는 그래도 본가에 도움이 되니 너도 앞으로 본가에 이바지할 인재가 되겠지. 어렸을 적엔 내가 너를 조금 괴롭혔다 생각하겠지만, 그게 다 내 너를 생각해서 단련시켜 준 거였으니 오해 말고.”
조연은 정진단이 든 목함을 받아들고 잠시 우물쭈물거렸다.
어딘지 모르게 불쾌감과 혐오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조연을 보며, 후기지수는 짜증 난 표정을 지었다.
“어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거냐. 그건 우리 숙부가 몇 년 동안 공들여 만든 단약이다. 지금 너는 나와 내 숙부를 무시하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 단지 저 따위에게 이런 귀한 걸….”
“자꾸 빼려고 하는데, 이 자리에서 일단 하나 먹어라. 우리 성의를 계속 무시하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우리가 네놈 애완동물 위치를 알고 있는 건 너도 알지?”
“…으음….”
조연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한숨을 쉬며 목함을 열었다.
목함 안쪽에는 은은한 연분홍빛 단약이 세 알 들어 있었다.
먹으면 기문법재의 재능을 증폭시키는 천고의 영약!
왜 이런 귀한 걸, 어릴적부터 괴롭혀온 자신에게 주는 걸까.
조연은 후기지수의 의념을 보았다.
그의 의념은 보랏빛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악의인가, 선의인가.’
그의 의식공법은 완성되지 않았다.
오기조원의 깨달음을 해석하는 건 아무리 조연이라도 그리 쉬운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단지 색조를 조금씩 볼 수 있게 되었을 뿐이고, 아주 조금씩 색조의 의도를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정확한 의도는 알기 힘들군.’
결국 조연은 그들의 눈앞에서 단약을 먹었다.
독이 든 건 아닌 것 같았다.
먹자마자 부드러운 기운이 그의 전신을 맴돌았다.
그건 마치 따스한 손길이 조연의 몸을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푸하하하하하!”
그 모습을 보며 후기지수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조연은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이 꼽추 녀석!”
후기지수는 조연의 등을 두들겨준 후 그의 방을 나가며 말했다.
“약성을 흡수하게 자리를 비켜 주마. 그럼, 잘 먹고 본가의 훌륭한 인재가 되어라, 녀석!”
조연은 잠시 그들이 나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목함에 남은 영약들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먹긴 해야겠지.’
왜냐하면, 먹고 성장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가 오문법재가 된다면 가문에서도 그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터였다.
‘그리고… 이 정진단이라면 어쩌면.’
조연은 사문법재도 노릴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사문법재라면, 가문에 당당히 하은과 함께 살겠다고 해도 받아들여 줄지도 몰라.’
“반드시….”
조연은 단약을 보며 맹세했다.
“다음 기회에는 그녀와 함께하고 말 것이다.”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지와 재능을 올릴 때였다.
오직…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서.
조연은 그리 생각하며, 단약을 다시 하나 집어먹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육문이 합쳐지며 오문이 되었다.
조연은 짧게 뇌까렸다.
“기다리시오, 당신….”
아직도 정진단의 약성들은 그의 체내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약성을 전부 흡수하면 어쩐지 사문법재의 길이 열릴 것 같았다.
“반드시 만나러 가겠소. 그대와 백년해로하며 같이 늙어 가기로….”
조연은 눈에 불을 밝히며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 * *
부글부글부글….
보랏빛 거품을 흘려 가며 죽어 가는 거대한 해룡족의 사체 위.
그곳에서 죽립을 쓴 채 흐리멍덩한 눈을 한 사내가 해룡족의 사체를 쓰다듬으며 히죽 웃었다.
“후후… 내 손으로 유도한 거긴 하지만, 조씨세가는 상상을 초월하는군. 그냥 본성을 자극했는데 저 정도라니… 그것보다….”
그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다.
“결국 저리되면 내가 찾던 게 아니었나 보군. 그건 ‘반드시 만나서 한날한시에 같이’ 죽게 [설정]되어 있으니까.”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사내는 눈이 뒤집힌 채 죽은 해룡의 사체에서 뭔가를 뽑아냈다.
* * *
5년의 세월이 지났다.
쿠구구구구!
조씨세가의 한 수련동부 안쪽.
그곳에서 굉음이 울리며 천지영기가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지?”
조씨세가의 장로 중 한 명이 수련동부 방향을 쳐다보았다.
“이 천기현상은 설마….”
그는 뭔가를 알아차린 듯 흠칫 놀라며 수련동부로 날아갔다.
얼마 후, 수련동부 안쪽에서 강력한 천지영기의 압력이 밀려왔다.
쿠구구!
수련동부가 열렸고, 안쪽에서 조연이 걸어나왔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장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수련동부 안쪽에서 나온 것은, 그가 일전 혼처를 찾지 못하면 그의 애완동물을 죽이겠노라 협박했던 조연인 것이었다.
그는 조연을 보며 헛숨을 들이켰다.
“겨, 결단… 결단을 이루다니 이 무슨… 아니 그것보다!”
그는 그의 피부에 떠오른 문양을 보며 경악했다.
“사, 사문법재! 사문법재라고!? 도대체 어찌한 거냐, 칠문법재가 사문법재까지 진화해? 정진단을 밥처럼 퍼먹어도 쉽지 않은 것이 법재의 진화거늘, 벌써 몇 번이나 진화한 거야!”
그러나 장로가 놀라건 말건 조연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간만입니다, 장로님.”
“….”
“결단을 찍고, 사문법재에까지 도달했습니다.”
조연은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수련동부 안에는 조연이 지난날 동안 기문법재를 진화시키기 위해 만들어 왔던 무수한 법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저 법기와 법보들도 전부 가문에 바치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장로 대인. 제 혼처는 제가 마음대로 정해도 되지 않습니까.”
“….”
장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조연을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대로 해라. 이런 재능을 숨기고 있었다니… 놀랄 일이군. 네 애완… 그래. 네놈이 아끼던 범인이 있는 곳을 기록한 법기다. 찾아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나는 약속대로 그날 이후 그 범인에게선 완전히 신경을 껐고, 건드리지도 않았다!”
“하하, 감사합니다.”
조연은 장로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빠르게 가문의 원로와 가주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가주와 원로들의 칭찬 등은 한 귀로 흘려넘기며, 조연은 하은을 찾아갈 때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조연을 향한 가주의 훈화와 덕담이 끝났을 때.
조연은 가주에게 진언했다.
“가주님, 금단기에 올랐고, 사문법재를 얻어 낸 저 정도라면 제 스스로 혼처를 정할 권리가 있다 생각합니다.”
“으음, 그렇긴 하지. 생각해 둔 명문가나 대형 선파 규수라도 있는가.”
“저는… 무림인을 부인으로 두고 싶습니다.”
“뭐야!”
원영기의 가주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소리쳤다.
“이… 수간 어쩌고 하는 풍문을 들었을 땐 거짓인 줄 알았거늘… 그런 변태적인 취향을 아직까지도 달고 있었다는 게야!”
쿠구구구구!
원영기 가주는 씨근거리며 기세를 끌어올리려다가, 겨우 분노를 참아내며 다시 가좌에 앉았다.
“…네가 오문법재나, 축기기 대원만이었다면 내 직접 네놈을 때려죽였을 것이다. 그래도 경지가 경지고 재능이 재능이니 죽이지는 않겠다. 마음대로 해라. 단! 애완동물을 키울지언정 가문에서 정해 주는 규수와 혼인은 해라!”
“…감사합니다.”
조연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일단 허락을 얻어 낸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오성으로 원영기에 오를 자신은 있다.’
그때가 된다면 그 누구라도 조연이 하은과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는 걸 막지 못하리라.
하은과의 백년해로는 조금 아쉽지만, 전 대륙의 영약을 긁어서라도 그녀를 결단기까지 올리면, 오히려 천년해로까지 가능하리라.
그렇게 꿈을 꾸며, 조연은 가주 알현실에서 나와 하은의 위치를 기록한 법기를 꺼냈다.
조씨세가는 법기의 천재들이 만든 세가답게, 범인 한 명을 위치 추적 하는 법기 하나쯤은 너무나도 만들기가 쉬웠다.
‘장로도 혹시나 싶어 만들어 놓고는 10년간 한 번도 발동시키진 않는 모양이군.’
조연은 법기의 구조를 해석했다.
‘하은의 혈액 정보를 토대로 그녀의 이동 경로를 기억했다가 그 위치로 향하는 법기인가. 쓸데없이 완성도는 높단 말이지. 하여튼 이놈의 조씨세가는… 이럴 기술력이 있으면 범인들한테 풍년이나 내리는….’
속으로는 조금 조씨세가를 향한 불만을 내뿜었지만, 조연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제 모든 것이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싫기만 했던 조씨세가 역시, 은근한 소속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뭐 됐다. 이제 가자.”
위이잉!
조연이 법기를 발동시키자, 동그란 법기에서 날개가 돋아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법기는 그대로 날개를 파닥이며 어떤 곳으로 향했다.
조연은 비둔술을 펼치며 법기를 따라갔다.
“동방까지 이동하려면 영력이 많이 소모될 테니 가기 전에 단약이나 영석이라도 보충을 해야….”
그리고, 조연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법기가 향한 곳은 동쪽이 아니었다.
조씨세가 본가의 어떤 구석이었다.
조연의 눈이 커졌다.
‘잠깐, 설마….’
그는 어처구니가 없는 기분이었다.
“동방이 아니라, 조씨세가에 그녀를 숨겨 뒀던 건가? 허….”
하기사, 오기조원의 무림인이라면 조씨세가 입장에서 적당히 연기기 자제들 호위무사로는 써먹을 만했으니, 그런 용도로 쓰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몰랐다니. 본가에서 정보를 통제한 탓이겠지. 아니… 내가 너무 수련에만 집중하느라 가문 정보에 밝지 못했던 건가? 어쨌든 그래도….”
위이이잉!
법기는 대련장, 연공실, 법기 연기실을 거쳐, 본가의 구석.
연단실로 향했다.
“…뭐지.”
조연은 연단실 앞에 도착한 법기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이 안에 하은이 있단 건가.’
그는 조심스레 연단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연단실은 아무리 결단기인 그라도 함부로 들어갈 순 없었기에 조연의 태도는 조심스러웠다.
그가 연단실의 문을 들자, 법기는 연단실의 구석으로 날아갔다.
“당신… 거기 계시오?”
조연은 떨리는 마음으로 법기를 따라갔다.
그리고, 법기가 멈췄다.
법기가 멈춰선 곳은, 연단로에 불을 지피는 지화(地火) 분출기 앞이었다.
“….”
조연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은은 보이지 않았다.
“…법기가 고장났나.”
그는 법기를 만져 보았다.
그러나 사문법재에 도달한 그가 볼 때, 법기는 고장나지 않았다.
법기 내에 등록된 하은의 혈액이 느껴졌다.
조연이 기억하는 하은의 기(氣)가 이 혈액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
조연은 법기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어딘가 고장난 것 같은데… 내 실력으론 잘 모르겠어.”
그때였다.
조연의 뒤쪽으로 누군가들이 하품을 하며 걸어왔다.
“흐아암, 약재 배합도 쉽지 않군. 어이, 잠깐! 당신은 누구요!”
조연이 뒤를 돌아보았다.
일전 조연에게 정진단을 주었던 후기지수였다.
후기지수는 조연을 보자 반갑다는 얼굴을 했다.
“이게 누구야! 꼽추 아니야! 하하, 폐관에서 나왔나? 어디 성과는 좀 있었냐? 난 폐관도 안 하고 벌써 축기 후기인데 어디 얼마나… 으응?”
문득 조연의 의식과 영압을 확인하던 후기지수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 어…?”
그리고, 조연이 후기지수에게 손을 뻗었다.
콰아악!
그는 양 손으로 후기지수의 어깨를 잡은 채 물었다.
“…그녀는 어디 있지?”
후기지수는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어, 어떻게 너 따위가 결단을….”
“그녀는.”
콰드득!
그는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후기지수에게 말했다.
“어딨지?”
“크윽, 너, 너….”
바로 그때였다.
콰악!
누군가가 장내에 나타나 조연의 손을 움켜쥐었다.
조연은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후기지수의 숙부.
원영기를 앞둔 결단기 대원만의 대장로였다.
“놀랍군. 조카가 말했던 그 꼽추 녀석이 이 경지까지 성장할 줄이야.”
“…그녀는 어디 있습니까.”
조연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대장로가 무어라 말하기 전, 후기지수가 그의 등 뒤로 숨으며 비웃듯 말했다.
“하하, 네 애완동물 말이냐? 우리가 약속을 지켜줬잖느냐! ‘다시 만나게 해’ 주겠다고!”
“…뭐?”
“거기! 네 애완동물은 ‘거기’ 있다!”
후기지수가, 조연의 배를 가리켰다.
조연은 잠시 자신의 배로 시선을 돌렸다가, 연단로 지화 분출구를 바라보고, 다시 대장로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후기지수에게 향했다.
싸아아아아-
“…너.”
조연의 주변으로 한기가 퍼져 나갔다.
“수, 숙부님!”
“흠, 네가 잘못했군. 이 정도로 애완동물을 아낀단 말은 안 했잖느냐.”
대장로는 조연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조카가 조금 성급했군. 하지만 네가 이해해라. 그래 봤자 가축이지 않느냐. 그리고, 네 애완동물로 만든 정진단 삼백 알은 정말 특제품이었기에 가문의 후기지수 및 가주와 원로님들, 태상 원로님들께서도 드시고 훌륭한 자질의 증진을 이뤘다. 조씨세가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됐으니 그것도 죽으며 기뻤을 게 분명하다.”
“….”
“불만이 있다면 지금 말해라. 조금 특별한 가축이긴 했으니 보상을 해 주도록 하지. 혹시 다른 애완동물이 필요하면 속세에 가서 몇 마리 더 가져다줄 수 있다.”
“….”
“불만 없으면 그만 나가 봐라. 연단실은 가문의 결단기 장로급이라도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야.”
“….”
조연은, 대장로를 지나쳐 나갔다.
그는 멍하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우득-
조연은 자신의 손을 깨물었다.
우득, 우득, 우득….
그의 손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우득우득우득우득우득….
조연은 피가 흐르는 걸 개의치 않고, 뼈가 드러날 때까지 손을 짓씹었다.
뚝뚝….
조연의 눈에서 붉은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무얼 먹었는지를 이해했다.
“아아….”
빠득빠득빠득빠득빠득….
자신의 손이, 원망스러웠다.
생각도 없이 아무거나 집어먹은 자신의 입이 원망스러웠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치이이이이-
조연의 얼굴에 떠오른 사문이, 점차 삼문에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조연은 미쳐 버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로지 단 하나의 목표만이 남게 되었다.
조씨세가의, 멸망.
오직 그것만을 목표로 하며, 그는 복수와 광기 속에 자기 자신을 던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