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56)
연의 마음(7)
츠츠츠츠츳….
나는 괴군의 기억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대해 알 수 있었다.
“….”
파아앗….
정신을 차리자 기묘성채를 중심으로 칠대존자의 본체가 소환되는 중이었다.
나는 가만히 검을 들어 그들을 향해 겨눴다.
내 옆으로는 서휼이 빙긋거리며 나타났다.
오혜서의 기운은 다시 광한계 바깥으로 사라졌다.
이제 괴군의 곁에 있는 것은 오직 김연의 의식체 하나뿐.
서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파랑만장하지요? 노야의 인생은… 저런 상태라서 제가 노야에게 탁혼만천을 걸 수 없었답니다.”
나는 말없이 서휼을 노려보다, 무색유리검을 잡아들었다.
나는 괴군의 심상의 비밀을 마침내 이해했다.
일전 그의 심상에 진입했을 때 무수한 함성과 고통에 찬 비명을 느꼈던 이유.
그것은, 조연이 조씨세가를 통째로 먹어 치우며, 내 만상인연도와 같이 조씨세가의 사람들을 통째로 자신의 의식 속에 새겼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원망스럽다곤 하나, 자신의 혈족을 죽인 것에 대한 괴군 나름의 자책감의 발로.
그것이, 괴군이 가진 광증의 진정한 원인이었던 것이었다.
“조연에게 ‘그녀’를 먹인 것도 결국 네가 한 게 아니냐.”
서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후후, 저는 탁혼만천을 통해 조씨세가가 ‘그녀’를 조연에게서 떨어뜨리도록 유도했을 뿐. 직접 그 짓을 한 건, 수도자 외의 범인을 가축으로 인지했던 조씨세가의 인물들입니다.”
그의 설명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진심으로 끝까지 자신들이 왜 멸망하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자기들은 정말로 밭에서 기르던 무 하나를 뽑아먹었을 뿐이니까요.”
“….”
수도계란 참 역겹다.
나는 서휼을 뒤로하고 칠대존자들에게 달려들었다.
강자가 약자를 병탄하는 것이, 상식을 넘어 오히려 ‘도리’로 여겨지는 곳이 바로 이 세계.
수선은 곧 약탈이라는 것이야말로 진리라고 굳게 믿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며 절대적인 진리이다.
나는 산호를 쏟아 내는 쇄령 존자를 상대하며 이를 악물었다.
‘소금산의 주인이여.’
수선은 곧 참오라는 진리를 밀어붙였던 존재.
나는 그 존재를 향해 속으로 질문했다.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닙니까.’
푸콱!
내 일검이 쇄령 존자를 떨쳐 냈고, 뒤이어 달려드는 괴륙 존자와 육녕 존자를 베어 냈다.
‘이 세계는 미쳐 있습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 당연하다 못해 광기 수준에 달해 있다.
‘이 미친 세계에서, 수선은 곧 참오라고 외친 당신이야말로… 오히려 미친 것이 아닙니까.’
나는 검을 휘두르며 이를 악물었다.
괴군의 일생을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이 세상을 포함한 모든 곳은, 아무 희망이 없다.
연인을 자기 손으로 잡아먹었던 괴군의 일생을 보며, 나는 한 가지를 알았다.
이 세상은 결국 명(命)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명(命)이란 것이 곧 하늘이라면,
하늘은 한 명의 인간에게 이다지도 잔혹해질 수 있는 존재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하늘 아래에 있는 이 세상은 사실 지옥이 아닌가?
참오를 외쳤던 소금산은 영멸하고,
살육과 고통, 절망과 비탄으로 산을 쌓은 태산의 주인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를 증명하지 않는가?
그 선하고 고결했던 유호덕이 죽고, 혈음이 남아 있는 게 이를 증명하지 않나?
콰득….
나는 더욱더 무색유리검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면 그것은 가없는 축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보라.
이 세계는, 마음과 마음이 이어짐으로 오히려 더더욱 고통이 생겨나기도 한다!
괴군의 과거를 보며 나 자신의 아픔이 드러난 탓일까.
아니면 혈음이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암울한 심정으로 검을 휘두르며 존자들을 상대했다.
괴군이 의식을 차리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의 연 같은 걸 발동해 봤자, 어차피 일상적인 광한계도 천지족의 횡포로 인해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냥 혈음계에게 먹혀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서 도우!]흠칫!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서휼의 탁혼만천 덕분이었다.
놈의 탁혼만천이 내 정신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내가 완전히 어둠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주고 있었다.
[자신을 관조하시지요.]“….”
나는 그의 말대로 나 자신을 관조했다.
전신에서 혈마기가 피어오른다.
눈이 충혈되다 못해 붉어져 있었다.
‘…하.’
나는 내 정신이 순간 이상해졌던 이유를 눈치챘다.
혈음계의 주인.
진선 혈음이, 존자들과 맞상대하는 나를 상대로 직접 손을 쓰고 있다.
나는 내 정신이 점차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걸 느꼈다.
‘이게 혈음의 힘인가….’
그러나 나는 예전처럼 맹렬히 혈음의 권능에서 빠져나오자 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혈음이 속삭이는 부정적인 힘에 대해서, 부정할 생각이 안 들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저 힘없이, 예전 내 귓가에 속삭여졌던 신령한 목소리를 다시 찾을 뿐이었다.
‘소금산의 주여. 이 세계에서, 참오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무슨 의미가 있긴!”
…어?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을 가꾼다는 뜻. 약육강식이 진리이고 약탈이 절대라면, 결국 그를 절대로 여기는 이들 역시 언젠가는 더 강한 자에게 먹히고 약탈당하겠지.”
왜… 당신이 여기에….
“하지만 자신을 가꾸어 커 나간 자는, 망해도 결국 자신에 의해 망할 뿐. 남에게 뺏기지 않는다. 자신이 키운 건, 세상이 멸망해도 자신에게 남는단 소리다.”
염소수염을 기른 익숙한 노인이, 내 앞에서 버럭 불호령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정신 좀 차려라! 아둔한 것!”
번쩍!
나는 눈앞의 청문령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정작 정신을 차리니 눈앞의 청문령은 없어졌다.
있는 것은 오로지….
북향화의 노리개에서 뿜어지는 새하얀 빛뿐.
“….”
나는 잠시 노리개를 바라보다 웃었다.
노리개 너머의 청문령이 대답한 것일까.
아니면….
소금산의 주가, 내 의문에 청문령의 형상으로 답해 준 것일까.
‘아….’
나는 바로 답을 알 수 있었다.
남이 준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던 것이다.
내 만상인연도 안에 있는 청문령은, 분명 그리 대답했으리라 내 자신이 판단하여 내게 환영을 보여 줬던 것이리라.
노리개는 그저 계기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약탈하여 커 나간 자는 그 끝에서 결국 자신도 약탈당할 뿐.
그러나 자신을 참오하여 커 나간 자는 그 끝이 찾아와도 자신이 쌓은 것은 남게 된다.
나는 어째서 영멸했다는 소금산의 주가, 어째서 이렇게 많은 권능을 남겨 놓고 있다는 것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그는 남에게서 약탈하여 자신을 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꾸어 키웠기에 아직도 많은 것이 남아 있는 것이리라.
참오하여 얻은 것은, 절대로 멸하지 않는다!
츠아아아아아!
내 몸에서 순백의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저 멀리.
우주보다도 먼 곳 너머에서, 흉악한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 ‘누군가’는 나를 노려볼지언정 해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나를 증오할지언정,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그 느낌에 힘입어 더더욱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심마를 몰아냈다.
“괴군, 들리시오.”
나는 의식을 막 차리기 시작한 괴군에게 말했다.
쿠웅!
눈앞의 존자들의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 : 자혼만천. 육합만개(六合滿開). : :
힐기 존자는 쇠가 되었다.
강철의 산이 되어 천련산 서방(西方)에 자리하였다.
괴륙 존자는 강이 되었다.
어둠의 강이 되어 천련산 북방(北方)에 자리하였다.
육녕 존자는 나무가 되었다.
붉은 흙으로 된 육신에서 싹이 돋아나 동방(東方)의 혈목이 되었다.
위온 존자는 불이 되었다.
그의 뼈는 그대로 불타 버려 천련산 남방(南方)을 밝혔다.
격할 존자는 하늘이 되었다.
하늘을 위에서 천하를 내려다보는 흉측한 별들이 되어 하늘을 뒤덮었다.
마지막으로, 쇄령 존자는 대지가 되었다.
쿠구구구구구!
붉은 산호로 된 쇄령 존자의 몸이 무너지며, 광한계 전 대륙에 산호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강철의 산은 산호를 단단하게 했고, 어둠의 강은 산호 사이들을 흘렀으며, 거대한 혈목은 그대로 썩어 산호에게 영양을 공급했으며, 불꽃은 산호에게 온기를 공급했다.
하늘의 눈이 된 별들에게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더 이상 격할의 시선이 아니었다.
: : 나를 받들라. : :
혈음계 칠대존자 중.
광한계 태생으로 혈음계로 건너간 규천을 제하고, 혈음계에서 존자가 된 모든 존자들은 자기 자신을 잃고 혈음의 권능을 대리하는 선보나 다름없는 시세가 되었다.
아니, 선보보다도 비참한 신세이리라.
그들은 자기 자신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니까.
: : 차거(硨磲:산호와 조개)의 권능이여. : :
쇄령 존자에게서 나타난 붉은 차거들이, 광한계를 덮으며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느껴진다.
이제 곧 세계는 혈음계가 된다.
나는 괴군에게 다시 말했다.
“들리시오, 괴군?”
괴군의 의식이 돌아온다.
나는 괴군의 인생을 보고, 내가 방금 전 청문령의 환영과 함께 심마를 극복하며 얻은 나름의 깨달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죄인이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마음을 약탈하여, 기묘성채라는 악의 결정을 만들었소, 당신의 목표를 위해 수억 수조의 생령을 지옥의 고통으로 밀어 넣었소. 그렇기에 당신은 엄연한 악인(惡人)이자, 약탈자요.”
괴군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어쩐지 그의 의식은 힘이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눈앞에서 변화하는 세계를 보며 검을 들었다.
곳곳에서 심천마를 비롯한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심천마와는 다르다.
혈음의 힘에 의해, 더더욱 무시무시한 권능을 부여받은 저것들이 기묘성채를 노려보고 있었다.
쿠과과광!
혈음의 공세가 기묘성채를 강타한다.
광한의 힘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는 기묘성채를, 그대로 갈아 버리겠단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당신의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것으로 모든 것을 쌓아 올렸소. 그러니….”
나는 무시무시한 심천마 군세와 혈음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우렁차게 괴군에게 나의 깨달음을 전달했다.
“당신에게 있어, 그녀에게서 전달받은 힘만은, 그녀의 마음만은, 오롯하오!”
[그녀]를 상대하며, 기묘성채가 내 앞에서 의식을 차려 [그녀]를 피신시켰다 생각했다.기묘성채에게 내가 몰랐던 어떠한 ‘의식’이 생겼다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가 이전에는 듣지 못했을 뿐이었다.
“당신의 그녀는, 단 한 번도 당신 곁을 떠난 적조차 없어! 단 한 번도!!!”
청문령의 환영을 보며 깨달은 마음.
스승의 마음은 그 자신이 죽었더라도 제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며 참오하고, 서로를 통해 배워 온 마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그 자신과 함께한다.
그렇다면, 괴군의 그녀 역시.
그 마음만은 이천 년의 세월을 격해 괴군 안에 있었던 것이리라!
만상인연도가 기묘성심전을 통해, 괴군의 의식을 향해 내 깨달음의 ‘마음’을 전달했다.
내 마음을 전해 들은 괴군의 눈빛이 크게 떨려 왔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제야 ‘휘둘러라’라고 말했던 그때의 김영훈의 심정을 느끼며 괴군에게 소리쳤다.
“펼치시오! 이미 당신 안에 있소!!!”
* * *
괴군은 눈물을 닦았다.
느껴졌다.
기묘성심전을 통해 자신의 제자가 서은현과 그를 연결해 주고 있었으니까.
서은현의 의식을 통해 그의 마음이 물씬 전해져 왔으니까.
그는 서은현의 깨달음을 편린이나마 전해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서 수결을 맺었다.
“…누군가가 조금 더 빨리 말해 줬으면 좋았을 것을….”
괴군 조연의 입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월도입천이라 했었느냐, 이것을?”
괴군은 이천 년 전.
월하은이 갈구했던 그 경지에, 서은현의 깨달음을 전해 받으며 비로소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여지껏 자신이 대성해 왔다 믿었던 기묘성심전이 새로운 영역에 접어들었다.
파아아앗!
기묘성채가 빛나며 김연과 조연에 의해 연의 연이 발동한다.
성채의 몸채가 빛나며 허공으로 황금빛 가지를 뻗었다.
괴군의 성은 황금빛 고목이 되어 혈음의 세계를 비추었다.
그리고, 괴군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서은현의 마음을 전달하는 김연의 의식체를 쳐다보았다.
진정 기묘성심전을 대성한 괴군의 눈에 김연의 진정한 마음이 투명하게 비춰졌다.
‘제자야, 너도 아직 네 마음을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스승이라도 하기조차 부끄러우나.
어찌되었든 스승의 이름을 단 자로서.
마지막 가르침을 이 춤에 담아 알려 주겠다.
‘내 제자에게 가르치고 떠나마. 제자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면… 네 은혜에 충분한 보답이겠지. 그러니… 앞서가지만 말고, 너를 따라가는 내 제자도 돌아봐 주려무나. 서은현.’
연(然)의 마음.
연(緣)의 마음.
그리고 연(戀)의 마음.
“월도입천(越道入天).”
모두 합쳐 연심.
“연심(戀心).”
괴물의 부군이 불러낸 기묘한 과거가 현재에 풀려나고,
괴군의 의식 실이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천지사방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황금빛 고목으로 변한 기묘성채의 가지들 끝에서,
연분홍빛 실들이 흘러내리며 붉은 하늘 아래 괴군의 마음을 피워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