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57)
만개(滿開)
연분홍빛 실이 붉은 하늘 밑에서 춤춘다.
철컥철컥철컥철컥….
기묘성채의 괴뢰들이 움직인다.
괴뢰들의 인공혼이 이천 년 전 이전의 그때를 정확하게 재현해 내고, 그 인력이 시공간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극!
조연은 그때로 돌아갔다.
우우웅!
괴군은 [그녀].
월하은과 함께 그날 그때의 저녁녘으로 돌아갔다.
괴군 조연과 월하은이, 한 명은 부채를, 한 명은 단창을 잡고 서로 춤추기 시작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소름이 돋는 사실을 알아채고 입을 벌렸다.
‘…그렇군.’
아마 조연도 곧 알아차리리라.
츠아아아아!
조연이 춤추는 동안, 그의 의식 실이 기묘성채의 가지 끝에서 흘러내렸다.
연분홍빛 의식 실은 각각 우리의 의식과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의식 실이 닿자마자 나는 내 의식 속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모조리 사그라드는 걸 느꼈다.
츠아아아아
심천마와 부정적인 힘들이 증폭되며 의식을 잃었던 동료들이 괴군의 의식 실이 닿자 상태가 호전되는 게 보였다.
그들의 안에 있던 심천마들이 일거에 녹아 버린다.
괴군의 입천, 연심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황금빛 모과나무로부터 연분홍빛의 끈이 수천 갈래가 퍼져 나와 천련산을 뒤덮었다.
쿠구구구구!
천련산이 떨리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괴이한 소리가 퍼져 나와 천지사방에 울렸다.
뭔가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
그리고, 나는 기묘성심전을 운용하며 조연의 깨달음을 이해했다.
‘그렇군… 이것이, 기묘성심전 대성의 경지인가.’
기묘성심전은 기본적으로 구체 형태인 수도자들의 의식영역을 범인들과 똑같이 실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의식영역을 실과 구체의 형태를 전환해 가며, 의식영역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것도 가능하며, 괴뢰를 조종하고, 법기에 ‘회로’를 통한 ‘인공 의식’을 만들어서 제어하는 것이 기묘성심전의 골자인 것이었다.
그리고 기묘성심전은 범인들과 똑같이 실의 형태의 의식을 가지며 그 감정의 색조를 자유자재로 변환할 수 있었기에 상대의 의식에 상대의 감정인 것마냥 침투시켜 상대와 심어를 주고받을 수도 있단 공능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성한 기묘성심전을 통해, 기묘성심전의 진짜 가능성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
그것이 기묘성심전이다.
기묘성심전에 의해, 연분홍빛 끈이 우리를 이어 주기 시작했다.
나와 괴군이.
괴군과 김영훈이, 전명훈이, 오현석이, 김연이, 시호, 창호자 등의 마음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괴군의 마음과 이어지며 그의 입천, 연심의 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의념이 지닌 현상을 구현시키는 힘…!’
사람의 의념은 그 자체로는 감정의 색조에 불과하지만, 기의 계위에 내려오면 신기한 현상이나 힘이 되기도 했다.
일전 김영훈이 오기조원에 대한 깨달음을 설명해 줄 때, 노의 의념을 기운과 결합하자 강기가 끓어오르거나, 애의 의념을 기운과 결합하자 강기가 증폭되는 현상 등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물론 김영훈은 그러한 의념에 따른 현상 자체를 깊이 연구한 건 아니었기에 그에 관련된 기술이나 입천을 얻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기묘성심전을 통해, 이천 년의 세월 동안 사람의 감정을 보아 온 괴군은 그와 관련된 입천을 얻었다.
그의 입천, 연심의 능력이란 의념이 가진 현상의 가능성을 그 자리에 불러내는 것!
나는, 아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괴군을 아는 모든 이들은 괴군의 마음에 떠오른 연분홍빛의 바다를 보았다.
그것은 오롯이 하은을 위한 연심.
그리고, 그 연심이 괴군의 연심에 의해 현상으로써 나타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무한(無限)!
가장 거대하고도 위력적인 의념이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우릉, 우르르릉!
조연이 춤추는 중인 연의 연 안쪽에서 뇌성벽력이 울렸다.
연의 연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바깥에서 김연이 조율하고, 안쪽에서 조연이 힘을 끌어낸다.
그 공간의 압력이 일렁이며 혈음의 부정적인 권능을 몰아내는 것이 보였다.
우웅, 우우웅!
나는 문득 하늘 너머에서 울리는 어떠한 의지가 들리는 걸 느꼈다.
: : 어림없다. : :
쿠르릉!
커헉!
나는 피를 토했다.
음성을 들은 것만으로도 천겁을 맞은 것처럼 강력한 충격이 혼과 육을 강타했다.
: : 이미 끝났을지니. 광한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광한계는 나의 것이노라. : :
심천마들이 노래한다.
어둠이 강물처럼 흐르며 세계 곳곳에서 부정적인 힘들이 뭉쳐 괴물들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조연의 연심이, 김연의 의식체와 맞닿는다.
파아아아앗!
그와 동시에, 여지껏 새하얀 의식체를 만들어 왔던 김연의 의식체가 물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조연에 의해.
그 안쪽에 있던 색이 끌어 올려지는 것 같았다.
드드드드드!
‘아….’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째선지 모르게, 어마어마한 안도감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저 모습을 알고 있었다.
완전한 연분홍빛 의식체를 만들어 낸 김연의 전신에서 연분홍빛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15회차의 마지막에서 보았던.
규백의 광한지약을 통해 나타났던 김연의 화신체가, 연심과 하나 되며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스르르르르-
무한의 힘을 통해 연의 연을 완전하게 발동시키고, 혈음의 삿된 힘을 잠시나마 몰아냈던 기묘성채의 빛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조연의 생명력이 닳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를 불러온다는 것은….
자신의 연심을 ‘무한한 힘’으로 구현시킬지라도 부족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힘이 필요한 것.
괴군은 자신의 연심에 더불어, 모든 생명력까지 쥐어짜 냈기에 비로소 불러올 수 있던 것이 그의 과거였던 것이리라.
나는 잠시 기묘성채 위에 떠오른 괴군의 과거 속 장면을 보고 서휼에게 물었다.
“저게 끝이냐, 서휼. 네 말대로라면 괴군이 연의 연을 발동하면 사태가 좀 나아질 거라 하지 않았나.”
나는 서휼에게 질문했고, 서휼이 탁혼만천을 통해 대답했다.
아무래도 혈음의 하늘 아래에서 나와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싶진 않은 모양.
[저도 괴군의 저 선술(仙術)은 처음 봤어서 잘 모릅니다만… 한 가지는 알겠군요. 이미 그는 저것을 통해 광한의 힘을 직접적으로 불러일으켰습니다. 다만, 오히려 괴군이 불러일으킨 저 장면이 장막이 되어 그 힘을 가두는 중이지요. 한마디로… 괴군이 숨을 거두고 저 장면이 스러지면 자연히 광한의 힘이 피어날 것입니다.]서휼은 내게 경고했다.
[그리고, 제가 알아챌 정도면 혈음도 당연히 알아챘겠지요. 혈음의 광한계 침식이 8할 정도 완료되었습니다. 그가 기묘성채를 공격하기 시작할 테니, 대비하시지요.]“…알겠다.”
쿠구구구구!
세계 전체가 우리를 거부하고 있단 게 느껴졌다.
불길한 힘들이 우리를 밀어낸다.
서방에선 폭풍이, 북방에선 해일이, 동방에선 천겁의 폭우가, 남방에선 용암이 치솟아 오르며 우리를 향해 쇄도한다.
꾸우우우웅!
천지가 역전된다!
백운이 선보였던 것과 같은 술수가 천지를 역전시키며 기묘성채를 저 하늘로 떨어뜨리려 하기 시작했다.
‘8할을 장악하고 이미 성사 수준의 권능을 발휘한다.’
나는 뒤쪽을 바라보았다.
괴군의 생기가 흩어지며, 그의 과거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조연이 만들어 낸 연심의 실들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조연의 연심이 뿜어내던 사랑의 힘이 사그라들자, 다시금 부정적이고 삿된 힘들이 기묘성채 내부로 범람하기 시작했다.
척!
나는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는 원립을 상대할 때를 제하면 딱히 저주를 쓰면서 수결이나 진언을 왼 적이 없었다.
저주는 이미 내 영혼 깊숙이 박혀 있었고, 난 이제 생각만 하면 바로 상대를 저주할 수 있을 정도의 저주술사가 되었으니까.
저주를 쓰려 해도, 내 저주의 힘을 다 끌어내기도 전에 보통 상대와의 전투가 끝났기에 저주의 힘을 ‘완전히’ 쓸 일은 거의 없기도 했고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고통과 절규로 이뤄진 저주의 모든 가능성을 끌어내야 했다.
척, 척, 척, 척!
흉악한 저주가 피어오르며 기묘성채 주변으로 뒤룩거리는 눈알들로 된 장막이 생겨났다.
눈알들은 때론 얼굴이 되어서 장막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어림없었다.
[멸계귀주. 반전!]이미 그 자체로 혈음계의 심천마들이나 다름없게 된 저주의 괴물들이, 일제히 반전되기 시작했다.
괴군의 마음은 모두에게 이어졌다.
사람의 마음이 사람과 이어져, 우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통받아 온 자의 삶일지언정 지금만큼은 축복!
파아아아앗!
눈부신 순백의 빛이 천만 송이의 꽃봉우리를 터트리며 삿된 힘을 몰아냈다.
끝이 아니다.
나는 우공이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후웅!
우공이산의 초식 하나하나에 축문을 담고, 파사현정을 담고, 이 부정적이고 삿된 혈음의 세계 그 자체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쿠웅!
내 검격이 혈음의 이치(理致) 그 자체와 부딪히는 게 느껴진다.
상대의 힘을 내 몸에 받아들여 무한히 강해지는 초식.
축복의 꽃이 우공이산과 함께 끊임없이 강해지며 빛이 밝아지고 있었다.
나는 검무를 추며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괴군의 생기가 희미해지고, 괴군이 최후를 맡는 기묘성채의 최상층을 향해 김연이 본체를 일으켜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마지막을 봐줄 수 없다. 그러니… 괴군의 마지막은, 네게 부탁한다. 김연….’
* * *
휘이이이이-
연의 연이 끝났다.
괴군 조연은 눈앞의 하은을 바라보았다.
하은은 발그레 웃고 있었다.
딱딱한 괴뢰의 몸이 아니었다.
이천 년 전 그와 함께했던… 분명한 ‘그녀’의 몸이었다.
괴군 조연은 뿌예지는 주변 풍경을 보며 웃었다.
“단 한 번일지라도, 이때로 돌아가고 싶었소.”
스스스스스-
점차 그가 바라 왔던 추억의 광경은 사그라들고, 조연은 현실로 돌아왔다.
차가운 바람이 느껴진다.
하늘이 빛나는 게 느껴진다.
이곳은 그녀와 처음으로 정인이 되었던 서약 마을이 아니라, 기묘성채일 뿐이었다.
따스한 하은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딱딱한 [그녀]일 뿐이었다.
괴군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기묘성채 최상층에 올라온 김연을 바라보았다.
“왔느냐.”
“…예.”
“우리 사이엔 할 말이 참 많지.”
조연은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김연을 바라보며 웃었다.
“네게 참 못 할 짓을 많이 했다. 그래 놓고도 스승 행세를 하며, 네게 내 숙원을 맡겨 놓기나 했지. 나는… 네게 정말로 빚이 많은 사람이다.”
김연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침묵했다.
조연의 말을 끝까지 듣고자 하는 모양.
“나를 용서해 달라고 하진 않겠다. 얼마든지 원망해도 좋고, 함부로 너를 납치해서 간혹 개조하기도 한 것에 대해서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런 모자란 스승일지언정, 나는 네 스승.”
그는 흐릿해져 가는 연의 연 속 풍경에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스승으로서, 아마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제대로 된 선물이자, 가르침이다.”
조연이 가리킨 곳에는, 한 송이의 꽃이 허공에 피어 있었다.
그것은 모과꽃이었다.
그것은 연의 연 안쪽에서 월하은의 비익창이 만들어 낸 기화(氣花)이기도 했고, 동시에 조연이 이천 년 동안 광증에 시달리면서도 놓지 않았던 그의 목표였다.
그것은 조연의 바람이었다.
“받아 가거라.”
김연은, 사라져 가는 연의 연 중앙에 있는 모과꽃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조연을 스쳐 가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싫었어요.”
“그러냐.”
“지금도 당신에게 어느 정도 미운 마음이 있습니다. 저를 마음대로 납치해서 마음대로 기묘성심전을 머리에 각인시키고, 마음대로 회로 같은 것도 제 몸에 새겼으니까요. 하지만….”
김연은 눈을 감았다.
그녀 역시 서은현, 서휼, 오혜서와 함께 조연의 과거를 보았다.
조연의 과거의 끝에는, 결국 김연이 원하던 해답이 있었다.
조연이 보여 준 처음이자 마지막 연의 연.
그리고 그의 연심은 분명, 그녀가 바라 왔던 해답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미울지언정, 존경하겠습니다. 싫을지언정 경외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연은 조연을 지나쳐 연의 연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있는 자리는 연의 연이 완전히 흩어져, 이제 완전히 기묘성채로 돌아와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던 악사괴뢰들은 일제히 멈춰 있었다.
주인의 생명이 사그라들자, 기묘성채 전부가 정지해 버렸다.
철컥….
조연은 마지막 힘을 짜내, 기묘성심전으로 [그녀]를 조작해, 조연의 맞은편에 앉게 하였다.
조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저물도를 꺼냈다.
서은현은, 조연의 마음 안에는 하은의 마음 역시 깃들어 있다고 전해 주었다.
‘사람에게 마음을 준 행위로 인해, 결국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깨달음… 훌륭하구나….’
지금의 자신이 있기 위해, 무수한 이들이 조연에게 마음을 주어 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하은의 마음도 반드시 있었으리라.
그러므로, 조연의 안에는 하은이 깃들어 있다 한 것이었으리라.
‘이미 사실 함께 있다.’
너무나 간단해 보이지만, 이천 년간 누구도 괴군에게 해 주지 않았던 말이었다.
‘이리도 간단히 마음이 편해졌던 것을… 나는 이천 년 동안 무슨 짓을 벌여 왔던 것인가.’
그는 눈을 감으며, 저물도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마… 지옥이란 곳이 있다면, 나는 그 가장 밑바닥. 가장 뜨겁고도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 떨어지겠지.”
조연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는 수천 년간 무수한 생명체를 잡아 강제로 괴뢰로 개조해 온 마두이자 악인.
미치광이었다.
그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미 지옥은 예정된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겠다.
조연의 품 안에서 나온 것은 백홍주와, 술잔 두 잔이었다.
“…내가… 말했지…?”
그는 점차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육신을 어렵사리 움직이며, 겨우겨우 말을 내뱉었다.
이제 그는 죽는다.
아마 지옥 밑바닥에 끌려가겠지만, 받아들였다.
죽는 것도 괜찮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음 번엔… 둘이 같이… 조금 더 제대로, 식을 치르자고….”
쪼르륵….
조연은 그의 앞에 한 잔.
[그녀]의 앞에 한 잔.백홍주를 따랐다.
술병을 놓은 조연은, [그녀]의 앞에 놓인 백홍주를 들어 마셨다.
“상계 선사들의… 혼인식… 방법이라오….”
아쉬운 것은….
정말 하은과 함께 진짜 식을 올리진 못했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녀] 앞에 있는 백홍주를 들이킨 것을 마지막으로, 조연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생명력도 안 남았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점차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서, 눈앞의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연의 연을 펼치느라 동력원이 전부 소모된 탓에 움직일 수 없으리라.‘죄 많은 생이었습니다. 지옥 밑바닥에 떨어질 것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천지신명 앞에 고하나니….’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 마지막까지 [그녀]를 눈에 담았다.
‘그대를 만난 것에, 그대를 사랑했던 것에, 단 한 점의 후회도 없나이다….’
긱-
그리고.
기긱-
[그녀]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아무런 동력원도 없을 터인, 괴뢰에 불과한 [그녀]의 몸이 움직인다.
심천마들의 공격에 뜯겨 나가고, 만신창이나 다름없어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을 괴뢰의 몸이 억지로.
억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연은 입을 벌렸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기긱, 기기기긱, 기기기긱!
[그녀] 안쪽의 도르래와 톱니바퀴들이 돌아간다.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있지도 않은 동력을 끌어내는지 모를 그 괴뢰는 마침내 조연이 따라 준 백홍주를 잡았다.
기기기긱-
‘아아… 계속… 정말로….’
조연은 울었다.
‘정말로 거기 계셨던 거구려.’
늘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서 조종당하던 [그녀]는 김연도 조연도 입력하지 않은 동작으로, 멋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술잔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간 [그녀]는 자신의 입에 술을 부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일월의 아래에서 가장 훌륭한 연극을 펼쳐 낸 두 인형은 마침내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괴군의 얼굴 한쪽에 돋아난 문양이, 연분홍빛으로 빛나며 그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가 꽃잎이 되어 흩날렸다.
* * *
김연은 입술을 악물었다.
가슴이 아팠다.
조연의 마지막 감정이, 그와 연결된 그녀에게 절절히 전해져 왔다.
츠츠츠츠츠츳!
그녀는 모과꽃을 자신의 가슴 안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그녀가 계속 찾아왔던 마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랑이란 기쁨이다.
사랑이란 애증이다.
사랑이란 슬픔이며, 즐거움이고, 다시 미움과도 같으며 곧 욕망이다.
사랑이 곧 모든 것이란 의미가 아니었다.
그 반대로, 모든 것이 곧 사랑이란 의미였다.
조연이 마지막에 느꼈던 반가움.
그리움. 안도감. 해방감. 소유욕. 집착.
그 모든 것이 사랑이다.
“수선(修仙)이란 무엇인가. 누군가가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지.”
김연은 조연의 마음을 느끼며, 어느새 자신이 처음 보는 곳에 도착해 있단 걸 인지했다.
그곳은 도화원(桃花源)이었다.
연분홍빛 복사꽃들이 온 천지에 만발해 있는 아름다운 곳.
그곳에서, 커다란 복사꽃 나무에 가려져 있는 누군가가 말했다.
“수선이란 곧 참오. 자신을 관조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라 알려 주더군. 어느 정도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내 대답은 조금 달랐단다.”
김연은 그 존재를 보며 어쩐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차오름과 아름다움, 동시에 외경(畏敬)을 느꼈다.
“수선이란 곧 나아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아지는 것이 곧 수선이지. 우리는 모두 언제나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간다. 언젠가는 동경으로, 언젠가는 감사함으로, 언젠가는 연모로, 언젠가는 집착으로, 또 언젠가는 동정으로….”
김연은 흠칫했다.
저 존재가 읊은 감정의 순서는 모두 김연이 서은현에게 느껴 왔던 감정의 순서였다.
“형태나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야. 어제보다 조금 더 고뇌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고민하고, 지난날보다 계속해서 조금씩 나아가며 더더욱 온전한 형태를 궁구하는 것이 결국… 수선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자책하지 말거라.”
그녀는 마치 마음이 꿰뚫린 것만 같은 느낌에 한 방울 눈물을 흘렸다.
숨겨 오던 마음이 들켰음에도, 부끄럽다기보단 해방감이 들었다.
“너는 이제껏 나아왔을 뿐이란다. 오욕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맑은 마음을 품고 이 자리에 왔다면 그것은 분명 네가 지난날보다 성장해 왔단 것이 아니겠느냐. 천지심이 하나지만 표출되는 법이 다를 뿐이듯이… 네 마음은 사실 처음부터 변한 적이 없다. 그저… 표출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란다.”
그 말에, 마침내 김연은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사랑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서은현을 바라봐 왔다.
하지만….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사실 오혜서와 아무것도 다를 것 없는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리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표출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언제나 변함없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복사꽃 나무 뒤의 존재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을 절대 잊지 말거라. 나는 종명좌주(終命座主) 차거광한천왕(硨磲廣寒天王).”
김연은 문득, 그 존재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만 같은, 햇살처럼 따스한 기분을 느꼈다.
“내 혼은 ■■■■■지언정, 나의 육(肉)은 언제나 너를 지지할 것이니라.”
김연은 거대한 손이 자신을 밀어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그럼에도 딱히 배척감은 들지 않았고 포근한 기분만이 그녀를 감싸는 것 같았다.
“진선이 주는 것을 조심해라. 그들은 네게 불행을 제외한 어떤 것도 선물하지 못한단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김연은 자신이 다시 기묘성채 최상층으로 돌아왔단 걸 인지했다.
‘모과꽃….’
그녀는 주변에서 흩날리는 연분홍빛 꽃잎을 보며 미소 지었다.
생각해 보면, 저 꽃은 정말로 그녀와 인연이 많은 꽃이었다.
서은현을 확실히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도 결국 그날, 모과꽃 떨어지는 나무 앞에서부터가 아니었던가.
스륵-
김연은 자세를 잡았다.
그것은 월하은의 비익창 같기도, 조연의 부채춤 같기도, 서은현이 가르쳐 준 비익무 같기도 했다.
김연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몇 개의 동작을 연달아 펼치며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서은현이 가르쳐 준 내공심법, 연리지심이 그녀의 체내에서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작과 동작이 이어지며, 원을 그린다.
그리고 그 원의 끝에서 기운이 미약하게 증폭된다.
종래에는 ‘이론상’ 무한동력이 되도록 설계된 무공.
물론 서은현은 그 이론이 실현되려면 김연이 수십억 번 이상 비익무를 펼쳐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김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파아아아아앗!
김연의 몸에서 수천, 수만, 수억 가닥의 실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실들은 기묘성채에 남아 있는 수억 수조기의 괴뢰들에 연결되었다.
그리고, 괴뢰들이 일제히 김연의 의지에 의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아아앗!
괴뢰들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괴뢰들이 김연과 똑같이 움직였다.
마치 모두가 함께 같이 춤을 추는 듯한 모습.
기묘성채 안쪽에서 수조 기의 괴뢰들이 일제히 비익(比翼)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두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연결한다.
원이 그려진다.
수조 기의 괴뢰들의 체내에 그려진 원이, 김연과 연결되어 그녀의 체내의 원과 공명하였다.
그 공명은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기묘성채 전체의 연분홍빛 기운이 김연에게 몰려들었다.
마침내, 김연은 비익무를 멈추며 자신의 체내에 자리잡은 무지막지한 회전을 광한 천원으로 제어하며,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다.
그리고 그 외에는 이름 붙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서은현을 동정하지도, 감사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본래 이름이 없으니까.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불성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듯, 사랑도 문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니 그는 앞으로 더 이상 서은현을 사랑한다 입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가장 간단하고 명료한 표현인 ‘좋아할’ 뿐이었다.
사랑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음을 알았고, 자신의 연정은 어째서 무색이었는가를 깨달은 김연은 자신의 체내에서 휘몰아치는 광한의 힘을 하늘로 내뿜었다.
“월도입천(越道入天).”
파아아아앗!
연의 연이 재발동된다.
겨울 동안, 만발하지 못한 모과꽃을 대신해 고목에 묶어 두었던 조연의 연분홍빛 마음 대신.
봄이 와 다시 깨어난 모과나무의 모과꽃이 기묘성채 위로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만개화(滿開花)!”
조연의 마음을 받아, 광한을 통해 펼쳐 내며, 김연은 자신의 마음을 비로소 인지하고 말없이 웃었다.
작가의 말:
모과꽃의 꽃말은 평범, 정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조숙(早熟)이기도 합니다.
조연의 가문이 어째서 조(早)씨였는지는 오늘을 위해서 그리 설정했습니다.
작품 내적으로 보면 이는 ‘조연(早緣)의 성숙’이기도 하며, ‘미숙한 연의 성숙’이라는 말장난으로도 볼 수 있겠군요.
작품 외적으로 보면 단순히 ‘이제부터 조연들이 성숙한다’라고도 볼 수 있고, ‘조숙’이라는 모과꽃의 꽃말을 가져다 붙인 거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서은현과 김연은 둘 다 상징화가 모과꽃입니다.
서은현은 ‘평범과 정열’ 쪽이라면 김연은 ‘조숙’ 쪽이지요.
같은 꽃이지만 다른 상징어를 가진 둘을 위한 에피이자, 동시에 조연을 위한 에피소드였습니다.
드디어 조연 에피소드의 막바지가 다가왔고,
저는 이번 에피소드 이후 주 7일이 아닌 주 6일로 전환하려 합니다.
모두 모두 지금까지 회귀수선전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저 역시 독자님들을 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독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