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60)
열쇠(3)
‘이건 또 무슨….’
나는 황당함을 느끼며 머리를 짚었다.
동시에 나는 나무 끝에서 내 몸을 관조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기는 읽히지 않았고 체내의 소세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군. 지난번 봉래도에서의 ‘꿈의 세계’와 비슷한 건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세계는 우리의 무의식 속 동화들을 참조한 것 정도가 아닌 아예 우리의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같단 점이었다.
‘물론 다 똑같진 않다.’
나는 내가 올라온 나무의 잎사귀들을 어루만졌다.
‘잎사귀의 개수가 달라.’
등선향에서의 아침도, 지금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상당히 많이 해 보았었다.
그런 만큼 내 의식영역으로 이 인근은 전부 쓸어 보기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서는 가장 높은 나무의 나뭇가지와 나뭇잎 숫자, 이 당시의 상태가 또렷이 기억났다.
‘냄새도 미묘하게 다르다.’
감각이 예민해지기 이전엔 몰랐다.
그러나 몸의 감각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초기 등선향에서 맡았던 냄새는 시호의 배설물 냄새가 은은히 섞인 숲속 내음.
그러나….
‘시호의 배설물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다른 짐승의 내음이 섞여 있어… 즉 지금의 등선향의 주인은 시호가 아니야.’
겉보기엔 완벽히 똑같지만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 다른 것들이 많았다.
‘등선향 약초들만 해도….’
나는 약초 내음들을 맡았다.
‘황주삼이나 마비초 등… 이전 등선향에서 알아냈던 풀들은 전부 사라졌다.’
오히려 있는 것은….
‘…산딸기?’
나는 당황해서 저 아래에 있는 산딸기 덤불을 노려보았다.
산딸기.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 열매고, 지구에서는 시골에 가서 산 하나 골라잡고 들어가 보면 종종 볼 수도 있는 과실이다.
그러나 내가 산딸기를 보며 당황한 이유.
그것은… 산딸기는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풀이란 점이었다.
‘지구가 아닌 이 세계에서 산딸기 같은 게 있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비슷한 종이 있을지언정 완전히 똑같은 종이 있을 순 없다.
하물며 지구에서 온 김영훈이나 나만 해도 이곳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곳 사람들은 사랑니가 조금 더 작게 여럿이 나고 혀가 코에 닿는다.
너무 사소하게 다른 점이었지만, 우리와 이 세계 사람들의 유전자에 미세한 차이가 있단 의미였다.
타닷!
나는 나무 아래로 뛰어내려 산딸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산딸기를 보았다.
나는 산딸기를 하나 따서 입에 넣어 보고, 산딸기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똑같다….’
지구에서 어렸을 적 먹었던 산딸기와 맛, 향기, 모습, 색깔, 형태… 모든 것이 같았다.
‘이상하군….’
나는 눈을 찌푸리며 산딸기를 입에 하나 더 넣었다.
‘그러고 보니 토끼풀이나 상수리나무 등… 지구의 풀도 보인다.’
그렇다면 설마 여긴 지구인 걸까.
내가 고민할 때였다.
사박, 사박….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저… 서… 대리님…? 아니, 아니… 선배님…?”
서란이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질문했다.
“‘어떤’ 의미의 선배인가.”
서란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얼굴을 찌푸렸다.
서휼을 닮은 그 고운 얼굴에 금이 갔다.
“으윽… 머리가… 그러니까… 사실… 기억은 잘 안 납니다. 다만… 선배님께서… 존자셨다는 것이 기억납니다.”
“…일단 알겠다.”
아무래도 서란은 완전하진 않다만 기억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것도 모습을 보아하니 서서히 기억을 찾아가는 모양.
‘이번에도 서란과 내가 가장 빨리 기억을 찾는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순간 정말 지구에 돌아온 건가 싶었다만… 역시 아니었군. 서란이라는 존재가 기억을 찾고 있다면… 여긴 정말로 ‘꿈의 세계’ 같은 곳이란 거겠지.’
일종의 환상진법이다.
그것도 우리의 기억을 토대로 한.
“…그나저나 서란….”
나는 서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차림을 훑어보며 물었다.
“왜 네가 그 옷을 입고 있는 거냐.”
“아… 이건… 윽….”
서란은 머리를 다시 부여잡으며 말했다.
“기억이 혼재되어서 조금 헷갈립니다만… 평소 입던 옷을 집에서 입고 온 것입니다.”
“으음… 그래 일단 네가 이 세상에서는 ‘강민희 역’인가 보다 하겠다만….”
나는 서란에게서 느껴지는 향기에 당황하며 물었다.
“혹시 여기 오기 전에 태극진뢰신… 익히기 시작했던 거냐?”
“으음….”
서란의 얼굴이 갑자기 시뻘게지더니 내 눈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으윽…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
나는 서란의 자존감을 존중해 주기 위해 그녀에게 그 이상의 질문을 하진 않았다.
“그래. 일단 지금의 넌 기억을 찾는 것에 더 집중하고, 일단 나를 좀 도와라.”
“예, 알겠습니다.”
나는 서란과 함께 아직 기절해 있는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나는 김영훈, 전명훈, 오현석 셋을 들쳐 업었고, 서란은 김연을 업은 채로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익숙한 등선향의 동굴에 도착했다.
‘이 동굴도 그 자리에 있군….’
그러나 역시 이상하다.
동굴은 그 자리에 있었으되….
‘뭔가 좀… 변화가 심한데.’
동굴의 입구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커져 있었고, 안쪽에는 석순과 종유석으로 아예 숲이 이뤄져 있을 정도였다.
나는 서란과 함께 동료들을 적당한 곳에 눕혀 놓고, 서란을 시켜 적당한 검불과 나뭇가지를 모아 오게 시켰다.
부웅!
화르륵!
나는 나뭇가지를 휘둘러 마찰로 불을 일으켰고, 적당한 모닥불을 피운 후 근처에서 내가 아는 열매들을 따 왔다.
재미있는 점은, 이 근방의 나무나 열매들은 대부분 지구의 것이었고, 나는 등선향 식물들에 비하면 지구의 식물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풍족했던 초회차에 비하면 지금은 산딸기 정도밖에 구할 수 없었다.
“넌 뭔가 아는 거 없나.”
“앗… 저는 배고플 땐 상어나 돌고래, 청새치 같은 걸 통째로 잡아서 삼켰기 때문에 육지 동물은 잘 모릅니다.”
“흠… 식물들 같은 것도?”
“식물은… 가끔 별미가 필요할 땐 산호지대를 통째로 삼킨 적은 있습니다만….”
“됐다.”
지금의 서란은 이 상황에서 아마 큰 도움은 안 될 터였다.
나는 적당히 굵은 나뭇가지를 빠르게 손질해 목검 형태로 만든 후, 옆에 두고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정련했다.
“흐음….”
얼마간 호흡을 집중해 보았을까….
주륵
코에서 코피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단전 어림에 미약한 따스함이 느껴지는 걸 인지했다.
‘그렇군. 기(氣) 자체는 존재한다.’
다만 내가 방금 한 호흡은 평범한 호흡이 아니었다.
호흡에 의념을 담으며, 필사적으로 뇌를 과부하시켜 인근의 기운을 잔뜩 끌어모은 것이었다.
아마 광한계에서 이 짓을 했으면 인근의 천지영기가 싹 빨려와 인근 육만 리가 죽음의 땅이 되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행위였다.
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행위조차, 내 뇌기 과부하되어 코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했음에도 단전에는 범부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미약한 진기를 티끌만치 얻었을 뿐이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이 속도로 수선을 한다면… 축기기에 오르기 위해서만 백 년을 뇌에 과부하를 주고 수련해야겠군! 제길… 이럴 순 없다.’
난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가 존재는 한다만 절망적일 정도로 적은 세계야. 이상하기도 하지. 이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숲에 이 정도로 기가 미약하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거늘… 아예 세계의 규칙 자체가 뭔가 다른 건가.’
나는 서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의 의견을 물었다.
“네 생각엔 어떻나, 서란?”
“음….”
서란은 하얀 얼굴을 찌푸리더니 얼마간 고민했다.
그리고 정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일단… 이 세계가 저희 기억을 토대로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일단 이 세계의 인물들을 만나 봐야 함이 옳습니다. 지난번 육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인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알 가능성이 높고 또 그들을 만나다 보면 이 세계를 빠져나갈 힌트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힌트?”
“아… 기억 속에서 혼재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이 세계에서의 제가 배운 걸까요?”
“아마 그렇겠지….”
나는 ‘힌트’가 무슨 단어였는지를 잠시 생각하다가 겨우 기억해 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가 없어 만상인연도와의 연결이 끊겼다. 다만 만상인연도는 내 심상에 들어왔기에 이전처럼 완전히 치매는 안 걸린다만 이전처럼 원활하게 기억을 떠올리긴 힘들겠군.’
“일단 알았다. 네 말이 맞아. 우선 이 세계의 다른 지성체들과 한번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본 후에 방향을 잡아야겠지. 다만 문제는… 이곳이 등선향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면 굉장히 넓을 거란 건데, 지성체를 만나기 어려울 수도….”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휘이이이이!
타앗!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내 뒤쪽에 누군가가 내려앉았다.
나는 소름 끼치는 기운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 기운은…!’
‘그것’은 샴쌍둥이처럼 두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붉은 적포를 입은 그것의 머리는 하나는 남성, 하나는 여성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것의 피부에는 곳곳에 붉은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축기기!?’
이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위험도는 축기기 초기 수사에 육박했다.
그것이 남자의 얼굴로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 봐라… 내 숲에 함부로 들어와서 함부로 불을 피우고… 거기다가 내 숲의 열매를 따 먹고 내 숲의 나무를 함부로 잘라 그런 장난감을 만들었다니….”
느껴진다.
눈앞의 존재에게서 나는 냄새는, 이 숲 전반에 나는 짐승의 냄새와 똑같았다.
뱀 냄새.
나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이 존재를 경계하며 예를 취했다.
‘아마 그 머리 두 개 달린 뱀이 구현된 존재일 터….’
어찌 된 일인지 이 세계는 축기기 수준만 된다면 화형할 수 있는 모양.
‘지금 상황을 보아, 이 뱀이 그 당시 시호와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나는 뱀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숲의 주인께서 보시기에 그리 무례하였는 줄을 몰랐습니다. 저희는 비천하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니 너무 노여워 마소서… 그저 온기를 빌려 몸을 데우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하하, 그렇군. 예를 아는 인간이로다.”
뱀은 남자 얼굴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리고 뱀이 갑자기 말했다.
“예를 안다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겠지… 일단 벌로 네놈 팔을 하나 잘라 바쳐라. 그리고 내 숲에서 지내고 싶다면… 어디 보자, 네놈 둘의 얼굴이 반반하니 너희가 나를 만족시켜 보거라.”
뱀은 음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와 서란을 가리켰다.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송구하옵니다만 그건 아니 되겠습니다.”
예전에는 시호 앞에서 절대적인 무력의 차이가 났고, 또 어차피 팔을 뜯겨 봤자 다시 회복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대충 내어 줘도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된다.
‘창호자가 올지 안 올지도 확실치 않다.’
비슷해 보여도 모든 것이 다른 세계다.
절대 함부로 경거망동할 순 없었다.
뱀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나는 그 시점에서 뱀의 정확한 경지를 대충 알아냈다.
‘축기기 초기가 아니었어. 맙소사… 연기기 후기였던 건가? 그런데 축기기 초기 수준 압박을 뿜어내? 그렇군… 뱀의 체내에 영기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닌 수십 개의 술식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그 술식 하나하나가 연동되며 무지막지한 힘의 증폭률을 이뤄 축기기 수준 존재로 느껴지는 거야.’
아무래도 천지영기가 절망적일 정도로 적은 대신, 술법을 다루는 방식이 극도로 진화한 세상인 듯싶었다.
뱀은 꿈틀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여자 얼굴이 나를 보며 말했다.
“호, 오호호… 그래. 네가 입이 굳어 실수한 모양이구나. 이번 무례는 양쪽 팔이나 양쪽 다리 중 한 곳을 뽑는 것으로 봐주고… 다시 말하도록 하마. 너희 둘이 내게 봉사하겠다면 너희가 이 숲에 머무르는 걸….”
“미안하지만.”
나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서란을 비롯해, 김영훈, 전명훈, 오현석, 김연 등….
전부 임자 있는 사람들이다.
“이쪽은 전부 임자 있는 사람들이라서 바람은 안 될 것 같군. 봉사 말고 다른 걸 좀 제안해 봐라. 도울 게 있으면 돕겠다.”
“…이….”
뱀의 두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것이 이를 악물며 노갈성을 터트렸다.
“이 대륙의 삼대 지배자 중 한 분! 답천사막의 지배자, 대시호 님 휘하의 애첩인 내 자비를 거절하다니, 전부 찢어 죽여도 죄가 되지 않겠구나!”
촤르르륵!
녀석의 전신에서 시뻘건 기운이 잔뜩 뿜어졌고, 나는 코웃음을 치며 목검을 잡아 들었다.
관조한다.
내 몸 안의 기운은 진짜 수계 기준 고작 삼류.
아니, 삼류조차 되지 못하는, 일반인이 그냥 건강 체조를 몇 달 열심히 하면 생기는 정도의 기운이었다.
고작 이 정도의 기운으로 연기기 후기.
사실상의 축기기 요수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나는 눈앞에서 본체로 변하기 시작하는 뱀을 보며 검을 움직였다.
퍼벙!
순식간에 뱀의 머리 하나가 터져 나갔다.
뱀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느껴졌다.
“어, 어떻게… 범부 따위가…!”
나는 목검에 묻은 피를 혀로 핥으며 눈을 빛냈다.
‘전신에 호신강기를 두른 것과 같은 몸. 다만 진짜 호신강기는 아니야. 아니 설령 진짜 호신강기라도 그 안에 결과 결 사이를 잘 때려 맞춘다면 벨 수 있겠는데….’
할짝-
검신에서 혀를 떼며, 나는 이가 드러나게 웃었다.
“내가 아무리 힘없는 범부가 됐어도 너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러니 괜히 힘 빼지 말고 덤벼라.”
등선향에 돌아왔다.
뭔가 많이 바뀌었고, 아직도 당혹스러운 게 많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일단 눈앞의 놈을 잡으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나는 쌍두사를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