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62)
뱀을 찾을 수 없는 곳(2)
다음 날이 밝았다.
‘결국 끝까지 그 목소리의 주인은 안 나타났던가.’
지난밤 홀연히 나와 대화를 나눴던 존재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다.
‘차라리 지금으로선 다행일지도. 내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존재다. 어쩌면… 성반, 개열기 이상을 넘어 진선경의 존재일지도.’
일단 그 존재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
‘지금 그 존재에 대해 떠올려 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앞으로의 일에 더 집중해 보자.’
얼마 후 날이 완전히 밝자 동료들이 모두 일어났다.
“이, 이게 뭐야! 왜 내 옷이 전부 찢어져 있어!?”
전명훈이 기겁하며 몸을 가릴 것을 찾기 시작했고, 오현석이 겉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그리고 옷이 없어진 건 어제 몸을 과부하시켜 움직이다 옷이 찢어진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내 옷은 김영훈이 등산복 겉옷을 벗어 주었다.
“일단 지금 여기가 어딘지 확인하는 것부터 해 보지. 다들 폰 꺼내서 신호 잡히는지부터 확인해 보게.”
김영훈의 지시에 우리는 각자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법기 비슷한 기물을 꺼내 현 위치를 확인했다.
“음, 영훈 형님. 신호가 안 잡힙니다만….”
오현석이 두꺼운 손가락으로 통신기구를 잡고 하늘에 휘둘러 보았으나 소용은 없었다.
김연이나 전명훈, 나나 서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잠깐 그것보다….”
오현석은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혜서는 어디 갔지? 지금 우리만 여기에 달랑 떨어진 건가? 그것보다 우리 차는….”
나와 서란을 제외한 동료들은 꽤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이제 슬슬 적응하게 해 줘야지.’
나는 뒷짐을 져서 손을 숨긴 후, 작게 손가락을 튕겼다.
츠츠츠츠츠-
그리고, 어제저녁 나와 한바탕 겨뤘던 적사.
‘쌍두’라는 이름을 가진 뱀이 본체로 동굴 앞에 기어 왔다.
하루 자고 나니, 요수 특유의 재생력으로 터져 버린 목 한쪽은 조금 회복되어 있었다.
“인간 놈들. 내 숲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그 죄를 알렸다!”
동료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지금은 충격 요법이 좀 필요한 시점이었다.
“배, 뱀이 말을!?”
“우리, 꿈을 꾸는 건가?”
김영훈이 덜덜 떨며 뱀을 향해 손가락을 디밀었고, 뱀이 내 눈치를 보았다.
[해도 되겠습니까?]쌍두의 전음이 귓가에 울렸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들에게 충격 요법을 전해 주기 위해, 지난밤 쌍두 녀석에게 미리 말해 준 계획이었다.
쌍두는 내 눈빛에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이 무엄한 놈! 감히 숲의 주인을 몰라보고 삿대질이라니, 용서할 수가 없구나!”
쩌억!
뱀은 순식간에 김영훈에게 달려들어, 김영훈을 한입에 꿀꺽 삼켜 버렸다.
나는 뱀을 노려보며, 우리 귀에는 안 들리지만 뱀의 귀에는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소화시키면 죽인다.”
쌍두는 몸을 부르르 떨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우리를 노려보았다.
오현석은 멍하니 뱀을 쳐다보다 자기 뺨을 때리기 시작했고, 전명훈과 김연은 각각 서란과 내 뒤쪽으로 와서 숨었다.
“자아, 이건 내게 삿대질을 한 벌이고, 이제 내 숲에서 소란을 피운 벌을 묻겠다!”
쩌억!
쌍두가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서 새카만 독연이 뿜어졌다.
찌이이잉!
독연을 들이쉬자 격통이 전신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커, 커헉! 꺼어어억!”
“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악! 아, 아아악!”
“으읏….”
오현석과 전명훈은 자기 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고, 김연은 코피를 줄줄 터트리며 바닥을 굴렀으며 서란은 그래도 기억이 돌아옴에 따라 정신력도 그럭저럭 돌아오는 중인지 식은땀을 흘리며 통증을 참는 중이었다.
나는 동료들이 이성을 잃어버린 걸 보고 혀를 찼다.
“아니 잠깐. 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면 뭘 못 하잖나. 네가 적당히 이 세계는 다른 세계라고 말을 해 줘야 하는 시점인데…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의 격통이면… 쯧!”
쌍두는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인간들은 단숨에 미치기 직전까지 갈 정도의 격통을 주는 독인데, 어찌 선배님은 멀쩡하신….”
“이 뱀 새끼가… 알고 보니 나까지 중독시키면 승산이 있다 생각하고 일부러 강한 독을 내뿜은 거냐?”
“아, 아니, 어르신. 오해이십니다. 저는 그저….”
나는 일단 쌍두를 두들겨 패서 다시 정신교육을 해 줬다.
“일단 동료들을 회복시켜라. 그리고 한 번만 더 수작 부리면 그땐 정말 네놈 목을 잘라 버릴 테니 그리 알고.”
“예, 예에 어르신….”
쌍두는 백연을 뿜어 동료들에게 쐬어 주었다.
동료들은 백연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전명훈은 고통이 너무 격심했던 건지 그 자리에서 구토를 쏟아부었다.
나는 동료들 사이로 들어가, 같이 고통받고 있던 척을 하며 쌍두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허, 허흠… 그래 이제 다들 정신을 차렸겠지? 내가 원한다면 너희를 전부 잡아먹거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난 동료들의 눈치를 보다, 적당히 쌍두의 앞으로 나아갔다.
“뱀 어르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하오나… 삼키신 저희 영훈 형님만은 다시 돌려주십시오….”
내가 뱀 앞에서 김영훈을 돌려 달라 청하고, 쌍두는 우리의 우의에 감탄하여 적당히 김영훈을 돌려준 후, 우리 우의에 감탄하여 적당히 우리를 등선향 바깥에 데려다준다는 이야기였다.
철퍽!
쌍두는 나와 미리 약속했던 대로 김영훈을 토해 내고, 감동받은 척하며 자신의 등에 타라고 했다.
“너희 우의가 각별하니, 너희는 특별히 내가 직접 비승림 바깥으로 데려다주겠다.”
“감사합니다, 뱀 어르신!”
나는 쌍두의 위액과 침으로 범벅이 된 김영훈을 부축해 뱀의 등 뒤에 바로 올라탔다.
동료들이 혼란스러워하자, 나는 쌍두의 비늘을 쿡 찔렀다.
“네놈들, 내 후의를 거절할 셈이냐! 역시 모조리 잡아먹어야….”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뱀님!”
전명훈이 부리나케 달려온 것을 시작으로, 오현석과 김연, 서란 역시 뱀의 등에 올라탔다.
탁!
내가 쌍두의 목덜미를 때리자, 쌍두는 부리나케 출발했다.
슈르르륵!
쌍두는 과연 빠르게 등선향을 질주했다.
동료들은 너무나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모두 입을 다물고 쌍두의 등에 매달리기만 할 뿐이었다.
얼마나 쌍두의 등을 타고 등선향을 질주했을까.
파아앗!
마침내 우리는 등선향의 끝자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드, 드디어 숲이 끝났….”
전명훈이 신이 나서 입을 열었을 때였다.
“어, 어어….”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나 역시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이 녀석이 계속 비승도(島)가 아니라 비승림(林)으로 불렀나 했다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아니었다.
등선향을 둘러싼 법술결계도 아니었고,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발밑에 있는 기이한 풍경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풍경.
그래….
‘끝없이 이어진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랬다.
이 시점에서, 천공도인 등선향, 비승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10만 년의 세월이 흘러, 점차 부유력이 약해지다 마침내 답천사막에 내려앉은 등선향, 비승림뿐이 이 자리에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전명훈과 다른 동료들은 그것만으로도 놀랐는지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 사막…? 우리나라에 사막이 있었나?”
“마, 말도 안 돼… 우린 그냥 차 타다가….”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은 동료들에게 말해 주었다.
“여러분, 이제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이 뱀 어르신에서부터 눈치채신 분도 있으셨겠지만… 이 세계는 우리가 살던 그 지구가 아닙니다. 온갖 괴력난신이 난무하는 새로운 세계일 터… 앞으로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기존 지구의 상식은 버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말을 하며 쌍두의 뒷막을 살짝 때렸다.
“흐흠, 그래 인간 놈들. 내 너희를 위해 이 세계에 대해 설명을 좀 해 주도록 하지.”
쌍두는 사막 위를 미끄러지며, 동료들에게 이 세계의 기초적인 상식, 역사, 용어 등을 가르쳐 주었다.
* * *
몇 달이 지났다.
우리는 쌍두가 주는 그의 정기를 받아먹으며 사막을 건넜고, 마침내 답천사막의 동쪽.
만리국(萬里國)에 도착하였다.
답천사막은 기본적으로 시호가 지배하고 있고, 북방 초원은 창천개벽문이, 서방 삼국에는 청문령이 있다길래 일부러 쌍두를 통해 동방 부족국가의 연합체인 만리국에 오도록 한 것이었다.
‘오현석의 경우, 자칫하면 다시 창화에게 잡혀가 창천개벽문식으로 수련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창천개벽문의 특성상, 옆에 있는 우리까지 불똥이 튀어서 오행체련을 ‘당할’ 수도 있단 것이었다.
‘나나 오현석은 몰라도 동료들은 창천개벽문에 잡혀가면 틀림없이 미쳐 버린다.’
그렇다고 몸에 진기도 없고 변변찮은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시호를 만나러 갈 순 없었다.
지난 봉래도에서 시호가 서란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드러냈던 걸 보면, 이번에는 결단기 수준 실력에 이성까지 확실히 있는 걸 보니 분명 서란을 자기 처첩으로 삼으려 할 게 분명했다.
내 수준에선 그걸 막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청문령이 있는 서방 삼국도 갈 수 없었다.
‘막리세가 같은 가문이 몇만 년 후인 지금도 없다고 할 수 없겠지. 거기다가 지금 이 세계는 천지영기가 더더욱 부족하니, 피와 골육을 빨아 영기를 보충하는 그런 마도세가가 있을 가능성도 더 높다.’
그렇기에 굳이 동방인 만리국에 온 것이었다.
만리국은 예로부터 사람을 잡아먹는 흉포한 요수가 많아 인력이 귀했기 때문에, 함부로 같은 사람의 골육을 빨아먹는 마공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막리세가 같은 마도가문은 조직력을 갖췄기 때문에 지금의 나로선 상대할 수 없지만… 사람 잡아먹는 요수들 정도야 적당한 무기만 있으면 보이는 족족 갈아 버릴 수 있다.’
쌍두는 나와 일행을 만리국 국경에 내려놓고, 우리에게 인사를 한 후 허겁지겁 내게서 도망쳤다.
나는 지난 몇 달간 사막을 건너며 이 기이한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동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제 지구는 잊으셔야 합니다. 이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고, 여러분은 앞으로 이 세계의 말을 배우고, 이 세계의 법칙에 익숙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믿기지도 않는 상황이지만… 믿어야 합니다.”
“허허….”
김영훈은 어이없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다른 동료들 역시 앞길이 막막한 듯 저 멀리 보이는 만리국의 부족 중 한 곳을 쳐다보았다.
‘예전에 동방 군주 중 한 명인 만리민랍? 말리민립? 뭐시기에게 동방 언어를 배우긴 했다만… 수만 년이 지난 시점이라 통할지는 모르겠군.’
원립과 싸우기 전 동방 군주에게 배웠던 동방 언어를 기억하며, 나는 동료들과 함께 저 멀리 보이는 부족을 향해 걸어갔다.
* * *
10년이 지났다.
콰르르릉!
검은 낫이 바위산같이 생긴 요수의 목덜미를 정확히 긋고 내 손으로 돌아왔다.
“우와아아아!!!”
“서 장군! 서 장군! 서 장군!”
“대장군 서! 그는 신이야!”
나는 요수의 몸을 향해 낫을 휘둘러, 요수의 요단을 꺼낸 후, 요단 속의 요기를 흡수했다.
촤르륵….
백 개의 마을을 박살 내고, 마을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먹어 치운 흑각수의 요기가 내 체내로 들어와, 내 의지에 따라 단전에 쌓였다.
꽈드득….
나는 체내에 흐르는 진기를 살폈다.
‘동방에 온 지 10년.’
나는 그간 수많은 동방의 악귀와 요마들을 쳐 죽이고, 동방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요단과 내단의 기운을 흡수해 온 결과, 현재 내 내공은 1갑자에 해당할 정도로 늘어 있었다.
“대장군 서! 저희 면린족의 족장께서 ‘물건’이 완성되었다 하십니다!”
“그러냐? 나중에 가져와라.”
“예! 모레까지 반드시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나는 요수를 처치한 후, 내 움막에 도착했다.
지난 10년.
나는 동방의 무공들을 흡수하고, 동방무림의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동방제일인인 것이었다.
스륵….
나는 내 몸에 두른 붕대들을 풀어 헤쳤다.
그런 후, 조금 힘을 주자 붕대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막 곳곳으로 흘러 들어가 곳곳에 숨겨진 무기들을 움켜쥐었다.
기묘성심전의 괴뢰조작과, 동방의 무공을 합친 천잠조귀공이라는 무공의 응용이었다.
쉬릭, 쉬리릭-
나는 움막 안쪽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쉬리리릭-
붕대들이 내 움직임에 따라 펄럭거리며, 그 끝에 잡힌 온갖 무구들이 같이 움직인다.
창, 채찍, 비도, 낫, 대낫, 사슬, 바늘 등….
온갖 기형병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일순간.
파앗!
내 춤이 극한에 도달하자, 기형병기들의 날과 끝이 있는 부분들이 일제히 한 곳을 향해 집중되었다.
피잇!
그리고 다음 순간.
기형병기들이 움직이며, 순식간에 방 안의 촛불을 꺼 버렸다.
완벽한 힘의 응용이었다.
꾸드득….
비록 촛불을 꺼 버린 정도에 불과했지만, 내가 힘을 압축시켜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방사하며 터트렸다면 능히 작은 언덕 하나를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
“무형검을 대체하는 데에 십 년 정도 걸린 셈인가.”
붕대를 이용해 수십 개의 기형병기를 일사불란하게 다뤄, 무한(無限)의 궤적을 손에 넣는 무공.
천잠조귀공은 내가 지난 10년간, 기(氣)가 없고 혼의 계위가 감응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무형검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무공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꽤 만족스럽게 구현되어, 본래 무형검의 8할 정도의 위력을 구현하는 게 가능했다.
‘이제 면린족의 족장에게 맡긴 ‘물건’만 찾으면, 완전히 결단기 수준의 실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해.’
꾸드득….
나는 내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1갑자 공력을 느끼며 눈을 빛냈다.
‘10년… 수도자의 시간으로는 찰나지만, 범인으로 지내기엔 긴 시간이었지.’
길었다.
동방제일인이 되어, 결단기급 무력을 찾을 정도의 시간.
이젠… 다시 청문령을 찾으러 갈 시간이었다.
“여보, 안에 있어요?”
내가 청문령에 대해 다짐할 때, 김연이 움막 안쪽으로 머리를 쏙 디밀었다.
“…둘이 있을 땐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냥 서은현 씨 정도로 부르라고.”
“헤헤, 하지만 공식적으로 저희 둘은 결혼한 사이인걸요.”
“….”
동방국가를 선택해 온 내 실수의 산물이었다.
동방국가에서는 일정 이상의 전사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고환을 자르는 전통이 있단다.
강한 실력자가 자기 실력을 믿고 오만하게 강간이나 성범죄 등을 저지르고 다닐까 봐 그렇다나 뭐라나….
고환 적출의 고통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사회적 시선에 못 이겨 김연과 위장 결혼을 하기로 했다.
김연은 좋아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조금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왕 결혼을 할 거면 이렇게 엉겹결에 하는 게 아니라… 됐다. 지금 생각해 봤자 의미 없지.’
나는 한숨을 쉬며 잡생각을 없애고, 김연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 서란 언니가… 또 발작을 시작했어요.”
“후우….”
나는 김연과 함께 빠르게 움막에서 나와 서란의 움막으로 향했다.
서란의 움막 안쪽에는 김영훈과 전명훈이 미리 들어가 있었다.
“아, 왔냐 서은현.”
“오, 은현아. 빨리, 빨리!”
지난 몇 년간 무공을 배운 김영훈과 전명훈이 서란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자해의 흔적이 가득했다.
“으, 으으… 끄으으으윽…!!!”
서란은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나는 서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통에 손을 얹었다.
그런 후 그녀와 천천히 눈을 마주쳤다.
그런 후, 그녀의 귓가에 누구도 듣지 못하게 전음을 날렸다.
[지금부터 널 죽이겠다.]“허, 허억…!”
그리고 마침내 서란이 정신을 차렸다.
허공분쇄의 경지에 이른 내 살기를 정신에 쏟아부어, 목숨의 경각에 달한 느낌을 체현시켜 강제로 정신을 각성시키는 수법이었다.
“아… 선배님이셨군요.”
서란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힘없이 말했다.
“또 꿈을 꿨습니다. 이상한 기억이 혼재되는 와중… 제가 모르던 기억 속에서, 제 [어머니]가 나왔습니다.”
서란은 자신의 몸을 부여잡고 이를 딱딱 떨었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저를 불렀어요. 지금도, 지금도 [어머니]의 환청이 저를….”
“그만, 괜찮다.”
난 서란에게 살기를 쏘아 주어 다시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여기 네 어머니 같은 존재는 없어. 괜찮아. 안심해라.”
서란은 최근, 어찌 된 일인지 꿈속에서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신을 부르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을 꾸고 있자면, 예전에 잃었던 ‘무시무시한 것’을 깨달을 것 같은 느낌에 너무나도 공포스럽다고 했다.
“제가… 두려운 건, 이 꿈 너머에서 찾게 되는 게 저 자신을 갉아먹는 것입니다. 이 꿈 너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면… 어쩐지 지금까지의 ‘서란’은 사라져 버리고,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러냐.”
우리는 잠시 서란을 진정시켜 준 후, 그녀를 완전히 진정시킨 후 움막 바깥으로 나왔다.
“서란의 상태가… 많이 심각한가 보군.”
“쯧… 심란하네.”
김영훈과 전명훈은 각자 한숨을 쉬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하루빨리 서방으로 가, 수도자들과 접속해 그들에게 서란의 기억을 일시적으로 봉인해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쯧… 서란 상태를 봐서 빨리 가면 좋을 것 같다만, 언제쯤 ‘준비’가 완료되는 게냐?”
김영훈이 안타까운 눈으로 뒤쪽의 서란을 쳐다보며 말했다.
“면린족의 ‘물건’을 손에 넣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물건’을 손에 넣으면 그 대가로 10년은 더 이 땅에서 일해야 한다 하지 않았느….”
그때였다.
스르륵!
어둠 속에서, 온몸을 검은 붕대로 감은 거구의 사내가 나타났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리고 전명훈, 서은현!”
“다녀오셨군요, 현석 형님. 성과는요?”
거구의 사내, 오현석은 지난 10년간 동방의 잠입 기술과 암살 기술을 익혀, 암살자로 거듭났다.
의외로 그는 존재감을 지우는 비술에 적성이 높아, 그는 순식간에 최고의 암살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나가면 월수궁무록을 가르쳐 봐야겠어.’
얼마간 우리와 회포를 푼 오현석은 깜빡 잊었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앗차, 깜빡할 뻔했군. 네가 부탁한 물건이다, 서은현!”
오현석은 등 뒤에서 한 자루의 검을 내게 건넸다.
사막의 영롱한 보검(寶劍)!
“면린족의 ‘물건’이군요!”
“그래. 몰래 훔치느라 꽤 애먹었지.”
암살 기술을 익힌 오현석에겐, 면린족의 보검을 훔쳐 달라 부탁했었다.
이 보검은 동방무림 최고의 강도를 지닌 검으로, 어마무시한 성능을 지닌 보검이었다.
나는 보검을 들며 씩 웃었다.
“됐다.”
이것으로, 천잠조귀술로 무형검의 위력을 10할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모두 짐 챙기십시오, 오늘 동방을 뜨겠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나머지는, 청문령을 만나는 것뿐!
그렇게, 우리는 그날 동방 부족국가 최고의 보검을 훔쳐, 서방 삼국을 향해 야반도주하였다.
넉 달이 지났다.
* * *
“여기가… 벽라국인가.”
우리는 벽라국, 천색성에 도착했다.
청문령과의 재회가 곧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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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지난 주 너무 오래 쉰 감도 있고 하여… 본래 수요일은 쉬는 주 6일제지만 이번주까지만 수요일에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