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74)
998회차의 첫날
슈르륵….
수미검무가 끝났다.
동시에 검무에 깃들어 있던 검극천군의 의지가 사그라들었다.
: : 언젠가 그대, 나의 것이 되리. : :
“….”
나는 검극천군의 말을 들으며 침을 삼켰다.
이제껏 진선들의 관심을 받은 건 한두 번 있었다.
[가장 오래된 분]이 회귀를 격해 나를 쫓아오기도 했고, 태산의 주인이 나를 죽이려 강림하기도 했다.동시에 예전에는 기억은 잘 안 났지만 선수라는 존재와 만난 적도 있었고, 봉명주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었다.
거기에 천벌의 주인, 시간의 천존이나 정려, 영승과 만나기도 했었다.
‘음. 한두 번이 아니긴 하군.’
여하튼.
그들에게 관심이나 분노 등을 받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검극천군과 같이 나를 ‘탐하는’ 존재는 만난 적이 없었다.
‘진선이… 그것도 빛의 세력 중 하나라고 추측되는 존재가, 나를 욕망한다니….’
소름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흉액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뒤쪽을 바라보았다.
쿠구구구구!
우주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난 것 같았다.
유릿장에 커다란 돌이 떨어져서 구멍이 뚫린 모양새였다.
‘이런 미친….’
우주의 복원력에 의해 공간은 다시 메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힘을 날렸던 검극천군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잠깐, 그나저나….”
나는 우주에 뚫린 구멍을 보며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
구멍 너머는 고요했다.
혈음의 비명이 들린 이후 어떤 반응이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구멍을 보았다.
1초.
2초.
3초….
“…하.”
나는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 지으며, 거의 천 회차에 가깝게 반복되었던 삶과 죽음 속에서 극도의 기쁨을 느끼며 양팔을 벌렸다.
“나는… 자유다.”
비로소 빠져나왔다.
“나는, 자유다!!”
우주공간에는 소리가 없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별하늘과 어둠.
나는 그 성천(星天) 속에서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
내가 웃자, 내 주변에서 천지영기가 뿜어져 나오며 들끓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영언 속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마침내!
[벗어났다!!!]나는 완전히 혈음의 기운이 잦아든 걸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쿠릉, 쿠르르릉!
[드디어!!!]쩌어엉!
내 화신체가 터지며, 화신체 안쪽에 있던 본체가 드러났다.
압축되어 있던 본체가 우주 공간에 나타났다.
존자(尊者)들의 본체, 본원성(本源星)이라고 불리는 것.
본원성
무색검산도해대성(無色劍山蹈海大星)
나의 합도영역은, 그렇게 우주의 별이 되어 우주공간에서 별빛을 뿜게 되었다.
별의 표면부터 시작하여, 성핵(星核)부터 모두 파려(玻瓈:무색 수정)로 이뤄진 별.
곳곳에 뒤집힌 검으로 뒤덮혀 있는 검산이 가득한 곳이, 나의 세계이자 나 자신이 되었다.
쿠구구구!
그와 동시에 나는 성맥을 통해 본원성 안쪽에 어마어마한 영기가 들이치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그냥 본원성 곳곳에 천지영기가 채워지는 듯 했다.
그러나 곧이어 천지영기가 채워지고, 내 별의 안쪽으로 영맥이 들어차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색검산 곳곳으로 마치 혈관처럼 영맥이 들어찼다.
동시에 별 안쪽에서 천지영기가 순환하기 시작했다.
행성 곳곳에서 천지영기가 순환하며, 천기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별 안쪽에서 비가 내리기도 했고, 영롱한 광채들이 모여 정령 같은 것을 만들기도 했다.
동시에 내 별 안쪽에서 천지영기들이 폭발하며, 물질들이 배합되고, 이 별 안쪽에서 생명체 비슷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미생물들일 뿐이었고, 균(菌) 정도에 불과했으나… 아마 수억 년이 흐르면 제대로 된 지성체들도 탄생할 수 있을 듯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별 안쪽에서 천지영기들의 순환이 극점에 다른 걸 눈치챘다.
[아….]쿠구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별 안쪽에서 천지영기가 대자연의 이치에 맞춰 순환하며 ‘생산’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별의 성맥을 통해 영기를 빨아 먹기만 하던 별이, 이제는 다른 별을 향해 천지영기를 전송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성맥과 정말로 완전히 이어졌음을 실감했다.
‘아… 그렇구나.’
연기기부터 합체기까지는 천지영기를 소모하기만 한다.
대다수의 수도자는 일생 동안 주변의 천지영기를 빨아들여 자신의 몸에 가두고, 법술로 사용하며 끝없이 자원을 ‘소모’한다.
사축기, 합체기에 이르러도 자신이 먹어 치우고, 가두는 천지영기의 양이 더더욱 늘어나며, 보존 기간이 늘어날 뿐.
‘소모’한다는 진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쇄성기에 이른 후부터는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자신의 체내에 진정한 대자연이 생겨나게 되고, 그 대자연 안쪽의 순환에 따라 천지영기가 ‘생산’되는 것이었다.
‘개열기는 별을 만들고, 성반기는 별자리를 정리하고, 쇄성기는 별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뿜어냈었었지.’
나는 우주 창세 초기를 떠올리며 쇄성기에 대해 이해했다.
쇄성기는 자신의 체내의 별에서 천지영기를 순환시키며, 별을 만들 수 있는 물질, 혹은 천지영기를 ‘생산’해 내는 생산자의 위치인 것이었다.
우주의 생산자 서열.
그것이 바로 쇄성기인 것이다.
우우우웅!
나는 천지영기를 생산해 내며, 내 별의 인력을 우주에 더더욱 정확히 각인시켰다.
우우웅!
거대한 시공간인 우주 그 자체와 교감하며, 나는 인력을 통해 내가 만든 ‘첫 번째 별’에 이치를 각인했다.
쇄성기의 수선 구결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계의(稽疑)의 구결이었다.
우(雨), 제(霽), 몽(蒙), 역(驛), 극(克).
그리고 정(貞), 회(悔).
쏴아아아아-
방금 만들어진 첫 번째 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땅에 닿자마자 수정이 되어 나의 별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별은 쇄성기 초기를 상징하는 별.
우천대성(雨天大星)이 되었다.
‘이제부터, 쇄성기의 수련법을 따라 수행해야겠지.’
쇄성기 수행법은 간단하면서도 무지막지했다.
존자들의 수선법은 이러했다.
자신이 만든 별 위쪽에, 자신 별의 원소를 이용하여 화신체를 만든다.
그리고 그 화신체로 하여금 별의 힘을 총동원하여 다시금 합체기 대원만으로 만든다.
그런 후, 합체기 대원만에서 다시금 화신체를 폭발시켜 두 번째 별을 만든다.
그렇게 총 다섯 개의 별을 만들어 우, 제, 몽, 역, 극의 이치를 각인시킨 후.
다섯 개의 위성(衛星)을 적당한 행성 주변으로 끌고 가 행성의 주변을 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염없이 행성을 돌다, 행성 주변으로 자신의 위성이 일렬로 정렬되면 행성의 힘을 빌려 정괘(貞卦: 64괘의 내괘(內卦)를 뜻함)를 완성하고,
정괘가 완성되면 행성 주변을 회전하며 우주의 성맥과 천지영기를 본격적으로 끌어들여 회괘(悔卦:64괘의 외괘(外卦)를 뜻함)를 완성한다.
그리하여 총 일곱 번의 성신(星身) 의식을 통해 쇄성기 대원만에 달하는 것이, 바로 쇄성기의 수련법이었다.
‘쇄성기부터는 수명이 천만 년 단위로 증가한다.’
물론 그렇다고 천만 년 후 멀쩡히 만든 별이 폭발하거나, 흩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천만 년 후에도 경지를 올리지 못하면 내 영혼이 그대로 우주 곳곳으로 흩어져 죽어 버리고, 존자가 남긴 위성들만이 남아 우주를 떠돈다.
존자들은 흔히들 이런 현상을 ‘천역에 잡아먹힌다’라고 표현했다.
[후우….]나는 내 체내에 인간형 화신체로 현신(現身)하여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제대로 된 대기도 없고, 온 세상이 삐죽삐죽한 유리의 검해로 이뤄진 별.
미생물들이 얼마간 존재하긴 했지만 딱 그 정도고, 지성체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별 위쪽에서 숨을 쉬며 천지영기를 느꼈다.
일반적인 존자들은 위성 크기의 별에다, 연결된 성맥도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일반적인 존자들의 별에는 천지영기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런 존자들은 대부분 존자가 되었음에도 중경계에서 성사의 도움을 받아 중경계의 천지영기로 화신체를 키워 수행을 반복한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단 걸 알았다.
‘성맥도 잔뜩 연결된 데에다, 체급 자체도 행성 수준이라서 천지영기가 중경계에 비해 조금 달릴 뿐이다.’
이 정도라면 성사의 도움 따윈 없어도 순식간에 경지를 올릴 수 있을 터였다.
거기에다 선술 계의는 이미 수련하고 온 만큼, 선각후통의 효과도 있기에 타 존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빨리 수련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만 년 뒤 일월천역이 종말을 맞이하니… 의미는 없겠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나는 별 위쪽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순식간에 별 위쪽.
유리로 이뤄진 어떠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이 별은 나 자신이었기에, 별 위에서라면 화신체로 생각한 곳으로 바로 갈 수 있었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나는 내 별 안쪽에 숨겨 뒀었던 동료들을 마주했다.
시간상으로만 따지면 아주 잠시만 못 본 것이었다만, 굉장히 오래간만에 본 느낌이었다.
“아, 은현아. 무슨 일인 거냐. 그 이상한 세계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갑자기 이상한 세상으로 이동해 왔지 뭐냐. 그리고… 이 녀석들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김영훈이 나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고, 나는 동료들을 보았다.
홍범과 전명훈은 탈진한 상태였고, 김연은 두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고 있었으며, 오현석은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에서 웃고 있었다.
“일단 전명훈과 홍범은 탈진한 것 외엔 멀쩡합니다. 그리고 현석 형님은….”
“내 딸과 잠시 헤어지느라, 조금 울었다.”
아무래도 꿈속 세상의 아이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 역시 결국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아, 너는 괜찮니?”
그녀는 두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연아?”
그녀는 자신의 입을 뻐끔거리더니, 그녀의 입을 가리켰다.
김영훈이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어찌 된 일인진 모르겠다만… 목소리를 잃은 것 같다.”
“예!?”
나는 화들짝 놀라서 그녀에게 심어를 쐈다.
-김연,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리고….
심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김연?”
나는 당황해서 그녀에게 다가갔고, 김연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위]를 가리켰다.
“…설마 …[위]의 존재들이 관련된 거냐?”
끄덕 끄덕
김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물었다.
“혹시 수화 같은 건 할 수 있니?”
김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수화를 모른다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우리 중 수화를 배운 사람도 없었다.
“으음… 혹시 종이가 있는 분 계십니까?”
“여깄다.”
오현석은 자신의 영역에서 종이를 꺼내 줬고, 나는 그녀 앞에 붓을 내려놓고 글을 쓰게 해 보았다.
김연은 조금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더니, 붓을 들고 종이에 뭔가를 썼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며 눈을 찌푸렸다.
‘뭐지?’
그녀가 쓴 건 우리가 아는 글자가 아닌, 괴상한 낙서였다.
마치 세 살짜리 아기가 붓을 잡고 마구 난잡하게 낙서를 한 것만 같은 모습.
그러나 김연은 ‘무슨 뜻인지 읽히느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김연 기준으론 ‘글자’를 쓴 것이지만 표현된 바가 완전히 다른 것 같았다.
“그럼, 혹시 그림 같은 건 그릴 수 있어?”
김연은 다시 한번 종이에 ‘그림’을 그려 주었다.
다행히도 ‘그림’은 꽤 정상적으로 그려졌다.
그림 속에서 김연은 커다란 새 같은 것과 만나 대화를 하고 있었고, 다음 장면에서 그 새가 김연의 혀를 뽑았다.
“…그래. 알겠어.”
아무래도 김연은 어떤 진선에게 언령(言靈) 자체를 봉인당한 것 같았다.
‘진선과 유난히 많이 엮이는군.’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김연 너머에서 머리를 동여 잡고 있는 서란을 보았다.
서란은 자신의 머리를 거머쥔 채 덜덜 떨고 있었고, 시호는 그의 옆에서 걱정스러운 듯 서란을 부축하고 있었다.
“서란. 너는 무슨 일이지?”
그는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저도…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왠지 머릿속에서 어떤 여자가 떠오릅니다. 어떤, 어떤….”
“괜찮다.”
우웅!
나는 서란의 의식을 주변의 천지영기와 동화시킨 후, 천지영기 자체를 안정화시키며 잠시 그의 의식을 강제로 안정시켰다.
동료들은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자 화들짝 놀란 느낌이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일단, 말해 둘 게 있습니다. 저는 방금… 그 꿈의 세계에서 나오며, 쇄성기로 승급했습니다.”
“허! 역시….”
창호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 동료들 역시 흠칫 놀란 것 같았다.
난 동료들에게 현 상황과 장소를 소개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갑자기 떨어진 이 별이, 네 몸이라는 거냐?”
“그렇습니다.”
“허어… 어마어마하군.”
김영훈이 혀를 내둘렀고, 오현석과 서란 역시 굉장히 놀란 눈빛이었다.
나는 현 상황을 정리해서 알려 주었고, 그러던 중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나저나… 이 상황. 왠지 첫날과 비슷한 거 같군요.”
“음? 확실히 그렇군.”
나는 동굴 바깥의 하늘을 보았다.
아직은 대기가 완성되지 않아 우주의 밤하늘이 그대로 드러나는 하늘.
동굴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우리.
갑자기 떨어진 신비로운 세상.
이건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 떨어진 첫날의 광경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 그랬었지.’
많은 일이 있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오늘은 998회차의 첫날이었다.
아직 회귀한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따악!
나는 등선향에 떨어진 첫날 느낌을 내 주기 위해 손가락을 튕겨 모닥불을 피워 주었다.
유리로 된 동굴 안쪽에 칠채색의 빛을 내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앞으로, 강민희를 구할 겁니다.”
“흐음?”
나는 말을 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우주. 일월천역은 일만 년 후 멸망합니다. 그리고, 저희 수도자들에게 있어서 만 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요. 그러니, 앞으로 강민희를 찾고 그녀와 함께… 타 천역으로 도망치든, 종말 속에서도 함께 살아남을 방도를 찾든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며, 나는 별하늘을 바라보았다.
혈음에게도 일단은 벗어났다.
그가 내게 부여한 운명 역시, 검극천군 덕분에 어찌어찌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다시 한번 회귀하면 어찌 될진 모르지만.’
어쩌면 다음 생에는 검극천군의 도움을 못 받을 수 있었다.
‘아니, 어지간하면 안 받는 게 낫지.’
솔직히 이번에 그 존재에게 도움을 받은 건,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다음 생에는 아예 도움을 안 받는 게 좋았다.
물론 도움을 안 받으면 혈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생의 제 1 목표는, 죽지 않는 거다.’
나는 이번 생의 목표를 몇 개 정했다.
첫 번째 목표는 일단 ‘생존’.
두 번째 목표는… 강민희 탐색 및, 구출이었다.
세 번째 목표는 종말이 코앞이니, 일단 뇌성해로 가서 양수진이 도적질해 간 중경계의 비보들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략 세 개 정도의 목표를 정했을 때였다.
기우뚱-
“…어?”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엎어졌다.
“으, 은현아!”
“음!”
“서, 선배님?”
김영훈, 김연, 서란이 차례대로 내게 달려왔다.
화신체에 이상이 생긴 건가 싶어 의식을 별 쪽으로 다시 돌리려 했으나, 이내 심각한 문제가 생겼단 걸 깨달았다.
울컥, 울컥….
화신체에서부터 검은 물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이, 이건….’
나는 그 물의 정체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 죽음!?’
그것은 농축되다 못해, 아예 액화되어 버린 ‘사기(死氣)’였다.
‘아….’
그동안 생각해 오긴 했었다.
이렇게 수백 번이나 죽어 버리면, 갑자기 저승으로 끌려가 영세영겁 박제되진 않을까.
하지만 아직까진 명각으로 느끼기에, 저승 쪽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었기에 ‘아직까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끄, 끌려간다.’
나는 내 정신이 무궁한 잿빛의 세계를 향해 강제로 끌려간다는 걸 인지하고 식겁했다.
‘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혈음의 아가리에서 빠져나왔는데!!! 어떻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죽음의 힘이 내 정신을 뒤덮고 점차 침잠시키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제발! 제발!!!’
나는 의식이 끊겨 가며, 저 아득한 어둠속에서 깊고도 거대한 존재들이 내게 손짓하는 환영을 보았다.
‘안… 돼….’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린 홍범이 서란을 향해 뭐라고 소리쳤고, 서란이 섭명함을 꺼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 *
‘…여기는, 어디지?’
잿빛이다.
그러나 동시에 잿빛이 아니다.
‘…?’
나는 문득 의문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궁전?’
주변은 궁전이었다.
섭명함과 비슷한 재질로 보이는 기둥이 검은 궁전을 떠받치고 있었고, 나는 잿빛 양탄자처럼 보이는 것의 위쪽에 앉아 있었다.
“…어?”
그리고, 나는 뒤쪽에 있는 ‘서란’을 보며 의아해했다.
내 뒤쪽에는 무슨 일인지 서란 역시 앉아 있었고, 그는 어딘가를 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 아이가 섭명함을 이용해, 당신의 의식이 완전히 빛의 영역을 떠나기 전 이곳으로 불러왔습니다.”
나는 문득 저 궁전 깊숙한 곳 옥좌에 앉아 있는 존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존재는 한 명의 여인이었다.
“환영합니다. 서 존자.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했다만 이리 빨리 만날 거라곤 예상치 못했는데. 아쉬우면서도 다행이군요.”
나는 눈앞의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끝없는 기력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귀하께서는… 누구시며, 이곳은 대체 어디입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명귀계, 성사전 안쪽의 아공간. 그리고 저는 명귀계의 성사 직을 맡고 있는 성사 유오라 하옵니다.”
따악!
그녀가 손을 튕기자, 나와 서란의 앞쪽에 작은 상과 찻잔, 찻주전자가 나타났다.
“차나 마시며 잠시 얘기나 나누시지요. 예비 천왕(天王)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