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76)
그녀(2)
옛날 아주 먼 옛날.
흑요라는 이름의 존재가 이 땅에 떨어졌다.
그 존재는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아무런 맛도 이해할 수 없었고, 아무런 즐거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체적 반응에 따라 먹을 것을 먹고, 졸릴 때 자고, 발정이 날 때 교미하면, 그때에만 조금 흥이 돋을 뿐.
그 외엔 어느 것도 흑요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 순간인지는 몰라도, 흑요는 본인의 영혼 자체가 결여된 존재라는 걸 느꼈다.
그렇기에 그는 그 결여된 부분을 메우고자 싶어 했다.
그리고, 그는 그 결여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선 수선(修仙)을 통해 영격 자체를 높여 가는 수밖에 없단 걸 깨달았다.
그는 수선을 시작했다.
흑요는 동물을 잡아먹었다.
처음에는 가축을 잡아먹었지만, 이후에는 들짐승과 날짐승,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사람을 잡아먹었다.
다음에는 귀신을 잡아먹고, 또 다음에는 정령들을 잡아먹었다.
요괴를 잡아먹고, 산과 들, 바다를 잡아먹어 강해진 흑요는 마침내 해와 달과 별과 빛마저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흑요는 그 시점에서 깨달았다.
아무리 강해져도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결여된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단 것을.
수선의 극점에 이르렀음에도 그 고갈된 부분은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흑요는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수선을 통해 영혼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도 전에, 그의 존재가 너무나 커져 버렸다는 것을.
흉터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몸을 재생시킨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는 것을.
가진 마음보다 먹어 치운 힘이 너무 커졌기에 그 힘에 마음이 눌려 버려 더 이상 회복되지 않는단 걸 말이었다.
그렇기에 흑요는 결정했다.
자신의 모든 권능을 버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그렇게 흑요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올 때 얻었던 능력을 사용했다.
흑요의 능력이란 바로 환생(還生).
저승의 제약조차 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바로바로 환생해 버리는 권능이 바로 그가 이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능력이었다.
그리고 흑요는 환생을 통해 모든 권능을 버리고, 평범한 인간의 아기로 환생했다.
그리고, 흑요는 자신의 능력으로 환생하며 제약을 걸었다.
환생할 미래의 자기 자신이, ‘고통받게끔’ 말이었다.
그는 미래의 자신이 고행(苦行)을 통하여, 진정한 마음을 깨달으며 최강의 힘을 얻을 수 있게 안배하였다.
흑요는 맹세하였다.
‘나는 777번의 생(生) 동안, 평생을 오직 물구나무만 서서 무결(無缺)을 상징하는 진언(眞言)을 욀 것이다.’
그는 그렇게 환생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음 생에서 여인의 몸속에 잉태되자마자 스스로의 양쪽 다리를 불구로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다리로 발을 디딜 수 없게 태어나, 물구나무를 서서 걸어 다니며 평생을 무결진언(無缺眞言)을 외웠다.
사람들은 흑요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가엾은 녀석이라고도 불렀고, 불길한 읊조림을 왼다며 흑요를 모욕하고, 매달아 죽이려는 이들도 있었다.
첫 번째 환생 속에서 흑요는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죽었다.
두 번째 환생에서도 그는 다시 팔로만 물구나무를 서서 진언을 외웠다.
그렇게 777번의 생이 지나갔다.
777번의 생애 동안, 평생을 물구나무서서 무결진언을 외워 댄 흑요는 신중신(神中神)이라고 불릴 만한 무지막지한 권능을 얻었다.
온 우주에 흑요를 대적할 존재가 없었고, 수레바퀴를 만든 두 신을 제하면 그를 앞에 두고 벌벌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흑요는 생각했다.
아직도 자신의 결여된 마음을 채우지 못했노라고.
그래서 흑요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명의 신.
륜(輪)의 신과 축(軸)의 신을 찾아가 물었다.
도대체 어찌해야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찾을 수 있느냐고.
륜의 신은 말했다.
자신의 앞에서 자살하여, 오랜 세월 안식을 취하라고. 본인의 권역 안쪽에서 영세영겁에 가까울 세월 동안 안식을 취하며 지친 영혼을 달래라고.
축의 신은 말했다.
삼천대천세계에서 가장 귀하고 값어치 있는 것을 찾아 자신의 앞에 가져다주면 그 방법을 알려 주겠노라고.
그는 축의 신의 말을 따라 세상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찾아다녀도 그는 도저히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흑요는 생각했다.
‘나의 몸과 권능은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흉기가 되었으니, 나의 몸을 잘라 그에게 가져다주자. 나의 하반신을 잘라 축의 신에게 가져다주고, 나는 다시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다니자.’
그는 한 작은 세계에 도달해, 자신의 하반신을 깎아 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 자신의 하반신을 잘라 내고, 강물에 씻어 내 맑게 보관한 다음 다시금 본인의 하반신을 발라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어느덧, 흑요는 마침내 스스로의 하반신을 거의 다 발라내었다.
그리고, 흑요가 하반신의 마지막 살점을 발라내며 고통과 신음을 흘리던 순간.
흑요는 강가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고통스러워하는 흑요에게 치료제를 주고, 우유죽을 한 그릇 건네주었다.
소녀가 건네준 우유죽을 얼떨결에 퍼먹은 흑요는 벼락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777번의 생 동안 처음으로 느낀 ‘맛’이라는 것에 저도 모르게 오열하며 우유죽에 머리를 파묻었다.
게걸스럽게 우유죽을 핥아 먹은 흑요는 소녀에게 청하였다.
제발 이 우유죽과 같은 걸 한 접시만 더 달라고.
소녀는 흔쾌히 접시를 주었으며, 흑요는 그 우유죽을 먹고 처음으로 만족을 느꼈고, 또한 ‘감사함’을 느꼈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은혜를 갚기 위해 물구나무를 선 채로 소녀를 쫓아가 따라다니며 그녀를 평생토록 축복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하반신이 사라진 괴물이 물구나무를 선 채로 소녀를 쫓아다니는 것을 보고 모두가 소녀를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소녀는 그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마음씨가 고왔던 소녀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흑요를 쫓아 버리지 않고, 오히려 포대기를 가져와 물구나무선 흑요를 자신의 등에 메고 다녔다.
그날부터 흑요는 소녀와 함께 다니게 되었다.
흑요는 아주 오랜만에 땅에 가까이 붙어 다니면서도, 물구나무를 서지 않고 똑바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소녀와 함께 다니며 세상의 무수한 아름다움과 귀한 것들을 다시 새로이 느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그는 소녀와 함께 잠에서 일어나며, 마침내 축의 신이 말한, ‘세상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상 절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니까.
그는 소녀가 첫날 주었던 우유죽이 맛났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 우유죽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받았던 ‘순수한 호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그 사실을 깨달으며 눈물을 흘렸다.
동시에 그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단 걸 깨달았으며, 잘라 낸 하반신을 다시 자라나게 한 후 그녀와 동침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결여된 자신의 영혼이 채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에 그라는 존재가 태어난 의미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행복하게 자신의 아내를 안은 후, 그녀를 신(神)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777번의 삶을 거치며 그가 벗었던 허물들을 가지러 머나먼 세계로 잠시 떠났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흑요가 아내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의 아내는 뱀에게 물려 죽어 있었다.
* * *
“뱀?”
나는 유오에게 되물었다.
“천상천하를 좌우하는 존재가 된 흑요가, 자기 아내가 뱀 같은 것에 물려 죽도록 만들었단 겁니까?”
“저 역시 그에 대해선 정확히 모릅니다. 어쩌면 독을 가진 뭔가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천왕들에게 있어 흉험한 어떤 존재에 대한 비유라든지요. 저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정확히는 모른답니다. 흑요가 저 같은 존재는 얼씬도 못 하게 그 차원 전체를 봉하고 있었는데, 저 같은 것이 어찌 당시의 진상을 알겠습니까.”
“흠… 알겠습니다.”
“납득되셨다면, 얘기를 이어 하도록 하지요.”
* * *
흑요는 죽은 아내를 보며 구슬피 울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속에서 결여되어 있던 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갈구(渴求)’였다.
그는 갈구를 깨닫기 위해 무수한 해와 달과 별을 먹어 치우고, 777번의 생 동안 고통을 스스로에게 가해 왔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갈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언제나,
환생하기 전에도, 환생한 후에도.
스스로가 완전히 영멸하진 않을 것임은 알았기에 한 번도 진심을 다해 뭔가를 갈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진심을 다해서 갈구하기 시작했다.
삼천대천세계의 [바깥].
자신의 고향을 갈구했다.
그의 고향. 불사자들의 세계라면, 그의 아내는 죽지 않았을 테니까.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부터 기본적인 신체 자체가 불사에 가까웠기에 어떤 불안도 공포도 없었던 흑요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뼈저리게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에야 결심했다.
한 번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적 없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이 세계를 나가겠노라고.
아니….
나가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 세계를 구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세계를 구원하여, 불사자들의 세계인 그의 고향으로 데려가, 삼라만상 모든 존재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기로 했다.
흑요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선술을 발동했다.
동시에 그는 선술이 발동되는 동안 흉지(凶地)를 찾아, 그곳의 수문장을 쓰러뜨리고, 그 너머로 향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가지고 나가기 위하여.
이 세계의 모든 이를 공포와 불안, 운명이라는 이름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그는 불길한 세계 너머로 사라졌다.
* * *
“…여기까지가, 흑요. 불가 칠화왕 중, 흑요마천왕이라 불리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의 끝입니다.”
나는 흑요마천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 무시무시한 행적은 둘째치고….
“…그 너머의 이야기는 알지 못하십니까?”
“저도 모른답니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요. 그리고 더불어….”
그녀가 웃었다.
“모든 천왕(天王)들의 이야기의 끝은, 이와 매우 흡사하답니다. 광한천군도, 금신자도 마찬가지였지요. 모두가 종래에는 삼천대천세계에서 가장 불길한 흉지. 영겁의 세월 이전부터, 억겁의 종말을 겪으면서도 멀쩡했던 장소… 수계(首界)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
“그나저나, 어떠신지요.”
그녀는 차를 따르며 말했다.
“운명이란 이야기입니다. 기(起)에서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흑요가 수행을 이어 가던 중’,
승(承)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마음을 배우게 되며’,
전(轉)에서 ‘정인을 [무조건] 잃게 되고,’
결(結)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깨달음. 즉 운명(運命)을 깨닫게 되는’ 흑요의 이야기… 재미는 조금 있으셨는지요?”
“…재미를 떠나 …조금 듣기 거북하군요.”
나는 살짝 떫은 표정을 지었다.
왠지 입안에서 쓴맛이 나는 것 같아, 그 맛을 지우려고 흑매실차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말했다.
“기승전결이라는 말은, 흑요라는 존재의 삶 자체가 마치 소설의 한 단락같이 느껴지기에… 어째 좀 불편합니다.”
“기승전결이라는 말이 불편하시다면, 다른 표현법도 있지요. 천원(天圓)은 어떻습니까?”
“천원?”
그녀가 빙긋 웃었다.
“천원기에 오를 때에 쓰이는 그 천원의 구결 말입니다. 천원기의 구결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예 뭐… 남들 아는 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천원의 구결에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四界)가 들어갑니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춘하추동이라 생각하시면 조금 덜 불쾌하지 않습니까?”
“….”
“삶을 살아가는 존재는 모두 삶에 춘하추동이 있고, 그걸 인정하는 게 소경계의 끝인 천원기이지요. 태어나고(春), 자라고(夏), 성숙하고(秋), 자리에 누워(冬), 종래에는 운명에게 감사하며 하늘 아래 편안히 잠드는 것(考終命). 이것이 모두가 소경계에서 깨닫는 진리입니다.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기승전결이란 표현을 더 좋아해 그리 부를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어떠신지요? 예비 천왕 서 존자.”
“…예비 천왕이라….”
그녀의 말인즉슨, 나 역시 무조건 저런 운명을 겪는다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겪었지.’
나는 10회차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사실, 아마 10회차의 마지막에서 북향화를 만나지 않았다거나, 원립을 제대로 해치우지 못했다면 나도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과 [무조건] 헤어지게 되는 운명.
너무나 잔인한 운명이 아닌가.
나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칠화왕. 즉 천왕들이 무조건 겪게 되는 운명이라 하셨지요. 하면, 그 운명을 겪은 천거자들은 전부 말씀하신 ‘천왕’이라는 겁니까?”
내 질문에 유오는 고개를 저었다.
“천왕으로 불리는 데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답니다.”
“두 가지 조건?”
“예. 첫째는 방금 말한 대로, 춘하추동, 기승전결의 운명을 진행하여 자신의 명(命)을 알게 되는 것. 둘째는… 진선의 한계와 한도의 극점에 도달할 것. 두 가지의 요건을 충족한 천거자는 천왕(天王)이라 불리게 되며, 천왕의 칭호를 단 천거자는, 사실상의….”
유오는 서란을 잠시 흘긋 보더니 말했다.
“진선 중에서도 손꼽히는 존재가 될 수 있답니다.”
[천존(天尊) 취급을 받게 되지요.]서란이 촛농처럼 녹아내릴 것을 염려한 것인지, 그녀는 어선에 대한 정보는 따로 나눠서 내게만 전음으로 속삭였다.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결국, 천왕이란 일종의 특수한 어선(御仙)인 거군.’
찌릿!
나는 그와 동시에 태열전의 탱화도에서 본 존재들을 떠올리며 그 당시 본 느낌의 전말을 이해했다.
‘그랬군. 그 그림 속 존재들에게서 ‘실재하는 존재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건, 그림 속 천왕들은 결국 종명자들이 어선에 도달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인 건가.’
오싹!
나는 그 사실을 느끼자, 문득 본능적으로 위기감이 느껴졌다.
“헛…!”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충격에 대비했으나, 유오와 서란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뿐.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음… 차가 많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선들을 인지하면 충격을 받는다.’
물론 여러 번 인지하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기지만, 완전히 새로 알게 된 존재가 있다면 내성 없이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어선의 존재 자체가 충격을 주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양수진이 경고한 [빛]이나, [태산의 주인] 같은 경우 각각 빛과 산을 관장한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이 빛을 보거나 산에 올라간다고 해서 몸이 촛농처럼 녹아내리거나 하진 않는다.
빛이나 산은 어선의 권역이지만 인간이 보통 거기까지 인지하진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실체조차 모르니 빛이나 산을 봐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만약 [빛]이나 [태산의 주인]의 실체에 대해 아는 이들이 그런 걸 보게 된다면?
‘볼 때마다 충격을 받지.’
나 역시 애저녁에 한 번 돌아 버려서 더 미치지 않게 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어선들을 너무 여러 번 인지해서 내성이 생기지 않았다면, 진즉 미쳤을 터였다.
하지만, 미쳤다 해서, 내성이 생겼다 해서 어선에 대해 충격을 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물며 지금껏 아무런 내성도 쌓지 않은 [칠화왕]이라는 어선들에 대한 정보를 듣고, 그들을 떠올렸다면 당연히 크나큰 충격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왜 멀쩡한 거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했다.
“진선들을 인지하면 정신에 큰 충격을 입게 되지요. 그러나 말씀하신 칠화왕들은 어째 떠올려도… 멀쩡한 것 같습니다만.”
내 말에 그녀는 흑매실차를 잠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진선을 인지하며 충격을 받는 이유는 [지혜] 때문이지요.”
“지혜?”
“그렇습니다. 너무나 위대한 존재를 어중간한 존재가 직시하게 되면, 아득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제… 슬슬 평범한 축기, 결단기 수사들 역시 서 존자의 본체를 직시하면 ‘별을 응결하는 지혜’를 구할 수 있게 되겠지요. 애초에 앞 경지에 대한 구결도 대부분 다 그런 식으로 구하니 말입니다.”
“….”
나는 그 말에 침음성을 흘렸다.
나 역시 이제는 본체를 직시하는 것만으로 어떤 지식을 주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약한 존재는 그 지혜를 받아들일 수조차 없어서 터져 죽곤 합니다. 예를 들어… 의식영역조차 없는 노예종족에게, ‘의식영역을 사용해서 계위를 식별하고 수백 리의 천지영기를 끌어오는 감각’을 체화시킨다면 그 노예종족은 어찌 될까요?”
“…머리가 터져 죽겠군요. 아마 노예종족이 아니라 연기기만 되어도 그럴 겁니다.”
낮은 경지의 존재들은 높은 경지의 존재가 거하는 차원을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종이 위.
흑백으로 된 2차원 속 ‘그림’에게 3차원의 ‘사과’에 대해 알려 주겠답시고 사과즙을 그림에게 발라 버리면 무슨 일이 생겨날까.
당연히 그림이 녹아 버리거나 그림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이렇듯, 높은 차원의 존재에 대한 지식은 자칫하면 하위 차원 존재를 녹여 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잘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결국 하위 차원의 존재가 상위차원의 존재를 보고 충격을 받는 이유는[지혜]입니다. 진선들을 직시하면 [지혜]를 얻으며, 그 [지혜]를 감당하지 못해 녹아 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른 진선은 그 존재를 직시하면 충격을 받지만, 칠화왕은 실체를 알아도 무사한 것 역시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어진 유오의 발언에서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 겁니다.”
“예?”
“말 그대로입니다. 칠화왕의 존재. 그들의 실체. 그리고… 그들의 존재가 품고 있던 광활한 [지혜]. 칠화왕의 [이름] 그 자체를, 현재 누군가가 소유한 채, 자신에게 단단히 묶어 놓고 있기에 그 이름을 부르고 실체를 알아도 [지혜]를 내려받지 못해… 전혀 충격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칠화왕의 이름의 소유권이, 다른 [누군가]에게 있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나는 가만히 내 찻잔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양수진은 소멸했다 한들 진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본명과 칭호를 부르고 다니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며, 나 역시 양수진을 몇 번이고 부르짖어도 멀쩡했었지.’
양수진 같은 존재의 이름을 부르고도 무사했던 것.
그것은, 양수진의 이름의 소유권을 누군가가 강하게 움켜쥐고 있기에 이름을 불러도 영향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벼락을 맞은 듯 한 존재에 대해 떠올렸다.
‘양수진은… [뭔가]가…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었다.’
머릿속에서 그동안 들어왔던 이야기들이 한 갈래로 합쳐졌다.
불길한 땅 수계.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는 존재.
흑요 이야기.
광한천군의 이야기.
양수진의 최후.
종명자들의 이름의 소유권을 지닌 존재….
산 정상.
삼십삼천.
알현실….
“수계가 불길한 땅이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해 백운 성사에게 들은 바 있습니다. 그분은 광한천군을 비롯한 위대한 존재들이 수계를 향해 손을 뻗고 죽어 있었기에, 수계가 흉험하다고 했지요. 하지만… 유오 성사님의 말씀을 들어보자면, 흑요라는 존재가 살 당시에도 수계는 불길하게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그런 셈이지요.”
“…그렇다면, 백운 성사가 말한 ‘수계가 불길한 이유’는 상관없이, 사실 수계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특성 자체가 불길했다는 것일 터. 하면….”
나는 방금 떠오른 흉험한 추측을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그건… 수계의 형상이나 수계를 둘러싼 것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수계에 불길한 뭔가가 존재하기에]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 : 갈(喝) : :
찌이이이잉!
유오 성사가 일순간 본인의 의식영역을 가속시키며, 의식을 선인의 영역까지 끌어 올려 사자후를 터트렸다.
나는 머리가 울리는 느낌과 함께 피를 토했다.
“허억… 헉….”
[쉬잇.]어느새 내 앞에 도착한 유오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함부로. 발설하지. 마십시오. ‘쏟은 물을 주워 담기가 어렵다’는 말을 모르십니까?]“….”
나는 내 입을 틀어막은 채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유오의 도움을 받았다.’
방금 전.
나도 그에 대해서 입 밖으로 낼 생각까진 없었다.
그러나 수계에 [뭔가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마자, 저도 모르게 갑자기 입이 멋대로 움직인 느낌이었다.
‘다행… 이다.’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확신할 수 있었다.
‘수계가 불길하다 불리는 이유는… 광한천군과 그의 벗들 때문만은 아니다. [수계에는 불길한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거하고] 있다.’
그것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걸 유추하자마자 내 입을 멋대로 움직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단 것이었다.
유오는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말했다.
“수계가 불길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마 진선이 되시면 더 명확하게 아실 수 있을 거랍니다. 굳이 지금 아시려고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봤자 짐작조차 못 하실 테니까요.”
“…조언 고맙습니다.”
“무얼요. 그나저나….”
유오는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동료분들이 서 존자를 살려 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 같군요. 이승에서 존자의 의식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
나는 흠칫 놀라 위쪽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뭔가 저 먼 곳에서부터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흐흠….”
유오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는 듯하더니 아쉽다는 듯 세 걸음을 물러났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듯하군요. 원래는 서 존자를 데리고 갈 곳이 있었습니다만, 제 처소에 귀한 손님이 와서 말입니다. 손님맞이를 해야 하니… 오늘은 이만 놓아드리지요. 동료분들에게 돌아가십시오.”
따악!
유오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유오가 우리를 다시 바깥으로 배출시키려 한단 걸 눈치챘다.
우웅!
그와 동시에 [두 곳]에서부터 인력이 느껴진다.
나는 양쪽의 인력이 지닌 기운을 느끼며 두 곳의 위치를 파악했다.
한쪽은 어두운 곳.
깊고도 또 깊은 곳.
저승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홍범과 섭명함의 기운이 느껴졌다.
‘저쪽이 이승으로 가는 길이군.’
나는 서란과 함께 섭명함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차를 마실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예의상 인사치레를 하며 그녀에게 예를 취했다.
그리고, 순간 유오의 눈이 번뜩였다.
“…저 역시 또 만나 뵐 날이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그녀는 지금껏 보여 주지 않았던 환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나는 유오의 궁에서 배출되기 전, 문득 그녀에게 한 가지가 궁금하여 질문했다.
“그나저나… 혹시 성사께서는 혼에 쌓인 사기(死氣)를 제거할 방법을 아십니까?”
사기가 농축되다 못해 액화되어 흘러나와 나를 저승으로 끌고 갈 정도였다.
이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질문을 받은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망자를 명계로 인도하는 청색귀골궁의 궁주인 제게, 죽어야 할 자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역천(逆天)의 비술 같은 걸 가르쳐 달라 하시는 겁니까?”
“하하, 친분을 쌓는다 생각하시고 좀 알려 주시지요.”
나는 유오가 나와 ‘친분을 쌓겠다며’ 흑요의 일화를 들려준 걸 기억하고, 한번 말을 던져 보았다.
‘뭐 기대는 안 한다만… 흑색귀골궁의 문규 같은 것에 걸린다면 안 되겠….’
“정 그렇다면 단서는 드리지요.”
“허?”
‘정말로 준다고?’
“대신. 저 역시 큰 결심을 하고 드리는 것이니 서 존자도 제가 아까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십시오. 서 존자의 스승은 누구인지, 어디서 선술을 수련했는지 등.”
“흠… 제게도 많은 정보를 베푸셨으니, 누구에게 사사했는지는 알려 드리지요.”
“좋습니다. 그럼 바로 알려 드리지요. 사기를 없애는 구결입니다. [태극(太極)이 합일할 때 삼극(三極)이 순환할지니]. 이 구결을 잘 생각해 보시면 사기를 연화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으실 거랍니다.”
“감사합니다. 제 스승님의 존함은….”
나는 입을 열었다.
“함(鹹)….”
다음 순간.
파아아아앗!
* * *
“…어?”
눈앞에 홍범이 있었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가까스로 주인님의 의식을 끌어왔습니다!”
“아… 이런.”
나는 혀를 찼다.
“이름을 말해 주지 못했는데. 이를 어쩌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음, 아니다 홍범. 그건 그렇고 고맙다. 나를 이렇게 끌어와 줘서.”
“허허, 전부 서란 공의 공입니다. 저는 서란 공을 보조해 섭명함을 조금 운용한 것 외엔 한 일이 없습니다.”
나는 홍범의 겸양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바쁠 것 같았다.
* * *
서은현이 나가 버린 궁전 안쪽.
그곳에 있던 그녀의 모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 서은현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의 본질이 공간에 드러나며 공간 전체가 출렁였다.
그녀가 지닌 인력에 곳곳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존재감을 드러낸 그녀는, 다시금 궁전 안쪽의 가장 깊은 곳.
그녀의 옥좌가 있던 곳으로 가 걸터앉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를 괴며, 무너져 가는 궁전의 안쪽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때.
그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깔끔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는 무너져 가는 궁전을 가로질러, 그녀의 앞에 서서 말했다.
“또 사바세계에서 무슨 흉계를 꾸미려던 중인 거요.”
그녀가 눈을 꿈틀거리자, 눈앞의 존재는 한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조금 모멸감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여유 만만할지 두고 보겠소. 나는 이제 당신에게 거의 다 도달했으니, 긴장하시오.”
말을 마친 그는 그녀의 앞에서 뒤를 돌아 나가 버렸다.
그녀는 궁전 속에서 방금 나간 존재를 보며 자그마한 비웃음을 내뱉었다.
방금 나간 존재.
서은현이 현귀(玄龜)라 불렀던 존재를 보며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