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79)
성해(2)
얼마간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진인은 나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렇군. 예지에 보이는 인력의 크기가 무식하길래 몰랐건만. 설마 쇄성기인 건가? 어딘지 정신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더니 이런 존재가 있을 줄이야….]그는 내가 흥미롭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진인이 하려는 말의 뜻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진짜 육신이 아닌 화신체였기에 생체 반응을 읽어 낼 수도, 의념이 인력으로 변하는 쇄성기 이상 진인이었기에 의념을 읽을 수도 없었다.
진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존자들은 점차 의식이 인력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두려워하다 주화입마에 걸리는 놈들도 꽤 봤고… 자네는 어떤가. 두려운가?]“…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예전에는… 감정이란 것이 꽤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군요. 내가 왜 이런 것에 이렇게 애를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삼태극이니 허공분쇄니 하는 힘을 얻으려 한 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천지족 수행에만 더 집중했어도 성반기에 진즉 도달하지 않았을까.’
그는 수염을 쓰다듬더니, 대뜸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안 했군. 나는 증룡봉양제사장, 진루곡. 예전에 나의 주인이셨던 선수 증룡을 모셨던 제사장이자, 50만 년 전 당시 인간족의 대표. 그리고….]나는 이어진 그의 말에 잠시 신기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50만 년 전 의식공법의 대가로 불렸던 자이자… 나름 구현 3단계까진 도달했던 심족일세. 지금은 구현을 잊어먹어서 심족도 뭣도 아니지만.]“…흠. 놀랍군요. 심족의 기술을 익히긴 쉽지 않은데….”
[어려울 건 또 뭔가. 이래 뵈어도, 50만 년 이전에 차거광한천왕에게 직접 의식공법을 전수받기도 한 몸일세.]그는 빙긋 웃더니 양손을 부딪쳤다.
짜악!
[그리고… 그런 의식공법의 대가로서 말을 해 보자면. 오히려 구현을 지닌 심족일수록 존자의 경지에 오르면 더더욱 의식이 인력으로 변하는 속도가 빠르고, 정도가 심하다네.]“흐음… 그건 신기하군요.”
오히려 심족의 구현을 수련한 이들이라면 존자가 되어도 더 오래 감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진루곡은 내가 알아듣기 쉽게, 상당히 명쾌하게 그 부분을 설명해 주었다.
[자네 모래성을 쌓아 봤나?]“예 뭐. 어릴 때 가끔 해 봤지요.”
[그렇군. 하면 그 모래성을 쌓을 때, 큰 모래성의 그림자가 작나, 작은 모래성의 그림자가 작나.]나는 그가 하려는 말을 눈치챘다.
“…오히려 구현을 통해 쌓은 마음의 크기가 크기에, 그 그림자도 크다는 겁니까.”
[십 점 만점에 칠 점. 다시 잘 생각해 보게.]“음….”
나는 얼마간 생각해 보고 그의 질문을 다시 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그림자의 크기?’
“…그림자의 크기는 애초에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다 달라지잖습니까.”
[바로 그거지. 정답은 크기가 아니라 ‘빛’이라네. 크기도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지만, 말 그대로 미약한 정도고. 결국 그림자가 더 크고 긴 것은, 태양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란 의미지.]그는 의미심정한 표정으로 내게 말해 주었다.
[즉, 빛에 다가갈수록 그림자는 커진다네. 자네가 모래성을 쌓은 것이 ‘심족의 수행’이라 친다면, ‘인력을 수행하는’ 천족 수도자의 수행은 ‘빛에 다가가는 행위’이지. 물론 어차피 모든 이들은 수행을 하며 빛에 다가갈 수밖에 없으니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네. 진짜 문제가 되는 건, 자네나 나처럼 마음에 모래성, 혹은 모래산을 쌓은 이들이지. 일반적인 천지족 수도자들은 평지이고 말이야.]“흐흠… 그래서 우리같은 이들이 일반적인 수도자들보다, 더더욱 의념이 인력으로 변하는 속도나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네. 일반적인 쇄성기들은 술법을 쓸 때마다 잠시 의식이 인력으로 변하는 정도고… 시간이 지나서야 서서히 의식이 변한다라면… 우리는 한번 의식이 인력으로 변하면 순식간에 정신 자체가 인력으로 바뀌어 버린다네. 지금 자네처럼 말이야.]“흐음….”
나는 내 자신을 관조하며 물었다.
‘확실히, 최근 조금 무감정해진 게 조금 있지.’
허공분쇄에 경지에 대해 무심해지긴 했지만, 이대로 가다가 구현을 잊어버리면 상당한 전력의 손실이었다.
허공분쇄를 더 수련하는 건 무리일지언정 가지고 있던 걸 잃어버리는 일은 내게 손해였기에, 나는 진루곡에게 해법을 물었다.
“말씀하시는 걸 보면, 쇄성기 다음의 경지에 이르르면 이걸 어찌어찌 피할 방도가 있나 보군요.”
[당연히 있지.]“뭡니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했다.
[하나 대답 전에…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네.]“뭡니까.”
[자네에게 있어 마음이란 무엇인가. 왜 마음이란 걸 다시 찾으려 하는 거지?]“흠….”
나는 곰곰히 고민해 보았다.
‘그러게, 내가 왜 찾으려는 거지.’
마음이란 곧 번뇌에 불과하다.
가슴 속에 지니고 있어 봤자 심마들을 만들어 내는 공장에 지나지 않았고, 내게 고통을 부여하던 원천이었다.
‘애초에, 마음은 곧 죽음이지 않나.’
최근 사도 삼태극을 계속 돌리며 사기를 내 몸에서 떼어 놓고 있는 일이 빈번해졌다.
처음에는 끊임없이 삼태극을 회전시키는 게 힘들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애시당초 목숨이 걸린 일이라,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있기도 했고 말이었다.
‘마음에 깊이 파고들면 기껏 떼어 놓은 사기가 발작해서 저승으로 끌려갈지도 모르는데… 마음?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걸 수련해야 하는 걸까.’
너무 위험하다.
이럴 거면 아예 허공분쇄를 포기하고 천, 지, 괴의 체제로만 가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어째선지 김연에게 기문법재와 비슷한 문양이 생긴 걸로 보아, 그녀는 말을 잃는 대신 기문법재 비슷한 걸 얻은 모양.
그 기문법재를 통해 성반기 괴뢰회로나 개열기 괴뢰 같은 것도 만들어 달라 청하면 안정적으로 최강의 힘을 다룰 수 있다.
‘…잠깐, 이상하다.’
그러나 감성이 없어진 대신, 극도로 냉정해진 나의 이성은 냉철한 이성을 발휘해 나 자신에게 심대한 모순이 있단 걸 발견했다.
-왜 최강이 되려는 거지?
‘그야… 최강이 되어야 동료들을 지킬 수 있으니까.
-왜 동료들을 지키려는 거지?
‘동료들과 함께 있어야 종명자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풀고,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
-왜 고향으로 가려는 거지? 이곳에서 영겁토록 쾌락과 주지육림을 누리며 번식에 충실하면 아니 되는 건가?
‘그야….’
나는 문득 말문이 막히는 걸 느꼈다.
진루곡이 던져 준 화두 자체가 내게 들러붙어 심마(心魔)가 된 느낌이었다.
‘아냐… 이 인간. 내게 정말로 무슨 짓을 했다. 진짜로 의식 속에서 심마가 속삭이고 있어… 진루곡… 내게 무슨 저주를 건 건가?’
나는 잠시 진루곡을 노려보았지만, 상대의 저주가 들러붙은 상태에서 나보다 윗 경지를 상대로 한판 벌일 순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허공분쇄도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일단 나를 더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 이 심마부터 몰아내자. 어차피 해결해야 하긴 하니까.’
나는 진루곡의 몸체인 행성에서 튀어나와 우주공간에 자리를 잡은 후 빠르게 뇌리 속에서 이어지는 모순에 대한 대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고향에는 내 부모님도 계시고… 직장도 있고… 내가 계속 여기 있으면 실종 처리되어서 내 사회적 평판도 어찌 될지 모르고….’
-도대체 왜 그딴 벌레들의 문화에 신경 쓰지? 너는 이미 별 그 자체. 조금만 더 수련해 성반기가 되면 말 그대로 수십억 단위의 수명을 누린다. 미생물들이 진화해서 문명 하나를 꾸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왜 격 차이가 그렇게나 나는 고향의 사회로 돌아가려는 거지?
‘…그런 …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내 부모라 해 봤자 결국은 피륙으로 이뤄진 인간.
거기다 내가 인지하는 세계는 인지할 수도 없는 범부.
쇄성기 존자가 된 나로선 이제 부모자식 간의 인연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몸 자체가 인간의 것도 아니며, 별이 되었는데 뭘 더 신경 쓴단 말인가.
나는 인간을 초월하였다.
‘심마가 아니라 축복이었군.’
아무래도 진루곡애 대해 오해하였던 모양이었다.
심마 같은 것이 아닌, 내 정신을 하등한 인간의 굴레에서 빼내 주기 위해 자극 내지는 축복을 준 모양인데 내가 의심암귀에 걸려 오해한 모양.
‘종족의 굴레 따윈 던져 버리고, 앞으로 자유롭게 우주를 노니며 살자.’
솔직히 내가 왜 이런저런 굴레에 얽매여야 하는가.
동료들도 이제는 더 필요 없다.
천역의 멸망?
지금의 나라면 왠지 수단 방법 가리지 않으면 50만 년 안에 개열기는 오를 느낌이었다.
‘죽지 않고 50회차만 더 반복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개열기의 진체가 되어 천역의 멸망을 견딜 수 있고, 천역의 멸망을 견디면 최소 수억 년의 수행 기간이 보장된다.
‘수억 년 정도면 아무리 그래도 진선은 달겠지.’
나는 진선이 되어 진정 영생불로를 하면 되는 것이다.
‘….’
그리고 나는 뭔가 이상한 걸 깨달았다.
진루곡이 준 [축복]이, 또다시 속삭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영생불로를 해야 하지?
‘그건….’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답했다.
‘살고 싶으니까?’
딱히 여기에 왜 이유가 필요한가?
그러나, ‘축복’은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 왔다.
-왜 살고 싶지?
‘….’
왜 살고 싶느냐라….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는 온갖 쾌락과 번영, 영화가 존재한다.
그걸 영생을 살며 누린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귀한 기회가 아닌가?
-그런 걸 왜 누려야 하지?
‘그야 생명의 욕구 중 수면욕, 번식욕, 식욕 등은 생물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그리고 나는 대답하던 도중 이 대답에 대한 모순도 발견했다.
‘…난 지금 생물이 아닌데?’
그딴 욕구 따위 이제는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내가 방금 말한 욕구는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게 아니란 소리였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혼란스러워졌다.
생명체도 아니라 욕구도 의미가 없고.
별 그 자체가 되어 동료들이나 가족 관계, 인연 같은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그럼…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것일까.
이제 내게 질문하는 건 심마가 아니었다.
나 자신이 끝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문자답했다.
나는 인력으로 주변의 시공간을 우그러뜨려,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만들며 그 안쪽에서 생각했다.
이 안쪽에서의 10초가 바깥에서의 1초.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다.
‘나는 왜 살아 있지?’
고통받지 않기 위해?
단순히 회귀 때문에 죽을 수 없으니까?
나는 내 목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더듬어 보았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
‘내 최초의 목적은… 회귀를 끊는 것이었다.’
나는 18회차를 떠올리며 서립을 생각했다.
언제라도 죽어서 땅에 묻힐 수 있는 몸이 되는 것.
제대로 된 [단 한 번의 삶을] 사는 것.
[내가 죽어도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이 세계에 남는] 삶을 사는 것.그것이 인간이었을 시절 내가 정말 바라던 것이었다.
지금에 와선 조금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회귀를 끊기 위해 어찌하면 회귀를 끊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로 나는 ‘이 세계에 왔을 때 능력이 생겼으니, 지구로 가면 능력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지.’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최초에 등선향 승천문을 조사하고자 했다.
승천문을 조사하면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를 위해 수선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초창기 내 목표는 어마어마하게 꼬여 있었군.’
회귀를 끊는다.
그를 위해 지구로 돌아간다.
그를 위해 승천문을 조사한다.
그를 위해 수선을 시작한다.
그를 위해 수선에 들기 위한 조건인 영근을 얻는다.
그를 위해 오기조원에 달한다.
그를 위해….
‘이것저것 할 게 많았었지 참….’
나는 그 모든 것을 돌이켜 보며, 잊고 있었던 나의 목적을 떠올렸다.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목표는 회귀를 끊고, 내 자신이 죽어도 기억될 수 있는 운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작 목적이 뭔지를 모르겠다.
마음이 인력으로 바뀌어서일까.
나는 이전에 추구하던 목적들이 도무지 와닿지 않는 걸 느꼈다.
‘나는 무얼 해야 하지.’
멍하니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나는 마침내 감성이 사라진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을 내렸다
‘살 이유가 없군. 감성도 의미가 없고 본능도 의미가 없다면…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의미가 없어.’
“…하.”
나는 웃었다.
‘그럼 죽자.’
“하하….”
‘하지만, 죽지 못하지. 회귀가 있는 한.’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러므로… 회귀를 끊자.’
“흐흐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
‘회귀를 끊고, 내가 죽어도… 나를 기억해 주는 이들이 남는 세계를 살아가자. 그것이….’
“하! 하하하하하! 아하, 아하하핫!”
내가 처음부터 추구해 왔던, 나의 목적이다.
나는 미친 듯이 폭소하며, ‘죽음’을 다시 받아들였다.
츠츠츠츠츠-
사도 삼태극을 회전시키며 잠시 몸에서 떨어졌던 죽음이 내 몸에 다시 깃들었다.
‘인력이 절정에 달하면, 천역은 종말에 달하지.’
그리고 [그녀]의 말에 의하면 심족이 힘을 쓸수록 종말이 앞당겨진다고 했다.
애당초 고민할 필요조차 없던 문제였다.
마음은 곧 죽음.
그리고, 모든 존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미친놈!!!]저 멀리서 진루곡이 아연해하는 영언이 우주공간에 울려 퍼졌다.
생각해 보면, 답은 사실 내 안에 있었다.
[멸(滅) 법(法) 진(眞) 언(言)!]나는 내 주변의 인력을 정점에 이르게 만들었다.
인근의 천지영기가 끌려왔다.
태산의 주인처럼 우주 전체를 찌그러뜨려 압축시킬 순 없었지만, 주변의 인력을 찌그러뜨려, 내 인근을 빛과 열로 가득 찬 세계로 만들 순 있었다.
파아아아앗!
나는 인력을 압축시켜, 내 가슴에 담았다.
쿠르르르릉!
난 가슴을 어루만지며 눈을 반개했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진루곡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나는 의념이 인력으로 변화하는 이 현상을 완벽히 극복해 냈다.
인력과 마음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인력이 향하는 것이 마음’이었던 셈이었다.
쿠국, 쿠구구구국!
동시에 나는 방금 받아들인 ‘죽음’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인력이 발생하며, 나를 끌어들인단 걸 알아챘다.
‘명계에서 나를 부른다.’
이대로라면 다시 명계로 끌려갈 터.
하지만….
‘그때를 기억하자.’
우주창세의 그 시기.
우주창세를 내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으되, 나는 우주의 초창기를 함께했고, 동시에 성맥안을 통해 우주창세가 처음 일어난 지점은 추적할 수 있었다.
나는 우주창세의 그 순간을 짐작하며, 눈을 부릅떴다.
번쩍!
내 가슴 안에 몰려들었던 빛과 열이 폭발했다.
동시에, 그 빛과 열 속에서 함께 있던 [죽음]의 힘이 함께 폭발했다.
콰르르르르릉!
내 몸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고, 내 화신체가 터져 나가며 본체가 우주공간에 자리하게 되었다.
‘당신은 마음이 곧 죽음이며, 끝이라고 했었지요.’
[그녀]의 말에 대항하며, 나는 폭발 속에서 죽음을 주변으로 흩뿌렸다. [그녀]가 내게 우주의 멸망을 보여 줬을 때.나는 정말로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하는 수련이 우주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이상했다.
분명 인력이 정점에 달하면 우주는 끝을 맞이한다.
하지만….
동시에 새 우주가 탄생하지 않던가?
나는 고종명으로 끝나는 종명 천원과, 사시사계의 순환으로 끝나는 광한 천원을 떠올리며 눈을 반개했다.
‘끝이 아닙니다.’
촤라라라라라-
내 영혼에 켜켜이 쌓여 있던 [죽음]의 힘이, 산산이 흩어지며 맑은 천지영기가 되어 주변을 덮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지요.’
나는 어째서 쇄성기 때에 마음이 인력이 되어 가는지 이해했다.
쇄성기 때에 마음이 인력이 되고, 그 인력이 수행에 따라 정점에 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래에, 인력은 다시 뭉치며 종말을 맞이하고, 종말 너머에서 다시 새로운 [마음]이 탄생하는 것이다.
‘방금은 그 과정을 예습한 것과 다름없군.’
물론 [진짜] 그 과정을 겪은 건 아니었기에 막상 정말로 그 경지에 이르러 그 과정을 시행하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몰랐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차후 성반기든 개열기든, 언젠가 이 경험이 도움이 될 때는 반드시 생긴다!’
나는 방금 전의 인력과 폭발로 인해, 영혼에 쌓인 죽음의 힘을 폭발과 함께 기화(氣化)해서 휘발시켰단 걸 깨닫고 웃었다.
마음의 인력화.
그리고 저승의 인력.
두 가지를 전부 해결해 낸 나는 진루곡에게 절을 올리기 위해, 아직 폭발의 잔향이 가시지 않은 빛무리 속을 헤엄쳐서 진루곡을 찾았다.
그리고, 빛무리 속을 헤집던 나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빛의 공간이, 안 끝나지?’
그때, 나는 섬섬옥수가 등 뒤에서 나타나 내 뺨을 쓰다듬는 걸 느꼈다.
오싸악!
존자에 달한 내가 어떤 징조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내 뺨을 희롱하는 섬섬옥수를 느꼈다.
섬섬옥수는 내 뺨을 흝고, 그대로 목덜미를 쓸더니 내 어깨를 만졌다.
움찔!
나는 어깨에 손이 닿자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가위가 걸린 것만 같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섬섬옥수는 그대로 내 어깨 위에서 어깨를 희롱했다.
15회차 이래로, 이렇게 집요하게 내 어깨를 희롱한 존재는 없었다.
나는 내가 허락하지 않은 상대에게 어깨를 내놓는 수치와 모멸감 속에서 이를 빠득 악물었다.
그리고, [의지]가 울렸다.
: : 기특한 것. : :
의지는 내 어깨 위를 희롱하며 말을 이었다.
: : 역시 그대는 너무나 탐나는구나. : :
찌릿!
나는 어깨 위쪽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천겁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푸콱!
[누군가]가, 내 어깨를 희롱하다 못해, 내 어깨를 자신의 이빨로 질끈 깨물었다.나는 모멸감에 손발을 벌벌 떨며 얼굴이 시뻘게진 것을 느꼈다.
: : 그대는 본군(本君)의 것이다. 언젠가 천왕천역에 오게 되면, 그대는 나의 것이 될 수밖에 없으리. : :
그 말을 끝으로, [누군가]는 홀연히 사라졌다.
동시에 나는 폭발의 빛무리 속에서 빠져나왔다.
“…!”
나는 어깨 쪽에서 느껴지는 격심한 격통에 그대로 어깨를 부여잡고 몸을 구부렸다.
다름 아닌 내가 순간적으로 고통스럽다고 여길 정도로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각은 엄청났다.
다행히 지속적인 통증이 아닌, 순간적으로 일어난 것 같은 통각이었다.
‘이, 이건…!’
내가 어깨에서 손을 떼자, 난 왼쪽 어깨에 기다란 검흔(劒痕)이 난 것을 발견했다.
파사사사사!
화신체를 없앴다 다시 만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화신체를 만들든, 내 화신체에는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이, 이런 미친….’
나는 내게 표식을 새기고 간 존재.
[검극천군]의 행위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내, 내가 죽음을 극복하는 걸 보고 찾아온 건가? 아니면 폭발을 보고? 도대체 뭘 보고 찾아온 거지… 제길.’
좋지 않았다.
빛의 일원이 나를 탐하다 못해, 아예 자기 표식까지 새겨 두고 가 버렸다.
‘죽으면 저승의 천존이 아니라 검극천군에게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일단 나중에라도 이 표식을 없앨 방법을 알아보기로 한 후, 나는 진루곡의 앞으로 찾아갔다.
“어르신. 가르침을 주셔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가 내게 심마의 저주를 걸지 않았다면, 이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터였다.
진루곡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화신체를 없애며 말했다.
[본래는 후배가 입마에 시달리지 않도록 깨달음만 조금 줄 예정이었다만… 네 돈오가 내 예상을 뛰어넘었구나. 가 보아라.]“자혼만천이나 염해귀로옥 등에 대해 여쭐 것이 있다 하지 않으셨….”
[너와 말하고 싶지 않다. 네가 무슨 존재들과 얽혀 있는지 대충 알았다. 그만 가서 볼일을 보거라. 나는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구나.]“으음…! 무슨 오해가 있는 건지는 알겠습니다만. 저는 결코 [태산의 주인]이나 [광명팔선 제오좌 검극천군]과 생각하시는 것 같은 관계가….”
[끄아아아아아악!!!]진루곡은 비명을 지르며 고함을 쳤다.
[나와! 나와 그들이 인력을 형성하게 하지 말고 빨리 사라져라! 어서 사라지란 말이다!!]“엇….”
개열기라서 버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진선의 이름은 개열기에게도 치명적인 모양이었다.
‘아니, 개열기라서 더 치명적인 건가. 그건 생각 못 했군.’
나는 입맛을 다시며, 진루곡의 행성 표면에 있는 전송진으로 가 전송진을 발동시켰다.
“휴식을 방해해 드려서 송구합니다. 나중에라도 찾아뵈어 사과드리겠습니다.”
[필요 없다! 썩 저리 가라!]그는 당장에라도 나를 치워 버리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내 뒷배에 엄청난 이들이 있다 생각하는 듯 내게 무력을 행사하거나 하진 않았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에게 절을 올린 후, 다른 진인의 몸으로 전송하기 전 그에게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만… 혹 진인들로 이뤄진 이 ‘별의 길’이라는 것은 증룡진인이 어째서, 왜 만든 것이고 어째서 뇌성해와 연결되었는지 아시나이까?”
내 질문에 그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네가 모시는 신령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으냐.]“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산의….”
[알았다 네 이놈! 말하면 되지 않느냐! 혈음대전 당시, 일월천역의 전역이 그 전쟁에 휘말렸고, 증룡께선 일월천역의 생령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생령들로 하여금 다른 천역으로 탈출하기 위한 길을 만들어 주셨다. 이 별의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이 천역의 ‘시작점’이 존재한다!]“…!”
천역의 시작점.
내가 19회차 당시, 시간의 천존의 선보.
영승의 안배에 의해 성맥안을 각성하고, 성맥안의 인도에 따라 도착한 곳이었다.
천역의 시작점은 천역이 처음으로 폭발한 자리였으며, 동시에 시간의 천존의 권역 가장 깊숙한 곳으로 직행하기 위한 길임과 동시에 ‘다른 천역으로 오가는 출입구’이기도 했다.
‘그렇군. 별의 길을 통해 천역의 시작점으로 생령들을 안내해, 생령들이 언제든 천역을 탈출할 수 있게 한 건가.’
[…그리고 12만 년 전, 그 [미치광이 놈]이 천역의 시작점에 자기 약지를 쑤셔 넣어 길을 틀어막지만 않았다면, 우리 일월천역은 타 천역과 자유자재로 교류할 수 있는 천역이 되었을 터지만… 미치광이 놈이 남겨 놓은 유해 덕에, 우리는 종말이 되어도 천역을 나가 도망칠 수도 없게 되었다. 그 덕에 ‘타 천역의 존재들’ 역시 이 천역에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게 되었고!]“…금신자군요.”
하도 저질러 놓은 게 많은 인간인지라, 이젠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이게 별의 길에 대한 진실이다. 별의 길의 반대편 끝에는 고력계 해왕전이 이어져 있지. 일월천역에 일이 터지면 증룡의 상관의 후예. 해유가 길을 열고, ‘증룡의 상관 체내의 생령들’부터 천역을 나갈 수 있게 별의 길을 발동시킨다. 그 이후부터는 고력계를 통하여 일월천역의 생령들이 유사시 인접한 천역으로 탈출하는 비상탈출망이 바로 이 별의 길인 것이다.]나는 별의 길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를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보답하겠습니다.”
[네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이 보답하는 것이다. 나는 너와 얽히기 싫다. 어서 가라! 가 버려라!]진루곡은 끔찍하다는 듯 더 이상 나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마지막으로 예를 취한 후 전송진을 발동시켰다.
파아아아앗!
* * *
며칠이 지났다.
나는 수십 개의 전송진들을 거쳐, 마침내 뇌성해.
양수진의 약지에 도착했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8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