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83)
속박된 신(1)
파아아아앗!
빛의 공간.
서은현은 그의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존재를 보며, 압도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검극천군…?’
그의 눈앞에는 거인이 있었다.
아니, 그건 단순한 거인이 아니었다.
은백색의 괴물.
고대의 선복(仙服)을 입고, 머리에는 면류관을 쓴 채, 얼굴에는 은백의 가면을 쓴 거신(巨神)!
서은현은 그 존재를 보며, 눈앞의 존재에게서 마치, ‘사람 거죽을 뒤집어쓴 날붙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그 존재는 서은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끝없는 절망감!
압도감, 외경감!
‘버틸 수… 없어….’
서은현은 정신 자체가 마치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듯 싶은 기분에 전신을 벌벌 떨었다.
‘안… 돼. 여기서 끝날 순 없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마치 영겁과도 같은 이 존재와의 대면 속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정신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예를 취할 뿐이었다.
[위…대한… 분…을 배알…합니다.]그리고 서은현이 예를 취했을 때였다.
거대한 존재가 말했다.
: : 역시. 당장이라도, 그대를 내 것 삼고 싶구나. : :
그 존재의 말이 이어졌다.
: : 그대를 씹고 싶다. 물어뜯고 싶다. 그 검의(劍意)를 빼앗아 황홀히 바라보고 싶다. 잘근잘근 그대를 짓이기면 뭐가 나올지 알고 싶다. 전신을 갈아 버려 가루로 낸 뒤에 마시면서도 그대가 검을 추구할지 보고 싶다. 그대의 검은 어디까지 닿을지 알고 싶다. 애처롭게 엉엉 울며 검을 손에서 놓을 때까지 목을 조르고 싶다. 그대 전신에 내 검을 잔뜩 박아 나의 검을 전수시키고도 싶다. 그대의 검이 나의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단 희망을 주고 그걸 박살 내는 장면을 보고도 싶다. 그대의 검을 눈앞에서 산산이 조각내어 억지로 먹이고 싶다. 그대의 검을 부러뜨리고, 꺾고, 으스러트려, 다시는 검을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검에 대한 공포를 알려 주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 :
차라리 가학적일 정도의 집착이 드러나는 음성.
그리고, 서은현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눈앞의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콰드드득!
서은현의 전신에서 온갖 날붙이들이 자라나며 그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존재를 직시하였다.
위대한 존재를 직시해서 고통을 받을지언정,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죄송하지만.]그는 그 존재의 말을 끊어 버리며, 낮게 일갈했다.
[검은 이미 저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꺾지 않는 이상, 제 검을 꺾을 순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기에, 결코 저 하나만을 꺾으실 수 없나이다!]그 말에 은백의 존재는 가학적인 희열에 차서 서은현에게 그 거대한 얼굴을 들이대었다.
서은현은 마치 은하단(銀河團)과 같은 것이 그의 코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압박을 느꼈다.
: : 하면, 그대의 소중한 것을 갈가리 쥐어짜서 그대 코앞에서 으스러트렸다 되살리기를 백억 번 정도 반복하는 건 어떻지? : :
[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는 아시나이까…!]우득, 우드드득!
서은현은 날붙이들에게 먹히고 있었다.
검과 창, 화살, 그 밖의 무수한 전쟁병기들이 그의 전신에서 자라나며 그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존재 자체가 먹혀 감에도, 끔찍한 고통이 그의 전신을 차지함에도 물러서지 않고 일갈하였다.
: : 무엇이지? : :
[모든 것입니다.]: : 모든 것? : :
[예. 제가 살아서 숨 쉬어 온, 숨 쉬는, 앞으로 살아 숨 쉴, 그 모든 순간과 순간이 저의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그는 눈을 잠시 감았다.
장목족의 극광이 수작을 부렸는지, 그는 잠시 이 공간에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두렵진 않았다.
딱히 눈앞의 존재가 그에게 가학적인 호감을 드러낸다 하는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태산, 영승, 혈음 등과의 대면을 통해 끔찍하고 극악한 고통과 절망에 대해서는 이미 잔뜩 경험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미 ‘고통’에 한해서는 삼라만상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진짜 두려운 건 그런 게 아냐… 두려운 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 꺾이는 것.
서은현이라는 존재를 지탱해 온 ‘삶 그 자체의 소중함’이라는 것 자체가 꺾여 버리는 것이었다.
‘내 마음이 꺾이는 것.’
마음 자체가 꺾이지 않는 한, 두려울 건 없다.
서은현은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제 삶에 대해 가장 감사하고,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당신께서는 제 소중한 것을 파괴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소중한 것에는 당신조차 포함되기 때문입니다.]그의 말에, 얼마간 은백의 거신은 그를 보다 말하였다.
: : 거만하도다. : :
서은현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 : 거만하고 거만하여, 또 거만하도다. 과연 그 거만한 산들의 흔적을 이어받았는가. 역시… 그대를 내 밑에 깔아 두고 몸 곳곳에 검을 꽂아 오열하는 모습을 봐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그럼에도…. : :
스르륵-
은백의 거신은 새하얀 빛살이 되어 사라졌다.
서은현은 어느덧, 새하얀 섬섬옥수가 그의 뒤쪽에서 그를 쓰다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파사사사-
그의 전신에 돋아났던 검이 삽시간에 녹아 버렸다.
: : 그대의 검이 나를 뛰어넘는 것도 보고 싶구나. : :
쏴아아아아-
그 말과 함께 은백의 괴물.
검극천군의 의지는 그 공간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서은현은 신령한 검광으로 이뤄진 빛의 세계 전체가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 걸 느꼈다.
정신을 차려 보자, 그는 다시금 존자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도천존자(屠天尊者) 극광이 그를 아연해진 얼굴로 보고 있었다.
서은현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것이 검극천군의 축복인가?’
그는 순간, 그가 검을 내지르면 검을 통해 어떤 신통력을 부릴 수 있는지 깨달았다.
이 축복이 그와 함께하는 한 그는 검을 통해서 모든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파려도해성의 유이(唯二)한 약점조차 그에겐 더 이상 의미가 없으리라.
‘검수(劍修)의 극한.’
그는 지금 검을 움직이면, 검수로서의 극한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걸 알았다.
검으로 비와 바람을 뿌리고, 검으로 지진과 해일을 일으키며, 검으로 유성우를 일으켜 문명을 멸할 수 있다.
검 하나로 우주를 멸할 수도 있고, 재창조할 수도 있다.
검 안쪽에 삼라만상 모든 걸 담아 부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서은현은 고민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검(劍)의 극한인가, 아니면 검 형태를 한 술법의 극한인가.’
서은현이 팔을 뻗자, 자연스럽게 신광이 응집되며 그의 손안에 은백색의 검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극광이 들고 있는 은청색의 검보다 훨씬 고귀해 보이고 신령해 보이는 검이었다.
[왜, 왜, 왜…!]극광은 당장이라도 무너져 버릴 듯한 표정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
[내, 내가 먼저… 내가 먼저 그분을 모셨거늘… ‘그건’ 아직 나도 못 받아 본 축복이거늘… 네가 왜….]그리고 다음 순간.
서은현은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며, 마침내 결심한 듯.
그의 손 위에 떠오른 은백색의 검을 단숨에 부러뜨렸다.
[무, 무, 무… 무슨 짓을 한 거야아아아아!!!]극광의 눈이 반쯤 돌아갔고, 서은현은 굳건한 표정으로 빛을 완전히 흩어 버리며 말했다.
[남이 던져 준 힘 따윈 필요 없다.]모든 것은 스스로 쌓아 왔다.
그의 무공도 김영훈이 창안해 줬을지언정, 그걸 두 손으로 피땀 흘리며 익혀 낸 건 그 자신이었다.
수도공법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으나, 결국 익혀 낸 건 그 본인이었다.
선인(先人)의 도움이 있었을지언정 익혀 낸 건 결국 그 자신.
[검수의 극한은 잘 알겠습니다. 언젠가 ‘저만의 힘으로’ 도달해 보겠습니다.]서은현은 눈앞의 부서진 검 조각을 바라보며 외쳤다.
[길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축복은 됐습니다. 저는 제 힘만으로 그곳에 갈 것이니, 그것으로 되었나이다!]우우웅!
은백의 검 조각은 그 자리에서 부르르 떨더니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서은현은 어쩐지 그의 귓가에 희열에 가득 찬 강력한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자들이니까.
[덤벼라.]그리고, 극광이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죽 여 버 리 겠 다! ! !]그의 눈에선 수액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앞에선 도천존자 극광이.
뒤쪽에선 말천존자 진월령이 달려든다.
파아아앗!
극광의 등 뒤로 광대한 빛이 내리쬔다.
서은현은 그 빛무리 속에서 여덟 개의 거대한 거인이 깃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공법 자체가 광명팔선의 힘을 끌어오는 힘인가…!’
서은현은 뒤쪽을 인지했다.
말천존자 진월령이 수결을 맺었다.
본원성
투법형!
쿠구구구구!
서은현의 눈이 커졌다.
일순간 진월령의 본원성이 드러나는 듯하더니, 압축되어 서은현처럼 진월령 본인의 모습으로 화한다.
그러나 서은현이 놀란 부분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날개옷!? 천지쌍수!’
진월령은 서은현과 같이 ‘날개옷’을 두르고 있었다.
쇄성기 본원성들이 두른 ‘고리’는 투법형으로 압축되면 ‘날개옷’으로 변한다.
즉, 투귀족의 진월령 역시 서은현처럼 완성시킨 본원성을 한 번 더 폭발시켜 천지쌍수를 완성한 미치광이라는 뜻!
[투보 제이계.]진월령의 한쪽 팔이 촉수처럼 변하는 듯하더니, 뼈로 이뤄진 가시덤불과 같은 형태로 변해 서은현에게 날아왔다.
앞쪽에선 광명팔선의 힘을 대여하는 극광이, 뒤쪽에선 천지쌍수 쇄성기 중기 진월령이 달려드는 중이었다.
아래쪽에선 안천존자 귀로가 부휴족 특유의 부식공법을 통해 서은현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고, 위쪽에선 평천존자 함락이 천지영기를 끊임없이 집어삼키며 기를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저 먼거리에선 개천존자 월진이 강력한 일격을 준비하려는 듯 힘을 모으고 있었다.
‘과연, 광한계 존자들은 강하군.’
혈음계 존자들보다 수적으론 조금 밀리지만, 질적으론 한 명 한 명이 혈음계 존자들을 압도할 수준의 전력이었다.
[네놈들이 제일 낫구나.]그리고, 서은현이 힘을 쓰기 시작했다.
파려도해성
검해성체
무색유리검과 그의 몸이 합일하였다.
우득, 우드드득!
서은현의 몸 곳곳에서 무색유리검들이 튀어나온다.
전신발검(全身拔劍)!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이 튀어나오며, 마치 화살처럼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총천.]서은현의 손이 순간 일그러지는 듯했다.
동시에 무색유리검과 하나 된 그의 손이 기괴하게 변하는 듯하더니, 거대한 참격 그 자체가 되어 주변을 휨쓸었다.
유리진화가 허공에서 춤을 췄다.
유리의 불꽃은 검격 그 자체로 변하며 모든 것을 베어 넘겼다.
찰나의 세계.
극광이 검째로 갈갈이 썰려 나갔다.
안천존자 귀로는 부식공법을 서은현에게 날렸으나 부식공법은 유리진화에 타 버렸고, 그는 위성 크기의 수리부엉이로 변하며 퇴각했다.
하지만 어느덧 그의 양쪽 날개는 총천에 의해 잘려 나간 후였다.
서은현에게 반응한 것은 천지쌍수 수련자이자 투보 2계에 오른 말천존자 진월령.
그리고 각우족의 평천존자 함락뿐이었다.
[더, 더…! 나를 기쁘게 해 줘! 더, 더, 더…! 흐으읏!]서은현은 진월령의 뿔을 잡고 그녀의 전신을 향해 검격을 흩뿌렸다.
전투로 인해 발정하는 투귀족의 본성인지, 그녀는 희열에 찬 얼굴로 서은현과 맞섰다.
하나 그것도 찰나뿐.
곧이어 그녀는 서은현의 검격을 한 번밖에 막지 못한 채 전신이 난도질되어 튕겨 나갔다.
‘미친 근육쟁이 투귀족 놈들….’
서은현은 그녀의 우람한 근육 때문에 검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곳도 있단 걸 깨달으며 혀를 내둘렀다.
‘저 여자는 조금 있으면 회복될 터고, 남은 건 저 둘인가. ’
개천존자 규월진.
평천존자 함락.
각각 황룡족과 각우족의 수사로, 재밌게도 둘 다 지족이었다.
그리고 서은현은 그중에도 각우족의 존자, 함락을 노려보았다.
[겁천경의 무인이시군.]상반신은 소, 하반신은 인간인 각우족의 함락은 콧김을 뿜으며 정중하게 서은현에게 인사를 했다.
[부전(不顚) 삼계를 그리 칭하시는군. 장익 선배와 같이 불립(不立) 이계에 드신 선배님께 한 수 배우겠소!] [월도삼천경은 부전 삼계, 이후 삼화무극(三花無極)은 불립 삼계라 칭하는가. 재밌군.] [후흐, 엎어지지 않다, 끝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니. 재밌지 않소? 선배께서도 나처럼 육의쌍수에 더해 천지쌍수까지 하고 있다면 더 잘 알 텐데? 쇄성기 존자가 되면 결국 구현을 잃는다는 것을.]서은현은 흥미로운 듯 그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 구현을 유지하지?] [쓰러지지 않는 것이 부전이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불립이라 한다면… 일어나진 않되 쓰러지진 않기로 했소.]서은현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어나진 않되 쓰러지지도 않는다.
즉, 그는 구현을 유지하는 댓가로 다시는 그 이후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 감수한다는 것이었다.
구현뿐이 아니었다.
그는 지족 공법도 더는 수련하지 않고 있다.
수행 그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고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을 대가로 두 개의 경지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함락이 선택한 길인 것이다.
[…그걸로 괜찮단 건가?] [흐흐, 마치 장익 선배와 같은 눈을 하는군. 하지만 괜찮소. 이 또한 나름의 길이 있을 테니까. 자아, 더 이상 시시껄렁한 말은 필요 없지!]쿠구구구구구!
함락의 체내에서 일곱 개의 별이 느껴졌다.
서은현은 씨익 웃었다.
‘쇄성기 대원만에 겁천경… 좋군.’
파사사사사!
그는 파려도해성의 유리진화를 잠재웠다.
대신 오직 무색유리검만을 든 채, 함락과 마주했다.
두 무인이 별의 바다 안쪽에서 부딪힌다.
구현
부전불립(不顚不立).
[절대로 상태가 변하지 않는] 함락의 구현과, [무엇으로든 변하는] 서은현의 총천검이 맞부딪혔다.번쩍!
다음 순간.
함락의 몸이 쪼개졌다.
그리고 서은현의 가슴팍이 움푹 패이는 듯하더니, 그의 오른쪽 허리춤과 늑골 전체가 뜯겨 나갔다.
두 존재 전부 생명의 한계를 벗어난지라 피는 흐르지 않았다.
쪼개지고 부서진 자리에는 오직 별빛만이 은은하게 일렁일 뿐.
그러나, 다음 순간 함락은 웃었다.
[그곳이… 고지로군… 감사하오. 감사하오…! 선배…!]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아아아아아아!]다시금 몸을 회복한 진월령이 서은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기운을 모으던 월진이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드드드드드!
월진의 등 뒤로 거대한 용의 형상이 나타났다.
서은현은 그 용의 형상을 보자마자 정신이 무너질 듯 흔들렸고, 칠공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저건…!’
[흐하, 나와 더 놀아다오!]그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진월령을 다시금 베어 내며, 무간성체를 통해 검을 불꽃으로 지져 버렸다.
마침내 진월령은 고통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서은현은 진월령을 우주공간으로 차 버린 후, 월진의 기세에 긴장을 기울였다.
‘증룡…!’
증룡의 형상이 월진의 등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월진이 선수혈통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오며, 옛 선조의 힘을 불러오고 있었다.
선수 증룡의 직계 혈통.
그것이 바로 월진이었다.
고오오오오오!
우주공간이 떨려 왔다.
다음 순간 서은현은 그대로 증룡의 형상의 꼬리에 얻어맞고, 저 멀리 뇌성해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별까지 패대기쳐졌다.
‘크윽…!’
월진이 축지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쩌어어억!
월진의 뒤쪽에 있는 증룡의 형상이 입을 벌렸다.
꽈아아앙!
행성 수십 개를 이어붙인 크기의 증룡의 허상은 그대로 서은현이 부딪힌 행성째로 그를 짓씹어 버렸다.
그가 패대기쳐진 행성이 으스러졌고, 서은현은 그대로 증룡의 이빨에 끼인 상태에서, 으스러지지 않게 증룡의 윗니와 아랫니를 붙잡고 버텼다.
‘피하려 했는데 못 피했다… 이 느낌. [필중]이야.’
그는 눈을 빛냈다.
‘슬슬 [필중]의 원리에 대해서도 좀 알겠군. ‘반드시 적중할’ 운수를 상대에게 부여하는 건가….’
그그그그극!
그는 증룡의 이빨에 잡힌 채 으스러지지 않으려 버티며, 무간성체를 발동했다.
유리진화가 검게 물들며, 증룡의 허상 안쪽으로 불길이 넘어갔다.
그러나 서은현은 혀를 찼다.
반응이 없었다.
‘과거의 허상이라서… 현재의 고통이 통하지 않는다. 이런 제길… 파려도해성의 약점은 둘인 줄 알았는데 셋이었나.’
그가 지금까지 발견한 파려도해성의 약점은 총 셋.
세 번째는 방금 발견한 ‘과거의 허상’이었다.
서은현의 고통을 전하는 유리진화가 아예 안 먹혔기에 유리진화의 이점이 소용이 없었다.
둘째는 ‘마음을 이용하는 심족의 공격 내지는 온전한 선술’이었다.
그의 공격은 혼의 계위에선 위력이 반감되고, 인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마음만을 이용하는 온전한 선술이라면 파려도해성의 고통을 정면에서 깨부수고 도리어 서은현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게 가능했다.
첫째는 ‘소금’이었다.
상위의 계위에선 ‘참오’를 뜻하는 소금은, 소금을 통하면 유리진화의 고통을 완전히 꺼 버리고 파훼하는 게 가능했으며,
기의 계위에서의 소금은 그 자체로 파려도해성의 구결을 흩는 성질이 있어 유리진화의 불길을 약하게 만들었다.
‘아까 그 염해밀법인지 뭔지를 쓰는 해룡 놈을 쓰러뜨려 놓아서 망정이지….’
서은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의 몸을 으스러뜨리려는 증룡의 아가리 속에서 점차 파려도해성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파려도해성이 사라지고, 서은현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선술이 발동한다.
선술 서징이 우, 양, 욱, 한, 풍, 시의 힘을 발동하며 주변으로 ‘광음’을 회전시켰다.
인력이 시공간을 왜곡시키며 증룡 주변의 시간이 빨라진다.
서은현이 히죽 웃으며 월진을 보았다.
[네놈, 선조의 법상을 무한정 유지시킬 순 없겠지?]월진이 눈을 부릅떴다.
[인간 놈… 선술의 이해도가 도대체…!]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서은현을 바라보며, 이를 질끈 깨물었다.
[좋다. 그럼 한 번에 끝내 주마! 가라!]증룡의 법상.
그 아가리 안쪽에서 광대한 기파가 느껴졌다.
서은현의 안색이 처음으로 달라졌다.
[…이건 좀 큰일인데.]콰아앙!
간신히 증룡의 아가리에서 빠져나온 서은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무색유리검을 잡았다.
키이이잉!
그가 원을 그린다.
동시에 다시금 서은현의 정신이 선역으로 치솟았다.
‘막아야 한다. 이건… 위험해.’
대라선이었던 증룡진인이었다.
개열기로 내려왔다 해도, 비록 후손의 혈통에 힘입어 허상으로만 드러났다 해도, 그가 진심을 다해 날리는 일격은, 혈음이 대강대강 날린, 벌레를 때려잡던 것 같던 일격을 상회한다.
서은현의 검에서 일월천역의 힘을 빌린 수미검무가 터져 나왔고, 증룡의 용파가 서은현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우주가 잠시 밝아졌다.
* * *
치이이이이이-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바라보았다.
‘아… 999번째 회귀가 아니군.’
죽는 줄 알았다.
동시에 나는 교만한 마음가짐으로 존자들을 상대하려 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 반성했다.
“커헉… 컥….”
나는 입 안에서 용암을 토해 냈다.
별이 된 이상, 나는 이제 피가 아닌 용암이나 천지영기를 토해 내는 몸으로 바뀌었다.
“허억… 헉….”
방금은 정말로 세계가 멸망하는 줄 알았다.
전신을 가득 채웠던 천지영기도, 파려도해성의 유리진화도, 이제는 티끌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본원성에서 천지영기가 생산되며 조금씩 몸이 회복은 됐다만, 만전의 상태가 되려면 한참은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빙긋 웃었다.
스스스스스스-
용파를 뱉었던 증룡진인의 법상이 흩어졌다.
이제 남은 건….
증룡의 법상을 소환하느라 잔뜩 지쳐 있는 월진뿐.
‘아니… 나머지 존자들도 하나둘 회복하고 있군.’
이게 존자다.
아무리 치명상을 입혀도 자체적인 천지영기 생산을 통해 순식간에 회복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회복력을 막아 버리려면, 아예 죽여 버리거나 선술을 통한 공격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월진을 보며 물었다.
“아직도 해 보시겠소, 규 도우?”
월진은 안색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인간형으로 돌아왔다.
“그럴 리가. 우리 패배요.”
“하하, 어째서지? 지금 내 힘은 다 닳았고, 규 도우와 동료들은 거의 회복된 것 같은데?”
“그대가 가진 선술의 역량이 우리를 따위로 취급할 정도로 높은 걸 알았소. 그런 그대가 기운이 좀 떨어졌다고 덤벼 봤자 바보가 될 뿐. 거기에 더해… 그대는 구현 5단계의 강자이기도 하잖소. 종사 수준에 다다른 선술은 물론이고 구현 5단계까지… 우리는 귀하를 이길 자신이 없소… 과연. 성사를 고문한 건 편법이 아닌 그대 자신의 힘이었군….”
‘그 당시에는 편법이 맞았다만….’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성사를 고문하던 시점엔 허공분쇄에만 올랐고, 천지족 수행은 합체기였다 하면 안 믿을 테니 말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쇄성기에 올랐다 하면 자기를 놀린다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
“거기다… 귀흐께선 아직 숨기고 있는 것도 있는 것 같구려.”
나는 그 말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확실히, 괴군의 인공별과 파려도해성의 형태 중 아직 안 보여 준 것도 3개가 있었기에, 그것들까지 꺼내면 이들을 얼마든지 짓밟을 순 있었다.
‘보다 잘근잘근 교육을 시켜 주려 했다만…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면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이제 도우들께선 본인에게 볼 일에 대해선 어쩌실 셈이오?”
“방금 전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선 배상을 하겠소. 또한, 그대의 공법이 혈음계와 크게 상관있는 것 같지도 않고… 심족이기도 한 평천존자의 표정을 보아 그대가 그렇게 악종인 것도 아닌 것 같군. 일단 그대의 성정에 대한 것은… 조금 더 두고 알아보겠소.”
“흐흠….”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질문했다.
“그게 끝인 건 아닌 거 같소만. 뭔가 더 있소?”
“…이래서 심족들은.”
“아직 도우의 의념은 인력화가 끝나지 않아 조금 읽을 수 있으니 말이외다.”
월진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쇄성기에 도달하면 체내의 본원성 속에서, 대자연이 순환하기 시작하오. 그러나 대자연이 아무리 순환해도 천지영기를 ‘생산’하려면 대자연의 크기가 거대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대자연이 많아야 하지. 그말인 즉….”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쇄성기 초기에는 절대로 천지영기를 홀로 생산할 수 없소. 고작 별 하나로 천지영기를 생산한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모든 존자들은 ‘최소’ 쇄성기 중기 극성. 평균적으론 쇄성기 후기. 즉 본원성을 5~6개 만든 시점부터 천지영기를 ‘생산’할 수 있소. 그래서 본존 또한 귀하가 처음에는 쇄성기 후기 내지는 대원만인 줄 알았소.”
“….”
“그런데 쇄성기 초기… 고작해야 별 하나로 쇄성기 대원만급의 힘을 생산해 내다니. 그것도 천지쌍수로! 본존은 여지껏 귀하 같은 존재를 본 적이 없소. 그데 정도라면… 필히 언젠간 진선격에 이를 테지. 어차피 여기서 귀하를 죽일 것이 아니라면, 미래의 대선(大仙)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었소.”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손사래를 쳤다.
“과한 칭찬이시구려. 어쨌든 고맙소.”
“허허, 겸양은 필요 없소. 여하튼… 본존은 이만 동료들을 다시 찾아와서 뇌성해로 돌아가겠소. 후우… 뇌성해 1층부터 다시 공략을 시작해야겠군.”
그는 한숨을 푹 쉬었고, 나는 그 말에 껄껄 웃으며 말해 줬다.
“걱정 마시구려. 아마 공략했던 층부터 진행할 수 있을 거요. 98층의 주인까지 죽였으니, 99층부터 가면 되겠지.”
“뭣? 그게 무슨 말이오?”
“금진조란 존재를 만났는데….”
난 금진조에 대한 정보를 말해 주었다.
얼마 후, 그 말을 들은 월진은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시련의 탑에 그만한 권한을 강제할 수 있는 존재라고…? 흐음… 일단 예전에 찾아본 고서를 조금 다시 봐야겠구려.”
“마음대로 하시오. 그럼 나는… 아직 못 끝낸 대결이 있어, 잠시 가 보겠소.”
“아… 함첨존자와.. 마음대로 하시오. 본존은 명귀계 도우들도 찾아봐야 해서 이만….”
그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나를 보내줬고, 난 다시 뇌성해 안쪽으로 진입했다.
뇌성해 안쪽.
장익이 자고 있는 공간장막 안쪽.
나는 공간장막을 두들기며 외쳤다.
“스승님, 일어나십시오.”
쿵쿵쿵쿵!
그러나, 안쪽에선 반응이 없었다.
“스승님!”
나는 한숨을 쉬며 검을 꺼내 들었다.
“자고 있는 척하는 거 다 압니다. 이만 기침하시지요.”
꾸과과광!
그렇게 검을 들어 장막을 내리친 순간, 나는 그대로 목이 잘렸다.
—–
작가의 말: 오늘은 자손중다의 날입니다. 혈음이 지난화에 욕도 먹은 만큼 혈음의 위무를 위해 홍범의 허락을 받아 수미산에서 1회치 이야기를 더 관측했습니다.
…
같은 건 사실 아니고, 지난 화에서 중간에 끊는 건 강호의 도의가 아니라 생각해서.
진짜진짜 이번 주까지만!
이번 주까지만 주 7일 연재를 하겠습니다.
다음주부터는 진짜 주 6일 연재입니다!
감사합니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8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