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84)
속박된 신(2)
‘…어?’
나는 목이 잘려 나가며 의아해했다.
‘장익이 아니다?’
장익일 리가 없다.
장익이라면, 쇄성기 존자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 이따위로 어처구니없는 일격은 날리지 않을 테니 말이었다.
‘장익이 우리쯤 되면 머리가 잘려도 안 죽는단 사실을 모른다고?’
나는 머리통이 날아간 상태에서 빠르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르르릉!
공간장막 안쪽에서, 뇌전으로 이뤄진 황금빛의 벌.
뇌봉(雷蜂) 한 마리가 나와, 잘려 나간 나의 머리통을 붙잡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
‘그렇군. 이건 장익이 아니라, 99층의 주인이었나!’
내 안색이 자연히 어두워졌다.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분명 99층까지 뚫었는데, 96층, 97층, 98층의 주인들은 나타났지만 99층의 주인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장익은!?’
나는 장익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쿠과과광!
99층.
장익은 그곳에서 수천 마리의 뇌봉들을 향해 박도를 휘두르며, 뇌봉들이 99층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중이었다.
부우웅!
그리고 뇌봉에 의해 얼굴이 잡힌 채 그를 스쳐 지나가던 나와 그의 눈빛이 잠시 마주쳤다.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보기 좋게 당했군. 우리 모두….”
얼마 후.
나는 뇌봉들이 가득한 99층의 중앙.
대륙만 한 거대한 벌집이 자리 잡은, 수 개의 행성을 이어 붙인 만큼 거대한 나무 앞에 도달했다.
뇌봉은 나를 벌집 안쪽.
가장 은밀한 곳으로 데려갔다.
‘왜 머리만 잘라 왔나 했더니만, 뭔가 주술적인 행위였나 보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쇄성기 존자들에게 ‘머리’란 그리 의미가 없는 부위였다.
애당초 본체가 별인데 머리고 머리가 아니고가 무슨 의미겠는가.
머리 하나 잘려도 존자들은 태연히 계속 그곳에 남아 행동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 벌은 내 머리를 그대로 잘라 내며, 그와 동시에 내 머리를 기준으로 ‘혼백’까지 따라오게 만들어 버렸다.
아무래도 ‘머리를 자른다’라는 행위를 통해 어떤 주술을 성립시켜 혼백까지 이곳으로 뽑아 온 것이 틀림없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나는 내 머리를 직접 잘라 온 이 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치지지직-
뇌전이 튀기는 듯하더니, 벌은 이내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긴 머리칼.
새하얀 발.
뇌전의 궁장을 입은 성숙해 보이는 여인.
‘어른 형태의 금진조’라는 말이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인간형으로 화형함과 동시에, 그녀의 존재감이 99층 전체에 무겁게 내려앉는 걸 느꼈다.
하나의 층이 하나의 차원에 가깝다는 걸 생각하면, 그녀는 이 차원 전체를 자신의 존재감으로 채운 것이었다.
나는 그것에서 바로 이 여인의 경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개열기… 진인!’
눈앞의 존재는, 준선(準仙)!
진선의 바로 아래 경지인 것이었다.
“…일단, 왜 나를 머리통만 잘라서 여기에 데려온 거요?”
나는 내 육신과 교신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며, 허공분쇄 및 선술의 힘을 들키지 않게 운용해 보았다.
[귀하가 증룡의 투영과 싸우는 걸 봤사옵니다. 그래서 몸체까지 다 데려왔다간 제가 감당이 안 되겠다 싶어 혼백과, 혼백에 연결된 머리만 잘라 온 것이지요.]“귀하의 경지는… 준선이 맞소?”
[수도자의 수선 경지에 대입하면 그리되겠군요.]“나를 여기에 데려온 이유는?”
[100층으로 모셔 가기 위함이랍니다.]“금진조와 당신은 무슨 관계요?”
그녀는 내가 묻는 것은 순순히 전부 말해 줬기에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그리고, 금진조와 관한 질문을 받자, 그녀는 어쩐지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웃었다.
[제 근원(根源)… 당신들의 표현으로 하자면… ‘어머니’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를 100층에 데려가려는 이유. 그게 당신 ‘어머니’와 관련 있는 건가?”
[그런 셈이지요. 하면….]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쩌어어엉!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득한 먼 곳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하더니, 나는 나와 장익, 그리고 규월진이 있는 공간으로 오게 되었다.
“이곳은…!”
장익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와 규가 놈이 힘을 합쳐 만든 공간이다. 내 심상과 네 심상, 그리고 규가 놈의 선수혈통을 이용해 잠시 불가침의 의식공간을 만든 것이지.”
장익이 예전에 내 심상에 날렸던 박도.
그 박도의 흔적을 통해 순식간에 내 심상과 그의 심상을 엮고, 증룡의 힘을 이용해서 월진이 잠시 자리를 만든 모양이었다.
하나하나가 놀라운 신기였기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군요. 일단 저는 99층의 주인으로 보이는 개열기 준선급 뇌수에게 납치당한 상황입니다.”
“알고 있다. 그리고, 여기 규월진 놈이 네게 할 말이 있다 해서 부른 것이야.”
우리는 급하게 얘기를 나눴다.
어쨌건 98층까진 공략을 완성했지만, 99층의 주인으로 개열기가 나온 데에다, 그 개열기 준선에게 최대 전력인 내가 납치당한 상황이었기에 한시가 급했다.
월진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일단, 고서를 잠시 뒤적여 보던 중, 귀하가 말한 ‘금진조’라는 존재와 시련의 탑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았소. 그리고, 바로 나와 있더군. 금진조란, 뇌성해에 있는 시련의 탑의 주인. 100층의 주인이자, 최후의 관문이라 하오.”
“…역시, 그런가.”
월진은 안색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 금진조라는 작자가 귀하에게 도움을 줬다고 했지 않소? 하나 고서에 따르면, 뇌선 금신자의 수하 중, 금진조라는 뇌수는 특히나 잔인하고 성정이 포악하며, 음험하여 사람들을 속이기를 잘한다고 하더군. 아마, 귀하를 속였다거나 한 것 같소.”
“으음…!”
“일단 지금 99층의 뇌붕들이 98층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내가 최선을 다하며 막고 있다. 문제는 99층과 98층 사이에 뚫린 구멍이 곧 막힐 거라는 거야. 그렇게 되면 네놈 혼백은 그 개열기 준선이라는 놈에게 천년만년 잡혀 있어야 할지도 모르지. 그 전에 네놈을 빨리 구출하기로 했다.”
“방법은 있습니까?”
장익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도를 뽑았다.
“내 박도를 네게 꽂을 거다. 그리고 혼의 계위에서 내 박도와 네놈을 98층으로 끌어당기겠다. 월진을 비롯한 모든 존자들이 있는 힘껏 네 영혼을 당길 것이니 잘 호응해라. 영혼이 찢어질 것 같겠지만 좀 참고.”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스승님께 우선 좀….”
“알겠다.”
나는 장익이 나를 끌어당기기 쉽게 장익의 심상 속에 아심검을 박았다.
장익은 내 심상 속에 함선멸천의 초식을 박았다.
우리는 빠르게 연결되었고, 장익과 나 사이에 생긴 ‘연결’을 서로가 잡았다.
“자 그럼 당기겠….”
그리고 장익과 월진 및 하층에 있던 다른 존자들이 나를 잡아당기려던 그 순간이었다.
파칭-
시간이 정지한 것 같다.
그리고, 정지한 시간 속에서 의식을 차린 것은 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사박, 사박, 사박….
장익과 나의 심상공간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거늘.
외부인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그녀는, 새하얗고 말랑이는 발을 가지고 있었다.
뇌전으로 된 궁장을 입고 있었으며, 백금발을 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양수진의 선수, 금진조였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더니 말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일단 오시지요. 증룡의 후손이 증룡의 힘을 빌려 법칙을 세운 차원이라, 억지로 들어오기 힘들었답니다. 버티는 것도 쉽지 않고요.]“아니, 나는 나가지 않을 거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발 하나 까딱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내 의식은 어느새 99층.
금진조의 자식이라는 뇌봉 여왕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뇌봉 여왕은 갑자기 자리에 나타난 금진조를 보고 자리에서 그녀를 향해 절을 올렸다.
[주인님께 절을 올리나이다.] [예는 되었다. 그리고 주인이라 부를 것 없단다. 이제 주인이 바뀔 테니 말이지.]그녀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내 목을 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녀가 가는 길을 향해 뇌봉 여왕이 팔을 뻗자, 차원문이 열렸다.
저벅, 저벅….
금진조는 나와 함께 차원문을 열었고, 나는 99층 너머.
뇌성해 시련의 탑 100층 차원에 한 번에 도달하였다.
우우우웅!
시련의 탑 100층은 마치 옥상 같은 느낌을 주었다.
황량한 벌판 같은 탑의 옥상 위쪽.
그 위로는 거대한 천구의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그 천구의의 구조를 보며 흠칫 놀랐다.
‘…영승?’
19회차의 마지막 당시 보았던, 남극보의 영승과 꽤 그 구조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영승처럼 기이하고 신성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진 않았고, 그처럼 무시무시한 격을 뿜지도 않았다.
시련의 탑 최상층의 천구의는 그저 느릿하게 움직이며, 간혹 별자리를 닮은 빛무리를 조금 뿜어내는 거대한 기관 장치일 뿐이었다.
[어떠신지요? 예전 제 주인님이 천상의 장인을 겁박해서 만들어 낸 만계(萬界)의 비상 탈출구. 천벌의 주인에게서 도망 다니기 위해 만들어 낸 선보(仙寶) 홍황도(洪荒道)입니다. 지금은 인격으로 쓸 대체재가 없어 그냥 커다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말이지요. 예전에는 ‘어디로든 가는 길’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감옥’이 되었답니다.]“…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뭐냐.”
[귀하에게 이 훌륭한 선보 홍황도와 더불어, 시련의 탑 전체를 좌지우지할 권능을 선물하기 위해서랍니다. 마음에 드시는지요?]“그렇다면 그냥 그 정원에서부터 잘 설명해 줬으면 됐을 텐데 굳이 이런 식으로 데려온 이유는 뭐지?”
[후후… 순수하시군요. 주인님과는 정반대의 인물상이야….]금진조는 키득거리며, 내 머리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선 제 소개를 다시 하겠습니다. 인사드리지요, 저는 금진조. 금신자 양수진의 시첩 겸 애완동물이자… 그가 만든 전투 병기, 뇌수(雷獸) 성체(成體). 동시에 양수진을 믿고 따랐다가, 그의 손에 멸문당한 뇌조금진문(雷鳥金振門)의 모든 원령(怨靈)의 집합체랍니다. 그리고 양수진 사후에는 뇌성해 시련의 탑 100층에 묶여 버려, ‘시련의 탑’을 관리하는 관리자이자… 동시에 ‘시련의 탑’에 의해 몸 전체가 조각조각 쪼개져 죽어 가고 있는 가련한 존재랍니다.]그녀는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인님께서는 참 잔인도 하시지요? 당신을 따르던 문파를 한 줌 망설임도 없이 갈아서 괴물로 만들었지요. 그러고는 전투 병기로 실컷 써먹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라는 말 딱 한 마디를 남기고, 따라가겠다고 매달리니 자기 약지에 묶어서 일월천역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다음에는 시련의 탑을 통해서 몸 전체가 억겁의 시간 동안 갈려 나가 결국 소멸하게 조치까지 취해 놓으셨으니… 하, 하하, 아하하하하하하!!!]그녀는 미친 듯이 광소를 터트렸다.
[원래 시련의 탑이 시련의 탑이라 불린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답니다. 그저 천벌의 주인이 주인님을 쫓아올 때마다 죽음과도 같은 시련을 겪고 사용하셔서 시련의 탑이라 불린 거지요. 1층부터 100층까지에 이어지는 괴물들을 상대해야 하기에 시련의 탑이라 불린 게 아니란 겁니다.]우득….
그녀가 내 머리통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머리로 뇌전이 흘러들며,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1층부터 99층을 지배하는 아이들은… 시련의 탑을 통해 제 몸이 갈려져 나가게 된 후,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간 살점이랍니다. 가장 큰 덩어리는 아래층의 뇌봉이 되고, 뇌봉에서 또다시 그 이하 경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층마다 계속해서 제 살점이 분해되며, 마침내에는 뇌성해 바깥으로 배출되는 식이지요. 주인님께서는, 기껏 만들어 놓은 저를 수억겁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이 탑 속에 가둬 놓고 분해해 버리기로 마음먹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언젠가, 주인님의 유지를 완성하는 이가 나와서 뇌성해에 도달한다면, 그자에게 내 자리를 맡기고 나는 이곳에서 도망칠 것이라고. 도망쳐서… 주인님이 돌아갔다는 ‘고향’을 찾아가, 주인님의 소중한 사람을 모조리 뇌수로 만들고, 그 뇌수와 서열 정리를 한 후 주인님의 진정한 아내가 될 것이라고… 그리 결심했답니다.]우드드득!
그녀의 손가락이 내 머리를 파고들었다.
[저 정도로 고통받았다면, 그 정도 자격은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도 주인님의 유지를 이어받았다면, 저는 당신에게 있어 일종의 사저인 셈이지요. 이 사저를 위해 부디 이 탑 안쪽에 영세영겁토록 갇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너무 오래 기다리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언젠가 주인님을 설득해, 이 끔찍한 해체 시설을 없애러 와서 당신을 구해 드릴 테니까요.]완전히 맛이 가 버린 눈빛으로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점차 그녀의 손을 통해, 선술 수준의 금제가 내 혼을 속박하는 게 느껴졌다.
금진조를 묶었던 인력의 사슬이 나를 얽어매었다.
“…그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잡아서 이곳에 매달아 뒀으면 됐을 텐데. 왜 굳이 시련의 탑을 통하게 한 거지?”
“그런가. 그런데 굳이 이렇게 머리만 떼 온 이유는 뭐냐.”
[당신이 저항하면 골치 아프니까요. 걱정 마십시오. 아프지 않을 거랍니다. 머리에만 조금 충격이 집중될 겁니다. 제가 나가고 나면 당신의 본체도 탑 안에 던져 놓고 갈 테니, 적당히 나중에 찾아 쓰십시오.]“그럼 내 어깨를 지금 이렇게 칼로 쑤시는 이유는 뭐냐.”
나는 어깨를 칼로 쑤시는 느낌에, 그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당신의 존재 자체를 머리와 그 이하로 분리한 상태입니다. 당신에게 어깨의 통각이 느껴질 리가 없답니다.]“이런 젠장…! 헛소리하지 마라! 지금 내 어깨를 마구 후벼 대는 게 네놈이 아니라면 누구라는 거냐!!!”
나는 허공분쇄를 통해 일격을 날리기 위해 그녀의 집중을 흐트러트리려 마구 헛소리를 내뱉었다.
“어깨가 아프단 말이다! 어깨를 만지지 마라! 죽여 버릴 테다!!!”
그러나 헛소리를 하면서도,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진짜로 아프긴 하군.’
그녀의 말마따나, 나는 선술과 같은 것으로 머리와 그 아래가 분리된 상태였다.
그 덕에 혼백이 머리에 묶여서 내 본체에는 감각이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어깨가 아픈 걸까.
‘…뭐, 아픈 건 사실이니까 금진조의 집중을 조금 흩는 데엔 도움이 되겠어.’
“어깨를 만지지 말아라! 어깨를!”
[아까부터 무슨 헛소릴… 헛!]그리고, 금진조는 갑자기 아래쪽 어딘가를 쳐다보더니 급하게 놀란 기색이 되었다.
‘지금이다!’
어깨를 통한 정신 분산이 통했다.
남은 것은….
단악검법
제삼십삼초
수미(須彌)!
* * *
뇌성해 95층.
서은현이 장익인 척 공간장막 뒤에 숨어 있던 99층의 주인에게 급습당해 머리를 잃은 곳.
그곳에는 서은현의 몸체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힘을 회복한 존자들.
그리고 99층의 뇌봉을 막고 있던 장익을 포함한, 총 25명의 존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명귀계 도우들께선 도대체 왜 사라졌던 거요?”
“그게… 미안하오. 말할 수 없소.”
“뭐 됐소. 함천존자께선… 99층을 뚫으실 순 없소?”
“99층에 뚫렸던 구멍이 닫혔다. 99층의 주인이 작정하고 99층의 장막을 단단하게 틀어막고 있어. 우리가 전부 힘을 합쳐야 겨우 틈이나 나올 거다.”
월진은 한숨을 쉬었다.
“…뇌성해 공략에 있어 그동안 많은 희생이 있었다만… 선재(仙才)를 가졌다 사료되는 수준의 인재를 이렇게 허망하게 잃다니… 광한계의 손실이군.”
다른 존자들 역시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번 종말을 피하려면 어쨌든 그가 도와줘야 했을 터인데….”
“우리 존자들만으로, 개열기 수준이라 사료되는 99층의 주인을 뚫을 수 있을지….”
“성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외다.”
“하지만 무슨 수로? 성사들께서 이곳으로 강림하시려면 매개체가 있어야 하외다. 그것도 성사들의 본질과 연관된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매개체가!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오천 년에 걸쳐 성사들이 강림할 제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제단이 제대로 발동할 확률은 4할밖에 안 되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번쩍!
목을 잃은 서은현의 몸체.
그 왼쪽 어깨로부터 어마어마한 검광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뇌성해에 강림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이, 이건…!”
도천존자 극광은 기세를 느끼곤, 바로 머리에서 꽃을 피워 꽃가루를 날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광한계의 존자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쩌어어억!
서은현의 왼쪽 어깨에서부터, 비쩍 마른 고목나뭇가지 같은 손이 튀어나왔다.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인 그 손은 그대로 서은현의 어깨 안쪽에서, 그의 몸을 젖히더니 그 본체를 뇌성해에 강림시켰다.
우우우웅!
뇌성해 전체가 바깥에서 들어온 이물질을 밀어내려는 듯 강하게 떨렸으나, 그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강림하였다.
새하얀 빛으로 휩싸인, 마른 고목과도 같은 존재.
그 존재는 광한계의 관리자.
백운 성사였다.
[성사를 배알하나이다!]24명의 존자들이 일제히 예를 취하며 외쳤다.
백운은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저 머나먼 위층.
99층 너머를 노려보았다.
[마음엔 안 드는 놈이지만, 어쨌든 같은 성자(聖者)로서 강림할 매개가 되었으니 도움은 되는군.]그녀는 도천존자 극광을 흘긋 본 후, 혀를 찼다.
[못난 놈. 머저리 같은 짓거리는 그만하고 나를 보조나 해라. 그분에 대한 신심(信心)이 얼마나 옅으면 인간족 놈도 할 수 있는 매개 역할도 제대로 못 한단 말이냐!]그 말에 극광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극광을 한 번 꾸짖은 후, 백운은 한 달음에 98층과 99층의 경계로 날아갔다.
다음 순간.
[수극.]그녀의 주변으로 새하얀 구름이 일렁이는 듯하더니, 거대한 목창의 형상을 취하였다.
쩌어어엉!
백운이 목창을 휘둘렀다.
그녀의 일격에 99층의 입구가 박살 나며, 차원의 통로가 생겼다.
부우우우우웅!
수억 마리의 뇌봉들이 일제히 백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백운이 입을 벌렸다.
[—–!]찌이이잉!
거대한 사자후가 차원 전체를 뒤흔들었고, 수억 마리의 뇌봉은 그대로 터져 죽었다.
파치직!
그녀의 앞에, 뇌봉의 여왕.
서은현을 급습해서 납치했던 장본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백운을 보며 비웃었다.
[이게 누구신가. 폐급이 된 백운이 아니신가? 예전 생각이 나는구나. 금신자의 앞에서 살려만 달라고 빌었던 그 백운이 감히 그분의 권능을 사역하는 내 앞까지 오다니. 그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정말….]그리고 직후.
콰득!
백운의 손이 뇌봉 여왕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빠드드드득!
뇌봉 여왕의 머리는 그대로 백운에 의해 쥐어 터졌다.
위이이잉!
백운의 주변으로 복사꽃 향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광한계의 성사, 백운이 머나먼 우주의 끝에서 광한계의 힘을 끌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 머저리 같은 놈이. 내가 무서워했던 건 금신자였지, 그 찌꺼기도 못 되는 네놈 따위를 두려워했던 것 같으냐. 너 같은 되다 만 개열기 놈과 진정 진선을 앞에 뒀었던 내가 동급으로 보이느냐.] [으, 으웁…우우웁…!]뇌봉 여왕은 도망치려는 듯했으나, 백운의 손아귀에서 도저히 도망칠 수 없었다.
‘서, 선술…!’
백운의 손아귀에 잡힌 뇌봉 여왕의 눈이 공포로 차올랐고, 백운은 비릿하게 웃으며 그녀를 그대로 점차 깔아뭉개기 시작했다.
[방금 전엔 아주 말을 잘했다. 자아, 빌어 봐라. 살려만 달라고 빌어 봐라. 개처럼 발을 핥으며, 모든 걸 바칠 테니 살려만 달라고 빌어 봐라. 그리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8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