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88)
공허한 자(3)
“일단, 지금 네게 전명훈을 빼낼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가장 쉬운 방법은 이것이지요.”
“뭐지?”
“제 탁혼만천으로 동료분의 영혼을 쪼개서 배열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배열을 복사해서 적당한 생령의 영혼에 붙여 넣으면….”
“그런 건 필요 없다. 혹시라도 내 친구의 영혼에 그런 짓을 했다간 우주를 멸망시키더라도 네놈을 죽이겠다.”
“알겠습니다. 이 방법은 기각하지요. 그럼 두 번째 방법.”
서휼이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뇌성해 내부, 시련의 탑의 안쪽에 자리한 수경에 달하는 뇌수들… 그 뇌수들을 전부 세뇌하는 겁니다.”
“선수 금진조를… 네가 세뇌할 수 있단 말이냐?”
“못 할 건 없지요. 제 목적은 이미 짐작하셨겠지요?”
“…아마, 혈음(血陰)의 세뇌겠지.”
나는 그동안의 서휼의 행보를 토대로 추측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무수한 탁혼만천으로 세뇌를 준비하고, 혈음의 분혼의 분혼인 자음에게서 비롯된 해룡족의 육신을 고집하며, 끝끝내 혈음의 분혼인 현음을 세뇌해 자신으로 대체하는 데에 성공했다.
‘해룡족에서부터 현음까지 세뇌를 통해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최종 목표는 당연하게도… 혈음이겠지.’
거기다가 나는 예전 서휼을 읽으며, 그의 최종 목적이 [누군가]를 세뇌하는 것이란 걸 읽어 냈다.
“혈음을 세뇌해서, 그 찌꺼기의 찌꺼기의 찌꺼기나 다름없는 네 녀석이 완전한 자아의 독립을 실현하는 것. 그게 지금까지 내가 네놈을 관찰하며 결론 내린 네 녀석의 목적이다. 아닌가?”
“….”
서휼은 빙긋 웃을 뿐 이 말엔 답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다.
‘이게 녀석의 진짜 목적이든 아니든, 놈에게 꽤 중요한 일인 건 확실해 보이는군.’
그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뭐, 어쨌든 그렇다고 쳤을 때. 서 도우께서는 제가 어째서 바로 탁혼만천으로 혈음을 세뇌하지 않고 굳이 밑바닥이나 다름없는 해룡족들부터 시작해서 기어 올라가고 있다 생각하십니까?”
“격 차이가 너무 압도적인 탓이겠지.”
혈음이 아무리 썩었을지언정 진선이다.
그것도 나름 저승의 천존의 오른 자리.
명계 수석판관장의 자리까지 올랐던 유호덕의 찌꺼기로서 유호덕의 권능을 일부나마 수복한 상태다.
진선 중에서도 꽤 강자일 터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격 차이가 너무 강하게 나지요. 혈음 본체에 비해 저는 버러지. 아니, 버러지조차 되지 못한 무기물에 지나지 아니합니다. 모래 한 톨과 사람의 차이는 어마무시하지요. 만약 모래 한 톨이 사람을 세뇌한다고 하면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하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래 한 톨은 전력을 다하면 다른 모래는 세뇌할 수 있습니다. 다른 무기물도 세뇌할 수 있고 말이지요. 그리고… 결국 생령의 몸은 피, 뼈, 살갗, 장기, 더 들어가면 세포나 유전물질이라고 불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더 들어가면 그 역시 무기물로 이뤄져 있고 말이지요. 모래는 인간을 세뇌할 수 없지만, 인간을 이루는 무기물들은 조금씩 조금씩 세뇌할 수 있습니다.”
그가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나선형의 유전자. 세포, 그리고 손톱과 발톱에서부터 인간을 이루는 여러 부위들이었다.
“모래 한 톨에서 유전물질 한 칸. 한 칸에서 두 칸. 두 칸에서 다섯 칸. 다섯 칸에서 세포 하나. 세포 하나에서 세포 다섯. 세포 다섯에서 손톱, 발톱, 머리카락, 피부, 혈액, 장기, 뼈… 그렇게 사람의 뇌까지. 사람 그 자체를 자기 자신으로 만드는 것.”
그는 종래엔 완전한 인간의 그림을 그린 후, 주먹을 거세게 쥐었다.
슈르륵-
인간의 그림은 서휼의 손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이… 사람에 비하면 버러지조차 못 되는 존재가 사람을 세뇌하여 이길 수 있는 방식인 겁니다. 밑바닥에서부터 그 존재를 이루는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전부 세뇌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오셨다면, 서 도우라면 짐작하셨겠지요?”
“…뇌성해 시련의 탑. 1층의 연기기 수준 뇌수부터 시작해서… 2층, 3층, 4층을 거쳐 뇌봉 여왕까지… 점차 기어 올라가야 한다는 거냐. 그리고 끝에는 금진조를 세뇌시키고?”
“그렇습니다. 서 도우의 동료분인 전명훈을 구해 내는 유일한 방법이지요.”
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 도움은 전혀 필요 없어 보인다만. 뭔가 내 도움이 필요한 것 같군.”
“그렇습니다. 제가 뇌성해 안쪽에 탁혼만천을 심은 대상은, 오직 서 도우의 동료분인 전명훈뿐. 그러므로… 저는 전명훈을 통해서 1층의 뇌수들에게 탁혼만천을 감염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전명훈은 현재, 106층에서 금진조에게 발로 희롱당하며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진선격의 코앞에서 탁혼만천 감염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지요.”
“뭘 도와야 하는 거냐.”
“금신천뢰문의 숨겨진 공법… 아니, 선술에 대해선 알고 있습니다. 멸신겁천이라지요? 자신의 운명을 횡액으로 뒤덮는 대신 진선이 부여하는 운명을 회피하는 선술. 그걸 제게 알려 주십시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내 알기로, 선수는 역사에 관련된 존재들이라 들었다. 그런데 역사에 관한 존재들 앞에서 운명을 회피하는 선술이라니, 별로 효율적이진 않을 것 같은데?”
“흐흠… 오해가 있으시군요, 서 도우. 금진조는 진선격의 뇌수라서 선수라고 불리우는 것뿐. 사실 진짜 선수가 아닙니다. 애당초 문파원을 덩어리지게 만들어서 융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인공 선격 같은 사법(邪法)으론 절대 진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금진조는 역사의 힘 같은 건 절대 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천족이었던 금신자의 병기였던 만큼 운명을 다루는 쪽이지요.”
“알겠다. 다만… 멸신겁천은 네게 전수하기 힘들 것 같군.”
내 말에 서휼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째서인지요. 금신천뢰문 뇌도공법을 전부 익히는 게 조건인 것쯤은 압니다. 지금 당장 탁혼만천을 통해 조건은 달성이 가능합니다만….”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멸신겁천의 구결을 속으로 되뇌었다.
멸신겁천은 세계 인권 선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법이자 선술.
그러나 동시에….
‘양수진… 이 인간….’
-비인부전(非人不傳).
양수진의 의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나는 서휼에게 멸신겁천을 전달하려는 시도를 ‘떠올리자마자’ 눈앞에 멸신겁천의 구결들이 모여 글자를 형성하는 걸 보며 혀를 내둘렀다.
동시에 이 세계의 인간들에겐 세계 인권 선언을 알려 주지 말라는 양수진의 의지가 느껴졌다.
‘비인간에게는 절대로 전수하지 말라니. 너무하시는군.’
이 세계의 존재들은 세계 인권 선언을 향유하지 못하는 걸 넘어, 존재조차 알지 못하게 하라는 그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아무래도 멸신겁천은 남에게 전수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것 같군. 금신자의 의지가 막아서고 있다.”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하면 서 도우가 직접 멸신겁천을 사용해 주셔야겠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전명훈에게 재액을 흩뿌리란 거냐.”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동료분을 구할 길이 없게 됩니다.”
“알겠다. 그럼 일단 정확히 멸신겁천을 통해 뭘 하려는 거냐.”
서휼은 내게 멸신겁천을 이용해 금진조의 눈을 가리고, 그사이에 탁혼만천을 흩뿌리는 방법 등을 얘기해 주었다.
그의 작전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저 역시 바로 준비하지요.”
서휼은 현음의 몸을 차지한 상태로 그대로 그림자에 녹아 사라졌고, 나는 하늘 위로 날아오르며, 본체를 드러냈다.
쿠구구구구구!
별 위쪽으로 내 본체가 드러나자, 별에 거주하는 인간족과 여러 생령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나는 존재감을 최대한 억누르며, 쓸데없는 지식의 주입으로 생령들의 머리가 폭발해 버리는 일이 없게 조절하며, 별 전체에 전음을 보냈다.
[별의 거주민들은 들어라. 본존(本尊)은 머나먼 이계에서 온 존재노라. 본존은 그대들을 축복할 것인즉, 그대들은 본존의 축복을 받을 준비를 할지어라.]우천대성에서부터 광대한 의지가 그들을 쓸고 지나가자, 별에 사는 모든 생령들은 일제히 각자 나를 향해 절을 올리며 기도를 하였다.
며칠 후.
별의 거주민들은 나를 완전히 별의 신으로 떠받들었다.
나는 신탁을 통해 별의 거주민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곧이어 별의 대륙 중앙.
가장 영맥이 풍성한 곳에, 가장 성대한 제단이 만들어졌다.
멸신겁천을 위한 제단이었다.
제단에는 무수한 저주와 횡액에 대한 경문들이 광한계어로 음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몇 개월 정도 더 제단을 계속 키우며 서휼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6개월 후.
마침내 서휼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작하시지요, 도우.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오냐.]나는 별의 주민들에게 신탁을 내려, 별에 축복을 줄 것임을 약속한 후 제의 준비를 시켰다.
사흘 후,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파아아앗!
별의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제단 위쪽으로 내 화신체가 강림했다.
주민들은 모두 각자의 언어로 나를 향해 절을 올렸고, 나는 말없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파려도해성
쌍화장천
화르르륵!
음혼화와 백란화가 내 양손에 맺힌다.
유리진화가 제단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제단에 음각된 온갖 저주문들의 구결을 발동시켰다.
무시무시한 흉화(凶火)가 제단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준비됐나, 서휼.]그리고, 서휼의 답이 들려왔다.
츠아아아아!
뇌성해 인근에 있던 별들이, 하나둘 빛을 잃기 시작했다.
별들 전체가 어둠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지난 반년간, 나는 멸신겁천을 준비했고, 서휼은 주변의 별들을 세뇌시켜 현음의 힘으로 뒤덮으며 탁혼만천을 준비했다.
이내, 뇌성해 인근 28개의 별들이 모두 빛을 잃었고, 그 별들이 진(陣)을 그리기 시작했다.
성맥이 뒤틀린다.
인력이 뇌성해에 집중된다.
화르르르르르륵!
동시에 내가 서 있는 별의 모든 영맥이 내게 몰렸고, 나는 내 본체와 호응하며 유리진화를 더욱 거세게 끌어 올렸다.
푸확!
유리진화가 솟구치며, 내 화신체는 이 별의 성층권.
뇌성해가 잘 보이는 곳이자, 주변 서휼이 잠식한 별들과 교감하기 쉬운 곳에 도달하였다.
[멸신겁천(滅神劫天).] [탁혼만천(濁魂滿天).]서휼의 어둠이 나를 감쌌다.
동시에 나는 아심검을 꺼내며, 내가 동료들의 심상에 박아 놓은 모든 아심검을 공명(共鳴)시키기 시작했다.
[계획은 잘 주지하십시오. 제 탁혼만천과 서 도우의 아심검이 혼의 계위를 통해 전명훈에게 도달하면, 서 도우가 멸신겁천을 비롯한 갖은 방법으로 금진조의 주의를 끄십시오. 저는 그사이, 시련의 탑 하위 뇌수들에게 탁혼만천을 감염시키겠습니다.] [알고 있다.]나는 서휼과 나란히 어둠 속에서 혼의 계위를 통해 뇌성해로 진입하였다.
저 멀리 전명훈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 파동은 멀리 있는 듯했으나, 나와 서휼이 아심검과 탁혼만천을 동시에 발동하자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파아앗!
그와 동시에 나는 뇌성해에 진입하였다.
쿠르르르릉!
횡액으로 끌어모은 먹장구름이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서휼은 그 횡액의 구름 아래로 은밀히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나는 이왕이면 전명훈의 영혼이나마 빼내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내가 뇌성해로 진입할 수 있었던 전명훈을 돌아보았다.
[…전명훈….]그는 새하얀 끈 같은 것으로 눈과 입이, 전신 결박되어 있었고, 그의 귀에는 작은 요정 같은 것들이 뭔가를 끊임없이 세뇌하듯 속삭이고 있었다.
내가 전명훈에게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푸확!
먹장구름이 일부 걷히며, 익숙한 모습이 드러났다.
금진조였다.
그녀는 완전한 뇌전의 벌새 형태로 변하여 나를 노려보며, 진선의 언어로 우짖었다.
: : 감히 네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나와 낭군(郎君)의 좋은 시간을 방해하느냐. 전생 시절 낭군의 선술을 운 좋게 얻은 것이 낭군의 은혜이거늘. 어찌 감히 낭군에게 횡액을 부여해 멸신겁천을 사용하느냐. 가증스럽구나. 가소롭구나. 본녀가 멸신겁천을 상대할 방법을 모를 정도로 어리숙해 보이느냐. : :
그녀는 이젠 나 따위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나를 존재감으로 찍어 누르며 죽이려 하였다.
나는 그녀를 최대한 직시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멸신겁천을 유지했다.
그러나….
‘밀리고 있다. 멸신겁천이…!’
그녀의 날갯짓이 일어날 때마다, 액운을 모아 만들어 낸 멸신겁천의 먹장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멀었나! 서휼!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금신자 양수진의 시첩이자 전투 병기이기 때문일까.
금진조는 멸신겁천을 상대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파훼법까지 아는 듯 빠르게 멸신겁천을 종식시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탁혼만천을 감염시키는 서휼이 걸려 버릴 터였다.
‘특단의 대책을 써야 한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솔직히….
정말로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던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급한 상황.
‘이 순간을 놓치면, 전명훈은 십만 년 동안 이 미치광이에게 단단히 조교당하고 세뇌당해, 인격이 바뀌어 버릴 터!’
어떻게든!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부르기 싫었던 존재의 그 이름을, 다시 입에 담았다.
[정려!]첫 번째 외침.
인력(引力)이 미약하게 형성된다.
자연히 놔두면 곧 사라질 듯 미약한 인력이었다.
[정려!!]두 번째 외침.
금진조가 격노하며 내게 달려들고, 나는 수미검무와 멸신겁천을 동시에 응용하며 겨우겨우 그녀의 일격을 막았다.
동시에 인력이 강화되며, 인력 너머의 존재와 내가 이어지는 게 느껴진다.
: : 네 가 감 히 누 구 의 성소(聖所) 에 흉 칙 한 존 재 를 부 르 느 냐 !!! : :
금진조가 진심으로 분노한 듯 나를 완전히 죽여 버리려 힘을 총동원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정!!! 려!!!]나는 온 힘을 쥐어짜 내 정려를 불렀다.
다음 순간.
콰치지지지지직!!!
금진조의 발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맑고 티 없이 깨끗한 발을 가진 존재가 나와 금진조 사이에 나타났다.
파앗!
금진조가 나를 말살하려 소환했던 무수한 선술과 뇌전의 권능들이 일순간에 [삭제]되었고, 그녀는 강제로 뇌수의 형태에서 소녀의 형태로 되돌아와 백발의 여인 앞에 나동그라졌다.
[저, 저리 가라. 오지 마라. 꺼져라! 꺼지란 말이다, 이 마귀 놈!]진선의 말을 할 자격 자체가 일순간 박탈된 듯 금진조는 영언을 터트리며 넘어진 상태에서 백발의 여인에게서 멀어지려 발버둥을 쳤다.
그리고, 백발의 여인이 한 손가락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은 마치 ‘쉿’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 아아…아아아….”
반쯤 뇌전의 정령이나 다름없던 형태의 금진조는 그 행위 한 번에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변해 버렸고, 그녀의 목소리도 육성으로 변해 버렸다.
백발의 여인이, 금진조에게 다가갔다.
금진조는 그래도 진선 격의 존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엉금엉금 기어서 백발의 여인에게 벗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어쩐지 마비가 걸려 버린 듯 그녀는 그 자리에 엎어져 버렸고, 백발의 여인은 금진조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진조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하, 하지 마. 거짓말하지 마. 주인님이야. 주인님께서 돌아오셨어. 주인님이시라고. 주인님께서 환생하신 거란 말이야. 거짓말하지마.거짓말하지마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금진조는 백발을 늘어뜨린 존재의 속삭임에 발버둥 치는 듯하다가, 급기야 다시 의지만으로 힘을 어찌어찌 찾은 듯 영언을 터트렸다.
[뇌성해에서 나가! 이 흉측한 괴물아!]쿠르르릉!
양수진의 약지가 미친 듯이 뒤흔들리며 곳곳에서 천뢰가 우릉거렸다.
뇌전이 백발의 존재를 이 세계에서 밀어내려는 듯했다.
그러나 백발의 존재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 오히려 양팔을 벌리며 웃었다.
드드드드드!
그녀의 웃음소리만으로 뇌성해 전체가 떨려 왔다.
금진조가 백운을 공격할 당시 사용했던 그 울부짖음조차 저 존재의 웃음소리만도 못하단 것이 느껴졌다.
‘저것이… 녀석의 진짜 격….’
그리고, 백발의 존재.
정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 나 주 를 대리 해 전 하 노 니 금신자 가 남긴 쓰 레기 야 감 히 주 의 것 을 그대 품 안에 영 원 히 넣 을 수 있을 것 이 라 생각 치 말 라 언 젠 가 겁(劫) 께 서 그를통해 다 시 나 와 유폐 를 벗어날 지 어 라 : :
[예언하지 마라! 운명을 부여하지 마! 안 돼! 보낼 수 없어! 주인님은 이제 내 것이야. 뇌성해 안에서는 내가 신(神)이다! 주인님의 명(命)은 내가 정한다! 꺼져 버려라! 추잡한 배신자야!]: : 배 신 은 그 가 한 것이 겠 지 : :
쿠구구구구구!
그 말을 끝으로 정려는 뇌전 그 자체로 변해 가며, 불길한 웃음을 남기고 금진조에 의해 뇌성해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녀의 형상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서휼에게서 답이 왔다.
[나가시지요, 서 도우. 완료했습니다.]나는 문득 정려의 왼손 약지에, 똑같이 생긴 두 개의 가락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며, 서휼과 함께 뇌성해 바깥으로 도망쳤다.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면 금진조가 내 정신을 붙잡아 두고 십만 년은 고문했으리라.
쿠르르릉!
뇌성해의 차원장막, 그 표면 전체에서 어마어마한 뇌전들이 일렁인다.
나는 그 뇌전들을 바라보며, 정려가 방금 보여 준 격에 몸서리를 쳤다.
‘예상보다 거물이었군. 정려….’
그녀가 보여 준 격은 남극보의 영승에 비해 전혀 달리지 않았고, 순수하게 파괴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영승을 능가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보다… 정려가 내게도 뭔가를 할 거라 생각했다만… 예상외로 아무 짓도 안 하고 그냥 가는군.’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방금 전 멸신겁천의 제사를 지낸 별에 다시 화신체를 보냈다.
[너희 모두, 그동안 본존의 축복을 받을 준비를 하느라 고생했노라. 본존이 이 세계에 축복을 내리노라.]나는 이 별 전체에 내 본체로 생산한 천지영기를 잔뜩 불어넣어 주었다.
그런 후, 나는 제단 공사 작업에 참여한 나를 모시는 제사장과 사제들, 그리고 인부들 모두에게 내 숨결을 뿜었다.
후우우-
내 숨결을 맞은 이들의 주변으로 천지영기의 덩어리가 영성(靈性)을 맺는 듯하더니, 그들에게 흡수되었다.
원래 수도자였던 이들은 경지가 한층 올라갔고, 범인이었던 이들에겐 전부 영근을 부여해 주었다.
갑자기 영근을 가지게 된 이들은 얼떨떨해했고, 경지가 높아진 이들 역시 수명 문제가 해결되어 내게 매우 감사해했다.
앞으로 100년간 저 별은 못해도 등선향 수준의 천지영기를 지닐 것이니, 저 별이라면 비승할 만한 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올 터였다.
나는 그렇게 조치를 취해 준 후, 화신체를 회수한 후 본체로 돌아와 별 전체를 월수궁무록으로 감쌌다.
우우웅!
성맥안, 태동, 명각, 허각, 그리고 의식영역.
그 모든 감각에서 존재가 지워져 버리도록, 나는 별을 베었다.
파앗!
별은 일순간 우주의 궤도에서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이 월수궁무록은 300년 이상 유지될 터였다.
금진조는 이 별을 발견하지도, 내가 이 별에 축복을 줬다는 것도 모를 터다.
그리고 300년이 지나면, 그때쯤엔 내가 축복을 준 흔적이 모조리 사라져서 그녀가 벌하려 해도 벌할 근거조차 없으며, 그때쯤이면 전명훈과 시간을 보내느라 이 별엔 신경도 쓰지 않을 터였다.
나는 그렇게 조치를 취한 후 빠르게 별의 길에 올라탔다.
쿠릉, 쿠르르릉!
뇌성해 인근의 공간이 떨린다.
동시에 그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살의가 나를 향해 쏘아져 오는 게 느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린 금진조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콰르르르릉!
뇌성해에서부터 거대한 뇌전의 팔이 빠져나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금진조가 나를 잡기 위해 힘을 쓰기 시작했다.
파아앗!
나는 별의 길에 올라타 빠르게 머나먼 우주공간을 도약하며, 내 그림자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네가 금진조를 ‘유도’하려면 얼마나 걸리지?]계획 시행 이전에 미리 물어보았다.
정말로 탁혼만천으로 금진조를 장악할 수 있느냐고.
서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진선을 진정으로 세뇌하는 것은, 원래 말 자체가 안 되는 일이라고.
그가 할 일은 금진조의 안쪽에 탁혼만천을 심어, 그녀가 전명훈이 도망칠 수 있는 ‘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를 유도하는 데에만도 이런 번잡한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서휼의 대답이 들려왔다.
[만 년. 대략 구천 년에서 만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종말이 다가올 시간이군.] [그 정도가 아니라면 진선의 정신을 유도하는 선술을 심는 게 쉬운 건 아니지요.] […알겠다.]만 년.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었지만, 금진조가 내세운 십만 년에 비하면 그래도 가능성은 있는 시간이었다.
만 년 정도면 그래도 버틸 만도 하지 않나 싶었다.
‘만 년만 버텨라, 전명훈.’
반드시 구해 주겠다.
나는 수천 광년의 거리를 도약하면서도 우리를 쫓아오는 뇌전의 팔에게서 도망치며, 전명훈의 안녕을 빌었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8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