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89)
존자들의 길(1)
파치지지직….
며칠간 얼마나 별의 길을 통해 금진조의 마수에서 도망쳤을까, 마침내 금진조의 팔은 점차 힘을 잃고 스러져 버렸다.
‘본인이 직접 뇌성해 바깥으로 나오는 건 불가능하고, 갇힌 상태에서 뇌성해 바깥쪽으로 힘을 쓰려니 힘이 달렸나 보군.’
파아앗!
이제 별의 길도 끝자락에 도달해, 평운계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우주공간에 떠 있는 커다란 넓적다리 모양의 부해계.
‘이제 여기서 한 번 더 건너가면 고력계로군.’
고력계의 심해가 무서운 것도 합체기 태수들이나 그렇지, 존자들부터는 우주적인 인력을 통해 심해를 헤치고 나올 수 있었기에 고력계에 들어가도 자력으로 쉽게 쉽게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력계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평운계에서 빠져나왔다.
어차피 이쯤 왔으면 중경계도 몇 달에 걸쳐서 돌아갈 수 있었기에 별의 길이 꼭 급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것보단, 평운계를 바깥에서 세심하게 관찰했다.
‘전부터 생각했다만, 이 부해계는 대체 뭐지?’
아니, 사실 부해계도 아닐 것이다.
별의 길을 잇는 별들은 전부 진인들이 의태한 것이니까.
그러므로 이 평운계도 개열기 진인이 의태한 것일 터인데, 어째서 이 존재만 굳이 부해계로 의태한 것일까.
‘깨워서 물어보면… 평운계 안의 생령들이 모조리 뒤집어지기도 하겠고, 솔직히 나와 우호적인 존재이리라고도 할 수는 없으니….’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놔두기로 하며, 근처 적당한 별로 날아가 자리를 잡고 내 그림자를 향해 물었다.
“지난 며칠간은 금진조가 따라오는 걸 따돌리느라 물어보지 못했다만… 너는 내게 강민희, 귀도성모를 찾는 걸 도와주겠다고도 하지 않았나?”
“걱정 마시지요. 안 그래도 귀모 역시 찾게 도와드릴 테니까요.”
그림자에서 서휼이 나타나며 빙긋 웃어 보였다.
“위치를 말해라.”
“으음… 저도 아직은 모른답니다. 그저 현음과 우주 곳곳에 자리 잡은 ‘저’들로 하여금 찾아볼 뿐이지요. 그래도 걱정은 마십시오. 귀모의 경우는 10년 정도만 있으면 제 부인의 도움을 받아 추적할 수 있으니까요.”
“뭐야, 그녀에게 수작 부려 놓은 건 또 없나 보지?”
“서 도우가 귀모의 품에 뭘 넣어 놓으셨는지는 잊으신 겁니까?”
“하긴… 그럼 여하튼 그녀를 찾는 데에 성공하면 위치를 말해 줘라. 그리고 오혜서.”
나는 서휼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네가 서휼의 눈 역할을 하고 있단 건 안다. 우리 대화도 지켜보고 있겠지. 만약 나중에 강민희를 찾으면, 그녀가 성계에 온 뒤로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기록’ 역시 전부 찾아서 내게 전달해라. 알겠나?”
“흐음, 부인이 서 도우에게 ‘네가 뭔데 명령질인 거냐?’라고 묻는군요.”
“서휼이 내 눈앞에 있고, 네가 서휼과 연결되어 있다면… 나는 언제든 서휼을 통해 네 위치를 찾아 공격을 날릴 수 있다.”
화르륵….
나는 몸에서 유리진화를 피워 올리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아심검과 화혼만천으로 서휼의 탁혼만천을 경유하면 오혜서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그녀에게 아심검에 유리진화를 담아 보내 버릴 수 있다.
“부인이 ‘보내겠다’라고 전하는군요.”
“진즉 그럴 것이지.”
나는 유리진화를 풀며 가부좌를 틀었다.
10년 정도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강민희의 위치는… 내게도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원래는 그냥 막무가내로 우주 전체를 날아다니며 찾으려 했었다만… 이렇게 되면 나중에도 위치를 기억하고 바로 찾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다음에 귀모의 위치와 최근 백 년간 그녀의 이동 기록을 알아낸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시길.”
서휼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는 황량한 별 위쪽에서 잠시 우주를 바라보다, 동료들의 혼에 달아 놓은 아심검과 교신을 시도했다.
뇌성해는 너무 머나먼 곳이라 아심검이 있어도 서로 공명할 수만 있을 뿐 연결은 되지 않았으나, 평운계 인근이라면 아심검으로 연결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일단 본체로 광한계로 돌아가는 건… 지금은 힘들겠지.’
연위에게 면목이 없다.
‘연위가 진짜 목이라도 매달 수도 있으니… 전명훈이 납치당한 건… 지금은 말하지 말자.’
그러니 아심검을 통해 동료들과 인사나 하고 근황이나 알려 주자.
그리 생각할 때였다.
“…으음?”
피잇!
뭔가 섬광 같은 게 번뜩이는 듯하더니, 내 아심검의 연결이 끊겼다.
‘뭐지?’
나는 뭔가 싶어서 혼의 계위를 통해 다시 아심검을 연결시키려 했고, 다음 순간 다시 섬광이 번뜩이더니 연결이 끊겼다.
‘이 무슨….’
나는 오기가 생겨 다시 아심검을 연결시켰다.
‘혼의 계위에서 작정하고 연결해 주마.’
파아앗!
그렇게, 내 의식이 동료들과 접촉하려 할 때였다.
번뜩!
보였다.
혼의 계위로 정신을 완전히 올리고 나니 그제서야 보였다!
황금빛 섬광이 혼의 계위에서 번뜩이며 내 의지 자체를 순식간에 끊고 사라지는 장면이 말이었다.
“…하.”
나는 피식 웃으며 전력을 다해 정신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런 거였습니까.”
전화위복인 걸까.
전명훈이 만 년간 쾌락 조교당하게 되어 버렸으나, 그사이 성장한 자도 있는 것 같았다.
“빠르긴 빠르군요.”
이 내가 미처 인지를 못 했다.
아마 현귀.
공허의 주인이 보여 준 무의 극한을 본 이후, 깨달음이 잔뜩 흐트러진 탓에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그런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차마 인지가 잘 안될 정도로 빠른 속도!
그런 속도와 금광을 가진 존재는 한 명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동료들에게 연결될 준비를 했다.
‘이 속도를 뚫고 연결되려면, 방법은 하나.’
관통해야 한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내 의지를 끊어 버리더라도, 그 속도로 움직이는 그의 의념을 그대로 으스러트려 버릴 정도로 강한 힘을 통해, 그대로 뚫는다.
쿠구구구구!
본체를 혼의 계위로 잠시 끌고 올라왔다.
그런 후, 나는 혼의 계위에서 빛나는 나의 빛과 본체의 모습을 그 자리에 겹쳤다.
혼의 계위에서 별들의 형태가 하나 된다.
그리고 동시에, 무진장한 힘이 그 자리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갑니다. 이번에는 못 막습니다…!]드드드드드드!
인근의 혼의 계위 전체가 흔들린다.
나는 혼의 계위를 통하여, 그대로 의식을 집중시켰다.
콰아앙!
직후, 나의 의식이 어딘가에 부딪혔다.
다시금 어마어마하게 빠른 뭔가가 내 의식을 끊으려는 듯했지만 체급의 차이로 뭔가가 ‘부러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와 동시에, 내 의식은 마침내 광한계에 도달했다.
촤라라락!
내가 눈을 뜬 곳은 광한계 삼목총.
한 산 위쪽이었다.
산의 정상.
내 눈앞에는 익숙한 누군가가 도(刀)를 쥔 채 씨익 웃고 있었다.
“왔냐.”
검은 무복을 입은 그자.
김영훈은 희색을 드러내며 바로 자세를 잡았다.
“덤벼라. 오늘 누가 형님인지를 제대로 가르쳐 주마.”
나는 그 말에 빙긋 웃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김영훈이 긴장하며 전신에 예기를 덧씌우는 게 느껴졌다.
일촉즉발의 순간!
나는 양손을 완전히 펼치며 웃었다.
“항복하겠습니다.”
“…뭐?”
김영훈은 얼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무슨 미친 소리냐.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이러느냐?”
“예, 압니다. 축하드립니다 영훈 형님.”
나는 혼의 계위를 통해 김영훈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그는 현재 혼의 계위의 구름들이 모여, 휘황찬란한 빛을 뿜는 별로서 혼의 계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역시 허공분쇄에 오른 것이었다.
김영훈은 당장에 나를 베어 버릴 듯 예기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알면 왜 그러는 거냐. 당장 베어 버리기 전에….”
그가 흥분하며 도를 휘두르려던 찰나였다.
타닷!
“왔느냐, 서은현!”
나와 김영훈 사이로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어떻게, 감정은 잘 조절한 건가?”
장익이었다.
“…아직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 덕에 제 경지도 지금 불안정한 상태이고요.”
나는 장익 너머, 김영훈을 보면서 손 위로 총천검을 띄워 올렸다.
우우웅!
무형검이 압축되며, 총천연색의 빛을 가진 한 자루의 검(劍)이 내 손 위로 나타났다.
이것이 좌탈입망에 도달한 나의 검.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허공분쇄의 경지에 달한 상태의 내 검이 바로 이것이다.
키이이잉!
무형검이 압축된 총천검이, 다시 한번 압축된다.
마치 의념의 선과 같은 형태로, 나는 ‘베기’라는 개념 그 자체처럼 화한 총천검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나의 검이었다.
언뜻 보기는 볼품없어 보이는, 얇기만 한 선(線).
그러나 그 자체로 ‘베기’라는 개념 그 자체로 화한 나의 검.
“뇌성해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뇌성해 즈음에서, 한 사건을 겪고… 무시무시한 것을 봐야만 했습니다.”
“무시무시한 것?”
김영훈이 의아해했고, 나는 압축된 총천검을 움직여 보려 했다.
그러나 얇아진 총천검은 그대로 허공에서 일그러지는 듯하더니, 마치 갈대마냥 툭 꺾여서 허공에서 흩어져 버렸다.
“무(武)의 의미 그 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무공. 우리가 수련해 온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허무 그 자체를 봐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제 무공에 회의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현재 경지까지 불안정해졌지요. 아심검이나 허공분쇄의 기본적인 공능은 어느 정도 쓸 순 있으나… 제대로 된 무인으로서 싸우기는 무리입니다.”
장익이 내 설명에 보충을 해 주었다.
“이 녀석은 저 먼 우주에서, 어떤 [초월적인 존재]와 마주한 것 같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상태다.”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김영훈과 장익은 이미 통성명은 한 듯 꽤 서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럼 이리된 것, 술이나 먹으면서 회포를 풀어야겠구나.”
김영훈은 입맛을 다시며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보자기가 하나 들려 있었는데, 보자기 안에는 작은 술상과 술병, 술안주 등이 들어 있었다.
나와 장익, 김영훈은 산 정상에 앉아 대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삼목총에서도 젓가락을 쓰는군요.”
“유사시 비수로 쓸 수 있으니까 내가 보급시켰지.”
김영훈은 삼목총에 젓가락과 숟가락을 보급시킨 상태였고, 장익 역시 젓가락에 완전히 익숙해졌는지 젓가락을 굉장히 능숙하게 사용하며 안주를 집어 먹었다.
술안주는 새하얀 도라지무침 같은 뭔가였는데, 무슨 나무껍질을 벗긴 것 같이 생긴 주제에 굉장히 맛이 좋았다.
거기에 먹을 때마다 의식영역 자체가 맑아지고, 무궁무진한 천지영기가 체내에서 샘솟는 것 같았기에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영약인 것 같았다.
‘지금은 분체 상태지만, 혼의 계위를 통해 본체에게 영기를 전달만 해도 상당한 이득이 되겠어….’
쇄성기에게도 통하는 영약이라니, 도대체 이건 뭘까.
내가 술과 안주를 입에 넣으며 궁금한 표정이 되자 김영훈과 장익이 입을 열었다.
“술은 백홍주다. 네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가 미리 준비해 뒀지.”
“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안주는 뭡니까? 굉장히 맛있군요.”
장익은 안주를 입에 집어넣으며 설명을 해 주었다.
“백운 성사의 몸이다.”
“….”
나는 신나게 도라지무침 같은 나무껍질을 먹다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뇌성해 다녀온 김에 고생했으니까 몸보신할 영약 좀 달라고 졸랐지. 통 크게 자기 신체 중에서 원하는 부위 잘라가서 먹으라 하시더구나. 그래서 내가 좀 잘라 왔지.”
“…그거 혹시, 인사치레 같은 게 아니었겠습니까? 뭐 고생했으니 내 몸이라도 잘라 먹여 주고 싶은데 뭘 줄까 뭐 이런 류… 말입니다.”
“내 알 바냐. 그러게 말조심했어야지.”
나는 어째 꺼림칙해져서 백운 성사의 몸 무침을 입에서 뗐다.
장익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차피 장목족의 신체는 원래 영약으로 곳곳에서 거래된다. 장목족은 반쯤 수목이기에 몸 좀 잘라서 팔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어. 그리고 장목족 본인들도 자기네들 신체를 거래해서 먹거나 양분으로 쓰는 경우가 허다하고 말이다. 애당초 결단기 이상 천족에겐 신체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 나름 허락도 받은 거라니까.”
“…예. 뭐 정 그러신다면….”
조금 찜찜하기도 했지만… 몸의 주인인 백운 성사가 일단 허락했다니, 나는 그러려니 하며 먹었다.
축기단 같은 것과는 결이 다른 것이, 백운 성사가 정말로 본인의 손톱 발톱 같은 것을 잘라 준 격이기에 먹어도 큰 죄책감은 없었다.
조금 찜찜할 뿐.
나는 먹던 중 문득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그나저나 이건 백운 성사의 무슨 부위를 잘라 온 겁니까?”
“흐흐, 궁금하느냐. 알면 너희 둘 다 입에 못 넣을 텐데….”
“…됐습니다.”
어째 더 찜찜해졌지만, 맛은 정말로 천상의 진미나 다름없는 백운 성사의 몸이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며 먹기로 했다.
백운 성사의 몸은 장익과 김영훈이 특히 잘 먹었고, 나는 그들에게 양보도 할 겸 깨작대기만 했다.
그리고 백운 성사의 몸이 세 조각 남았을 때.
장익과 김영훈은 몸 조각을 집어서 얼른 씹어 삼켰고, 나는 천천히 마지막 조각으로 손을 가져갔다.
‘찜찜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영약이기도 하니… 먹어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내가 마지막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였다.
따악!
김영훈의 젓가락이 내 젓가락을 강력하게 튕겨 버리더니 섬광 같은 속도로 백운의 조각을 잡아챘다.
“아니 이게….”
내가 당황할 때였다.
투웅!
녹광이 번뜩이는 듯하더니 장익의 젓가락이 김영훈의 젓가락을 다시 후려쳤다.
철퍽!
그 덕에 마지막 남은 안주는 다시금 접시 위에 떨어졌다.
김영훈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장익을 노려보았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냐. 선배에게 귀한 걸 양보할 줄을 알아야지.”
“선배께서 후배에게 양보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너는 왜 서은현에게 양보 안 하느냐? 평소에 형 동생 하고 다녔으면서.”
“서은현이 저보다 먼저 경지에 이르렀으니, 수도계의 표현으로는 제 선배인 셈이지요.”
“이놈이 술에 취한 건지 헛소리가 가관이로구나.”
나는 둘을 보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방금 세 조각 남았을 때 두 분이 각각 한 조각씩 가져가셨으니, 이건 제 게 아닙니까.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만 싸우시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이걸 백운에게 어찌 얻어 왔는데, 당연히 내가 먹어야지!”
“장 선배나 서은현 둘 다 별로 솔직히 필요 없지 않은가? 나는 이 영약에 담긴 빛의 성질 자체가 내 도기에 잘 맞기에 먹으려는 것이야!”
틱, 티딕, 틱틱틱틱!
우리는 서로 젓가락을 부딪치며 툭탁거렸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지?’
백운 성사의 조각이 굉장한 영약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서로 다툴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것도 다들 갑자기 안 부리던 욕심을 부리며 안주를 다투고 있으니 꽤 어색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보던 중 문득, 장익과 김영훈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이 수준에선 다들 의념이나 심상을 잘 숨기니 순간 이해를 못 했군.’
나는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처음에 김영훈이 술상을 가져왔을 때 눈치채야 했건만. 이러려던 건가.’
파앙!
내 젓가락에서 강력한 기파가 터져 나오며 둘을 밀어냈다.
“두 분 다 일단 비키시지요. 역시 이건 제가 먹어야겠습니다.”
“이 탐욕스러운 천족 놈,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갈! 감히 대리 주제에 부장의 안주를 탐하려 드느냐!”
장익과 김영훈이 젓가락을 들이대며 내 안주를 뺏으려 했다.
김영훈의 젓가락이 금빛으로 변하며 내게 쇄도했다.
장익의 젓가락은 녹빛으로 물들더니, 무지막지한 패력을 뿜어내며 내 기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티잉-
김영훈의 젓가락이 내 젓가락 사이에 끼인 안주를 튕겼다.
안주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장익이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나와 김영훈은 동시에 젓가락으로 장익의 다리를 잡고 땅에 패대기쳤다.
장익은 빠르게 다시 일어나 젓가락을 잡고 휘둘렀다.
사방으로 참격이 흩뿌려진다.
나와 김영훈의 젓가락이 둘 다 부러졌다.
그러나 우리는 각각 금빛과 무색의 젓가락을 만들어 내서, 그것으로 장익과 맞섰다.
장익은 우리에게 달려들어 젓가락을 잡고 종으로 그었다.
투쾅!
고작해야 젓가락이었지만, 그 일격에 뒤쪽의 산이 그대로 종으로 베어져 나가 버린다.
김영훈은 피했고, 나는 투과시켜서 흘린 후 천천히 위쪽에서 떨어지는 안주를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둘 다 내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오히려 실망하겠지.’
천, 지, 심.
삼태극이 젓가락 뒤로 떠올랐다.
연기기 정도로 기력의 크기를 축소시켰지만 삼태극은 삼태극.
똑같이 연기기 정도의 기력을 드러낸 김영훈과 장익을 압도하는 패도적인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연기기 수준의 기운을 중심으로, 의식을 가속시키기 시작했다.
티잉, 티딩!
의식이 가속됨에 따라 주변이 어두워지고, 젓가락들이 부딪치는 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영훈의 속도는 이제는 뭔가… 초월에 도달한 것 같다.’
이젠 빠른 정도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그가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공간을 뛰어넘는 정도도 아니었다.
이건….
‘시간… 역행…? 이런 미친….’
0.1초나 될까.
아니, 어쩌면 0.1초를 백억 배로 쪼갠 것보다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그의 젓가락은 짧지만 시간을 역행했다.
속도가 시간을 일시적이나마 초월한 것이었다.
투쾅!
김영훈의 젓가락이 나를 틀어막는다.
장익의 젓가락은 내가 형성한 젓가락을 공간째로 찢어발겨 버리며 나를 몰아붙인다.
작은 접시 위쪽에서였지만, 그 안에서는 세 명의 심족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중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전투는 어느덧 나와 김영훈 장익 삼파전에서, 김영훈과 장익, 그리고 나.
두 세력의 전투로 변화했다.
‘시야가… 다르다!’
천도, 지도, 심도.
세 개의 시야를 모두 쇄성기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나는 역사를 읽어 내며 장익과 김영훈이 준비하려던 초식과 의념을 모조리 이해했다.
그와 동시에 미래의 모든 경우의 수를 예지하며 그들의 행동을 전부 사전에 차단한다.
‘속도가 시간을 잠시 초월할 정도로 빨라도….’
과거와 미래를 둘 다 읽는 내겐 속도의 빠르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전부 읽힌다.
티디디딩!
김영훈의 속도는 분명 시간을 아주 일부나마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그러나 소용없다.
나는 점차 전지(全知)에 가까운 감각으로 김영훈의 모든 행동을 예측하며 막아 내기 시작했다.
삼태극으로 얻어지는 패력(霸力)은 장익의 파괴력을.
천지심 삼계(三界)로 얻어지는 전지(全知)는 김영훈의 속도를 제압한다.
장익과 김영훈은 합공의 연계를 점차 높이기 시작했다.
둘이 힘을 합쳐야 나와 대응할 수 있단 걸 이해한 모양.
접시 안쪽에서 벌어지는 폭풍이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젓가락질로 안주 하나 먹겠다고 투닥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허공분쇄가 불안정했단 걸 깨달은 장익와 김영훈이, 각기 나를 배려하겠답시고 전력을 내지 않을 수 있는 젓가락질로 각자 기예를 겨루기로 한 것이었다.
젓가락질 속에서 춤을 추는 이 또한 분명 무를 겨루는 것.
나는 어느 순간, 점차 둘의 합격을 상대해 내며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나의 젓가락은 총천검이 되었고, 둘의 젓가락은 능광도와 사보멸천도가 되어 나와 맞섰다.
나는 황홀경 안쪽에서, 현귀가 보여 주었던 원을 떠올렸다.
‘아….’
그 원에 다가갈 수 있을까.
현귀가 다음 순간 그 원을 망설임 없이 박살 낸 건 떠오르지 않았다.
장목족 극광은, 인간족의 기준으론 분명 발정 난 개새끼마냥 정신 나간 놈이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이 마냥 틀린 건 아니었다.
‘일단 그 경지에 도달한 다음에 판단해야 할 터.’
정말 그 끝이 허무하게 부숴지는 것이 무극이라 하더라도.
나 역시 일단 그 경지에 오른 후에 판단해야 할 터이다.
‘도달할 수 있을까.’
아득하다.
그러나 아름답다.
무를 수련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도달해야 할 신성한 경지.
‘도달할 수 있을까…?’
너무나 아득해서 절망스럽고, 차라리 불길하기까지 한 경지다.
하지만….
‘도달하자.’
나는, 저곳이 설령 정말로 불길할지언정.
내 눈으로 저 고지를 확인하기로 결심하며 손을 크게 움직였다.
파캉!
접시가 깨졌다.
그리고 마지막 안주는 결국 내 손에서 흘러나가 김영훈과 장익 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들 둘은 이긴 쪽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것이냐. 네놈이 봤다는 무의 극한이란 것이?”
아무래도 장익은 방금의 나를 통해 뭔가를 본 듯, 쓰라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김영훈은 살짝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안주는 얻었지만, 깨달음은 뒤처졌군.”
그러나 곧이어 표정을 회복한 그는 더욱 기쁘다는 듯 껄껄 웃었다.
“뭐, 성사의 몸이니 뭐니 하는 안주가 무에 중요하겠느냐. 더 훌륭한 걸 봤는데, 그 정도면 안주로 더 적당하지.”
그는 백운의 신체 볶음을 그대로 던져 버렸고, 장익 역시 더 이상 안주에 집착하지 않으며 백홍주를 그대로 병째로 들어 마셨다.
장익이 물었다.
“아직도 검은 못 잡겠느냐?”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처럼 무의 기예를 조금 겨루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검은 여전히 들 자신이 없습니다.”
검을 들었다간 여전히 홀연히 사라질 것 같았다.
그만큼 현귀가 보여 준 원은 무시무시했고, 신성했으며, 또한 불길하였다.
“뭐 됐다. 언젠가 제대로 겨뤄 볼 날이 있겠지. 오늘은 이것으로 참아 주마.”
장익은 혀를 차며 술을 마셨고, 김영훈은 눈을 감고 방금의 내 의념을 복기하며, 그 자체로 취한 듯 얼굴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대작을 빙자한 우리의 짧은 기예 대결은 끝났다.
실제 검과 병기를 들고 전력을 다했을 때의 결과는 아무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젓가락을 든 상태에선 나의 판정승이었다.
* * *
나는 동료들과 짧게 인사를 한 후, 연위를 제한 다른 동료들.
그러니까 종명자 동료들에게만 전명훈의 상황을 알려 주었다.
“금진조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중인 건가….”
“예. 하지만… 서휼 녀석과 임시 동맹을 해서 녀석을 구해 낼 작정입니다.”
“음. 음음음… 음음.”
김연은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뭔가 말을 했다.
“…미안하다. 못 알아듣겠구나.”
“…으음….”
김연의 몸짓을 통해 그녀의 언어를 해석할 방법도 찾긴 해야 할 듯싶었다.
나는 동료들과 전명훈의 상황과 강민희의 위치 추적.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잠시 삼목총으로 나왔다.
‘…많은 일이 있었군.’
쇄성기에 올랐고, 검극천군에게 집착당하기 시작했으며, 함진을 내친 후 금진조를 만났고 전명훈이 납치당하며 뇌성해 원정이 끝났다.
그리고 공허의 천존으로 추정되는 현귀를 만나 무의 극한을 보았고, 서휼과 손을 잡아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제는 허공분쇄에 오른 김영훈, 장익과 짤막하게 수를 겨뤄 보았다.
정말….
요약하기도 힘든 무지막지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 것 같았다.
‘이제… 강민희를 찾은 후엔 그녀의 정신에 도달할 방법을 찾고, 나 역시 쇄성기 수련을 시작해야지.’
지금 당장 강민희를 구할 순 없다.
그녀의 영혼 안쪽에는 명계 가장 깊은 곳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구멍이 뚫려 있으니까.
그 구멍을 닫거나, 명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전까지 그녀는… 찾아낸 후 잠시 봉인해 둬야만 할 터였다.
‘만 년 동안… 동료들을 종말에서 구할 방법과, 강민희를 구할 방법… 전명훈을 구할 방법을 찾으며, 수련하자.’
나는 성계로 의식을 되돌렸다.
이제 얼마간 서휼에게서 강민희의 소식을 기다리고, 그녀를 봉인하면 될 터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서휼에게서 강민희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뇨, 잘 들으신 게 맞답니다 서 도우.”
“…강민희가 …뭐가 어떻게 됐다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환생했답니다.”
“…이건 또 뭔 네놈 같은….”
서휼은 더 이상 말없이 내게 기록 법술이 담긴 수정구를 건넸다.
수정구를 발동시키자, 그곳에는 아기가 되어서 에베베거리고 있는 강민희가 있었다.
강민희가 우리와 헤어진 지 백수십 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죽었다가 환생했다고 한다.
“…일단, 설명해 봐라. 머리가 아프니까… 제발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이에 대해 설명드리려면… 일단 성반기 승급의식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서휼의 입에서 성반기 승급의식에 대한 설명이 튀어나왔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9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