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91)
존자들의 길 (3)
수선은 곧 굴레다.
인력은 사슬이요, 운명은 창살이다.
그러나 빠져나갈 수 없는 이 뒤집힌 세계에서 빠져나가고자 한다면, 우선 굴레의 정점에 이르러라.
정점에 향하는 첫걸음은 원을 그리는 것이다.
어떠한 결점도 없는 완전한 원을 그려라.
그곳에서부터 시작일지니.
이는 무결(無缺)이라 칭한다.
―무결진언의 구결 중(中)
* * *
몽운성에 온 지 20년 차.
강민희는 마침내 성인이 되었다.
“우우웅!”
그녀는 거꾸로 뒤집힌 채 귀신들을 부려 하늘을 마구 날아다니며 기쁨을 표했다.
성반기 승급의식의 본능 때문일까.
그녀는 우웅거리는 것으로 나와 대화가 통할 그 시점부터,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아마 몽운성에 흩뿌려진 분체들을 회수하려는 거겠지.’
그러나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흩뿌려진 분체 중엔 벌써 천인기에 달한 괴물들도 수두룩했고, 어쩌면 승급의식의 주축인 강민희가 분체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성반기 승급의식 때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이었다.
성반기 승급의식에 대한 내용은 20년간 이곳에서 지내며, 백운 성사에게 화신체를 보내서 교차 검증까지 한 내용이었으니 일단 서휼의 설명이 맞긴 모양.
‘분체들은 모두 자기가 본체가 되어 권능을 휘두르는 괴물이 되고 싶어 한다니… 강민희에게 순순히 흡수되긴커녕 강민희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했지.’
나는 20년간 화신체를 보내 백운 성사에게 들은 조언에 따라, 강민희가 일단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산골짜기에 그녀를 붙들어 놓았다.
본래 가지고 있던 귀도음화선근의 영향 탓일까.
아니면 단순히 귀도공법으로 쇄성기에 달한 이는 모두가 가진 특징일까.
그녀는 어릴 적부터 눈빛과 생각만으로 귀신을 복속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간혹 그녀의 정신이 귀신에게 침식당할 뻔한 사건도 있었다.
아직 귀신들을 복속시키는 힘이 완전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일단 그 힘이 성인이 되어 완전해지면 그녀가 몽운대륙을 유람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약속했기에, 그녀는 지금 저렇게 좋아하는 것이었다.
‘일단 육체가 성숙하며 권능에 익숙해졌다. 자기 능력에 잡아먹힐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좋아. 허락해 주마. 앞으로 몽운대륙을 돌아다니며 세계를 돌아봐도 좋다. 대신.”
나는 서란에게 신호를 보냈고, 서란이 우리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앞으로 여기 귀도공법을 익힌 서란 선생에게 수도공법을 배워라. 서란 선생은 앞으로 네 스승이 되어 너를 따라다니며 귀도공법을 가르칠 것이고, 네가 위험할 때 유사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다.”
“우웅….”
강민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는 서란이 마음에 든다는 듯, 서란의 위로 날아가서 그의 뿔을 잡고 흔들며 좋아했다.
아무래도 같은 흑색귀골곡 출신인지라 친밀감이 강한 듯했다.
“뭐 다 좋습니다만… 왜 거꾸로 날아다니시는 겁니까?”
“…원랜 물구나무서고 다녔다. 내가 손에 흙 묻는 거 어떻게 좀 해 보라고 하니깐 그나마 거꾸로 날아다니는 거지.”
“으음….”
서란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강민희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강민희의 짐을 싸서 그녀가 부리는 귀신 중 한 명에게 맡겨 주었다.
“자 그럼 다녀오거라, 민희야. 기다리고 있겠다.”
“우웅!”
강민희는 신나는 표정으로 뒤집어진 상태에서 내게 인사를 한 후.
산골짜기를 따라 쭉 내려가 버렸다.
서란 역시 황급히 그녀를 쫓아갔고, 대청마루에 앉아 그녀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았다.
‘예전엔 항상 피곤에 찌들어 있거나… 조금 슬퍼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그래도 근 몇 년간은 항상 밝은 모습이었어서… 보기 좋더구나.’
“…홍범. 있느냐.”
스르륵―
홍범이 대들보 뒤쪽에서 뱀처럼 기어 나와 인간으로 변해 내 뒤에 섰다.
어느덧 합체기 대원만에 달한 홍범은 50대 중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젊어졌다.
이젠 노인이 아니라 조금 나이가 있는 장년인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예, 하문하십시오.”
“무결진언의 해석은 어떻느냐?”
지난 20년간.
홍범에게 무결진언의 해석을 맡겼다.
무결진언이 강민희의 저주를 끊어 버릴 단초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강민희가 이성을 잃는 건… 무결진언 같은 선술을 저승에서 얻었기 때문일 수 있어.’
강민희의 저주를 끊으려면 무결진언을 연구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고, 나는 그를 위해 홍범과 함께 무결진언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결진언을 해석하던 도중.
홍범이 이상 반응을 보였다.
―뭔가… 기억이.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기억? 무슨 기억 말이냐?
―왠지… 지난 생의 일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기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네 전생은 무결진언과 뭔가 관계가 있었던 건가….
―확실히는 모르지만… 저는 무결진언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던 것 같습니다.
홍범은 무결진언을 바라볼 때마다 전생의 뭔가가 떠오르는 것 같다며 머리를 잡았고, 나는 홍범이 전생을 자각하는 걸 돕기 위해 무결진언의 해석을 아예 그에게 맡겨 버렸었다.
어차피 내 수준으로선 무결진언 같은 선술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전생에 알고 있었다고 하는 홍범에게 맡기는 게 더 좋겠지.’
“으음… 뭔가 기억이 날 것도 같습니다만. 이 속도론 솔직히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장도 속도면, 수천 년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해라. 네 기억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 네 기억을 찾는 것에도 신경을 쓰고.”
“허허, 사실 기억이 나는 건 정확히 무결진언에 대한 부분뿐이고 다른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흠, 그러냐… 알겠다. 그럼 최대한 할 수 있는 곳까지 해 다오.”
나는 홍범을 격려해 준 후, 그에게 내 일정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수행을 시작해야겠다. 네가 이 항성계를 돌면서 수상한 것이 접근하는지 봐 다오.”
그동안은 내가 본체로 항성계 전체를 보호 중이었다.
혹시라도 개열기 진인들이 나타나거나 하면 대비를 해야 하니까.
물론 그 외에도 성계에는 거대한 암석 조각들이 많았기에, 내가 본체로 이 항성계에 접근하는 암석 조각들을 치워 버리며 몽운성이 하루아침에 멸망하지 않게 막기도 했었다.
이젠 그 역할은 홍범이 맡아 줄 터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홍범은 즉시 하늘로 올라가 항성계 변두리로 향했다.
난 그런 홍범을 잠시 바라본 후 가부좌를 틀었다.
“후우우….”
숨을 들이쉬며 천지영기를 마셨다.
내 화신체의 기운이 급격하게 증폭되며 연기기 6성에 도달했다.
‘예전엔 여기에서 연기기 7성으로 넘어가려고 개고생을 했었는데 말이지….’
우웅―
이제는 칠성제를 지내려고 시운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본체에 연결된 성맥들을 거슬러 올라가, 칠성제 제의에 해당하는 별들을 찾아서 그 별들의 힘을 직접 끌어오면 되니 말이었다.
내 본체가 제단이오, 성맥이 제의인 셈.
그러므로 제단을 쌓고 제의를 지내는 둥 귀찮은 절차는 이제 생략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번쩍!
나는 연기기 7성을 그렇게 넘긴 후, 계속해서 화신체에 천지영기를 공급했다.
순식간에 화신체는 축기기에 올랐고, 축기기 1수, 2수, 3수, 4수에 달했다.
그리고 이쯤 되자, 단순히 주변에서 천지영기를 끌어당기는 것으론 경지가 쉬이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슬슬… 본체에게서 받을 때다.’
쿠구구구구!
하늘에서 빛이 번뜩이는 듯하더니, 이 인근 전체를 뒤덮을 듯한 광선이 산골짜기 전체에 내리꽂혔다.
“후우우….”
결단 초기, 중기, 후기, 대원만.
원영 초기, 중기, 후기, 대원만.
천인 초, 중, 후기. 대원만!
콰치지지직….
본체가 전송해 준 천지영기를 모조리 흡입한 내 화신체는 천인기로 순식간에 도약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천인기는 이 시점에서 비승을 한다.
성계에서는 이 이상의 천지영기를 구해 경지를 높이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천인기 수사가 성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일반적으로는 자기 수명이 다 되도록 천지영기를 끌어모아서 사축기 승급에 도전해야 했다.
‘물론 나는 그럴 필요 없지.’
콰르르르릉!
다시금 본체에게서 어마어마한 분량의 천지영기가 한 무더기로 내리꽂혔다.
나는 광한 천원으로 천지영기를 흡수하며, 사축기에 올랐다.
쿠구구구!
하늘에서 천겁이 우릉거리려 했으나, 본체가 의지를 보내자마자 구름 자체가 흩어져 버렸다.
이제 합체기급 천겁이 아니라면, 딱히 천겁을 맞을 필요도 없었다.
‘이제 사축기… 아니 지축기에 올라왔다.’
나는 몽운성의 성층권으로 올라가 몽운대륙을 굽어보며, 지축기 수행을 시작했다.
쩌엉!
한 번 축을 오복축으로 형성하거나, 나처럼 지축을 전부 쌓으면 좋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내 본체 안쪽.
무색검산도해대성을 만든 여러 기운 중, 오복축과 육극축.
그리고 오행축의 기운이 내 의지에 공명하며 화신체의 안쪽에 생긴 원영 주변에 흘러 들어갔다.
동시에 내 본체와 화신체의 오복육극오행축들이 공명하며 본체와 화신체간의 연결이 더욱더 긴밀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직 진짜 축이라 할 정도는 못 되는군.’
아직은 진짜 기축이 아닌, 축의 씨앗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기운이 약했다.
앞으로 수년간 이 축의 씨앗들에 기운과 의식을 불어넣으면 진짜 축으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이것이 사축기에서 축을 어떻게 쌓았는지의 차이였다.
사축기에서 쌓은 축에 따라, 쇄성기에서 화신체의 수행을 올릴 때 어떤 축을 쌓을 수 있는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외법기축으로 축을 쌓은 이는 쇄성기 때에도 외법기축으로 만든 화신체를.
나와 같이 십이지지축을 통해 축을 쌓은 이는 쇄성기 때에도 십이지지축을 쌓게 된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갸 이렇게 중요했을 줄은 몰랐군.’
이제 백여 년 정도 사축기 축의 씨앗들을 키워 나가면 나는 다시 완전한 지축기로 합체기에 오를 수 있을 터였다.
‘좋아… 이제… 천천히 기다리자.’
나는 몽운성의 상공에서, 몽운대륙을 여행하는 강민희와 서란을 바라보며 천천히 축의 씨앗들을 크게 키워 갔다.
그렇게 100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광한계에서 동료들에게 연락이 왔다.
헌원이 연위에게 살해당했다고 했다.
* * *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는 삼목총 옆쪽.
그곳에 있는 인간족 구역과 그 안쪽 수감 시설에 투옥된 그녀의 앞으로 심상 분신을 만들어 찾아갔다.
그녀는 연진의 몸으로 있는 것이 아닌, 김연이 제작한 듯한, 본인 형태의 괴뢰 안쪽에서 음울한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헌원이 죽었다.
그건 인간족의 합체기 태수가 죽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연위가 아닌 듯 맞는 듯 크게 의지하고 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연위 본인의 손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그녀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내 뒤쪽 간수들을 바라보았다.
“…둘만 얘기를 나누고 싶습… 싶다.”
간수들은 눈알을 부라렸으나, 나는 손짓으로 그들을 물린 후 주변의 공간을 광한계와 분리시키고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니… 그보다 뭘 어떻게 했길래 수행을 다 잃은 당신이 헌원을….”
“헌원의 핏줄을 가지고, 조상에게 거슬러 올라가는 저주를 발작시켰습니다. 안 그래도 그의 체내에 있던 제 저주와 그 저주가 만나 증폭되며 헌원의 상태를 최악으로 몰고 갔지요. 그리고 그 틈을 타서 놈을 함정으로 데리고 와 함정을 발동시켜 죽였습니다. 천란지 전란지 모르는 년이 아직 살아 있다 말해 주니 넙죽 따라오더군요.”
“…왜 죽인 거지?”
“아직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혼란과 공황에 빠져 있는 연위의 심상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계속해 봐라.”
“그래도 수행을 다 잃은 저 따위가 어찌 헌원을 죽였겠습니까. 그래서 진실을 알려 줬지요. 절대로 놈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진실?”
“…혈통. 아무리 제 놈이 미친 척 몇만 년을 진실을 보지 않았더라 한들. 혈통은 못 숨기지요.”
연위의 입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연진은 사실, 헌원과 제 자식의 후손입니다.”
“…!”
“장임도천(長妊滔天)의 술이라는 술법이 있습니다. 장목족 놈들 비술인데, 헌원과 약혼을 맺기 이전 장목족 땔감 놈들을 약탈하다가 얻었던 비술이지요. 임신을 한 후 태아의 발달 과정과 임신 기간을 10개월이 아니라 100년으로 늘리는 대신, 태어나는 아이의 자질을 장천지체(長天之體)라 불리는 체질로 만들어 주는 비술입니다. 타 동족보다 천지영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백 배 이상 빠른 무지막지한 체질이지요. 장목족 놈들이 가진 게 백운 성사의 후예라는 이름값밖에 없는데도 광한계에서 잘나가는 게 이런 비술을 가진 탓이었던 게지요.”
그녀의 입에서 걸린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웃는 것이 아닌,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만 보였다.
“저희 아이가 광한계를 호령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헌원이 미쳐 버리고, 그를 상대하기 위해 배아에 불어넣은 장임도천의 술을 발동하기 위한 영기까지 전부 사용하느라, 결국 헌원의 경지를 깎은 후에 태어난 아이는 평범한 아이였지요. 그 아이에게 연씨 성을 주고 지금껏 헌원 몰래 후손을 잇게 한 것이 이어진 것이… 지금의 연진입니다.”
“….”
“그 당시 이전 천 년, 이후 천 년간 헌원이 관계를 맺은 건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녀석의 기억 속에선, 천라라는 것하고만 관계를 맺었다고 왜곡되어 있더군요. 저와 관계를 맺은 건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그래서… 연진의 혈통을 보여 주며 그 당시 진짜 관계를 맺었던 건지를, 반박할 수 없게 재확인시켜 주었답니다.”
그녀의 눈에 서린 공황이 더더욱 짙어져 갔다.
“놀랍지 않으십니까. 그 헌원이, 도저히 어떻게 치료를 해도 나아지지 않던 헌원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랍니다. 그제야 뭔가가 잘못되었단 걸 깨닫더랍니다.”
뚝, 뚝뚝….
그녀의 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괴뢰의 몸이었지만, 슬픔의 의념을 실은 그녀의 의식과 주변의 천지영기가 공명하며 그 눈가에서 푸른 영기를 흘러내리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여 달라고 하더군요. 자신의 인생 전체가… 꼭두각시의 인형극이었다며. 제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빌며… 제게 날아와 제가 들고 있던 법보에… 그대로 스스로 몸을 박아 자살했습니다.”
“….”
“본랜 그저 헌원에게 마지막 한 방이나 먹여 준 후 제가 죽으려고 했었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놈이 자살한 꼴이 되었습니다. 태수회에겐 제가 놈을 죽였다 보고했습니다. 헌원은 끝까지 제게 괴롭힘당하다 살해당한 것이지. 봉래궁주가 비참하게 자살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
그녀는 음울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신령님께는 말해도 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의 희망을 모조리 짓밟는, 우리를 농락하고 계시는 신령이시여.”
그녀는 창자가 끓는 듯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신령께서도 금신자께서 벌이신 이적은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만, 쇄천봉엔 사실 금신천뢰문 제자들의 위치와, 그들의 ‘운명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선술이 걸려 있답니다. 신령님께도 비밀로 하고 최후의 최후까지 숨겨 놓았던 것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모르셨나 보군요.”
나는 그녀의 말에 침음성을 흘렸다
“명훈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왜 명훈이를 어딘가에 던져서 ‘인격이 붕괴되기 전까지 고문당하는 운명의 상태’로 만든 후 성계에서 폐관하듯 수련하고 있는 겁니까. 마치… 그건….”
뿌드드득….
연위의 손가락이 감옥 바닥을 긁었다.
“영약을 먹고… 소화하는 것 같아 보이는군요… 아닙니까…?”
연위는, 이를 빠득 갈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도대체… 저희를 어디까지 농락하셔야 만족하십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말씀해 주십시오. 시조님의 환생, 대금신천뢰문의 희망 전명훈은 어디 갔느냐는 말입니다!!!”
* * *
천왕천역
광명의 궁 내부.
그 중심, [빛의 좌] 아래에 8채의 거대한 빛의 거신들이 나타났다.
: : 느꼈는가. : :
: : 그러하다. : :
그들은 다들 심각한 기색으로 어딘가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 : 태산상제(太山上帝) 라천(羅天)이…. : :
: : 천왕천역 시각. 기(己)의 시(時)에… 소멸하였다. : :
갑작스러운 태산상제의 소멸에, 그들은 모두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어딘가와 교신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 : 어찌해야 하는가. : :
: : 당장 지축천역의 봉인을 해제하고 안쪽을 제대로 관측하여 진위를 확인하여야 한다. : :
: : 그가 자작극을 벌일 가능성은 없는가. : :
: : 말도 아니 되는 소리. 선적(仙籍)을 보라. : :
: : 이름의 주인이 만든 선적에… 태산상제 라천의 빛이 사라졌다. : :
: : 라천이 사망했다. 지금으로선 라천이라는 존재가 사망한 것은 명약관화. : :
: : 어찌 되었든 진상을 관측해야 한다. 안 그래도 지축천역을 봉인하고, 새로운 봉인용 천역을 창조하는 데에 소비되는 예언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 :
: : 계속 시간을 끌수록 낭비되는 예언은 커질 것이다. 일단 진상 규명이 먼저다. : :
: : 옳다. 설령 그가 어찌어찌 현고에게 부여받은 이름을 떼어 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라 하여도, 이름의 힘을 잃은 것에 적응하는 시간을 필요할 터. : :
: : 지금이라면 지축천역의 문을 열어도 그가 탈출하지 못하게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다만 만전을 가하여 광명전의 전력을 끌고 가 대비한다. 그리하면 그가 어떤 수작을 부렸든 다시 재봉인할 수 있다. : :
거대한 빛의 존재들.
광명팔선.
그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며,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 : 광명전 소속 진선들은 집결하라. 지축천역의 봉인을 한시적으로 해제할 것이노라. : :
그들은 순식간에 광명의 궁 안에서 사라지더니, 공허간을 너머 어떠한 차원의 입구 부근에 도달하였다.
입구에는 지축(地軸)이라는 거대한 글자가 빛으로 써 있었고, 그 빛의 글자를 중심으로 우주를 뒤덮을 듯한 사슬이 차원 전체를 덮고 있었다.
광명팔선의 뒤로 속속들이 수백에 달하는 신령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명팔선이 일제히 앞으로 손을 뻗자, 지축천역의 입구에 걸린 글자가 흩어지며, 지축천역의 입구가 아주 작게 열렸다.
자그마한 틈이었으나, 광명팔선으로부터 비롯된 휘광은 그 틈새로 들어가 지축천역 전체를 밝혔다.
그리고, 천역 전체를 밝혀 낸 광명팔선이 일제히 다급하게 외쳤다.
: : 재봉인하라! : :
: : 태산상제가…. : :
다음 순간.
광명팔선 제 오좌, 검극천군이 천역에 현현시킨 화현체가 그대로 터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지축천역의 입구 안쪽에서부터 거대한 팔이 나타났다.
어지간한 항성보다 더 거대한 광명팔선의 화현체가 벌레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팔이었다.
그 팔은 산(山)이었다.
거대한 산맥이 팔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산맥은….
일, 십, 백, 천, 만, 억,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恒河沙)에 이르는, 피 눈물을 흘리며 죽어 있는 시체들의 산으로 이뤄진 산맥이었다.
산의 신.
태산상제(太山上帝)라 불리우는 위대한 신령이, 빛의 세력을 상대로 힘을 쓰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 [끄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태산상제의 전신에 박힌 시체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비명소리에 지축천역과 천왕천역.
두 개 천역이 일제히 뒤흔들렸다.
광명팔선들이 일제히 태산상제를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 : 그렇군. 그가 우리를 속였다. 아니, 모두를 속였다. : :
: : 4만 년 전부터 준비해 왔구나. : :
: : 모두가 그의 등극에 정신이 팔린 사이 대체제로 운명을 능멸(凌蔑)하였어. : :
드드드드드!
봉인에서 풀려난 위대한 신이 힘을 끌어 올리며 광명팔선을 올려다보았다.
: : 알 현 실 로 가 는 길 을 열 어 라. : :
막 화현체를 재생시킨 검극천군부터 시작하여, 광명팔선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합장을 하며 본인들보다 위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일 뿐이었다.
: : 광명상제에게 영광(榮光) 있으라. : :
그리고, 그들의 위쪽에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좌]가 드러났다.
일월천역에선 헌원이 연위의 진심에 진실을 깨닫고, 그녀에게 달려들어 죽음을 택하였다.
천왕천역의 광명팔선은 태산상제 라천이 죽었다 착각하고 지축천역의 문을 열어젖혔고,
지축천역의 태산상제는 모두를 속이고 유폐된 곳 바깥으로 나오며,
그렇게 전 천역이 뒤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9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