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494)
종말전야(終末前夜)(3)
길(道)을 보았다.
그 길은 크고도 넓어서, 그 길로 간다면 분명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하나 그 길은 숨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이 길은 아무나 함부로 갈 수 없는 길이었다.
나는 그 길을 가로막은 어떠한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손에서는 새하얀 빛의 점과 어둠의 원이 나타나는 듯하더니, 그대로 길을 가로막은 벽을 살며시 열었다.
벽은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었고, 나는 그 문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소성(小成)이구나.’
나는 뒤를 바라보았다.
소성에 이르렀으니, 잠시간의 유예가 주어질 터.
그러나 나는 잠시간의 유예 후, 억겁과도 같은 세월이 압축된 저 문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들어갈 수 있을까.’
무섭다.
그러나 저 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나는 종말 이전에 모든 것을 성취하고 전명훈, 강민희, 그리고 말을 잃은 김연을 구할 최소한의 단초는 잡을 수 있을 터.
나는 잠시 길 너머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졌다.
‘가자.’
찰나간의 유예 후, 다시 저곳으로 가, 모든 것을 손에 넣자.
나는…
바라는 것이 너무나 크니까.
그걸 얻기 위해서는, 댓가를 치루지 않으면 아니되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길을 걷기 이전 찰나의 유예를 맞아 그리운 얼굴들을 보려 의식을 부상시켰다.
* * *
“…님.”
위이잉!
“…인님… 주…”
나는 잠시 멍한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어딘지 익숙한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주인님!!!”
[…아… 홍… 범… 이냐?]머릿속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내가 팔천 년씩이나 수련해왔다는 게 안 믿겨지기도 했고, 그동안 얼마나 세상이 변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지난 팔천 년간 해온 것을 기억했다.
[으음… 조금… 몽롱하군…]나는 흩어질 것 같은 정신을 다잡았다.
멸법진언을 속으로 되뇌자 점차 흩어질 것 같은 정신이 모이며 이성이 돌아오는 듯 했다.
‘팔천 년간… 그래. 나는 분명 무결진언을 외우며… 어둠 속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갔었다.’
어둠 저 너머의 [무언가]가 내게 말을 걸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원을 그릴 것 없이, 어둠 너머로 빨리 건너오면 순식간에 무결진언을 대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내가 왜… 팔천 년 동안 대성을 못했었더라.’
나는 곰곰히 생각하던 와중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렇군.’
무결진언을 외며 동시에 멸법진언으로 자신을 참오했다.
스스로를 참오하며, 끝없이 무결진언의 정석적인 수련법대로 마음속으로 원을 그리는 걸 반복했다.
중간에 저 머나먼 곳에서 나를 독촉하는 것 같은 목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만… 그냥 무시하고 정석대로 무결진언을 수련하며, 느릴지언정 우직하게 어둠으로 향하였다.
무결진언을 수련하고 있자면 빠르게 어둠으로 넘어가 최고의 권능을 얻는 게 더 나을 것 같단 생각이 얼핏얼핏 들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멸법진언의 구결이 나를 도왔다.
수선(修仙)이란 곧 참오다.
자그마한 소금알갱이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참오를 통하여 산(山)을 쌓아 가라.
그 경구를 되뇌며 끊임없이 원 속에서 나 자신을 찾고 또 찾았다.
물론 무결진언 수련에 그런 과정이 꼭 필요하진 않았다.
어찌보면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짓.
나는 그 무의미한 짓을 수없이 반복했기에, 어쩌면 여기까지 오는 데에 팔천 년씩이나 걸렸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괜찮아.’
굳이 저 무궁한 어둠에 다가갈 필욘 없다.
나는 나 자신의 힘만으로 이미…
위이이잉
[홍범…]위이이이잉!
[보아라…]무결진언.
소성(小成)에 이르렀으니.
[수레바퀴가 회전하고 있다.]멸법진언과 무결진언으로 이뤄진 수레바퀴가 내 위쪽에서 회전한다.
아니, 정확히는 ‘나들’의 위쪽이었다.
이미 나는 팔천 년간 무결진언을 외면서 거의 본능적으로 쇄성기 중기 끝자락.
다섯 별을 만드는 경지까지 왔으니까 말이었다.
즉, 수레바퀴는 ‘나들’이 있는 항성계 위쪽에서 회전하며, 조금씩 크기가 커지고 있었다.
‘느껴진다…’
정신이 다섯 세계 전체를 회전하며 윤회(輪回)한다.
‘그렇군. 수미검무를 만들 당시에는, 그냥 원을 그리니 정신이 선역에 도달하는 ‘현상’만 이해했지, 그 원인은 이해할 수 없었어.’
그러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정신이 다섯 세계에 걸쳐있다는 것.
그 상태에서 원을 그린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선역에 오르는 방법 중 하나였던 것이었다.
‘공허간, 원천강, 동천꽃밭, 저승. 이 네 개 차원은 전부 죽음과 관련된 차원이다. 그리고 성계는 삶과 관련된 차원이고.’
나는 원영기 수행과 사축기 ‘외법기축’에 대한 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혼(魂)이 있다. 심지어 내 세포 하나하나에도. 그리고 자아를 가진 내 혼은 저승으로 가나, 자아를 가지지 않은 내 세포나 각질, 혹은 옷이나 검 같은 것은 사후 원천강으로 간다. ‘나’라는 존재는 죽음의 영역 이후에서 잘게 나눠지는 셈이야. 그리고 동천꽃밭에서 모든 것이 재배열되며 환생하는 것이지.’
우리는 사실 모든 세계를 향한 인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
단지 사후에는 내 존재 자체가 분해되고 재배열되며 나뉠 뿐이었다.
그러나…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다섯 세계에 걸친다면?
‘하나의 세계는 ‘온전한 나’를 완전히 잡아두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 세계의 인력이 점차 강해지지.’
저승에서 원천강으로, 원천강에서 동천꽃밭으로, 동천꽃밭에서 공허간으로, 공허간에서 다시 저승으로…
물론 꼭 이 순서일 필요는 없지만, 여하튼 존재 자체가 성계를 중심으로 네 개의 세계를 윤전(輪轉)하며 원을 그리게 된다.
윤회를 약식(略式)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계 속에서 약식 윤회를 겪는 동안 정신이 윤회의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수미검무를 통해 의식을 선역에 올리는 것의 원리였던 셈이었다.
“주인님!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수레바퀴를 회전시키면 아니됩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자처하는 길이나이다. 부디 주인님, 제 말을 듣고 깨어나 주십시오!”
홍범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홍범.]나는 따스하게 홍범을 향해 웃어보였다.
쇄성기 후기 수련을 위해 만들어놓은 화신체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아아… 그래. 그렇구나.’
전부 똑같이 파려로 된 다섯 개의 별.이젠 그 자체로 하나의 별자리를 그릴 수 있게 된 무색검산도해대성은, 이젠 대성(大星)이 아닌, 대성원(大星垣)이 되었다.
무색검산도해성의 별자리.
무색검산도해대성원(無色劍山蹈海大星垣).
결단기 때의 금단의 영역을 천시원, 태미원, 자미원으로 불렀던 것과 같이.
나는 무색검산도해대성원.
줄여서 무색검원(無色劍垣)의 주인이 된 것이었다.
수행을 거듭하여 하늘의 별자리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쇄성기의 수행의 본질인 것이었다.
동시에 나는 점차 명의 계위.
‘하늘’이라는 영역이, 더 이상 멀어보이지 않는 단 걸 깨달았다.
‘조금 있으면… 명의 계위에도 닿을 것 같군.’
아니, 지금도 총천검을 통하면 명의 계위에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간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귀의 춤을 본 이후 검을 손에 쥘 수 없는 것이 문제였지만.
“지금입니다! 대인들. 지금 주인님이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셨으니, 반드시 정신을 일깨워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저 선술이 발동되면…”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홍범이 내가 띄운 수레바퀴를 보며 뭐라고 뭐라고 시끄럽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 주변으로 광한계의 존자들…
그리고, 어느덧 존자 수준이 되어있는 내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영훈은 완전히 허공분쇄에 올랐고, 오현석 역시 어찌저찌 체내의 별의 힘을 품는 데에 성공한 듯했다.
그리고 김연은… 뭘 어떻게 한 것인지 수명은 사축기 수준이었는데 경지는 천인기였다.
아무래도 사축기에 도달했다가 다시 경지를 일부러 흩어 천인기로 경지를 내린 모양이었다.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진 알 수 없었다.
어차피 그녀의 주변에는 28개의 인공별들이 작게 압축된 채로 떠 있어 그녀에게 힘을 공급 중이었기에, 경지와 상관없이 실 전력은 쇄성기 대원만 2명분에 가까운 듯 했다.
‘다들… 내가 무아지경에 빠졌던 것 때문에 걱정이라도 되었던 걸까.’
아직 종말은 한참 남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으론 강민희의 성반기 승급의식도 끝나지 않았다.
몽운성에 의식을 내려보니, 강민희는 여전히 혈음, 서휼, 서란 등과 함께 몽운성 곳곳을 거닐며 분체들을 흡수하고 수행을 늘려가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분체들을 흡수할 때마다 광증이 도지는 듯 했으나 서휼이 혈음을 뜯어먹으며 그녀가 폭주하지 못하게 막아줬기에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신경쓰이는 점은 서휼 녀석이 곽암과 유오를 통해 서란에게 걸린 선술을 깨기 위해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았지만… 아직 깨지려면 한참 남은 것 같았기에 굳이 큰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여하튼, 그리운 얼굴들은 팔천 년만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젠 다시, 길을 걸을 시간이다.
[나는 이제… 다시 수련에… 들어가마…]“아니됩니다! 주인님, 제발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무결진언에 대한 것이 기억났습니다. 도대체 어떤 인과로 주인님께서 그와 쌍이 되는 것을 익히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을 익히신다면 주인님께선 동료들을 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종말을 극복하실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홍범.]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이 진언을 외며, 저 너머의 어떠 존재에게 속삭임을 받았다. 그 존재는 자신을 따라오면 바로 진언을 대성할 수 있게 해준다 하였어. 하지만… 나는 그 존재의 속삭임에 따르지 않았다.]“아주 잘하셨습니다. 어떤 존재인지는 몰라도…”
[대신.]화신체는 무색검원의 별 중 한 곳에 앉아, 눈 앞에서 떨고 있는 홍범과 눈을 마주쳤다.
어느덧 홍범도 쇄성기에 든 것일까?
그는 이제는 50대 초반 같아 보였다.
아마 그가 개열기가 될 때쯤이면 40대 초중반의 장년인이 되지 싶었다.
[정석적인 방법으로 나아갔다. 어둠이 뭐라고 속삭여도 전부 무시하고… 그리고 나는 정석적인 방법으로 이 진언을 익히며, 희망을 보았어.]홍범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내 손을 맡잡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희망이라니요? 이대로면 주인님은 저 선술에 정신을 빼앗겨, 종말에 대피공간에도 도달할 수 없이 그대로 소멸하실 겁니다. 죽는단 말입니다!”
[…내가 이 진언을 더 깊이 수련한다면, 나는 강민희를 구할 수 있다. 그건 확실해.]“그렇다면 명훈 대인은 어쩌실 겁니까! 이천년 뒤. 서휼이란 놈과 전명훈 대인을 구하러 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서휼의 탁혼만천으로 전명훈을 탈출시키기로 했지. 하지만… 놈의 것만으론 부족해. 녀석은 진선이야. 그리고 진선이 아닌 나같은 존재가 진선을 상대하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뭔가가 필요해. 거기다 나 역시 아직도 혈음의 예언에 매여있는 몸…]금진조와 혈음.
김연에게 새 형태의 기문법재를 선물한 정체불명의 존재.
그들을 어떻게든 처리하지 못하면 동료들을 구할 수 없다.
전명훈과 강민희, 김연, 그리고 나 자신.
모두를 구하려면, 여기서 희망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가진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도박수를 던져야 해. 네가 진언을 전해줬기에…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고맙다, 홍범.]“전부 제 잘못입니다… 제가 잘못했나이다. 그 진언에 대한 기억을 전부 떠올리지도 못하고 섣불리 주인님께 전달하다니… 주인님. 신(臣) 홍범이 이렇게 간청하나니, 부디 선술에 몸을 맡기지 마소서. 왜 주인님의 목숨을 걸고 확실치도 않은 도박수를 던진단 말입니까!”
[…왜냐면…]나는 빙긋 웃었다.
[목숨이란 건 결국… 내 삶을 위해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내 삶에서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은 걸 수 있다.]무엇보다.
홍범에겐 도박수라 하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선술 속에서 자신을 잃지만 않으면 나는 얼마든지 종말 이전에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종말 이전에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고맙다, 홍범. 그리고 고맙습니다, 모두들…]나는 홍범과, 팔천 년 만에 다시 본 모두에게 다시 인사를 하며 화신체의 눈을 감았다.
이젠 저 어둠속 깊은 곳.
어둠이 준비해 놓은 길을 따라갈 차례다.
‘아니… 아니군.’
어둠이 준비한 길이 아니다.
새하얀 소금의 산.
그리고 어둠.
두 가지가 합쳐져 수레바퀴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두 존재가 준비해준 길이다.
내 동료들과 홍범이 광한계의 힘까지 끌어와서 정신을 어찌 해 보려는 것 같았지만, 팔천 년 만에 깬 것은 소성(小成)을 이룬 후 잠시간의 유예기간이었을 뿐…
…
…
이제 그는 차륜과 차축.
우리가 만들어놓은 길에 들어섰다.
두 제존이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만들어낸 귀한 기회.
오직 전승자가 두 제존의 유혹을 뿌리치고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게 해 놓은 안배.
이는 예언이 아니다.
운명의 권능도 역사의 권능도 아니다.
그저 있을 수 없는 기적일 뿐이다.
그러니 그대 흑사(黑蛇)여.
이번 전승(傳承)만큼은 그대가 무슨 짓을 해도 어떤 축복도 줄 수 없으리라.
이번 전승자는 홀로 걸어가게 되리라…
그렇게, 누군가의 염원(念願) 속에서 서은현은 다시 무아지경으로 어떠한 길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서은현의 시간은 이때부터 다르게 흐르기 시작하였다.
일만 배.
체감시간 일만 배에 달하는 삶의 시간 속에서, 서은현은 회천대성, 정천대성을 만들어 쇄성기 대원만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강민희의 성반기 승급의식을 매개로, 그녀와 연결된 어둠 깊은 곳 [누군가]는 서은현의 정신을 흩었다.
본디 어둠의 유혹에 져버렸다면 강민희와 똑같은 처지가 되어버렸겠지만, 서은현은 유혹에 지지 않고 차근히 원을 그렸기에.
어둠 너머의 [누군가]는 약속을 이행키 위하여 서은현의 정신을 일곱 별 사이를 윤회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서은현의 정신이 항성 주변을 돌며 성반(聖盤)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종말전야(終末前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 (계속)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