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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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여(1)
난 우선 등선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결단기 수준의 여우가 머무는 처소로 가 보았으나, 그곳엔 핏줄기와 흰색의 털만이 남아있을 뿐.
여우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천인기 수도자들이 축기, 결단급의 존재들을 다 잡아갔다는 해룡왕의 말이 허언이 아닌 듯 했다.
‘일단 여우의 동굴이 훨씬 더 영력이 농밀하긴 하군.’
나는 여우의 동굴 주변으로 가, 그곳의 영기를 조금 빨아들였다.
그러나 굳이 여우의 동굴이 아니더라도, 등선향은 곳곳의 영력만 해도 연국이나 벽라국의 네, 다섯배 농도의 영력이 비재했기에, 어디서 수련을 하든 상관은 없을 듯 했다.
‘그럼 일단…’
나는 다시 원래 있었던 동굴로 돌아가, 적당히 먹을 것을 쟁여놓은 후.
지월입도결을 상기하며 공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 * *
한달동안 공법을 운용하며, 나는 칠십이지살의 첫 번째 관문인 지괴성(地魁星)에 대응하는 영맥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영력이 농밀한 등선향에서 전심전력을 다해 운용하니 빠르게 활성화가 된 것 같았다.
거기에 지난 삶 선각후통의 수련법을 따르며 진언과 결인의 이해도를 한참 높인 것 역시 좋게 작용한 듯 했다.
‘그래도 가장 걱정되던 고비를 빨리 넘어서 다행이군.’
지괴성의 영맥은 지난 삶에서 영석을 마구잡이로 흡수하여, 선통후각의 방식으로 활성화시킨 영맥이었다.
아무리 추후에 지괴진언에 대한 이해도를 키우고 수결을 연습했다 하더라도 조금은 걱정이 되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듯 싶었다.
‘일단 영맥을 활성화시켜 연기기 1성에 도달했으니…’
조금 힘들긴 해도 이걸로 기본적인 법술은 쓸 수 있을 터.
‘이제 슬슬, 승천문으로 가 볼까…’
나는 마음을 굳히고, 금벽호, 백골귀마, 창호자, 서휼 등이 날아간 방향을 쳐다보았다.
물론 승천문으로 들어가는 건 천인경 이상은 되어야 노려볼법 하겠지만.
그래도 외곽을 살펴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정말로 어쩌면, 승천문 외곽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고…’
지금까지야 괴군이 나와 김영훈을 바로바로 공간균열에 던져넣은 탓에 한 번 등선향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를 못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좋아, 한번 가 보자.’
나는 마음을 먹은 후 바로 승천문이 있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놀렸다.
파앙, 파앙, 파앙!
나는 천지영기와 공기의 결을 밟아가며 허공답보로 날아가며, 등선향 곳곳의 풍광을 눈에 담았다.
축기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온갖 기이한 생물들이 살고 있었고.
처음 보는 약초나 괴초, 혹은 아주 진기한 영초들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진기한 영초같은 경우엔 천인기 수도자들이 떼어간 탓인지 중요한 부분이 없는 곳이 대다수였지만.
그리고, 몇날며칠을 허공을 밟아가며 뛰었을까.
쿠릉, 쿠르릉…
약 십주야째.
나는 저 멀리서 기이한 형태로 몰아치는 뇌운(雷雲)을 볼 수 있었다.
소용돌이 형태로, 별다른 기류가 없었음에도 허공에서 응집되어 휘몰아친다.
그리고 그 뇌운의 정중앙.
그 바로 아래쪽의 대지.
그곳에, 새하얀 빛이 빛무리를 뿌리고 있었다.
“저게… 승천문(昇天門).”
어쩌면, 나와 동료들을 이 세상으로 데려왔을 원흉.
난 가만히 승천문을 노려보았다.
더 자세히 들어가서 보고 싶었지만…
쿠릉, 쿠르릉…
뇌운에선 실시간으로 벼락이 치고 있었다.
‘엄청난 벼락이군…’
뇌운의 아래쪽으론 엄청난 속도로 벼락이 비처럼 쏟아지는 중이었고, 심지어 뇌운의 사이사이.
시커먼 공간균열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승천문의 주변으론 공간 곳곳이 일그러져 있었으며, 시꺼먼 공간균열들이 입을 벌리고 근처로 오는 이를 잡아먹을 듯이 움틀거린다.
‘최소 결단기…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은 되어야 저곳에 접근이라도 할 수 있겠어.’
난 혀를 내두르며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구경만 해야 하였다.
그리고, 승천문과 뇌운을 구경할 때였다.
“응…?”
뇌운 아래쪽.
승천문의 위쪽.
그 허공에, 뭔가가 떠 있었다.
‘뭐지? 저건…?’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내공을 집중해서 안력을 높여도 흐릿하게만 보일뿐, 무엇인지 잘 가늠이 안 되었다.
그 희미한 무언가는 끊임없이 뇌운에서 내리치는 벼락을 흡수하며 둥실둥실 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수상해 보이는 무언가였다.
‘제길, 저게 뭔지 굉장히 궁금한데…’
난 잠시 고민하다가 승천문 근처, 안전해 보이는 장소를 물색한 후, 그곳에서 다시금 공법을 수련했다.
법력을 더 쌓아서 십리안의 술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저것을 더욱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 * *
두 달이 지났다.
시간이 지난 탓인지, 승천문의 크기는 이전보다 절반만큼 줄어들었고.
나는 그사이 약 12개의 영맥을 더 활성화시켰다.
‘등선향의 영력이 충분한 것도 있지만, 역시 선각후통으로 이미 뚫었던 영맥들인지라 훨씬 속도가 빠르다…’
선각후통은 지닌바 자질이 아닌, 후천적인 노력과 이해도를 통해서 영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기에.
진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수련속도가 빨라지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스승님께 직접 진언들을 사사받은 나는 기초진언에 대한 이해도만큼은 누구도 쫓아올 수 없으리만치 높았다.
난 영맥들을 흐르는 법력을 운용해보며, 십리안(十里眼)의 법술을 운용했다.
십리 이내의 물체가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승천문 위쪽에 있는 물체를 통해 십리안의 법술을 사용하였다.
‘저것은…’
그것은 비석(碑石)이었다.
비석은 끊임없이 뇌운에서 떨어지는 천뢰들을 흡수하며 그 동력(動力)을 바탕으로 허공에 떠 있는 듯 했고.
무언가 글자가 적혀있었다.
-…후대들을 위해 남겨놓고, 마음을 내려놓고 비승하라. 이를 지키지 아니하는 자,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
자세히 보니, 비석은 윗부분이 훼손되어 있었고.
윗부분의 글자는 몰랐으나, 남은 부분의 글자만을 볼 때 승천문을 통과하려는 후대를 위해, 어떤 수도자가 남겨놓은 경고문인듯 했다.
‘뭘 남겨놓으란 거지? 영석이나 기진이보, 영약 같은 걸 말하는 건가?’
또 한 가지.
비석의 글자는 연국, 벽라국, 성제국 등지에서 교양을 위해서나 배우는 고어(古語)로 쓰여져 있었다.
나 역시 교양을 위해 배운 적이 있었기에 간신히 읽을 수 있었지만, 최소한 저 비석이 몇천년 전의 고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그냥 선대의 수도자가 후대를 위해 남겨놓은 경고문이었나.”
난 뭔가 허탈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한 경고문이었던 것이다.
그조차도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걸 보아서, 특별한 경고문이 아닌 승천문에 들어가기 전 마음의 준비를 좀 하라는 의미인 듯 했다.
‘저건 신경쓸 필요 없겠군…’
나는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며, 일단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곳에서 수련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 멀리서 휘몰아치는 뇌운과 공간균열들 덕에 정신이 사나워 집중하기엔 어려운 환경이었다.
또 다시 십주야가 걸려, 나는 나와 동료들이 처음 자리잡았던 동굴로 돌아왔다.
‘일단, 최대한 빨리 지난 삶의 경지를 회복해보지.’
선각후통의 수련법을 익혀왔으니, 공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영기의 밀도가 높은 등선향이라면 빠르게 경지를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수련을 시작했다.
* * *
약 10여년이 흘렀다.
칠십이지살 영맥을 뚫고.
삼십육천강 영성을 응집하고.
십이지율의 영종을 영맥에 적응시키고.
십천간도의 영변을 부여한다.
구궁귀일의 이치에 백팔 영맥영성과 육십 영종영맥을 아홉 가지로 귀일하며.
팔괘의 괘상에 대응하는 모든 영맥을 완결시킨다.
쿠구구구!
전신의 주요영맥이 전부 활성화되고 통합된 것이 느껴졌다.
나는 지월입도와 함께 수련한 지주원법의 공법을 사용하며, 수결을 맺었다.
“지원(地院)!”
쿠구구구!
주변에서 흙벽이 솟구치며, 한 채의 흙집이 지어졌다.
나는 흙집에서 나와, 몇 가지의 신통과 법술을 전부 사용해본 후, 숨을 들이쉬었다.
회귀 10년차.
지난 삶에서는 50여년에 걸쳐 도달했던 연기기 7성에, 10여년만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남은 것은.
‘칠성제의(七星祭儀)!’
하늘의 스물 여덟 별자리중 일곱 별자리를 선택하여, 천지영성을 내려달라는 제의를 치뤄야 한다.
제의를 치루는 법과 절차는 전부 알고 있었다.
제단을 만드는 법도 알고 있었다.
제의에 필요한 시운을 계산하는 법도, 천문을 관측하는 법도 알고 있다.
남은 것은, 그저 하늘이 허락해주는 것 뿐!
이번 생에는.
반드시!
‘반드시, 이 경지를 넘어서고 말리라…!’
* * *
나는 연기기 7성에 도달한 후, 별자리를 관측하고, 시운을 계산하여 근시일내에 제의를 지낼 날짜를 선택하였다.
‘이 날 이 시에 제를 지내면 되겠군.’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문을 읽고, 영력을 감응해본 바.
근 십주야간은 날씨가 맑을 예정이었다.
제를 지내는 것은 이틀 후.
과연, 하늘은 나를 허락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지주원법과 지월입도결을 이용하여 흙과 돌을 끌어모아 제단을 만들고, 근처에서 영초와 영과를 뽑아와 제단을 치장하였다.
그리고, 제의 날짜가 다가왔다.
해가 진다.
그리고, 별들이 몰려온다.
아름다운 별하늘.
그러나, 나는 저 아름다운 하늘이 가진 잔혹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신중함을 잃지 않으며 제의를 열었다.
제(祭)가 시작된다.
“하늘의 도움을 바라 수선(修仙)을 걷고자 하는 인도(人道) 서은현이,
갈건야복(葛巾野服)으로 성제단(星祭壇) 올라 지세(地勢)를 살핀 후에 칠성(七星)을 기리고자 동남풍 빌 제!
천지간(天地間) 이십팔수(二十八宿)와 육정육갑(六丁六甲)을 베풀어 각각 방위를 벌릴 제!
동방갑을(東方甲乙) 청제지신(靑帝之神)은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를 응하여 청존(靑尊)의 형상을 벌리어 꽂고!
남방병정(南方丙丁) 적제지신(赤帝之神)은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을 응하여 양존(陽尊)의 형상을 벌리어 꽂고!
서방경신(西方庚辛) 백제지신(白帝之神)은 규루위묘필자참(奎婁胃昴畢觜參)을 응하여 백존(白尊)의 형상을 벌리어 꽂고!
북방임계(北方壬癸) 흑제지신(黑帝之神)은 두우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을 응하여 음존(陰尊)의 형상을 벌리어 꽂고!!
중앙무기(中央戊己) 황령지신(黃靈之神)은 오방차제(五方次第)로 황신기(黃神旗) 꽂고
서은현이 전조산발(剪爪散髮)한 연후 이리 비나이다!”
오른손에는 축문을 써 놓은 나무껍질을 들고,
왼손에는 돌을 깎아 만든 향로를 들고,
하늘의 성좌(星座)를 향하여 제문을 읊는다.
이십팔수의 별자리 중, 내게 맞을 별자리를 선택하여 일곱 별에게 아뢴다.
“인도(人道) 서은현이 수선의 길을 걷고자 할 제!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 청존칠수(靑尊七宿)께 아뢰오니, 부디 이를 갸륵히 여기어…”
동방갑을(東方甲乙)의 운(運)을 관장하는 칠수(七宿).
각수성(角宿星), 항수성(亢宿星), 저수성(氐宿星), 방수성(房宿星), 심수성(心宿星), 미수성(尾宿星), 기수성(箕宿星) 일곱 별에 기도를 하며, 나는 제무(祭舞)를 추었다.
미리 별자리를 그려놓은 석검(石劍)을 어검술로 불러와 손에 쥐고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는 검무를 취며 제단의 영기를 끌어올렸다.
“이 소성(小星)에게 기회를 허락하소사! 이리 비나이다!
하늘이여, 천지영성(天地靈性)을 내게 허락하사!
하늘이여, 내게 힘을 내리소사…”
그리고, 한참 제무를 추던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양팔을 뻗었다.
“하늘이여…”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끼어 있었다.
분명 영력을 관측해본 바.
티없이 맑을 것이라 예측했거늘.
“…하늘이여.”
별빛의 힘이 끊겼다.
하늘과 계속해서 소통하여야 하건만.
하늘의 영력이 끊기니, 자연스레 제단의 기운도 가라앉았다.
제(祭)가 그렇게 끝이 나버린 것이었다.
“…하, 하하하하…”
그래, 예상했다.
하늘이 내게 쉬이 힘을 주리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지난 삶에서도 그랬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나.
하나 나는…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내 삶을 위해서.
더욱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스승의 노고를 무의미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하늘이시여.”
아무리 고고하게 날 막아선들.
나는 반드시, 반드시 어떻게 해서든!
“그곳에 도달할 것이외다…!”
쿠웅!
나는 발을 굴러 제단을 함몰시켜 버리곤 나직히 하늘을 노려보았다. 그날의 먹장구름은.
회귀 이후 처음 치룬 그날의 제의는, 유난히 어두웠다.
* * *
제의의 시운은 대략 보름에 한번씩은 돌아왔다.
나는 달포마다 꾸준히 제구(祭具)를 더욱 더 정교하게 만들어 끊임없이 하늘에 제를 지내었다.
“인도(人道) 서은현이 수선의 길을 걷고자 할 제!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 청존칠수(靑尊七宿)께 아뢰오니, 부디 이를 갸륵히 여기어…”
“…서은현이 수선의 길을 걷고자 할 제.
두루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 음존칠수(陰尊七宿)께 아뢰오니, 부디 이를 갸륵히…”
“…수선의 길을 걷고자 할 제.
규루위묘필자참(奎婁胃昴畢觜參) 백존칠수(白尊七宿)께 아뢰오니, 부디 이를…”
“…걷고자 할 제.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 양존칠수(陽尊七宿)께 아뢰오니…”
스물 여덟 별의 네 가지 별자리를 돌아가며, 매 시운마다 다른 별자리에게 간절히 청해보았다.
동방갑을의 별자리시여, 부디 나를 받아주소서.
서방경신의 별자리시여, 부디 나를 허락하소서.
남방병정의 별자리시여, 부디 나를 바라보소서.
북방임계의 별자리시여, 부디 나를 일으키소서.
별들이시여.
이 인간이 아룁니다.
제발.
제발…
보름에 한 번씩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고, 또 지냈다.
1년에 스물네번.
간혹 특별한 시운이 추가로 깃들때 추가로 제사를 지내어, 열두번이 추가되어 1년에 서른 여섯 번의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번 실패한다.
실패하고 실패하였다.
하늘은 나를 밀어내고 또 밀어낸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났다.
그리고, 세월은 다시 흘러 10년이 흘렀다.
* * *
10년.
그 동안 500여번의 시도가 있었다.
1년에 정식으로 허락되는 24번의 시운과, 몇몇 특별한 시와 일에 추가되는 시운이 합쳐져, 572번의 제의를 치룰 수 있었다.
그리고, 전부 실패하였다.
그때마다 하늘은 나를 가로막았다.
“…하늘이여.”
나는 이번 제의가 또 다시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직히 하늘을 불렀다.
“힘을… 내려주소서.”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힌 채.
아무런 답이 없었다.
“……”
이제 573번의 실패라 해야겠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하늘을 부르짖고 또 부르짖기를 10여년.
내 수염은 덥수룩해졌고, 입고 있던 옷은 완전히 헤져 거적떼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풀들을 엮어 그것으로 옷을 해 입으며 지내고 있었다.
사람이 없기에 옷도 필요는 없었지만, 제의를 지낼 때 최소한의 예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지만.
이 세계의 하늘은 그런 말을 모르는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이 10년을 내리 바쳤을진데, 정녕 이리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이 맞는가?
“…모르겠군.”
최근 들어서는, 이 모든 게 부질없어 보이기도 했다.
부웅, 붕, 붕!
나는 돌을 깎아 만든, 제사용 석검(石劍)이 내 어검술(馭劍術)에 의해 허공에서 검무를 추는 것을 보았다.
‘…외롭군.’
고독함.
이전에는 몰랐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늘 인간들이 부대끼는 곳에서 시간을 보냈었으니.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수련을 했던 그 때에도, 최소한 스승님과 김영훈과의 교류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진정으로 혼자가 된 것이었다.
혼자서 외로이 검무를 펼치는 어검을 보며, 나는 문득 또 다른 석검을 쥐고, 검에 검강을 불어넣었다.
“…한번 오랜만에 놀아볼까.”
나는 허공에 떠 있는 검을 김영훈이라 생각하고, 그 검에게 달려들었다.
어검은 단맥도법을, 나는 단악검법을 펼치며 혼자서 그렇게 하루 종일 칼춤을 추었다.
* * *
한 일주일 정도, 완전히 정신을 놓고 어검과 칼춤을 추었다.
실컷 몸을 움직이니, 조금은 머릿속에 깃든 짜증이 풀리는 듯 했다.
거기에 어검술 역시 더욱 더 자연스러워져, 이전보다 한층 진보한 느낌이었다.
단맥도, 산바람의 초식을 머금은 어검이 내게 빠르게 쏘아진다.
난 다른 검을 손에 쥐고 유곡의 초식으로 어검을 흘려내 버린 후 가공의 상대에게 괴암과 기석의 초식으로 반격하였다.
이제 어검을 다루는 실력은 늘어나고 늘어나서, 마치 허공에 검이 떠 있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김영훈이 검을 잡고 내게 휘두르는 듯 했다.
“…김 형. 내 실력은 어떻소?”
부웅, 붕!
어검이 내게 짓쳐들어오며, 용릉의 초식으로 내 발밑을 노린다.
나는 입산의 기수식을 취한 뒤 공곡전성의 초식으로 하단세에서 용릉을 받아 되쳐버렸다.
하지만 어검은 딱히 쥐고 있는 주체가 없었기에 큰 피해를 받지는 않았다.
“그렇구려. 아직도 형편없는건가. 하지만 많이 좋아지지 않았소?”
어검을 쥔 김영훈은 한숨을 쉬며, 뭐라뭐라 내 자세를 지적하고,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고는 했다.
“고맙소. 말상대를 해 주어서.”
난 김영훈과 대화를 나눈 후, 내 검세를 살펴보고, 그가 말한 부분을 고친 후 검을 휘둘러보았다.
확실히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음, 그렇군. 의념을 그렇게 운용하는 게 더 도움이 되려나…”
김영훈은 혀를 차며 또 다시 내 내공운용과 의념운용을 지적하곤 했고.
나는 그때마다 착착 운용을 고쳐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고맙소, 김 형.”
김영훈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대련 중에 잡담은 무(武)를 겨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다시금 검을 잡고 내게 덤벼들었다.
“하하하, 신명나게 놀아봅시다!”
나는 껄껄 웃으며 김영훈과 부딪혔다.
* * *
며칠이 지났을까.
나는 그날도 무의식적으로 천문을 계산하고, 제단을 미리 만들어둔 후 제구들을 확인하고.
김영훈과 만나 무를 지도받았다.
“아니 김 형. 도대체 내 자세에 어디가 문제가 있단 거요!”
김영훈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내 앞에서 몇 번 무공시연을 선보였다.
난 한참동안 그의 무공시연을 본 후.
그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모르겠으니, 그냥 한번 부딪혀 봅시다.”
김영훈은 씨익 웃으며 검을 잡고 내게 달려들었다.
나 역시 검무를 추며 그와 부딪혔다.
‘그런데, 김 형이 원래 검을 썼던가?’
그의 주무기는 도였을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영훈과 더욱 더 재미나게 놀 수 있게, 법술로 바위를 제련하여 석도(石刀)를 한 자루 만들어 내었다.
김영훈은 도를 들어보고는 마음에 든다는 듯 바라본 후.
내게 바로 산새의 초식으로 파고들어와 도를 휘둘렀다.
“그래, 역시 김 형은 도를 써야 상대할 맛이 나는구려!”
그와 검무를 추고, 또 추며.
시운을 계산하여 시일이 맞을때는 하늘에 대고 제의를 지낸다.
그리고 여실히 또 실패하였고.
나는 제의를 실패한 제단은 김영훈과 함께 때려부순 후, 그와 무공을 겨루기를 수백번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몇날 며칠이 흘렀을 터였다.
* * *
어느 날, 나는 김영훈과 자리를 옮겨가며 무를 겨루던 중.
원래 머물던 동굴에서 한참을 멀어지게 되었다.
승천문 방향은 아니었고, 승천문에서 반대쪽 방향.
그러니까, 금벽호, 백골귀마, 창호자, 서휼 등이 온 곳이었다.
“그러고보니 김 형. 저쪽으로 계속 가면, 우리가 아는 벽라국이나 연국 같은 곳이 나오는건가? 등선향에서 우리가 아는 지형으로는 당최 어떻게 이어져있는지를 모르니…”
김영훈은 내게 도를 휘두르며, 그럼 한번 이대로 쭉 가보자고 하였다.
“하하, 좋소. 계속 가며 한번 신명나게 부딪혀 봅시다!”
다시금 그의 도가 내 검과 부딪히며.
나는 그와 분전을 벌이며 천인기 수도자들이 왔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약 두 달 후.
나와 김영훈은 마침내, 등선향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쿠우우우-
“……”
이건…
나는 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영훈도 마찬가지였는지, 놀란 눈으로 멍하니 도를 늘어뜨린 채 등선향의 끝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난 삶에서 청문세가의 서고를 들락거렸어도, 왜 등선향으로 가는 직접적인 길목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는지… 그 이유를 알겠군.”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멍하니 등선향의 끝으로 걸어갔다.
등선향은, 하늘에 떠 있었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영기를 머금고, 그렇게 하늘 위로 떠 있는 것이었다.
저 아래로 까마뜩하게 지상이 보인다.
동시에, 나는 등선향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답천(踏天) 사막…”
저 아래로 보이는 것은, 분명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그리고 내가 아는 한에서, 그런 사막은 답천사막뿐이었다.
“왜 하필 사막 이름이 답천인가 하였는데..”
답천사막의 이름이 답천사막인 이유는, 연국과 벽라국의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는 이유였다.
누구는 답천사막은 하늘과 이어져있다는 설화가 내려와 답천사막이라 불린다 했고.
누구는 답천사막에 이어진 끝없는 모래를 밟고 사막을 횡단하다 죽어 하늘로 올라간 이들이 많아 답천사막이라 불린다 하였다.
누구는 답천이란 말이 먼 동방 사막 너머 국가들의 언어를 음차한 것이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등선향, 그리고 승천문…’
수도자들이 하늘로 비승할 수 있는 입구가 있는 곳.
그곳이기에, 수많은 수도자들이 답천(踏天)이라 이름붙인 듯 하였다.
“…놀랍구려. 김 형.”
나는 김영훈을 보며, 내 감정을 말하려 했고, 문득 그를 바라보며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김영훈의 육신이, 흐릿해졌다.
‘아니, 아니다.’
“…하, 하하하…”
나는 검을 들고, 흐릿해진 김영훈에게 달려들었다.
나와 흐릿해진 인영이 맞부딪혔다.
얼마간 합을 주고받던 중.
나는 인영의 빈틈을 파고들어, 인영을 도신째로 반으로 갈라 죽여버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인영은 그렇게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
툭!
인영이 들고 있던…
아니.
내가 지금껏 혼자 조종해오던 어도(馭刀)가 허공에서 툭 떨어졌다.
“…그래, 김영훈은, 23년전에 내가 홀로 보냈지.”
이제야 생각이 났다.
나는 지금껏, 약 2년 반째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등선향이 하늘에 떠 있는 천공도(天空島)라는.
충격적이고도 장엄한 그 광경을 보며.
잠시 머리가 맑아지자 깨달았던 것이다.
“하하… 하하하하…”
나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반쯤 미친상태로 계산한 결과, 오늘 밤이면 다시 제의의 시운이 돌아오는 날이다.
그러나, 나는 제단을 세우지도, 제구들을 만들거나 가져오지도 않았다.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또 울었다.
별들이 떠올랐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는, 제의를 행하지 않고, 별들을 향해 그렇게 부르짖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 자리에 머물러야 한단 말입니까…!”
제발, 나를 이 다음으로 보내주소서.
제발 내가 더 미치지 않게 하소서…!
하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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