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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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1)
먹장구름 밑으로 들어가고, 바다를 헤쳐나가길 수 시진.
얼마 후, 나와 서란의 시야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저건, 결계?’
일반적인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일반적인 해역과 다를 것 없이 파도가 치는 대해.
그러나 요족의 지각으로 음양의 흐름을 보자 저 멀리 넓은 해역의 흐름이 주변과 다르게 기이하게 비틀려 있다.
“저 결계입니까?”
“아니, 저건 그냥 환상결계일 뿐이다. 물론 흑색귀골곡의 진법사들이 공간을 꼬아 놓아서 저 인근으로 들어가면 반대편으로 나오긴 하지만… 저 정도야 진즉에 파훼법은 찾아냈다.
저 안쪽에도 몇 겹의 결계가 더 쳐져 있으니 그 모든 결계를 전부 돌파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촤아아아!
바다를 헤엄치던 서란이, 순간 요력을 뿜어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꽉 잡아라!”
파아앗!
서란의 뿔에서 비취색 빛이 뿜어지며 사방을 물들였다.
꽈과광!
동시에, 나는 거대한 파공음을 들으며 호신강기로 충격파를 방어했다.
촤아악!
나와 서란이 보이지 않던 기묘한 영력의 흐름을 통과하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점차 눈을 떴다.
‘이곳은..’
안개.
해무(海霧)가 사방천지를 뒤덮고 있다.
그러나 순간, 나는 전신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아니, 해무가 아니다.’
가공할 음기(陰氣).
꿀꺽
‘귀혼(鬼魂)들…!’
“너는 입을 열지 말아라. 이것은 두 번째 결계이다. 살아있는 인간의 소리가 울리면 저것들이 네게 달려들테니. 나는 해룡족이고, 해룡족은 기본적으로 음(陰)의 힘도 다룰 수 있으니 내게는 달려들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문제가 없지만 넌 최대한 기척도 죽이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란은 다시 허공에서 내려와 물로 들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흑색귀골곡에서 풀어놓은 원혼들이다. 이만한 규모의 원혼들이 모여있고, 흑색귀골곡의 결계가 주변을 뒤덮으니 이 해역에는 늘 폭풍이 불어닥치지.”
‘원혼은 비바람을 부르는 건가?’
확실히 원혼이나 귀신, 그런 것들이 모여서 같은 음한 성질을 가진 먹구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럴듯 했다.
잡생각을 하며 서란의 목을 붙잡고 있을 때였다.
아아아아-
끼야아아아!
아아아!
“….?”
서란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어째 멀리서 울려오는 듯한 귀곡성이 울려퍼졌다.
“걱정 마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섭명함의 영향을 받아 특이한 귀신들이 많아 저런 것이니…”
그때였다.
[귀신이다…!] [아주 큰 귀신이야!] [아주 큰 귀신이 해역에 들어왔다!] [찾아라! 아주 큰 귀신을 찾아!]쿠구구구!
해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뭣…! 이런 적은 없었는데!?”
서란이 당황하며, 기척을 죽이고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악!] [큰 귀신이 우리를 다 잡아먹으려 온 게 분명하다!] [끼아아아악! 귀신이다! 아주 큰 귀신을 잡아라! 아주 큰 귀신이 들어왔다!]그저 뿌옇기만 하던 해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싸아아아-
해무가 시커멓게 물든다.
동시에, 그 시꺼먼 안개 속으로 수천, 수만개의 붉은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무슨,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거지!”
서란이 당황하며 더더욱 빠르게 헤엄쳤다.
쿠구구구!
검은 안개 속에서, 붉은 빛들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크윽, 꽉 잡아라. 다시 한번 날아오를 것이다!”
서란의 몸에서 다시금 영기가 뿜어졌다.
‘서휼은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던 것 같은데, 서란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긴 힘든 건가.’
하긴 이 거체를 생각하면 오히려 원하는대로 날아다녔던 서휼이 대단한 것이었다.
촤아악!
그가 물에서 나와 허공으로 도약한다.
나는 서란의 갈기를 잡고, 최대한 숨을 참으며 귀신들의 눈을 피했다.
얼마나 허공을 날았을까.
“두 번째 결계를 돌파하겠다!”
촤아아악!
나는 이번에는 갑자기 전방에 나타난 물의 장벽을 뚫고, 전신이 흠뻑 젖은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
거대한 물의 장벽!
이 주변의 몇백 리가 물이 존재하지 않았고, 중력의 영향을 무시하는 듯, 바닷물들이 물의 장벽을 만들어 거대한 하나의 우물을 만들고 있었다.
그 ‘바다의 우물’의 중심.
그곳에, 몇십리를 다 뒤덮을만큼 거대한 반투명한 결계가 보였고.
그 결계 안쪽, 강력한 귀기를 뿜어내는 전함이 하나 보였다.
“이제 말을 해도 된다. 귀신들은 이 결계 안쪽으론 못 들어오니까.”
“휴우… 저게 섭명함입니까?”
“그래.”
촤아아아!
서란은 물의 장벽을 타고 미끄러지며 바다의 우물 밑으로 내려갔다.
“이제 내려라. 이 앞에서부턴 딱히 네게 위험한 건 없으니까.”
나는 서란의 목에서 떨어져, 허공을 밟고 저 결계를 향해 다가갔다.
결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결계 안쪽의 전함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전함은 처참히 부서져, 거의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서 강력한 귀기와 음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결계는 범인들과 일반 짐승들을 막기 위한 결계. 두 번째 귀신들의 해무는 인족 수도자들을 막기 위한 결계. 그리고 이 마지막 결계는 나 같은 요족을 막기 위한 결계이다.”
서란의 설명이 이어졌다.
“뭐, 방금 전의 귀신들은 의식을 가진 존재들이라 기이한 돌발현상이 일어난 것이지만, 이 결계는 딱히 살아있지 않으니 돌발상황은 안 일으킬 터.”
그가 꼬리를 들어, 결계에 조금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파츠츠츳!
파앙!
빛이 터지며 서란이 뒤로 물러났다.
그의 꼬리에는 녹색의 귀화(鬼火)가 붙어 이글거리고 있었으며, 서란이 영력을 집중시키자 그제야 꺼져버렸다.
“요족인 나는 이런 반응이지만. 인족의 혈통을 가진 너는 다를 터. 한번 손을 가져다 대어 보거라.”
나는 조심스럽게, 내단의 기운을 최대한 제약한 채로 결계에 손을 가져대 댔다.
그리고.
치지직!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내 손이 결계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
“음, 정말 들어가지는군요.”
“그래, 말 그대로 요족만을 막기 위한 결계니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결계 안쪽으로 들어갔다.
촤악!
내단 부근이 조금 아릿했지만, 나는 무난하게 바로 결계를 통과할 수 있었다.
너무 쉬워서 조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서 형. 너무 난이도가 낮은 것 같습니다만…”
“맞다. 인족의 혈통을 지닌 네게는 난이도가 낮은 게 맞지. 이제 나도 들어갈 수 있게 결계를 발동시키고 있는 섭명함 인근의 깃발 여덟 개를 전부 뽑아주면 된다.”
서란이 결계 너머에서 발톱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 그곳에는 귀신 얼굴이 그려진 깃발이 꽂혀 있었다.
그런 깃발은 전함을 중심으로 총 여덟 개가 물 위에 꼿꼿히 서 있었다.
나는 빠르게 움직여 전함 주변을 돌아다니며, 여덟 개의 깃발을 전부 뽑아버렸다.
그리고, 섭명함을 둘러싼 결계가 빛을 잃으며 서란이 내게 다가왔다.
“뭐랄까… 굉장히 난이도가 낮은 게 아닙니까?”
“뭐, 여기까지는 분명 난이도가 낮은 게 맞다. 애초에 신물이라고는 해도 폐기된 신물. 신물이라는 상징성 외엔 아무것도 없는 고물덩이를 위해 흑색귀골곡에서 그렇게 엄청난 경비를 세웠을 리가 없지 않으냐.”
그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제일 성가신 것은,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해무의 결계에 진입하면 귀신들이 흑색귀골곡에 신호를 보내게 되어있던 것이다. 그럼 흑색귀골곡에선 결단기 수도자를 보내서 나 같은 요수들을 사냥해버리곤 했지.
어찌어찌 여기까지 진입해도, 원래는 흑색귀골곡에선 이 곳에 축기기 내당제자들을 몇몇씩 배속해 두어서 사냥당했겠지만… 이젠 흑색귀골곡이 상계로 통채로 사라졌으니, 솔직히 더 난도가 높은 것도 이상한 거다.”
“그렇군요.”
“어쨌든 진짜는 저 안에 들어간 후부터다. 저 안쪽에서 나와 함께 뭔가를 찾는 것을 도와다오.”
“예.”
애초에 결계보다는 사람을 보내서 지키게 했던 것이었던 듯 했다.
지금은 그 지킬 사람이 전부 상계로 올라가 버려서 쉽게쉽게 담을 넘은 것이고.
“그나저나, 폐기된 신물이라도 이렇게 큰 규모의 결계로 지키고, 내당제자도 한둘쯤 와서 지켰다는 걸 보면 원래는 상당한 신물이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저렇게 된 겁니까?”
나는 서란과 함께 전함으로 다가가며 질문했다.
전함은 한켠이 그대로 박살나 있는, 반파된 상태였다.
멀쩡한 곳도 몇몇 있어 보였지만 많지 않았다.
“…흐. 인족들끼리의 전쟁에 저리 되었지.”
“무슨 전쟁이 있었던 겁니까?”
“아마 너는 태어나기 이전일 테니 모를 터다. 괴군(怪君)이라는 인족 수도자가 하나 있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만, 괴군이 섭명함의 내부 부속품 중 하나를 뜯어가겠다고 어느날 갑자기 난리를 쳤고.
흑색귀골곡은 당연히 미친 소리하지 말라며 무시했으나, 괴군의 난리에 의해 흑색귀골곡의 천인기 원로 둘이 살해당했다. 그에 흑색귀골곡 역시 눈이 돌아가서 종문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괴군을 잡으려 했다.
괴군은 도망치지 않고 흑색귀골곡과 단신으로 전쟁을 벌였으며, 그 결과 흑색귀골곡의 단 세 대밖에 없는 섭명함이 작살이 났고, 흑색귀골곡의 3분의 1이 궤멸했다.”
“……”
“결국 괴군은 기어코 섭명함 한대를 박살내버리고, 안으로 들어가 핵심 부품을 뜯어내고 가 버렸다. 흑색귀골곡의 누구도 그 미치광이 수도자를 못 막았더랬지.”
도대체 뭐지, 그 어마어마한 전적은?
‘괴군이라면 그 곱사등이 노인… 그 자가 그 정도로 말도 안되는 힘을 가졌단 말인가?’
하기사, 그냥 미친놈이라면 다른 천인기 수도자들.
심지어 점잖던 해룡왕까지 질색을 하며 부르르 떨 리가 없었다.
미친놈이 말도 안되는 힘까지 가졌기에 그렇게 질색하는 것이리라.
“괴군과 싸우기 전까지, 흑색귀골곡은 세 대의 섭명함을 타고 대해를 누리며 무시무시한 위세를 떨쳤던 종문이었지만. 괴군과 전쟁을 치룬 후에는 한 해역에 쳐박혀서 얌전히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흐. 솔직히 바다에 살던 수많은 요족들은 상당히 그때 일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뭔가 흑색귀골곡에 안 좋은 감정이 있던 것인지.
서란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나와 함께 섭명함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섭명함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굉장히 단단하고 광택이 돌았다.
동시에 갑판에서 상당한 음기와 귀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들어가보지.”
서란은 갑판을 따라, 배 안쪽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화아악!
“…!”
나는 눈을 부릅뜨고 안쪽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문을 열었을 뿐인데도 가공할 음기와 귀기가 뿜어져나왔다.
동시에 그 안쪽은 완전히 어둠에 가려져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란도 조금 긴장이 되는지, 문 앞에서 그 거체를 잠시 빳빳하게 곤두세웠다.
“…그런데 서 형. 서 형이 들어가기엔 이 안쪽이 조금 좁을 것 같은데…”
“…그건 걱정 말아라. 일단 들어가 보지.”
스르륵
서란은 말을 하며 그대로 안쪽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긴장을 곤두세우며 서란을 따라 들어갔다.
화아악!
그리고,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밖보다 안이 넓다…!’
어마어마한 공간!
밖에서 보았던 것 이상의, 수천배 넓이의 통로가 내 앞에 존재했다.
서란은 그 통로에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흑색귀골곡은 섭명함 세 대를 타고다니며 전 대해를 지배했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섭명함 자체가 곧 말도 안되는 배율의 공간이 압축되어있는 신물(神物)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섭명함은, 흑색귀골곡의 본산(本山)이나 다름없는 전함이야. 아니, 그들의 본산인 귀곡(鬼谷) 역시 섭명함을 정박해두기 위한 항구에 불과했으니. 사실상 섭명함이 곧 흑색귀골곡이라 표현하는 게 맞을 터다.”
“허어…”
나는 이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어서 잠시 말을 잃었다.
“듣기로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고대의 장인 중 하나가 진선들의 선보(仙寶)를 모방해서 만들어낸 법기라 하더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통로를 지나고, 우리는 거대한 공동에 도착하였다.
공동 곳곳에는 귀신 조각상이 나뒹굴고 있었고, 곳곳에 꽤 크기가 큰 목조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함 내부의 방이나 건물들에 전부 들어가서, 혹여 이런 기운을 내뿜는 것이 있는지 보아줄 수 있느냐?”
우웅!
서란이 앞발을 뻗자, 그 위로 해룡족의 기운이 진하게.느껴지는 손톱만한 구슬 같은 것이 떠올랐다.
“형태가 아니라 기운을 잘 기억하거라. 이 기운을 내뿜는 물건을 발견하면 바로 내게 말해다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서 찾아볼까요?”
나는 그가 내뿜은 기운을 기억하고 4, 5층 크기의 누각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저 거대한 게 전부 들어가고도 아직 까마득하게 공간이 남는 크기… 그 크기의 공간이 고작 전함 한 대에 압축되어있다니.’
이 정도는 되어야 거대 수도종문의 신물이라 불릴만 한 것인가?
내가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저벅-
피잉!
발을 내디뎠을 때.
극속으로 뭔가가 내게 날아온다.
“….!”
카앙!
나는 황급히 강기를 뿜어 그것을 쳐내버렸다.
‘이건..!’
그것의 정체는 작은 비도였다.
자세히 보니, 한쪽 벽에 구멍이 열리며, 그곳에 숨겨져 있던 기관장치가 날아온 것이었다.
‘기관장치?’
그리고 그때.
까드득, 까드드득..
목조건물 안쪽에서 뭔가가 맞춰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안쪽에서 뭔가가 걸어나왔다.
까드득, 까득..
그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꼭두각시들이었다.
꼭두각시들은 잠시 어색한 움직임으로 움찔거리는 듯 하더니,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흥!”
콰앙! 콰아앙!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장심에서 강환을 뿜어, 꼭두각시들을 완전히 갈아버렸다.
“서 형. 이것들은..”
“듣기로는, 괴군이 섭명함에 들어와서 남긴 기관장치라 하더군. 어떻게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괴군은 앉은자리에서 한 시진만 있으면 그 일대를 자신의 기관장치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인간이라 들었으니..”
그때였다.
까드득, 까드드득…
저 멀리서, 또 다른 꼭두각시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서란은 미간을 꿈틀거리며 거체를 움직였다.
“그래… 어디 같이 돌파해 볼까?”
“그러지요.”
서란과 나는 우리에게 달려드는 꼭두각시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우리는 꼭두각시들을 돌파하고, 수많은 기관장치를 피하며 안을 뒤졌다.
전함의 안쪽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넓었고, 차라리 그 규모는 대산맥에서 보았던 금신천뢰문의 규모에 뒤지지 않았다.
심지어 흑색귀골곡엔 이런 전함이 현재 두 대는 더 있다는 것이니.
그 성세를 익히 짐작할만 했다.
바깥에서 볼 때 반파된 곳은 공간이 일그러진 것인지 아예 진입이 불가능했고, 우리는 공간이 멀쩡한 곳의 기관을 부수며, 배의 하부로 내려갔다.
싸아아아…
전함의 하층에는 귀기가 가득했다.
귀신이나 원혼은 없었지만, 그 가공할 귀기에 의식이 떨려올 정도였다.
“서 형. 조금 의식이 아려오는군요.”
이곳의 귀기가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서란은 그 말에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작은 금빛 방울이 튀어나오더니, 한 번 흔들렸다.
딸랑-
맑은 소리와 함께 주변의 어둠이 조금 몰려가는 듯 했고.
그제야 의식에 가해지는 통증이 조금 줄어들었다.
“구마(驅魔)의 힘을 지닌 법보(法寶)로 귀기를 조금 몰아냈다. 지난 3년간 이 법보에 힘을 불어넣느라 고생했지. 하지만 통증을 완전히 없애려면 의식을 압축해서 의식에 형태를 부여하는 게 좋을 거다.”
서란은 나를 보며 조언을 해 주었다.
나는 그 말에 호풍응룡변의 구결을 이용하여, 의식을 해룡과 같은 형태로 바꾸었다.
서란의 의식은 그와 완전히 같은 형태로 그를 덮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부담을 적게 받는 듯 했다.
‘확실히 의식에 형이 갖추어지니 정신에 가해지는 공격에 더 잘 저항할 수가 있군.’
나는 의식을 단단하게 방비하고, 서란에게 질문하였다.
“서 형. 그런데 법보는 또 무엇입니까? 법기와 다른 것입니까?”
“별 걸 다 물어보는군. 법기는 연기기부터 축기기 수도자가 사용하는 장난감.
법보는 결단기 수도자가 사용하는 진정한 무구를 뜻하지. 결단기 수도자의 금단(金丹) 내부의 힘을 먹고, 수도자와 같이 성장하는 법구를 뜻한다.”
그는 법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결단기 수도자가 아닌 축기기 이하가 사용하려면, 이렇게 몇년간 힘을 축적했다가 사용해야 하긴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지.”
“음 그렇다면 서 형께서도 추후에 결단기에 상응하는 경지에 오르면 법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내 질문에 서란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아쉽게도 요족은 원래 법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엄니와 발톱, 비늘 등이 곧 우리의 법보나 다름없기 때문이지. 이 법보는 이런 특수한 상황에만 가끔 쓰는 것이지, 내 주력기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렇군요..”
우리는 섭명함의 귀기를 몰아내며, 곳곳에서 달려드는 꼭두각시들과 기관장치를 부수며 더욱 더 밑으로 내려갔다.
“그나저나 섭명함은 정말 명계를 건널 수 있는 겁니까?”
“상징적인 이름이겠지. 듣기로 이건 고대의 명장이 만든 전함인데, 진선들의 선보를 본따 만들었다 하니 그 선보는 정말 명계로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전함은 공간을 넘는 건 가능하여도 완전히 죽은 이들의 세계로 가지는 못한다 알고 있다.”
“공간을 넘는 건 또 가능하다니, 그것만으로도..”
막 달려드는 꼭두각시 하나를 박살내며, 그렇게 아래로 내려갔을 때였다.
“음? 이번 층은 꼭두각시가 안 달려드는군요.”
조용하다.
그리고, 어둡다.
이전 층에서는 대략적인 윤곽이라도 보였다면, 이번 층은 완전히 어두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용하다.
그리고, 귀기가 넘실거렸다.
“……”
“……”
나와 서란은 아무런 의견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동시에 입을 다물고 주변을 경계했다.
요족의 지각은 예민했다.
주변의 태극의 순환이 바뀌었다.
음양이 제대로 순환하지 않고, 양기가 음기에 억눌려 있다.
이번 층에, 뭔가 위험한 것이 있다.
그때였다.
[왠 귀신이 섭명함에 감히 흘러들었나 했더니… 요족 한 마리와 인간이잖아? 요족 놈이야 그렇다 치고, 이건 또 뭔데 살아있는 인간 주제에 혼(魂)에 죽음을 몇 겹이나 덧칠하고 있는 게야?]오싹!
“커헉..!”
“크으욱!”
숨 쉬기가 힘들다.
몸에 절로 오한이 든다.
[귀신들이야 자기 죽음을 덧칠하고 있는 게 당연한데. 이 놈은 도대체 왜 죽음이 여러겹 덧칠된 게지? 기이히다 기이해…]나는 이 기운을 느낀 적이 있다.
막리세가, 진씨세가, 청문세가 등에서 느낀 기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재해.
결단기(結丹期)의 기척이다.
[아주 큰 귀신이로구나. 산 사람의 껍질을 뒤집어쓴 귀신아… 너는 감히 어떤 용무로 이곳에 들어왔느냐?]“크허억..! 도, 도망치자!”
번쩍!
서란의 방울에서 광채가 터져나왔다.
동시에 나와 그를 압박하던 압력이 순간 사라졌다.
[이 놈, 그 법보는 설마..]“빨리 위쪽으로…!”
서란이 절규하듯 울부짖었고, 나와 그는 미친듯이 윗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아하하, 그렇군. 해룡왕가의 사생아가 네놈이로구나. 서휼의 후예인 왕족(王族)일텐데 다들 상계로 올라갔을 시기에도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서휼이 네놈을 버린 것이겠지. 아주 큰 귀신 한 마리와 본곡의 오점(汚點)이라니. 죽은 늙은이한테도 신나는 날이 오는구나!]쿠구구구!
밑바닥에서부터 시꺼먼 귀기가 우리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감히 네깟 놈들이 천인기 수도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성 싶으냐!]저 존재의 목소리가 전함 곳곳을 울린다.
나는 천인기라는 말에 머릿속이 아찔해져 순간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정신 차려라! 천인기라면 이번에 비승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아마 괴군에게 살해당한 천인기 수도자의 분혼쯤 될 것이야! 고작해야 결단기 수준의 힘밖에, 그것도 이 전함 안에서밖에 못 낼 것이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해라!”
나는 서란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호풍응룡변을 운용하며 바람으로 몸을 감싼채 더더욱 빠르게 위쪽으로 도망쳤다.
[감히 어딜 도망치느냐, 버러지들이!]쿠구구!
뒤쪽에서, 음기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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