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86)
임종(臨終)(3)
축기공법.
연기기 기초공법 등은 수도자들 사이에서 영석만 있다면 쉬이 구할 수 있었으나, 수도가문의 장로급부터 익히는 축기공법부터는 구하는 난이도가 훨씬 높아졌다.
축기공법보다 뛰어난 결단공법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연기기 기초공법 같은 경우엔,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오월입도경에 수록된 5가지 공법과 청문세가의 지주원법 여섯 가지였다.
심지어 다른 수도자들한테 연기기 기초공법을 더 구매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당장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축기공법은 스승님이 내게 지식으로 불어넣어준 목 속성 공법 하나밖에 없었다.
목 속성 공법, 천린수해성(千璘樹海成)
이론상 축기기부터 결단기의 경지를 지나 원영기까지 이를 수 있는 공법서였다.
물론 선각후통에 치중되어있었으며, 공법구결을 익히기가 어렵고 이해의 난이도가 상당하여 청문세가에서도 스승님 외엔 익힌 이가 없는 공법구결이었다.
‘천린수해성도 훌륭하긴 하지만, 그래도 원하는 공법은 다 준다라…’
특히나 흑색귀골곡은 역사가 깊으며 없는 속성 공법이 없다고도 하였다.
‘일단 축기기 공법도 최대한 많이 구하면 나쁠 건 없겠지. 그리고 추후에 결단, 원영기에서 쓸 수 있는 공법도 미리 다 구할 수도 있으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당신이 주는 공법서가 멀쩡한 공법서라는 걸 어떻게 믿소?”
당장 서휼에게 호풍응룡변으로 사기를 당한 전적이 있는 나로선 쉬이 공법서를 준다는 제안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놈, 감히 대청색귀골곡의 원로였던 나를 의심하는 게냐?]“원로고 뭐고 당신은 이제 그냥 죽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나로서는 너무 걸린 게 많아서 말이오.”
[끄음, 무엄한 놈… 좋다. 약조를 하마.]그가 섭명함의 벽면에 손을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섭명함(涉冥艦)의 앞에 나 대청색귀골곡의 원로 송진(淞津)이 대고 맹세하니. 대청색귀골곡의 이름의 명예를 걸고 공법서에 대하여 거짓을 읊지 아니할 것을 약조한다.]우웅!
섭명함의 벽면이 미약하게 진동하였고, 그 진동과 함께 귀혼, 송진과 섭명함 사이에 어떠한 주술적인 연계가 생기는 듯 하였다.
나는 그의 심상과 의념을 들여다보며 진위여부를 판단하였다.
확실히 꿍꿍이가 있긴 했지만, 최소한 공법서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진 않는단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뭐 좋아. 작은 꿍꿍이 정도야…’
김영훈 역시 그의 심상을 읽었는지 내게 심어를 보내왔다.
괜찮겠느냐는 의미의 심어.
나 역시 심어를 보내어 괜찮다고 답해 주었다.
“좋소, 그럼 하려는 부탁이 무엇인지나 들어보겠소. 만약 무리한 부탁이라면 들어주지 않겠소.”
[무리한 부탁은 아닐 거다. 너희에게 섭명함의 조작법을 가르쳐 줄 테니, 섭명함을 끌고 바다로 나아가다오.]“…그것 뿐이오?”
[그것 뿐이다.]그때, 서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섭명함은 더 움직일 수 없는 게 아닙니까?”
[흥, 주요 기능의 대다수와 동력원을 상실했을 뿐이지 섭명함에 남은 잔여혼력으로는 예닐곱번 정도 더 항해할 수 있다. 다 망가졌지만… 한 번 정도 더 항해하는 건 일도 아니야.]송진은 씁쓸한 표정으로 섭명함을 어루만졌다.
[섭명함은… 더 날 수 있다.]나는 송진의 심상을 읽었다.
그는, 이 섭명함과 함께 최후를 맞고 싶은 듯 했다.
‘원하던 곳에서, 원하던 순간에 최후를 맞이하고픈 기분이라…’
나는 어쩐지 그에게 공감이 가는 것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는 이 노귀의 부탁을 들어드리려 합니다만. 김 형은 어떻습니까?”
“마음대로 하거라. 다만 나는 섭명함 조작이니 그런 건 못 한다.”
“서 도우는 어떻습니까?”
“저는…”
서란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송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귀골곡의 원로께서, 제 어머니가 남긴 것을 찾는 것에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서란의 말에, 송진이 얼굴을 팍 찌푸렸다.
[아까부터 신경쓰이긴 했다만, 그래 역시 네놈이었군. 본곡의 오점, 반편이 인요. 흐, 듣자하니 인요혈통인데도 요족의 피가 짙어 칠성제의를 통해 천기를 읽을 수도 없고 일족에서 반편이 취급받았다지?]송진은 서란을 노려보았다.
[네놈의 어미는 촉망받는 청색귀골곡의 대제자였다. 너를 낳지만 않았어도 그 아이는 충분히 지원을 받아 원영기 장로가 될 수 있었거늘.너라는 오점이 생겨 지원이 끊기고 해룡족과 붙어먹었다는 불명예를 사 평제자로 신분이 하락했다!
네 놈이 지금 내게 무슨 염치로 어미의 유품을 찾아달라는 거냐?]
“……”
송진은 마뜩찮다는 얼굴로 서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찾고 싶으면 네놈이 알아서 찾아라. 난 그런 것은 돕지 않겠다.]나는 송진을 압박해 서란을 돕게 할까 생각을 했으나, 송진의 완고한 심상을 보곤 포기했다.
아무리 압박할지라도, 그는 흑색귀골곡의 명예와 직결되는 이 일에 대해서는 양보할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다.
“서 도우, 내가 찾는 건 도와드리지. 같이 찾으면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그건 그리 하고… 일단 정말로 섭명함을 끌고 바다로 나가주기만 하면 되는 거요?”
[그래. 난 그것이면 족한다. 섭명함의 조작법을 알려줄테니 따라와라.]난 송진을 따라 섭명함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섭명함은 애당초 배 자체에 충전되어 있는 귀력과 혼력으로 움직이는 배이다. 괴군 놈이 동력원을 빼가기 전에는 혼력과 귀력이 반무한으로 차올랐지만, 지금은 몇 번 쓰면 혼력이 싸그리 동나겠지.]그는 내게 섭명함의 조작법 등을 가르쳤다.
나는 동시에 서란에게는 섭명함의 저층부를 찾아보라 일러주고 내가 섭명함의 상층부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물론 지난 생에 섭명함의 상층부는 이미 찾아봤어서 없었으니 그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한 배려였다.
나는 송진에게 며칠간 섭명함의 조작법 등에 대해 배웠고, 서란은 섭명함의 저층부를 샅샅이 찾아다녔으며.
김영훈은 능광도를 수련하였다.
약 보름의 시간이 지났다.
[대충 능숙해진 것 같군.]송진은 내가 섭명함의 조타륜의 곳곳에 의식을 붙이고 섭명함 곳곳을 장악한 것을 보며 말했다.
본래 이 말도 안되게 거대한 공간이 압축된 배가 움직이려면,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절대 안 되었고 수십 명의 인원이 달라붙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망가진 배를 대강대강 움직이게 하는 데엔 나 한 사람만 있어도 상관없는 듯 했다.
사실 수도자들이야 의식의 힘으로 한 사람이 수십 인분은 하는 게 가능했으니 대강대강 움직이게 하는 것 정도는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때쯔음.
서란의 저층부 탐색도 거의 끝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제 방 세 개 정도만 탐색하면 끝입니다. 그 중에는 어머니의 유품이 있겠지요.”
서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송진은 어쩐지 그런 서란을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란이 그의 어머니의 유품을 찾은 것은 이틀 후였다.
“찾았소?”
“예, 선배님. 덕분에 어머님의 유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란의 손에는 한 권의 옥간이 들려있었다.
“읽어보았소?”
“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 추후에 처소로 돌아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을 예정입니다.”
“그렇구려.”
그때, 우리를 바라보던 송진이 말했다.
[이제 섭명함에서 볼 일도 다들 대강 본 듯 하니, 내 부탁을 들어줄 때도 된 것 같군.]“뭐, 그러도록 하지. 섭명함을 조작해서 나가보겠소.”
나는 섭명함의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갑판 위쪽, 조타륜.
나는 조타륜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일반적인 배와는 구조나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파아아앗!
조타륜에 의식을 불어넣자, 섭명함의 현재 상태와 배 곳곳의 구조가 뇌리로 흘러들어온다.
[그 상태로 섭명함 곳곳의 부속동력부에 의식을 보내라.]쿠구구구!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섭명함의 현 상태와 구조.
나는 그 구조도의 곳곳으로 의식을 보내 자극하였다.
그러자 섭명함이 떨리며 귀기를 더욱 더 뿜어내기 시작했다.
[섭명함(涉冥艦), 시동(始動)!]“섭명함, 시동!”
쿠오오오!
섭명함의 하부에서 음풍(陰風)이 불어닥친다.
동시에, 섭명함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허어…”
김영훈은 섭명함의 갚판 끄트머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서란 역시 긴장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출항(出港)!]쿠우우우!
내 의지와 조작에 따라 섭명함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송진의 조언에 따라 이곳 저곳으로 법력을 배분하며 섭명함을 조종했다.
[에잇, 조작의 속도가 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냐? 네놈 결단기가 아니었나? 결단기라면 정순지력의 출력이 이것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서 조작 속도가 훨씬 빨라야 하는데…]그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나는 딱히 상대하지 않고, 묵묵히 섭명함을 몰았다.
철퍽, 철퍽!
섭명함에서 부숴져 덜렁거리던 조각이나 부스러기들이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이미 상당히 망가진 배인지라,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부스러기는 굉장히 많았다.
촤아아아!
섭명함이 바다에 펼쳐진 진법과 결계를 꿰뚫는다.
중심이 되는 섭명함이 자리를 이탈하자, 결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
우물이 바닷물로 메워진다.
-끼아아아
-섭명함이다
-도망쳐! 배에 잡아먹힌다!
그 너머의 해무결계에 있는 귀신들은 섭명함을 보자 비명을 지르며 길을 터 주었다.
해무결계 역시 중간 쯤 지나자, 결계가 무너지며, 귀무 속의 귀신들이 모조리 승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꽈과과광!
환영결계를 그대로 박살내버리고, 제대로 된 해역에 진입했을 때였다.
솨아아아!
귀신들이 풀려나며, 해역 전체에 들끓던 음기와 귀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먹장구름이 녹아내리고, 그 틈새로 햇빛이 들어왔다.
촤아아아!
그리고, 그동안 잠시 허공을 날았던 섭명함이 바다에 떨어졌다.
섭명함은 마치 유령선처럼 다 망가진 채로, 겨우겨우 바다 위에 떠서 바다를 활주하였다.
송진은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얼마간 그것을 바라보던 송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다 물어봐라. 난 곳 성불할 것 같으니. 지금 물어보는 건 다 답해주마.]“공법서에 대한 게 아니어도 말이오?”
[그래.]나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한 후 질문했다.
“나는 귀곡의 이름을 흑색귀골곡이라 알고 있는데, 왜 당신은 청색귀골곡이라 부르는 것이오?”
[그거야 간단하지. 본곡의 주요 공법은 귀신을 다루는 귀도공법이다. 그리고 귀도공법은 기본적으로 흑색의 기운을 띄지.하지만, 전해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귀도공법을 대성한 자는 청색(靑色)의 빛을 띄는 기운을 가진다고 한다.]
나는 그의 귀화에서 보이던 청색의 빛과, 그가 불러낸 청백색의 자폭용 기술을 떠올렸다.
[나 역시도 천인기에 올라 어느 정도 귀도공법의 이치를 깨달아서 기운의 일부를 청색으로 물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진정으로 귀도공법의 극의를 본 이는 전신이 청색의 기운으로 뒤덮힌다 하더군.
청색귀골곡이란, 우리 흑색귀골곡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이다.
나나 몇몇 원로들은 흑색귀골곡이 언젠가는 그 이상향에 도달할 것이라 굳게 믿어의심치 않기에 청색귀골곡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지.]
나는 그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했다.
“승천문은 1000년에 한 번 열린다 했지요. 승천문이 열릴 때마다 원래 이렇게 모든 대륙의 모든 종문이 전부 다 비승하는 겁니까?”
내 말에 송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하지만, 이번 시기가 특이한 것도 있지.]“…?”
[이번 승천문이 열릴 시기, 그 시기에는 전 대륙이 완전히 과열되어, 터지기 직전의 폭약고 같았다.그 어떤 세대를 가더라도 이번만큼 천인기 수도자가 많았던 시기가 없었을 것이야.
천인기 수도자도 그렇고, 원영기 수도자도 그랬지.]
송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많은 수도자들 중, 본곡의 원로원주, 금신천뢰문의 전대 문주, 창천개벽문을 창시한 개파사조. 정도선파 연합의 수장, 마도선파 연합의 수장. 요족의 대표, 성붕왕, 해룡왕, 거호왕 등이 모여 회의를 했다.해룡왕 서휼이 회의를 주도했고, 회의 결과, 이대로 가다가는 전 대륙과 전 바다의 영맥이 수많은 대형 세력의 수련과 경쟁에 의해 싸그리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듯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영맥이 고갈되고 전 대륙이 전화에 휩싸이는 것을 방지하려면, 이번 승천문이 열릴 때 모든 천인기 수도자가 힘을 합쳐 함께, 자신들의 종문과 세력과 다 같이 비승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모두 함께 비승하면 공간압력에 서로를 지지해주며 비승할 확률도 높았고, 또 비승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지만 종문과 함께 비승하면 나름 든든한 지지세력이 함께하는 것이며,
종문의 제자들에게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세계로 가 수련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니 모두가 좋은 의견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수많은 천인기 수도자들이 비승을 하게 된 겁니까?”
[그래. 또한 이번 비승에는 원영기 이상의 존재들은 무조건 데려가고, 원영기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 역시 전부 데려가기로 했다.초대형 종문과 천인기 수도자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원영기 수도자들이 온갖 난장판을 치며 천인기 수도자들의 후예 수도가문 내지는 그들이 이곳에 남겨놓을 세력을 휘어잡을 게 눈에 훤했으니까.
때문에 원영기 수도자들 역시 원하든 원치 않든 전부 반강제로 이번 비승에 참여하게 되었다.
흑색귀골곡, 금신천뢰문, 창천개벽문, 정도, 마도연합. 삼대 요족들이 손을 잡고 안 올라가겠다는 놈들을 싸그리 척살하고, 원영기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재능있는 결단기 녀석들도 싹 다 잡아서 자기들 세력에 넣어 데려가기로 했지.]
송진이 클클 웃었다.
[때문에 승천문이 닫힌 이후엔, 이제 죽을 날을 기다리는 나 같은 결단경 잡귀 내지는, 원영기에 오를 가망이 없는 처참한 자질의 결단기 수도자.혹은 결단 대원만이지만 수명이 거의 안 남아 죽기 직전의 골골거리는 늙은이들만 전 대륙에 남았다. 대륙에 원영기 수도자가 나타나려면 최소 6, 700년은 있어야할 테지. 클클…]
나는 그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승에 관련된 여러 사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막리세가에서 승천문이 닫힌 이후부터 더 많은 단약 제조에 착수한 이유도, 결단 후기 수도자들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라고 했었던가?’
결단 대원만의 수도자들이 원영기에 도달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수명을 늘릴 단약을 만드는 데에 더더욱 힘을 썼던 것이리라.
그리고 진씨세가는 막리세가에서 원영기 수도자가 탄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막리세가의 단약공방을 습격하고, 그들을 방해하려 온 힘을 썼던 것이고.
원영기 이상, 혹은 원영기에 도달할 자질을 지닌 젊은 결단기 수도자는 죄 비승했으니.
자질이 높지 못해 다 늙을 때까지 원영기에 도달치 못했던 노괴들이 수명을 늘리려 애쓰는 것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원영기에 도달하면, 결단기밖에 없는 주변 상황상 자신들의 세력이 인근에서 최강이 될 테니까.
나는 승천문과, 승천문에 얽힌 수도가문들의 이해관계를 이해했다.
어느덧 송진의 모습은 썩 투명해져 있었다.
[더 할 질문은 없느냐?]“뭐, 일단은 이 정도군. 이제 원하는 공법을 말해도 되오?”
[흠, 좋다. 그 전에 잠시만…]송진은 서란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반편이 용 놈아. 네가 찾은 네 어미의 옥간을 펼쳐봐라.]“예, 예?”
[나도 그 내용을 봐야겠다. 네 어미가 왜 흑색귀골곡의 불명예를 뒤집어쓰면서도 그 놈과 혼인하여 너를 낳았는지, 나도 알아야겠군.]서란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옥간을 펼쳤다.
송진은 서란의 뒤로 이동하여 서란과 함께 옥간을 읽어내렸다.
얼마 후.
서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아버지…”
서란과 함께 옥간을 읽던 송진은 착잡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아마 내 힘이 멀쩡했으면, 본곡의 오점인 네놈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송진은 서란을 보며 말했다.
[네 어미, 그 아이는. 내가 섭명함에서 그 아이가 태어나 아장거리며 말을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아온 아이다.내 제자도 혈육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고지기인 내게 자주 찾아와 선술에 대해 자주 질문하는 기특한 아이였지.]
송진은 옥간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본곡의 제자의 삶을 망친 그 해룡족 놈팡이 놈, 그리고 본곡의 오점인 네놈을 혐오했다.하지만, 네 어미가 보기에 너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나 보군.]
송진은 서란에게서 등을 돌리고 내게 다시 걸어왔다.
[…섭명함의 3번 부수동력원에 의식을 불어넣고 있나?]“그렇소만.”
[의식을 불어넣는 걸 중지해라. 3번 동력원에 일정 이상 자극이 가면 섭명함이 자폭하도록 설정되어 있다.]“뭣…!”
나는 황급히 의식을 불어넣는 걸 중지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송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네놈들 모두 나와 길동무로 삼으려 했다. 어차피 섭명함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고 싶었고, 이미 죽은 몸 아쉬울 것도 없었으니까.너희 모두 본곡의 제자의 자비에 감사하거라. 본곡의 제자는, 자기 아들이 살았으면 했으니까… 그랬기에 나 역시 마음을 조금 바꿔 이대로 나 혼자만 가기로 했다.]
“이…”
하마타면 그대로 섭명함의 자폭에 휘말려 다 죽을 뻔했다는 게 아닌가?
나는 이 잡귀 놈을 노려보았다.
[걱정 마라. 이젠 정말 꿍꿍이고 뭐고 없으니까. 원하는 공법이나 말해봐라. 그걸 주고 성불할 생각이니, 어서 말하는 게 좋을 거다.]“…후.”
나는 송진을 보며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참았다.
어찌되었든 공법서는 얻어야 할 게 아닌가.
“…일단, 축기기부터 익힐 수 있는 것. 마공이 아닌 것. 선각후통의 원리에 입각해서 익힐 수 있는 것. 굳이 귀한 재료나 단약, 영근자질이 필요치 않은 것 등의 공법으로 부탁드리오.”
[이런, 뭐 그리 까다로우냐. 그것보다 마도 종문인 본곡에 마공이 아닌 공법이라니? 그리고 선각후통? 그 고리타분한 원리를 누가 익힌다는 건지. 거기에 귀한 재료나 영근자질이 필요치 않은 공법?]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하나같이 까다롭기만 한 걸로 요구해대는군. 일단 마공이 아닌 것이라면, 마기(魔氣)나 사기(邪氣), 귀기(鬼氣)를 사용하지 않는 걸 말하는 거냐?]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익히는 데에 남의 희생이 필요한 공법은 전부 빼 주시오.”
[범위도 넓군. 빌어먹을…]그는 짜증을 내며 고심하는 듯 하더니, 내게 말했다.
[네놈이 말하는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공법은 세 개가 있다.음혼귀주문(陰魂鬼呪文), 군마용갱권(群魔俑坑卷), 규토장성공(珪土長城功). 셋 중 뭘 선택하겠느냐.]
“…어쩨 셋 중 둘은 이름만 들어서는 마공 같습니다만.”
음혼과 군마라니.
딱 봐도 사악해 보이는 이름이 아닌가.
송진이 공법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흐흐, 그렇게 생각할 법 하지. 하지만 아니다.음혼귀주문은 수련자가 자기 자신의 고통과 원독을 이해하는 공법이다. 사악한 기운을 수련하는 것도 아니요, 남을 희생하지 않고 스스로가 고통을 이해할수록 수련이 빨리 진행되니. 마공도 아니며 선각후통 그 자체로다.
군마용갱권은 이름이 그렇지만, 법보(法寶)를 지닌 수도자가 익히기 가장 좋은 공법이다. 법보의 성질에 대해 이해할수록 법보와 연계되며 수행을 빠르게 이어나가는 공법이지.
규토장성공은 대지의 용맥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더더욱 빠르게 수련할 수 있는 공법이다. 같은 장소에 오래 붙박혀 대지를 이해할수록 수행 속도가 빨라진다는 장점이 있지.]
송진은 공법에 대한 일련의 설명을 한 후, 나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내가 제일 추천하는 건 음혼귀주문이다.]“어째서입니까?”
[뻔하지 않으냐. 내가 네 정신세계를 엿보았다는 걸 잊은 게냐? 너만큼 ‘고통’에 대해 잘 이해하는 놈이 얼마나 있을까. 네가 음혼귀주문을 익힌다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수련을 할 수 있을 터다.]“흠..”
고통이라.
나는 잠시 속으로 고민해 보았다.
‘군마용갱권은 법보는 커녕 법기조차 아예 없는 내가 익힐만한 것이 아니다. 규토장성공 역시 계속 한 자리에 붙박혀 있지 않다면 쓸모가 없지. 내가 한 자리에 계속 붙박혀 있을 수 있단 보장도 없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규토장성공은 탐이 난다.
그러나 동시에 음혼귀주문 역시 그의 말대로 고통에 대해 이해할수록 진도가 빨라진다면 역시 좋은 선택일 듯 했다.
물론 이름만 봤을 땐 제일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흠, 정 그렇다면 다음 생도 있으니…’
“음혼귀주문으로 주십시오.”
어차피 셋 다 언젠가는 내 손에 들어올 것이라면, 일단 제일 위험해 보이는 것부터 익혀보고, 다음 번엔 더 나은 것을 택하면 될 것이다.
[좋은 선택이다. 네 정신상태라면 빠르게 대성할 것이다.]말을 마친 송진은 근처에 떨어져 있는 섭명함의 잔해에, 자신의 의식을 새겨넣었다.
잔해 위로 빼곡하게 구결들이 들어선다.
[청색귀골곡의 이름에 대고 수작은 안 부렸다. 마음껏 익히면 될 거다…]그는 말을 마친 후 뒤를 돌았다.
그는 섭명함의 뱃머리로 향하였다.
[청색귀골곡의 수도자는, 6할 이상이 섭명함에서 태어나 섭명함에서 죽는다. 나 역시 이 배 위에서 태어났고, 이 배를 지키려다가 죽었다.]점차, 그의 모습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파스스-
[네 피의 절반은 본곡의 제자의 것이다.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종문의 어른된 자로서 제자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갈 수는 없지.]파츠츳!
서란이 쥔 옥간 위로 어떠한 글자들이 더 새겨졌다.
[그것의 가치는 너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난 네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그래도 문파의 어른된 자로서 불명예를 안으면서까지 너를 사랑했던 제자를 위한 마지막 의무이니, 너는 네 어머니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송진은 섭명함의 뱃머리 위로 올라가, 푸른 바다를 활주하는 섭명함을 돌아보았다.
그가 우리를 천천히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서란을 쳐다보았다.
그의 의념이 들려온다.
그는 서란을 통해 누군가를 겹쳐보는 듯 했다.
[…그리고, 고맙다. 내 임종을 바라봐 주어서.]말을 마친 송진은 그렇게, 바닷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서란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가 있던 자리를 보고는, 인사를 올렸다.
나 역시 어찌되었든 죽은 이를 위한 명복을 짧게 빌어주었다.
* * *
송진의 임종을 봐준 후.
나는 조타륜을 돌려 서란의 거처로 방향을 잡았다.
서란은 송진이 그에게 남긴 것을 해석하기 시작했고,
나는 자리에 앉아, 스승님이 준 천린수해(千璘樹海)의 공법과 송진이 준 음혼귀주(陰魂鬼呪)의 공법서를 비교하며 읽기 시작했다.
해결해야 할 연은 전부 해결했으니, 제대로 축기공법을 익혀도 될 터였다.
“음혼귀주의 공법은…”
음혼귀주의 지식이 뇌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