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RAW novel - Chapter (88)
임종(臨終)(5)
시작된다.
두쿵!
김영훈이 두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잠시 후.
두근, 두근!
김영훈의 내단에서 강기가 뿜어져 오르며 심장을 자극했다.
심장을 직접 자극하는 고통이 상당한지, 김영훈은 이를 짓씹으며 버텨냈다.
“하, 하하.. 짜릿짜릿하군.”
얼마간 심장을 자극하던 김영훈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은현아, 정말 대단하구나. 넌 어떻게 이걸 버틴 거냐. 하하하..!”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곁에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심장을 끊임없이 자극하면서도, 김영훈은 단순히 고통에만 스스로를 맡기지 않았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어떠한 홀황경에 맞닿아 있었다.
‘저 눈…’
그리고 저 의념의 흐름.
나는 저 모습을 알고 있었다.
무공을 겨룰 때도 몇 번은 저 눈을 하며 홀황경에 빠지니까.
새 무공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김영훈의 기혈과 내공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단전의 내단과 중단전의 심장으로, 내공이 이어지며 어떠한 연계를 형성했다.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강기로 자극되며 불안정했던 그의 심장소리가,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자기 수명조차 극복해내는 재능…인건가.’
내단에서 흐르는 기의 흐름이 심장과 완전히 연결된다.
심장은 피를 뛰게 하고, 내단은 강기를 보내 자극시킨다.
두근, 두근!
김영훈의 생명과 무공이 완전히 일체되는 듯 했다.
그에게, 두 개의 심장이 생겨났다.
피를 돌게 하는 염통.
강기를 돌게 하는 내단.
두근 두근 두근…
얼마 후, 김영훈의 심장박동이 완전히 안정되었다.
‘허 참..’
김영훈은 눈을 뜨며 힘겹게 웃었다.
“무의식 중에도 심장을 계속 뛰게 했으니, 이제 심장마비는 걱정할 게 없지. 하지만, 그래도 아프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강기로 매 분 매 초 동안 심장을 억지로 뛰게 하는 것이다.
아프지 않을 리 없었다.
후우우웁!
그러나, 김영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다시 집중을 시작했다.
다시금 새로운 무공이 창시된다.
후우우우..
그가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다.
깊게깊게 숨을 내뱉으며, 그의 의식에 흐르는 고통을 전신으로 퍼트리고, 다시 전신에서 의식영역 전체로 분산시킨다.
그는 호흡에 따라 고통을 조절하고 있었다.
“호흡을 멈추면 다시 고통이 시작되겠지만, 이 호흡을 계속하는 한 이 고통 역시 극히 완화될 터. 하하, 어떠냐!”
그는 새로운 무공으로 자신의 한계를 가볍게 찢어버린 후, 내게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나 나는 쉬이 웃을 수 없었다.
‘식은땀이로군.’
김영훈의 전신은, 비오듯 젖어있었다.
동시에 그의 얼굴은 삽시간에 피로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방금 그 시간.
겉으로 보기에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동안 김영훈은 극악의 고통 속에서 필생의 의지력을 쥐어짜낸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어마어마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을텐데도, 김영훈은 저렇게 히죽 웃으며 농담을 하는 것이었다.
“김 형..”
“뭘 그렇게 보냐.”
김영훈은 호흡을 안정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에 네놈도 이랬다. 그런 눈빛은 너 자신에게나 보내거라. 나 역시…”
김영훈은 눈을 감고, 칼집에 손을 얹었다.
그가 의식을 집중한다.
“나 자신의 명을 뛰어넘어, 나 자신을 더욱 다그칠 시간을 만들어낼 테니..!”
우우웅!
김영훈이 웃었고, 그의 의식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김영훈의 전신은 마치 황금빛 불티 속에서 타오르는 듯했다.
황금의 빛살이 그의 도신에 몰려든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김영훈의 내공이 혈관과 경락을 형성하며, 그의 생명력과 같이 연동된다.
능광도가, 또 다른 내단으로 화하기 시작했다.
김영훈의 내단은 그의 심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김영훈의 능광도는 그의 내단과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무(武)는 그의 생명(生命)이었다.
필생의 집중력과 함께, 김영훈은 손에 쥔 도신을 으스러져라 쥐고 있었다.
심장마비도, 고통도 전부 재능으로 극복해버리고.
이제 남은 것은 하늘이 내리칠 하늘의 벌.
천뢰(天雷).
구구구구-
김영훈의 수명이 끝이 나고, 시간이 흐르자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내 수명이 본디 밤이었고, 그날 새벽녘에 먹구름이 꼈다면.
김영훈의 수명은 본디 낮이었고, 밤하늘이 지상을 덮은 지금에서야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우릉, 우르릉…
먹구름 안쪽에서 청뢰(靑雷)들이 일렁거렸다.
간다.
김영훈의 심어가 울려펴진다.
동시에, 푸른 섬광이 하늘에서 김영훈에게 내리꽂혔다.
파아아아앗!
그리고 동시에.
김영훈이 필생의 집중력으로 쥐고 있던 도를, 그대로 휘둘렀다.
특별한 필살기도, 오의도 아니었다.
그저 능광도로 사용한 올려베기.
김영훈이 평소에도 연습해오던, 단순한 올려베기였다.
‘말 그대로 능광(凌光)…’
그러나, 그 속도는.
지금까지 준비해온 그 빠르기는.
나 자신조차도 순간 놓쳤을 정도로 가공할 빠르기였다.
내가 천뢰를 가를 때, 나는 예뢰안으로 번개의 위치를 미리 예언하고 그곳에 맞춰 무형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김영훈은, 그냥 순수한 빠르기로 번개와 동시에 도를 휘둘러 도신과 벼락을 맞대었다.
금광(金光)이 청뢰를 사르고 하늘로 올라가, 그대로 먹장구름을 찢어발긴다!
“아아…”
김영훈이 해맑게 웃었다.
갈라진 먹구름 사이로, 무수한 별빛들이 내려왔다.
김영훈은 별하늘의 빛을 맞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도신은 가공할 강기에 그대로 녹아버려, 아예 형태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나.
그는 그럼에도 도의 손잡이를 놓지 않고 웃었다.
“봐라, 넘지 않았느냐!”
왈칵!
어쩐지, 내 가슴 속에서도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 그를 보며 웃어주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벗이 내일을 함께 살아간다면.
300년이 외롭지는 않으리라.
* * *
다음 날이 되었다.
나는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김영훈은, 머리가 하얗게 새어 있었다.
그리고, 얼굴 곳곳에 주름이 져 있었다.
“…김…형…?”
“으음…”
김영훈은 내가 띄워준 수계 법술의 물방울 위로, 자신을 비춰보았다.
“이, 이게…”
“……”
오기조원에 이르고 환골탈태를 이룬 후.
그 후에는 거의 노화가 이뤄지지 않았었다.
늘 몸에 활력이 넘치고 생명력이 흘렀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생명의 숙명(宿命).
노화(老化).
우리의 시간은 멈춘 게 아니었다.
하늘이 허락해 준 세월 안에서 최대한 생기있게 지냈을 뿐.
이제 하늘이 더 허락치 않으니.
생명 그 자체도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연해진 표정으로 김영훈을 바라보았고, 그는 잠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얼마간 스스로를 덤덤하게 보던 김영훈은 피식 웃었다.
“괜찮다. 사실 처음부터 이 쪽으론 크게 기대 안 했으니…”
그는 주름이 낀 얼굴로 옅게 웃었다.
“도리어, 나는 지금 기쁘다. 천뢰를 가르며 새로운 영역의 실마리를 잡은 것 같으니. 무(武)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는데, 어찌 절망만 할소냐!”
김영훈은 도를 쥐며 말했다.
“내일 늙어죽을지언정, 영원히 가족을 보지 못하고 이 세계에서 스러질지언정.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이마. 무학(武學)의 역사(歷史)에 한 획이라도 더 긋고 떠나겠다!”
그 말을 한 후, 김영훈은 도를 잡은 채 수련을 이어나갔다.
황금빛 빛무리를 두르고, 그는 매일같이 새로운 무학을 만들어내기도, 기존의 무학을 정립하기도, 깨달음을 깨닫고, 갈무리하기도 했다.
약 칠주야가 지났다.
김영훈의 얼굴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차 노쇠해져 갔다.
머리가 새하얗게 새었으며, 얼굴에 주름이 더욱 더 늘어났다.
무공을 수련하며 전신이 근육으로 알차게 차 있었으니만큼 몸이 쪼그라들지는 않았으나, 점차 기력이 약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김영훈은 그래도 도를 놓지 않았다.
그는 실시간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무를 수련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칠 주야가 되었을 때의 어느 날.
그가 내게 말했다.
“은현아. 우리가 처음 이곳에 떨어졌던 그곳 말이다.”
“예. 등선향이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등선향… 혹시, 그곳에 갈 수 있느냐?”
“등선향… 말입니까..?”
김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승천문이라는 게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떨어진 것도 어쩌면 그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겠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고. 죽을 날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면, 승천문을 눈으로 보고라도 죽고 싶구나.”
“김 형…”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쓰디쓴 진실을 토해내야 했다.
“…승천문은, 1000년에 한 번 열립니다. 이미 우리가 왔을 것이라 추정되는 그 승천문은… 70여 년 전 그 날. 우리가 이 세계에 떨어진 그 이후 닫혔습니다.”
“그러냐..”
김영훈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것도 괜찮다. 우리가 처음 왔던 그곳으로 가 보고자 하는 것이니. 등선향에 갈 수는 있느냐?”
“…제가 알기로.”
나는 등선향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을 설명했다.
“등선향은 안쪽에 있는 존재가 바깥으로 나오기는 쉽지만, 바깥의 존재가 안으로 들어가려면 등선향을 둘러싼 결계를 뚫을 수 있는 원영기 수도자이거나, 혹은 공간균열에 휘말려 우연히 등선향에 떨어져야 하는 걸로 압니다.”
“흐흠, 그럼, 등선향의 결계가 있다는 곳은 어디이냐?”
나는 답천사막의 중앙, 그 위에 숨겨진 천공도가 등선향이며, 그 위쪽 허공에 등선향을 둘러싼 결계가 있다고 설명을 했다.
“흐음…”
잠시 생각하던 김영훈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괜찮다. 들어가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 곁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떠나가는가.
나는 김영훈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섭명함에 올라탔다.
지난 17년간 가동시킬 일 없었던 섭명함이 다시 위로 떠올랐다.
음풍을 타고 오르며, 거대한 흑색의 폐함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가시죠.”
김영훈은 허공답보를 펼쳐 섭명함의 위로 뛰어올라 탑승했고, 나는 조타륜을 잡고, 김영훈의 마지막 여행을 송별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출항!”
쿠구구구!
흑색의 폐함이, 어떤 비행법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답천사막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 *
답천사막에는 한나절도 되지 않아 도착했다.
나는 섭명함을 조작해, 정확히 등선향의 아래에 위치한 곳에 섭명함을 세웠다.
쿠구구구!
섭명함은 모래사막 한 가운데에 몸을 뉘였다.
“흠, 저 위쪽에 등선향이 있다는 거냐?”
“예.”
당장 아래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창명하고 맑은 사막의 하늘만이 보일 뿐.
그러나, 나는 저 위쪽에 거대한 환상결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가 볼까…”
김영훈은 허공답보를 펼쳐 하늘로 올라갔고, 나 역시 허공답보를 시전해서 그를 따라갔다.
얼마간 허공을 밟고 올라갔을까, 저 위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로군. 어디 한번..”
부웅!
김영훈이 능광도를 휘둘렀다.
번쩍!
황금빛이 불타오르며 허공을 타격한다.
콰아앙!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결계가 능광도를 막아섰다.
나 역시 무형검을 휘둘렀지만 결계는 멀쩡했다.
“하하, 그렇군. 알았다.”
감영훈은 결계를 확인한 후, 섭명함으로 다시 내려왔다.
“저 위쪽이 등선향… 우리가 떨어진 곳이구나.”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옅게 미소를 짓더니 맑게 웃었다.
“우리는 저곳을 통해서 왔을 확률이 높겠지. 고맙다 은현아. 그래도, 고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을 수 있게 해 주어서.”
머리는 하얗게 새었고, 얼굴엔 주름이 잔뜩 졌으나 그 미소에선 여전히 김영훈이 보였다.
김영훈은 그날부터 다시 도를 들고 무에 매진하였다.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 * *
하루가 지날수록 김영훈의 모습은 폭삭 늙어갔다.
점차 눈빛에선 빛이 흐려져 갔고, 머리카락도 슬슬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영훈의 도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은 저렇게 노쇠해졌건만, 그가 평생을 이룩해 온 것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아니, 노쇠해질지언정 그 순간에도 그가 쌓아올린 무예는 높아지는 듯 했다.
죽음을 앞둔 김영훈의 무학은 점차 알기 힘든 흐름이 많이 섞이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설마, 월도입천에 이르고 27년만에 또 다시 새 영역에 이르는 것인가?
‘아니, 그럴 리 없겠지.’
등봉조극에서 그 너머에 도달하기 위해, 몇 백년을 지샜는가.
또 다시 새 경지를 개척한다고?
아무리 김영훈이라도 그것은 힘들 터였다.
나는 김영훈의 곁에서, 그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동시에 그의 무학을 지켜보고 또 지켜보았다.
그리고, 김영훈이 천뢰를 가르고 48일째.
나는, 김영훈이 내일 죽을 것이리란 것을 짐작했다.
덜, 덜덜..
그는 이제 완전한 노인이 되었다.
도를 쥔 손이 벌벌 떨린다.
도법을 펼치기 시작하면 떨림은 멎었으나, 그는 무공을 펼치지 않는 순간에는 그냥 평범한 노인일 뿐이었다.
’49일을 버티지 못하고… 가시겠군요.’
김영훈의 몸을 뒤덮은 죽음은, 이젠 그 크기가 커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형님.’
당신은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시겠지요.
더는 살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데, 그런데도 어째서…
‘당신은 웃고 계시는군요.’
웃고 있다.
김영훈은 도를 쥐고, 무공을 수련하며 웃고 있었다.
사악, 삭!
도를 잡고 휘두를 때에 응당 나는 붕붕 소리조차, 이젠 나지 않고 있었다.
김영훈이 자연스레 휘두를 때마다, 도신이 공기의 결을 완벽히 갈라내며 소리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김영훈의 무는 어느덧 궁극(窮極)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내일 가시렵니까.”
나는 죽음의 기색 역시 극한에 치달은 그를 보며 물었다.
김영훈은 청각 역시 마비된듯, 그저 도를 잡고 그가 익혀온 모든 무학을 정립할 뿐이었다.
“…형님의 임종을, 이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나는 김영훈의 49일, 그 마지막을 마음속으로 준비하였다.
* * *
마지막 밤은 유난히 별이 밝았다.
나는 밤새 갑판에 서서 눈을 감고 수많은 무학의 깨달음을 중얼거리는 김영훈을 보았다.
“내일 아침 드실 미음을 준비해 드리지요.”
나는 답천사막에 올 때, 섭명함에 실어두었던 쌀을 가지러 내려갔다.
나는 축기기에 이른 후부터 서너달에 한 번씩만 조금씩 음식을 먹으면 될 뿐이었지만, 김영훈은 내단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최소 며칠에 한번씩은 음식을 먹어주어야 했다.
이제 그는 이빨도 전부 빠져 음식을 씹을 수조차 없기에 , 죽이나 미음만을 먹어야 했지만.
마지막 가는 날, 좋은 미음만이라도 먹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내가 쌀을 퍼서 갑판으로 올라왔을 때였다.
“그나저나 형님. 오늘도 안 주무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갑판에 있던 김영훈은, 사라져 버렸다.
“…어?”
나는 쌀을 담은 그릇을 주변에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답천사막 어디를 둘러봐도, 김영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이동한 것이라면 파공성이라도 일어야 하는데…’
말 그대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월수궁무록을 사용한 건가?’
나는 당황하며 은식술로 의식을 압축시켜 주변을 탐지해 보았으나, 여전히 김영훈은 감지되지 않았다.
“무슨…”
그리고 그의 흔적을 찾은 것은, 요족의 지각을 켜고 주변에 남아있는 영기의 흐름을 읽었을 때였다.
“아…”
인근 음양의 흐름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이.
그리고 그 베인 흔적은, 그대로 하늘로 이어져 있었다.
하늘로, 저 등선향으로.
“아…”
나는 황급히 허공답보를 펼치며 등선향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등선향의 결계가 있는 곳으로 갔을 때.
헛웃음이 터지며 입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런 미친…”
등선향의 결계가, 날카로운 뭔가에 베인 듯 쩍 갈라져 그 틈새를 드러내고 있었다.
쿠우우우!
그 틈새로 등선향의 영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그 영기를 흡수하며 결계가 느릿느릿하게 회복되고 있었다.
하루이틀이면 결계가 전부 회복될 것 같았다.
“허, 허허…”
김영훈이 죽기 직전의 노인이었다는 사실과, 그의 죽음으로 우울해졌던 정신이 충격과 당황, 흥분으로 싹 뒤덮혀 버렸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등선향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에서 요족의 지각을 켜자, 여전히 영기의 흐름이 쫘악 갈라진 것이 보였다.
잘려나간 영기의 흐름은 등선향의 중심을 향해 있었다.
“미친, 미친…”
너무 어이가 없고 경이로워, 헛웃음과 함께 제대로 말이 안 나온다.
파아앗!
나는 사고를 10배로 가속하고 미친듯이 등선향의 중심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반나절쯤 후.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일어날 때 즈음.
나는 미친듯이 달려 겨우겨우 영기에 난 그 자국을 따라 등선향의 중심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허, 허어…”
숨을 고르며 도착한 그곳엔, 여전히 이곳 저곳에 난 공간균열.
하늘에서 우릉거리는 뇌운.
뇌운의 아래에서 번개를 흡수하며 떠 있는 비석.
그리고…
김영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는 공간균열들의 위험을 생각지 않고, 최대한 균열들을 피하며 김영훈이 남긴 흔적으로 다가갔다.
“이건…”
발자국.
발자국이었다.
김영훈이 남긴 발자국이었다.
나는 발자국과, 주변의 영기의 흐름을 보며 발자국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기수식?’
나는 발자국을 따라 밟아보며 자세를 잡았다.
그것은 기수식이었다.
단맥도법의 기수식.
나는 도법을 따라 펼치며 김영훈이 남긴 기수식을 따라 펼쳐보았다.
‘아니, 단맥도가… 아니다?’
단순히, 단맥도 ‘만’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껏 창시한 무공들.
정립한 무공들.
개조, 진화시킨 수많은 무학들이 단맥도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보지도 않은 채 직접 전부 따라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나는 단맥도의 흐름만을 따라가며 빌지국을 밟았다.
그러던 도중.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발자국의 깊이가, 점차 깊어지고 있다?’
그 자체는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단맥도의 흐름과, 발자국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은,
단악검법과 단맥도의 최후절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특징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공이산이 펼쳐진 ‘방법’이었다.
‘우공이산은, 상대가 반드시 있어야 펼칠 수 있는 초식이다.’
상대가 없으면 하다못해 벽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김영훈은 벽이고 뭐고 없이 허공에다가 우공이산을 펼친 것이었다.
‘이게 무슨…’
우공이산은 자멸기(自滅技)였다.
연습 삼아서 내공을 불어넣지 않고서는 연습할 수 있었지만.
내공을 불어넣고 펼치면 그 이후부터는 필멸(必滅)의 절초.
산외산부진은 몸에 무리가 가다가 죽을 순 있을지언정 적당히만 펼치면 그래도 죽지는 않을 수 있지만.
우공이산의 초식은 펼치는 순간 9할 이상의 확률로 사망한다.
애당초,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대상에게 목숨을 갈아넣어서 동귀어진하거나, 치명상을 입히라고 만들어진 절초.
이 우공이산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 초식의 주였기에, 무조건 상대방이 필요한 초식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초식을 아무 상대 없이 펼친 거지?’
나는 의문투성이인 상태로, 김영훈을 따라 우공이산의 절초를 펼쳤다.
역시나 역이용할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선 기운이 그냥 허공을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래서야 그냥 산외산부진의 초식인데.’
우공이산은 산외산부진을 기반으로 하여 펼쳐지기에 무조건 산외산부진을 펼치며 해야했고, 상대가 없으면 산외산부진 특유의 지치지 않는 정도의 효과만 볼 뿐, 발자국이 깊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김영훈은 현재 우공이산을 명백히 펼치고 있었다.
이 발자국과 기수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나는 김영훈의 발자국을 따라 끊임없이 초식을 이어나갔다.
그의 환영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무공을 펼치는 듯 했다.
그의 환영은 빛과도 같은 속도로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가 펼치는 무공의 원리를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의 환영이 툭툭 끊어지고 발이 꼬인다.
나는 황급히 자세를 잡으며 발자국을 따라갔으나, 그 환영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내 발이 완전히 꼬여 넘어지려 할 때.
툭
“아…”
나는 김영훔의 발자국이 이곳에서 끝난 것을 알아챘다.
그의 마지막 발자국은 그 어떤 발자국보다 깊었고, 발자국을 밟으며 폭탄이라도 터진 건지 이 주변이 다 뒤집어 엎어져 있었다.
나는 발자국이, 김영훈의 환영이 남긴 기수식을 따라, 능광도를 쥐고 있다 생각하고 그대로 도를 잡고 대각선으로 올려베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
김영훈의 도신이 지나간 자리에는, 깔끔하게 잘려나간 듯한 공간균열이 하나 나 있었다.
이 자리는 승천문이 열리는 자리였다.
“…김… 형…?”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공간균열을 향해 물었다.
승천문은 분명 아니었다.
지난 삶에서 승천문을 한 번 목격했을 때.
그때 보았던 그 신령스러우면서도 기묘한 그 느낌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괴군이나 서휼이 우리를 멀리 전송시킬 때 열었던 공간균열의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김영훈은 분명 공간균열을 만들고 이 너머로 넘어가 버렸다.
어딘가로 전송되었을까?
아니면 공간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터져 죽었을까?
그도 아니면, 공간의 압력마저도 빛의 속도로 베어내고.
이 균열 너머.
‘어딘가’에 도착했을까?
“하. 하하. 하하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김영훈은 죽음을 앞두었었다.
나는 그의 임종을 맞이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의 임종을 맞이할 수 없었다.
김영훈은 넘어가 버렸다.
얌전히 내가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을 것이라는 내 예상을.
무의 새로운 영역을.
이 세계 너머 새로운 공간을.
그는 넘었다.
높은 확률로 죽었겠지만.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 앞은, 완전한 미지(未知)였으니까.
나는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김영훈이 말도없이 홀연히 나를 떠나, 등선향에 들어와 새로운 경지를 추측하게 하고 공간 균열로 진입해 자신의 시체도 찾지 못하게 한 이유.
그 의도가 읽힌다.
김영훈은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죽었을지 살았을지 모를 것이며, 내가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지 모를 것이다.
-그러니 이 너머가 궁금하다면.
-300년 동안 나를 잃은 것을 개의치 말고, 남은 시간 동안 무(武)를 궁구하며 버텨내라.
그는 내가 300년을 버텨낼 희망을 남겨두고, 그렇게 떠난 것이었다.
“하하하하…!”
나는 웃고 또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난 동시에 그가 남겨놓은 발자국들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가며 그가 도달한 경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그의 임종을 지키려 했지만.
되려 임종을 향한 내 절망과 고독만이 임종을 맞았을 뿐이었다.
그래.
죽은 것은 내 고통과 고독, 절망 뿐.
김영훈은 임종을 지킬 필요가 없다.
그는 살아있었으니까.
저 너머에.
그리고 이 마음 안에.
그 곳에 살아있을 테니까.
나는 울며 웃으며 김영훈이 남긴 발자국을 밟아가며.
내 마음의 임종(臨終)을 맞이하였다.
* * *
어느덧 정신을 차리니, 저녁놀이 되었다.
얼마나 김영훈의 발자취를 밟았을까.
얼마나 이 마음을 분출했을까.
마음이 가라앉자, 그제야 내 눈에 공간균열의 옆쪽.
김영훈이 남긴 것이 보엿다.
그것은 도흔으로 바닥에 새겨진 글귀였다.
나는 그가 남긴 글귀에 다가갔다.
글귀의 첫 마디는, 다음 경지에 대한 실마리였다.
“그것이, 당신이 본 너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