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282
“다녀왔습니다.”
교복을 입은 영민이가 저택 현관문 쪽으로 들어선다. 대충 구겨 신은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서, 바로 저택을 가로지르는 아이.
“엄마가 신발 제대로 놓으라 그랬지?”
유다영은 귀신같이 그걸 알아채고, 부엌에서 후다닥 뛰쳐나온다. 김 실장의 어머니인 문숙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와. 울 엄마 눈치 최고네.”
“하여간, 성격 급한 건 알아줘야 해. 누구 찾니? 혜준이? 아니면 작은아빠?”
다 알고 있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리며 웃는 유다영. 순식간에 영민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소리야. 나 배고파서 그런 건데.”
“어련하시겠어요. 너 오늘 기사님한테 다섯 번이나 물어봤다며. 손님들 언제 오는지.”
“아! 진짜! 기사님!”
영민이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운전기사가 허실허실 웃으며 직원 공간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영민이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연말 모임 날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일단 씻고 와서 엄마랑 아주머니 도와줘야겠어. 작은아빠는 일 끝나고 오고, 혜준이랑 김 실장님 부부는 한 시간쯤 뒤에 오신대.”
“뭐? 왜 이렇게 늦어?”
“낸들 아니.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겼다나 뭐라나. 덕분에 엄마도 이렇게 아빠 없이 음식 하고 있잖아.”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그걸 또 기다리라고? 영민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다영은 문숙의 이름을 부르며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갔다. 영민이는 가방을 들고 주섬주섬 이 층으로 향했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좀 씻고 옷 갈아입는 게 낫지.’
다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김 실장님이야 매일같이 보지만, 혜준이는···.
“흐음.”
샤워를 마친 영민이는 니트와 셔츠를 바닥에 쭉 펼치고 고민에 빠졌다. 김 실장님의 하나뿐인 딸, 혜준. 어렸을 때 자주 어울리며 놀았는데, 서로 크면서 데면데면해졌다.
“역시 니트가 낫지.”
작년 이맘때나 봤으니까 진짜 오래됐구나. 영민은 혜준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 뭐 도와줘요?”
거실로 내려가니 유다영과 문숙이 정신없이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새해였다. 연말만큼은 가족과 보내라는 뜻으로, 저택의 직원들 대부분이 휴가를 간 상태였다. 최소 인원만 남아 일을 보니 저렇게 힘이 들지.
“저기, 그릇 꺼내서 이쪽으로 줘 봐.”
“네네. 와. 이거 진짜 맛있겠다.”
“엄마가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했다.”
덩달아 영민도 노동 아닌 노동을 해야 했지만, 그는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자리는 일 년에 몇 번 없었으니까.
띵동- 띵동-
“어머. 누구지?”
“제가 나가 볼게요.”
이때다 싶어, 영민이 현관 인터폰 쪽으로 달려갔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골프를 치고 돌아온 영민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고대만 회장 내외.
“할아버지! 할머니! 오셨어요?”
“아아. 이런. 기사님 먼저 보냈더니 문을 깜빡했지 뭐냐. 자. 우리 영민이. 한번 안아 보자.”
서로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유다영과 고민국의 부모들은 꽤 잘 맞았다. 이따금씩 골프나 짧은 여행 따위를 다니면서 노년의 우정을 쌓곤 했지. 이미숙 여사는···.
“아가. 날이 차다. 물 좀 다오.”
매번 이렇게 놀러 다녀오면 진이 빠져 보였다. 탐탁지 않아 했지만, 어쩌겠는가. 혼자 집에 남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겉으로는 귀찮고 싫다 해도, 막상 놀러 나가면 곧잘 어울리곤 했다.
“네. 아주머니! 따뜻한 차 네 잔만 먼저 주세요. 엄마, 아빠. 이쪽으로. 오늘은 누가 이기셨어요?”
“어우. 나는 사돈 양반 못 이기겠어.”
“오늘도 지셨구나?”
유다영의 웃음소리가 커지고, 고대만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제가 실내파라 그렇습니다. 야외로 가면 사돈을 못 당해요.”
“그럼 날씨가 빨리 풀리길 바라야겠네요!”
“아니죠! 저는 겨울이 좋죠! 하하하!”
네 명의 어른들이 들어서자, 집안은 한순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음식 준비도 거의 끝나 가는 와중, 유다영이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마지막 점검에 들어간다.
띵동- 띵동-
“영민아!”
자동적으로 영민이를 부르는 유다영. 이럴 때면 정말이지, 아이가 다 큰 게 고마울 정도였다. 영민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재롱을 피우다가 후다닥 현관 쪽으로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여자아이의 목소리. 두 손 가득 과일과 음식을 든 혜준이었다. 뒤이어 김 실장과 여진이 들어온다.
“일찍 오셨네요, 도련님?”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저희 왔어요.”
“아아. 어서 와요. 많이 춥죠?”
여진이 꾸벅 인사를 하며 혜준의 등을 떠민다. 단정하니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는 영민을 향해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차마 뭐라 말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오빠.”
“어머- 혜준아. 너 키가 그 사이 더 컸구나? 어쩜 이리 길쭉길쭉해?”
유다영이 혜준을 반갑게 맞이하며 가볍게 안아 주었다. 여진 역시 영민이의 등을 토닥여 주며 덕담을 건넨다.
“영민이야 말로 진짜 키가 크네요.”
“반에서 제일 크대요. 먹는 족족 키로 가나 봐요. 쟤는.”
두 엄마의 칭찬에 아이들은 몸 둘 바를 모르며 난감해한다. 후훗. 재미있군. 사춘기 두 아이를 놀리는 맛에 사는 중년의 여인들이다.
“아참. 좀 도와 드릴게요. 이건 저희가 싸 온 음식인데, 작년에 닭국수 되게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해 왔어요.”
“닭국수요? 이런. 오늘 요리한 거 다 치워야겠는데요?”
“하하하. 말씀도!”
여진이 김 실장의 팔을 잡아끌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멀뚱멀뚱, 어색하게 남은 영민과 혜준. 영민이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가서 앉아 있자.”
“응.”
어색, 어색, 어정쩡하게 큰 남자와 여자 사이는 참으로 어려웠다. 그때, 한 번 더 울리는 초인종. 이때만큼은 영민이를 구원해 주는 소리였다.
“작은아빠!”
“삼촌!”
고민국과 고지훈이 함께 들어온다. 눈이 오는지, 머리와 어깨 부근이 젖어 있었다. 고지훈의 등장에 혜준 역시 와다다 달려가서 안긴다.
“아이고. 둘 다 와 있었구나?”
“많이 춥죠? 빨리 들어와요.”
두 아이의 열렬한 부축에 고지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뒤, 눈을 째리며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고민국.
“아들. 아빠는?”
“아빠 오셨어요?”
“그게 끝이야? 아빠한테도 와서 와다다 안겨야지! 사람 차별하는 게 제일 안 좋은 거야!”
“에이. 우리는 매일 보면서. 자자. 작은아빠. 이쪽으로요. 어른들 다 거실에 모여 계세요.”
고민국은 부들대는 심정으로 정장 구두를 벗었다. 이래서 같이 들어오기 싫었는데, 떡하니 앞에서 마주치는 게 뭐람.
“와. 영민이 키 진짜 컸네. 인물도 훨씬 살고.”
“작은 엄마랑 민수는요?”
“곧 올 거야. 미국에서 와 늦는다 했거든. 이야. 혜준이도 그렇고 둘이 진짜 어른 다 됐네!”
“작은아빠. 저 이번에 선생님이랑 상담했는데, 지금처럼만 하면 경찰대 지원 가능하대요.”
“와. 공부까지 잘해? 미쳐. 미쳐.”
“아들! 아빠가 경찰대 싫다고 그랬잖아!”
고민국이 애타게 외쳐 대지만, 영민이는 들은 척도 안 한다. 다 큰 어른의 다짐 역시 매일같이 변하는 법이었다. 하물며 어린아이가 품은 꿈이, 이렇게 오래 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일 아닌가.
“아버지. 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사돈어른.”
“오오. 어서 오거라.”
“도련님! 아니, 그러니까 지훈 도련님! 따뜻한 차 한 잔 드릴까요?”
“됐어요. 다들 이리 오셔서 쉬세요. 아내 오려면 조금 기다려야 하는데.”
고지훈이 꾸벅 인사하며 거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이사라가 올 때까지, 그들은 거실에 빙 둘러앉아 그간의 일들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워댔다.
“그래서 영민이 체육대회 때, 애 아빠가 트럭으로 M호텔 도시락을 공수해서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덕분에 응원상 받았지 뭐.”
“아참. 혜준이는 내년에 고등학교 가나요?”
대부분이 아이들 얘기였지만. 회사 이야기, 경찰서 이야기, 학교 이야기 등등. 모인 인원수가 많다 보니 한마디씩만 거들어도 금세 시끌시끌했다.
띵동- 띵동-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모두가 서서히 시장기를 느낄 때쯤, 초인종이 울려 댔다. 제일 가까이 앉아 있던 고지훈이 일어서 화면을 확인한다.
“새아가니?”
고대만이 차를 홀짝이며 물었지만, 고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 사람들은 쟤가 왜 저러나, 싶은 얼굴로 고지훈을 쳐다봤다.
달칵-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이사라의 목소리가 추위로 인해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한쪽 손에 들린 민수의 손. 회장이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려고 하는데,
스윽-
이사라의 뒤로 낯선 남자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모두 그가 누구인지,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제일 먼저 달려 나간 것은 이미숙 여사였다.
“대한아-!”
연락도 없이 들어온 첫째 아들.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미국에 간 이후로는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았던 고대한이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지인들과 외국에 있다는 핑계로 번번이 부모를 피했던 그였다.
“안녕하세요.”
“세상에! 첫째 도련님!”
“아아. 이게 누구신가! 귀한 손님이구려.”
“이쪽으로 들어와요. 거긴 추워.”
이미숙 여사가 고대한을 끌어안고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대만 회장이 천천히 큰아들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오랜만에 듣는 그 이름, 아버지. 고대만 회장의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눈물이 조용히 흘렀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만큼, 아주 조용히. 아버지는 고생한 아들을 껴안아 주며 계속해서 등을 쓰다듬는다.
“그래. 고생했다.”
“많이 늦었습니다.”
“아니다. 알맞게 왔어.”
진심이었다. 그 언제 돌아왔어도, 아버지의 품에서는 알맞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첫째의 과오와 실수가 모두 씻기기만을 기다리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이었으니.
“안녕하세요. 큰아빠.”
영민이가 쭈뼛쭈뼛 다가가 인사했다. 애기 때 보고 처음 보는 것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첫 만남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대한도 기억 속의 아기가 이렇게 자랐다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그래. 잘 자랐구나.”
“큰 도련님. 시장하시죠? 마침 잘되었어요. 저희 아직 식사하기 전이라서. 어서 오세요.”
유다영이 그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먹으면서 하자는 듯이. 이미숙 여사 역시 어렵게 돌아온 아들이 다시 나갈까 봐 재빨리 등을 떠민다.
“그래. 밥 먹자. 우리 같이 밥 먹자.”
“자자. 다들 식당으로 갑시다.”
“아이고. 오늘 귀한 손님 와서 밥이 꿀맛이겠네요.”
다들 고대한의 귀환을 축하하며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맨 뒤에서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르는 고지훈와 이사라. 고지훈이 그녀에게 속삭이며 묻는다.
“어떻게 된 거야?”
“나 도착해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웬 남자가 서성이고 있더라고. 확 잡아서 넘겨 버릴까 했는데.”
이사라가 살포시 웃는다. 체력적인 소비가 많은 고지훈은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그녀는 후학을 양성하며 여전히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익숙하더라고. 아버님이랑 쏙 닮은 거 있지.”
“예전 모습 보고 기억한 게 아니네?”
“에이.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야. 영민이가 곧 대학교 갈 나이인데. 아무튼 그래서 혹시나 하고 말 걸었더니 맞더라고. 안 들어갈까 봐 고생 좀 했어.”
고지훈이 잘했다는 듯, 이사라의 볼에 가볍게 입 맞춘다. 그리고 시차 때문에 비몽사몽한 어린 민수의 볼에도.
그만하면 되었지. 과거의 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바스러졌다.
“한국 아예 오신 거죠?”
“아니요. 다시 들어가 봐야 합니다.”
“하긴. 요즘 그쪽 시장 되게 일 몰아친다던데. 얘기 좀 자세히 해 주세요. 막내 도련님 결혼식 때도 안 오시고. 이게 정말 얼마 만이에요?”
유다영이 조잘조잘, 음식을 살뜰하게 챙겨 주며 떠들어 댔다. 여전히 울음기가 가시지 않은 고대만 회장 부부. 고지훈 역시 고대한의 옆자리에 앉으며 그를 쳐다봤다.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그래.”
평범하고 짧은 인사말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십수 년 동안 떨어진 거리를 좁히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지, 고지훈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자자!”
그때, 유다영의 아버지가 잔을 들며 쾌활하게 웃는다. 소파에 누워 있던 민수가 움찔거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올해도 먼저 한잔하고 시작합시다. 밤은 길고, 우리가 나눌 얘기들은 더 기니.”
“오. 아빠. 건배사 준비한 거야?”
“아까 골프 지는 사람이 하기로 했거든.”
장난스러운 말에 모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다. 아이들은 포도주스를, 어른들은 와인을 들며 매년 치렀던 모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손님, 아니 가족까지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수고 많았습니다. 복 많이!”
쨍- 쨍-
와인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명랑하게 울리고, 그날의 식사는 평소보다 훨씬, 훨씬 더 길게 이어졌다. 지난 빈 시간을 덮으려는 듯.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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