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317
317. 외전 – 연주하세요
“어서 오세요!”
독일 만하임 대학 근처의 한 카페.
빙그레 웃으며 반겨주는 카페 사장님에게 나는 마찬가지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3년째 나의 소울푸드를 책임져주는 메뉴를 주문했다.
“저 홀머슬 샌드위치랑 플랫화이트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내 메뉴를 준비해주는 사장님.
급하게 오느라 흘러내린 토트백을 어깨에 추켜올리고서 카운터에 기댔다.
숨을 고르며 카페 내부에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을 듣는다.
“흠흠~.”
너무나 익숙한 선율들이라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홀머슬 햄을 빵 위에 올리던 사장님이 물어왔다.
“이 곡 너무 좋죠?”
“그러게요. 누가 만들었나 몰라~.”
“호호, 그러니까요. 왠지 아침마다 고소한 홀머슬 샌드위치에 달달한 플랫화이트를 마시는 아리따운 숙녀분일 것 같은 느낌?”
“어머~.”
쑥스럽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그 사이 샌드위치 두 덩이를 포장지에 곱게 쌓던 사장님이 별안간 홱 몸을 돌리며 나를 보았다.
“아 참, 말콤 말로는 곧 한국으로 가신다던데···.”
“네, 맞아요. 아마도 이번 달 말에 들어갈 것 같아요.”
“아쉽네요. 제 플레이리스트를 책임져주는 음악가님한테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주는 게 제 낙이었는데.”
“저두요. 여기서 아침에 이렇게 포장해가는 게 제 유학 생활의 가장 소중한 부분 중 하나였어요. 감사해요.”
서로가 수줍게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고백한다.
그렇게 빵 위에 얹어진 홀머슬처럼 기억하나를 더 쌓아 올린다.
아마 나는, 이곳에서 나왔던 내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여길 떠올리겠지.
“감사는 진짜 갈 때 해요. 벌써 아쉽게··· 자, 여깄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 그리고 오늘 오후에 사운드 클라우드 확인해봐요.”
“음? 왜요?”
“이 카페 이름으로 곡 하나 올라올 거예요. 제 선물.”
내 말에 사장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끝이 잘게 떨린다.
“정말요? 맙소사!”
믿기지 않는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나는 인사했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앙 물고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보도블록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인 만하임 대학까지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입에 문 샌드위치를 해치우기까지는 그보다도 더 짧은 시간이 걸렸고.
교수실.
방 한쪽에 늘어서 있는 각양각색의 화분들을 지나, 둥그런 테이블에 토트백을 내려놓았다.
“저 왔어요.”
안쪽에 대고 말하자 넥타이를 고쳐매던 카야 교수님이 머리를 내밀었다.
“어, 왔어? 잠시만···.”
“졸업식이라고 너무 힘주신 거 아녜요?”
“힘주긴. 평소에 너무 후줄근했던 거지.”
과거 브리너 국제 콩쿠르에서 내 곡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이셨던. 이제는 나의 유학 생활에서 마스터, 즉 지도 교수를 맡고 계신 분이었다.
콩쿠르에서 우승하지 못 했음에도 내가 이렇게 만하임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이유도 이분의 적극적인 추천 덕분이었지.
“근데 손에 들고 계신 그건 뭐예요?”
“아, 이거? 흐음···.”
머뭇거리는 카야 교수님의 반응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뭐예요, 궁금하게.”
“마티유의 편지다. 그가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구나.”
“아하~.”
“지난 콩쿠르의 감정적이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다는 내용과 이번 브리너 콩쿠르에서도 심사위원직을 맡고 싶다는··· 뭐 그런 뻔한 이야기들이야. 아무 데서도 자길 안 찾아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구나.”
“오호~.”
연신 대수롭지 않게 끄덕이자 카야 교수님이 참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저런 표정을 받은 게 지난 3년 동안 수 천 번은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아직도 나에게 영 적응을 못 하신다. 하긴, 그건 한서호 교수님도 마찬가지셨네.
오랜만에 떠오르는 얼굴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내······.
‘오랜만은 개뿔.’
코끝을 찡그리며 거짓말이란 걸 속으로 실토한다.
오늘 아침에도 떠올렸다.
어젯밤에는 조금 길게.
어제 점심엔 맛있는 거 먹느라 조금 짧게.
그리고 어제 아침엔······.
“아무렇지 않냐.”
“아뇨. 무지 보고 싶······네?”
“음? 보고 싶어? 마티유가 보고 싶다는 건 아닐 테고.”
“제가 딴 생각하느라. 하하.”
“그자에 대한 얘길 하는데 딴생각을 떠올리는 거 보니 정말 아무렇지 않나 보군.”
“그렇대두요.”
그딴 거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팔을 휘적거렸다.
그러자 카야 교수님이 좀 더 편하게 물어왔다.
“이 자만 아니었다면, 네 첫 커리어가 우승이란 타이틀로 남을 수 있었을 거 아니냐.”
“첫 커리어가 뭐가 중요해요. 그보다 마지막 커리어가 훨씬 중요하고, 다음에 할 커리어는 그보다도 몇 배가 더 중요한걸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덧붙였다.
“그 사람은 저한테 1점을 줬지만 결국 자신에게 1점을 준 꼴이 되었고, 저는······여전히 이렇게 10점처럼 즐겁게 음악을 하고 있죠.”
“······흐하핫.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내저은 카야 교수님이 말했다.
“뭐, 네가 신경을 쓰든 안 쓰든 결국 마티유는 스스로 도태의 길을 걷게 될 거다. 이번 브리너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직을 맡지 못하는 거야 당연하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다른 콩쿠르들도 비슷할 테고. 진즉에 처음부터 최고점과 최저점은 빼는 방식으로 심사를 했어야 했는데···.”
“오, 그거 좋네요.”
“마티유의 커리어가 끊긴 게?”
“아뇨. 그거 말고 채점 방식이요. 공정할 것 같은데요?”
씨익 웃자 카야 교수님도 푸근하게 웃었다.
내 지난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콩쿠르에 나갈 친구들의 결과까지 아무래도 좋은 건 아니지.
“정리는 잘 되어가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
이전과는 달리 섭섭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눼···.”
당연히 나라고 유쾌할 순 없었다.
기숙사 앞 카페 사장님과 수다 떨던 시간과 그곳에서 먹던 샌드위치, 커피 등이 그러했듯.
카야 교수님과의 기억들 또한 소중한 기억이었으니까.
‘사실 어떤 시간이 소중하지 않겠냐만.’
유학을 하며 보낸 모든 시간들이 즐거웠다.
물론 초반에 언어 때문에 무지 고생하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조차도 좋았어.
슬쩍 입꼬릴 올리며 카야 교수님을 돌아보았다.
카야 교수님도 얼른 톤을 높여 물었다.
“졸업식 연설도 잘 준비했고?”
“그거야 준비할 것도 없어요. 그냥 제 생각을 얘기하면 그만이라.”
“그러니 더 기대가 되는구나.”
“제가 무슨 생각을 할 줄 아시고~?”
피식 웃은 카야 교수님이 망설임 없이 겉옷을 챙기며 말했다.
“그게 뭐든, 네 생각이면 충분하지. 가자꾸나.”
#
-제가 누군지 아세요?
무대에 올라 곧 학생이 아니게 될 학생들에게 물었다.
공터를 가득 메운 학사모들이 일제히 물결쳤다.
“당연하죠!”
“유채봄!”
“우리 학교 최고의 아웃풋!”
“유명 작곡가!”
들끓는 대답에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물었다.
-지금 다들 뭐하고 계세요?
그게 졸업식 중간에 던질 질문은 아니었기에, 모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다시 물었다.
-졸업식을 하고 있잖아? 그렇게 생각했죠?
작은 웃음들이 솟았다.
마주 웃으며 한 번 더 묻는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다시 붕 뜨는 얼굴들을 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연다.
-저는 지금 연주하고 있어요.
그리고 텅 빈 양손을 펼치며 도리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겉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나의 악기가 되어 연주하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대학원이라는 악장을, 졸업식이라는 마디를, 연설이라는 프레이즈를 연주하고 있죠.
여전히 조용한 관중들을 보며 툭 말했다.
-방금 제 연주가 저답지 않게 화려했는데, 반응이 너무 밋밋하네요? 나름 말하면서 이거 있어 보인다 싶었는데.
능청을 떨자 웃음소리가 번졌다.
원하는 반응을 보며 앞에 세워진 마이크에 조금 더 다가간다.
그리고 크레센도(점점 크게).
수년간 함께 공부한 친구들에게 말한다.
-혹시 삶이 단조롭나요? 우리가 그렇게 연주하고 있는 거예요.
때론 단호하게.
-인생이 요동치나요? 우리가 그렇게 연주하고 있어요. 뭐가 잘 안 풀리나요? 그건······.
그럼에도 유쾌하게.
-상관없어요. 어쩌겠어요. 안 풀릴 때도 있는 거지.
주제넘을지 몰라도.
-하지만, 연주 중에 실수했다고 멈추면 안 돼요. 그럼 관객들이 눈치채버리잖아요. 넘어가요. 대신 다음 마디에서. 그것도 안 되면 또 다음 마디에서. 더 나은 연주를 하면 돼요.
우리가 모든 주제를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한가지 기억해야 하는 건, 우리는 그냥 단순한 악기가 아니란 거예요. 악기가 낼 수 없는 소리도, 리듬도 생각하는 것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어느새 힘주어 말하다가, 살짝 흥분한 표정 위로 미소를 덧씌웠다.
-음악의 도시, 만하임의 음악가들이니까.
또다시 출렁이는 학사모들.
나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연주하세요. 각자의 삶을.
···연주한다.
-연주하세요. 각자의 이야기를.
···연주하고 있다.
-연주하세요. 꿈을.
연주하며, 시선을 올린다.
짧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의 기억을 머금은 건물들을 바라본다.
수천 년의 세월이 스며든 도시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그렇게 우리들의 연주가 모여서. 결국 굉장한 협주(協奏), 차곡차곡 쌓인 역사(歷史)가 될 테니.
나는 우리를 바라본다.
-여러분.
모두의 눈빛을 맞추며.
-연주하고, 또 연주하세요.
그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낡고 낡아 더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연설을 맺었다.
찰나의 공백이 여백이 되고.
—————!
환호와 박수, 눈물 섞인 외침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때론, 가장 시끄러울 때 어떤 소리가 더욱 선명해지기도 하는 것처럼.
그리운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주를 끝내기엔, 그대들은 너무 젊어요.’
서양 음악사 수업 종강 때 우리에게 해주었던 마지막 이야기였다.
······그게 대체 몇 년 전이냐.
‘교수님, 저 아직도 젊은 거 맞죠?’
흐, 하고 웃으며 몸을 돌린다. 그대로 무대를 내려가려다가 멈칫···.
다시 걸음을 옮겨 호다닥 돌아왔다.
-아 맞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환호성이 일순 멈췄다.
조용해진 학사모들을 향해 손가락을 쭉 펼쳐서 보인다.
모두의 시선이 검지 끝으로 모였을 때.
스윽—슥—.
천천히 4분쉼표를 그렸다.
-그래도 오늘은 쉽시다.
씨익 웃으며.
-모두 고생하셨어요.
연설을 진짜로 끝냈다.
웃음 섞인 환호를 뒤로하고 터벅터벅 무대를 내려간다.
입술을 앙 다물며 지금 가장 하고픈 것을 떠올린다.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다.
바 테이블에 앉아 오선지 하나 펼쳐두고.
사각사각 소리 나는 독일제 펜으로.
콩나물 대가리를 잔뜩 그리고 싶다.
그리고.
교수님이 보고 싶었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