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319
319. 외전 – 고통과 위로 (2)
“유채봄? 야, 유채봄! 전화가 안 터지나···?”
최겨울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다.
내가 갑자기 반응이 없으니 통화가 제대로 안 된다고 생각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제대로 말할 방법이 없어서.
그래, 돌이켜보면 전부··· 참 이상한 일이었다.
꿈을 꿨는데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평범한 일이라 해도.
깨어나 영문도 모른 채 남아 있는 감정에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슥슥 닦아내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낯선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잠에 들지도 않았는데 꿈속 장면을 보는 것이.
결코 ‘우연’이라는 범주로 뭉뚱그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그런 기묘한 일들이 반복되는데도 내가 덤덤할 수 있었던 건,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해를 끼치려는 건 아닌 것 같아서였다. 오히려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찜찜함만 커져갈 뿐이었지.
하지만 의문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기에 점점 무뎌졌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왔다.
그런데 이제 보니, 답은 내 안에 있었다.
꿈속 장면들은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내가 내가 아니게 될 정도로 오래된 일이라서.
그래서, 내가 잊었던 기억들이었다.
······잊으면 안 됐는데.
“겨울아.”
-뭐야? 대답 없어서 끊을 뻔 했······.
“내가 이따 다시 연락할게. 미안.”
-응? 어어, 그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응. 잠시 뭐 두고 온 게 생각나서.”
최겨울이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벌떡 벤치에서 일어나 숙소로 향했다.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목적지는 분명했지만, 마치 정처 없이 걷는 것마냥 시선은 대중없었다.
“채봄! 아까 졸업식 연설 끝내줬······.”
“말콤,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미안.”
“어? 어, 어. 그래.”
카페에서 날 보고 튀어나온 대학원 동기를 뒤로하고 계속 걸었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기숙사를 올랐고, 마침내 도착한 내 방.
달칵——.
문을 닫고서 곧장 등을 기댔다.
“하하······.”
짧게 웃으며 미끄러져 내려갔고.
“하하···으아···.”
쭈그려 앉아 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양손으로 감쌌다.
언젠가 교수님이 말해주셨다.
기억은 감정을 공유한다고.
그 말이 정확했다. 나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되찾았고, 그만큼 오래된 감정까지 함께 돌이켰다.
모든 감정들이 뚝처럼 밀려와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모든 눈물이 밀린 감정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명, ‘백작님’이라고 했어.’
내 기억을 깨운 것으로 추정되는, 그 목소리 말이다.
목소리는 간절히 ‘백작님’이 외롭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일페르소님뿐이지.’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언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뭘까.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아니지.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
나처럼.
내가 아실리인 것처럼.
일페르소님도 어딘가에서······.
‘다시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기억해내셨을 거다. 과거를. 전생을.
당연한 일이었다. 일페르소님이 백작님을 완전히 잊다니. 아무리 생이 바뀌었다 해도 그건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짧은 순간에 벌어졌던 일들을 차례대로 곱씹던 나는 마침내 가장 중요한 순간을 되짚었다.
일페르소님으로 예상되는 목소리가 마지막에 내뱉었던 바람.
그는 분명히 말했고, 나는 선명히 들었다.
백작님을···.
서호를···.
외롭게 두지 마소서.
“······.”
완전히 주저앉았다. 눈을 어디에 둔 지도 모른 채, 툭툭 던져지는 기억들을 바라본다.
‘교수님께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음악가 말인데요. 아무리 검색해도 그분에 대한 내용이 안 나와서요.’
‘그게 당연해요. 잊혀진 음악가들 중 한 명이거든요.’
의문이었다. 잊혀졌는데, 교수님은 어떻게 아시는 걸까.
‘그러니까, 제 곡이 영화가 아니라 교수님이 상상한 그분하고 어울린다는 말씀이시죠?’
‘상상이라기보단······기억이죠. 짧지만 강렬했던.’
왜 항상 그녀를 만나본 적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던 걸까.
‘공부 중이에요. 교수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음악가라면, 제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근데······되게 일찍 돌아가셨네요?’
‘스스로를 미워했던 못난 사람이, 그녀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바람에 그렇게 됐죠.’
그녀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보다, 어떻게 더 많은 걸 알고 계셨을까.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이제야 내게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정말······교수님이라고?”
작게 읊조리며 생각을 이어나간다.
만약. 만약, 그렇다면.
일페르소님은 누구······.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고.
나는 미친 듯이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교수님의 SNS에 올라온 몇 안 되는 사진들을 확인했다.
그중에서도 지금 몸이 편찮으시다는 SJ 그룹의 회장님과 교수님이 함께 찍은 사진들.
마주 보며 웃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서로가 바라보는 눈빛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이미 나는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진들도 확인했다.
외형은 달랐지만, 눈빛만큼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사진에서.
‘여긴······.’
나는 손이 굳었다.
두 사람이 차창 밖에 서 있었다.
그들 주변의 풍경이 낯설지 않다.
내가 지나다녔던 길이었기에.
날이 따뜻해지면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곳이다.
몇 번을 오가며 백작님이 잠드신 곳 앞에 놓을 꽃을 꺾었던 곳이다.
그리고······.
끼기기기긱————!
질끈 눈을 담았다.
육중한 기차가 맥없이 옆으로 구르며, 제안에 있는 우리를 그대로 튕겨내던.
되찾은 기억들 중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장면이 떠올라서.
“후아······.”
살며시 눈을 뜨고,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죽었던 장소.
그곳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어떤 확신 하나가 머릿속에서 매듭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SJ 그룹 백한길 회장의 부고 소식이 포털 사이트를 뒤덮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꼼짝하지 않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화수분처럼 솟는 기억들을 되짚고, 기억에 젖어 쉴 새 없이 울고 있었다.
하지만.
“가야 해.”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정말 교수님이 그분이 맞다면······.
지금, 그 누구보다 힘드실 테니까.
#
한서호는 눈을 감는 게 두려웠다.
세상이 암전되면, 옛 기억들이 툭툭 튀어나와서.
그렇게,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선명해져서.
그렇게, 그가 더는 없다는 게 선명해져서.
‘저 왔어요.’
더는 서재가 아닌, 병원에 누워있던 그.
그는 혼자 있기에 너무나 넓은 병실에서 하루 종일 한서호를 기다렸다.
‘왜 오셨습니까. 일도 많으신데.’
그리고 짐짓 아닌 척 말했다.
그걸 한서호가 모를 리 없었다.
‘일이야 나중에 해도 돼요.’
‘아닙니다. 그토록 원하셨잖습니까. 그 삶을 제가 방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얼마나 강한지 아시잖습니까.’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는 점점 약해져 갔다.
괜찮을 거라 말하는 그에게 한서호는 알고 있다 말했다.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점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나이가 32살을 넘기는 순간부터, 그가 보고 온 미래는 모두 끝났으니까.
‘오늘은 뭐하고 계셨어요?’
‘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기도요?’
‘백작님이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
‘제 바람을 잘 들어주더라고요. 꼭 백작님이 외롭지 않도록 할 겁니다. 제가.’
‘회장님이··· 일페르소가 내 옆에 있으면 돼요. 저 그거면 외롭지 않아요.’
입꼬리마저 끌어올릴 힘이 없는 그는, 무표정이었지만 가장 밝은 웃음으로 한서호를 바라보았다.
‘백작님······.’
무언가를 떠올리듯 지그시 눈을 감고서.
‘아파하시면 안 됩니다. 알겠죠?’
뜻 모를 당부를 덧붙였다.
그 의미를, 당시의 한서호는 온전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깨닫는다.
······이래서 아파하지 말라고 했구나.
그가 벽난로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음악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하는 희망에 잠시나마 행복해했을 그 순간에.
죽어가는 자신을 부여잡고 절규하던 일페르소는······.
‘이렇게 아팠겠구나.’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가 부탁했던 것들은 전부 한서호에게 어려운 것들뿐이었다.
슬퍼하지 말라고 했으나, 통곡했다.
아프지 말라고 했으나,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청개구리마냥 모든 걸 반대로 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의 가족인 것처럼.
백선화 사장과 백기우 사장, 그리고 박 실장 옆에 계속 있었다.
그 누구도 그런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적어도 백한길 회장에겐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걸 모두가 알기에.
“사장님은······.”
“괜찮대. 우느라 너무 체력을 소모해서 잠시 힘이 풀린 거라 조금 쉬면 괜찮을 거래.”
멀리서 걸어온 백기우 사장이 조금 전 실신한 백선화 사장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한서호는 말없이 백기우 사장을 보았다. 얼핏 멀쩡해 보였으나, 저 실핏줄 터진 붉은 눈이 백한길 회장의 임종 전부터 며칠째 감기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서호는 자연스레 그의 모습과 유사한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봉쇄되었던 바다가 열리고, 영국에서 간신히 돌아와 마주한 아버지의 죽음.
혀끝이 너무 써서 눈물조차 사치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에게 당신은 괜찮냐 물었다.
그는 끄덕이며 한서호의 질문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서호야, 네가 아버지께 헌정했던 그 곡. ‘위로’ 말이다.”
“네.”
“영결식 때 연주를 좀 부탁하고 싶은데······물론 힘들면 거절해도······.”
말끝을 흐린 그가 마음에도 없는 소릴 덧붙였고.
“할게요.”
한서호가 답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은 눈빛으로.
“제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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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드셨나 보다.”
“그러게. 아주 반쪽이 되셨네.”
“정말 가족이나 다름없으셨으니까.”
한 필하모닉 단원들이 앞에 서 있는 교수님을 보며 소곤거렸다.
그들 바로 옆에 앉은 나도 말없이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영결식.
한국에선 가족들과 가까운 친척들만 모여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자리에, 고인의 뜻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상당수가 한 필하모닉 단원들과 같은 음악인들이었다. 마치 발터 슈몰저의 장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사람들은 회장님이 클래식을 사랑해서.
그래서 음악인들을 불러 모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외롭지 말라고.’
교수님이 조금이나마 덜 외로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우리들을 부르셨겠구나.
입술을 앙 다물고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걸 순서가 진행되는 내내 수차례 반복했다.
더는 바덴바덴에 오지 말라던 일페르소님과.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던 나.
그 기억들이 계속 떠올라서.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걸음을 옮겨 피아노 앞으로 향하는 교수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궜다.
이곳에 모여 슬퍼하는 이들을 위한.
교수님의 ‘위로’가 시작되고 있었다.
————!
당신도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아니, 어쩌면······ 가장 위로 받아야 하는 사람일 텐데.
“채봄아···?”
옆에 앉은 최겨울이 작게 나를 불렀다.
흐르는 눈물을 보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며 나는 끅끅거렸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보는 그녀에게.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토해내듯 말했다.
“위로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