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320
320. 외전 – 너머에서 [完]
————!
20년 전.
백선화 사장의 의뢰로 만들었던 헌정곡, ‘위로’가 악보 그대로 연주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느낌이 그때와 전혀 다른 건, 시간이 오래 흘렀기 때문이 아니었다.
음악이 위로하고자 하는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
과거 백한길 회장을 위로했던 음악이.
이젠 다른 이들을 위해 연주되고 있었다.
백한길 회장의 목소리를 닮은 건반으로.
그를 사랑했던 가족들에게.
그를 존경했던 직원들에게.
그에게 감사했던 음악가에게.
괜찮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연주한다.
그렇게 그를 위로했던 음악으로, 남겨진 이들을 위로한다.
그것을 그가 바랄 것이기에.
한서호는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그럴수록, 자기 자신은 더욱 그가 그리워진다.
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속절없이 서글퍼진다.
—————!
그렇게 연주 내내, 서러운 마음을 숨기고 연주해낸다.
위로를 마친 한서호는 피아노의 잔향 속에 숨어 숨죽여 울었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울음 한 줌 없이.
일페르소.
나는······.
벌써부터 그대가 사무치도록 보고 싶지만.
치열하게 외로움에서 멀어져 보려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안심하고.
자유로운 몸으로 당당히 걸어 올라가세요.
언젠가 꼭······.
다시 만나요.
병든 내 몸의 희망이자.
또 다른 부모였던.
그리고 일생의 가족이었던.
나의 후원자.
나의 구원자여.
#
연주가 끝났지만, 좌중은 아직 연주를 듣고 있는 것처럼 침묵했다.
그럼에도 독특한 것은 장례식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가 오히려 옅어졌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여운으로 고인을 그리고.
누군가는 울음을 내뱉으며 멍든 마음을 달랬다.
누군가는 그저 옆에 있는 이의 손을 잡는 것으로 위로를 주며 동시에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를 소화했다.
하지만 나는···. 나만큼은 여전히 애달프다.
당장이라도 교수님께 달려가 함께 울어주고 싶을 만큼.
저기 피아노 앞에 홀로 앉아 있는 그가 너무 안타까워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영결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그 마음을 버텨냈다.
마침내 모든 순서가 끝났을 때, 여전히 날 걱정스레 바라보는 최겨울을 비롯, 대학교 친구들과 함께 교수님에게로 향했다.
몸이 꺼질듯,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심장이 터질 듯, 숨이 가빠졌다.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이 하얘진다.
반가움이 들기엔 비극적인 자리였고.
위로를 전하기엔 나 또한 고통스러워서.
나는······.
“다들, 와줘서 고마워요.”
우릴 보고 다가와 인사하는 교수님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턱밑이 간지러웠지만.
하고픈 말들이 거기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꾹 참아버렸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저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계신 데.
저렇게 힘들어하고 계신 데.
이 자리에서 내가 아실리라고 밝히는 것이 우선순위는 결코 아닌 것 같아서.
나는 그저 서럽게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마음 편히 말할 날을 그리며.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요.’
······.
영결식이 끝나고,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아주 느릿하게 흘러갔다.
내겐 몇 주라고 해도 별반 차이 없는 시간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번, 교수님에게 달려갔으니까.
하지만 결국 교수님에게로 가지 못한 건, 만난다고 하더라도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였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진작에 ‘더 클래식’으로 향했을 거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지금,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려 위로라는 주제로 콩쿠르에서 준우승까지 했었지만.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위로가 어렵다.
적어도, 유채봄에겐 그랬다.
그렇기에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실리 로라렌스.
전생의 나에게.
그녀는 백작님께 하고픈 이야기가 많았다. 백작님이 돌아가시고 남은 생을 그것만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당연했다.
“아무리 그래도······.”
흠흠, 이건 확실히 해야지.
“당신이 내 전생이라고 해서 막 이 몸을 차지하겠다 뭐 그런 나쁜 생각 하면 안 돼요?”
양손을 교차해 몸을 움츠리며, 모니터 화면에 떠오른 아실리의 초상화에 대고 말했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누가 몸을 차지하겠나. 그저 내가 나에게 한 말일 뿐인데.
시험 기간 전의 자신에게 왜 공부 안 했냐고 탓하는 시험장에서의 나처럼 말이다.
피식 웃으며 화면을 훑었다.
그래, 이것조차 교수님이 닐 하우저에게 부탁해 그린 그림이었지.
“정말······.”
똑같네.
교수님은 선명히 기억하고 계셨다. 나조차도 흐릿한 내 얼굴을.
빙그레 웃으며 겉옷을 챙겼다.
브리너 백작님께는 아실리가.
한서호 교수님께는 유채봄이.
그렇게 내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몇 번이고 상상했던 대로 방을 나서고, 일주일 동안 생각했던 말들을 다시금 되새기며 ‘더 클래식’ 사옥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마침 1층에 앉아 있는 한 필하모닉 단원들이 있었다. 무려 악장인 강준서님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신수아님.
“어, 유 작곡가님~?”
인사를 하기도 전에 나를 먼저 본 강준서 악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손을 휘적거렸다.
“무슨 일이야? 이제 유학도 끝났겠다, 더 클래식에 들어오시는 건가?”
“오, 더 클래식에서 받아주시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받아주긴. 유명 작곡가님인데 우리 쪽에서 모셔야지.”
“헤, 근데 오늘은 교수님 뵈러 왔어요. 지금··· 계세요?”
슬쩍 계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악장님이 멈칫하며 머릴 긁적였다.
“어? 음. 서호가······.”
대답은 망설이는 악장님 대신 옆에서 튀어나왔다.
“응, 가 봐. 위에 있어.”
“수아야. 지금 서호 상태가······.”
“그러니까 보내는 거야.”
단호하게 대답한 신수아님이 날 보며 옅게 웃었다.
“제자를 끔찍하게 여기는 녀석이잖아. 그러니까··· 네가 저 위에 멈춰있는 클래식을 다시 움직이게 해줘.”
“오. 그렇게 얘기하니까 뭔가 영화에서 세상을 구하러 가는 주인공 같잖아? 그럼 나도 조연으로 같이 올라가서······.”
“앉아.”
“넵.”
엉덩이가 뜨기도 전에 차단당한 악장님이 히죽 웃었다.
“혼자 가셔야 할 듯?”
“원래 그러려고 했어요.”
“쳇, 서호 지금··· 며칠째 출근하면 제 방에 콱 박혀서 회장님 사진만 보고 있어. 말을 걸면 대답은 하는데, 그것도 잠깐이라··· 지켜보는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회장님하고 친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악장님의 말을 들으며 내가 작게 주억였다.
위로의 기본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그들이 전생에 무엇으로 얽혀있었는지를 모르고서는 그 시작부터가 삐그덕거릴 수밖에.
“성공하면 수아가 네 다음 곡에 바이올리니스트로 참여해줄게.”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참여를 네가 왜 줘.”
“그래서 안 해줄 거야? 우리 수장님을 다시 끌어내 줬는데? 멈춰있는 클래식을 다시 움직였는데?”
“끙···.”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신수아님을 빤히 바라보았다. 최대한 눈을 반짝이며, 약속하셨어요? 라고 묻는 듯이.
작은 한숨을 내쉰 그녀가 픽 하고 웃었다.
“뭐, 물론 네 곡이라면 나도 즐겨들으니까··· 못 할 건 없는데.”
짝—!
악장님과 하이파이브를 하고서 심호흡을 하고 돌아섰다.
뒤쪽에서 응원가를 즉석에서 만들어 부르는 악장님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홀짝이는 신수아님을 뒤로하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마침내 문 앞에 멈춰서서.
똑똑——.
문을 두드렸다.
······아주 오래전, 백작님의 방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
한서호는 낡은 악보를 보고 있었다.
서툰 선법으로 반복되는 음계.
그리고 뒷면에 적혀있는······.
음악의 예언가이신 나의 백작님께.
—라는 제목.
“······.”
밀려드는 그리움에 그가 고개를 툭 떨구었다.
치열하게 이 감정에서 멀어져 보려 했지만, 결국 일페르소와의 기억 앞으로 돌아와 다시 외로워진다.
고향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일페르소가 다시 바덴바덴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 고통의 도돌이표를 얼마나 반복해야, 괜찮아질까.
물어보고 싶으나, 답해줄 이조차 일페르소였기에.
그 사실이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후우······.”
머리를 쓸어넘기며 그가 남긴 악보를 책상 위에 툭 내려놓았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사실 문을 두드릴 사람이야 많았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연주자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던 방이었으니까.
이곳에서 개인의 연주에 대해 피드백을 하거나, 필하모닉의 미래를 계획하며 음악에 대해 수다를 떨었었지.
그 모든 게, 지금은 조금 흐릿하게 느껴지지만······.
‘준서 형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곧바로 응답이 없어서일까. 곧 밖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유채봄.”
한서호가 잠시 멈칫한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 유채봄이 말을 이어간다.
“교수님이 방에만 계신다길래······ 걱정돼서 왔어요.”
들어와요.
—라는 말을 목젖에 걸어두고 망설였다.
“······.”
한서호는 생각했다.
저 아이라고 자신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밝은 아이니까. 함께 있으면 웃음이 그려지는 아이니까.
그러니 잠깐. 아주 잠깐은 외로움에서 끄집어내 주지 않을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다가서서 손잡이를 잡으려다 멈춘다.
지금 자신의 꼴이 아니다 싶어서.
스승으로서 괜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고통에 신음하는 자신을 보며 누군가는.
놀란 눈으로, 뒷걸음질 치며 멀어질 것 같아서.
그때였다.
“유채봄은 그래서 왔구요.”
“···?”
툭 떨어트린 손을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들려온 말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지금부턴, 아실리가 온 이유예요.”
······누구?
“우선!”
멍한 표정의 한서호에게 들려오는 ‘유채봄’의 목소리.
“백작님은 절대 못나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제가 하프 앞에 앉아서 바보처럼 웃고, 휠체어 바퀴 소리만 그렇게 기다리고, 그렇게···그렇게 설레면서 면담을 기다리지 않았을 거예요.”
언젠가 한서호가 했던 말들을 인용하며.
“그리고.”
고백한다.
“죄송해요. 너무···늦게 기억해서.”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한서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다.
목소리는 상관없다는 듯 이어진다.
“일페르소님 덕분이었어요. 그분의 마지막 바람이···제게 전해졌어요. 그래서 제가 기억할 수 있었어요.”
“······.”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요. 들려드리고 싶은 연주도 있어요. 하이든님의 오케스트라에서 나와서 홀로 계속 연습했거든요. 만나면 들려드리려고. 그때처럼 하프는 아니지만, 이번 생엔 전공이 달라져서 피아노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물론 그 전에.”
생각의 흐름대로 터져 나온 말들이.
“위로해드리고 싶어요. 이번엔, 꼭.”
결국, 이곳이 목적지라는 듯 멈춘다.
위로하고 싶다.
외롭게 두지 않겠다.
······한서호는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다시 손잡이를 잡았다.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망설일 수도 없었다.
‘백작님. 감사했어요. 그리고 즐거웠어요. 정말로. 이 얘길 꼭 전하고 싶었어요.”
그때의 상황이 다시 돌아온다면······.
이 문을 벌컥 열고 나가리라.
그렇게 수없이 다짐했었으니까.
달깍——.
빛이 드리웠다.
문 앞엔 환하게 웃는 그녀가 보였다.
유채봄인지, 아실리인지 모를.
그녀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이번엔 열어주셨네요?”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돌이켜지고.
연주가 도돌이표를 넘어서 새로운 프레이즈로 향한다.
그제야, 한서호는.
마음껏 무너져내려 허물어지듯 울 수 있었다.
······일페르소가 떠난 후로, 처음이었다.
– 전생이 천재 였다 완결 –
작가의 말
‘전생이 천재였다’가 오늘로써 외전까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다음엔 더 좋은 이야기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