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
1화
“맥베스가 잠을 죽였다오! 무결한 잠을!”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걱정의 실타래를 완전하게 풀어주는 잠.”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하루하루 겪는 죽음, 괴로운 노동을 씻겨주는··· 상처받은 마음들을 위한 위로.”
떨리는 팔을 뻗어 눈앞의 관객에게 내밀었다가 다시 거둬들인다.
“위대한 자연이 주는 두 번째 과정이자, 삶이라는 축제 속에 주어진 최고의 양분.”
핏발 서린 눈.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흘러넘친다.
“그 잠을······ 대체 언제쯤 잘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내 심정을 아시오?”
이다음부터는 대본에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이다.
사랑해 마지않던 극작가.
영국에서 앞으로 수백 년간 나오지 않을 희대의 천재.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본에 덧붙인다.
그가 내게 처음 이 ‘맥베스’를 건네주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날부터 수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봤던 비극.
이런 식으로 각색을 해보면 어떨까?
셰익스피어에게 직접 이렇게 전하고 싶었다.
그럼 그는 눈을 빛내며 밤새 무대 위를 함께 누비자 말해주었겠지.
오스카 대극장의 문을 닫아걸고, 나와 그는 밤새 직접 대사를 내뱉으며 대본을 고쳐나갔을 것이다.
“누워도 도저히 잠들 수가 없소. 하루하루가 고통에 말미암아 대상 없는 용서를 구하는 나를······. 큭.”
거기까지 말한 후, 격렬한 기침이 찾아왔다.
이미 비극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만이 뱉을 수 있는 대사이거늘.
“쿨럭, 쿨럭······! 커헉.”
온몸을 뒤덮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 빌어먹을 첨탑은 난방 따위 되지 않았으니까.
열이 심상치가 않다.
타는 듯한 갈증에 방 안에 있던 물이란 물은 다 들이켰지만 바싹 말라붙은 입안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색- 새액-”
이대로는 대본 연습을 할 수 없어 푹 쉬자고 생각한 것이 어제의 일이었다.
두터운 이불을 온몸에 두르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던 평소를 생각하면 꽤나 기나긴 잠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 나는 이 열이 보통의 열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별관 구석 제일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당한 내 신세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몇 없었다.
‘식사를 가지러 올 때가··· 되었는데.’
하인들은 점점 귀찮아진 것인지 하루에 세 번 오던 것을 점점 줄이고 있었다.
감금당한 지 십 년.
이제 하인들은 하루에 한 번만 이곳에 들러 하루치의 음식과 물을 두고 간다.
창밖에서 햇빛이 들이치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 오전인 듯한데.
자는 동안 이미 하인이 오고 간 거라면 큰일이었다.
덜컹.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 밑에 달린 자그마한 문이 열린다.
“이, 이봐···!”
빵이 수북이 쌓인 쟁반이 쑥 들이 밀어졌다.
부름에도 불구하고 문 밑의 작은 문은 속절없이 닫혀버렸다.
“어.”
순간 놀라서 멈칫했다.
이게 내 목소리라고?
언젠가처럼 연기를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처참하게 갈라진 목소리는 병자의 그것이었다.
“쿠, 쿨럭! 쿨럭, 쿨럭.”
그것도 한 마디가 고비였다.
짧은 한마디를 내뱉고 온몸이 찢어질 것처럼 격렬한 기침을 토해내야만 했다.
-······도련님?
다행히, 내 기침 소리를 듣고 돌아온 모양이다.
두터운 나무문 너머로 나를 부르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쿨럭, 쿨럭.”
하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도, 도련님···! 어디가 편찮으신 겁니까? 자,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타다닷,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갔다.
‘아니······. 그걸 부탁하고자 한 게 아닌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까무룩 잠에 들었다.
***
끼이익.
10년 만에 꼭대기 방의 두터운 나무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하녀 한 명과 왕진 가방을 든 의사가 서 있었다.
이 높은 탑이 그에게는 꽤나 힘들었는지, 손수건으로 이마에 솟은 땀을 훔치고 있었다.
“도련님, 정신이 드세요? 의원을 불러왔습니다.”
오늘 이 첨탑의 식사 당번인 듯한 소녀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을 차마 만지지도 못했다.
그녀는 두려웠다.
아무리 이 도련님이 바텐베르크 가문에서 내놓은 자식이라지만, 그가 혹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신은 질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됐소이다. 내가 좀 보겠소.”
의원은 하녀를 물리고 자신이 침대로 향했다.
“······!”
불덩이 같은 환자의 몸을 확인한 그는 재빠르게 그의 앞섶을 풀었다.
“이런······.”
환자의 가슴팍에는 붉은 열꽃이 가득했다.
“허억.”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하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동생에게서 이런 열꽃이 피어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의, 의원님. 저희 도련님 살 수 있는 거죠? 네?”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 그게··· 사실 며칠 전부터 도련님 식사가 비워져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번인 하녀들이 그냥 음식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그게 며칠 전입니까?!”
“사, 삼 일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도련님이 또 단식투쟁을 하시는 줄 알고······.”
겁을 집어먹은 하녀가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의원은 한숨을 내쉬고 재빠르게 차가운 물과 수건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이건 홍역이오. 전염성이 있는 병이니 함부로 이쪽 탑에 접근하지 말라고 전하시오.”
‘이게 어떻게 공자의 방이란 말인가.’
의원은 굳은 얼굴로 차디찬 방 안을 돌아보았다.
곳곳에 쌓인 종이 뭉텅이들과 잉크 자국.
불을 뗀 흔적은 당연히 없고, 식사라고 놓아둔 것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바텐베르크의 막내 공자가 공작의 눈 밖에 나서 10년째 감금 생활이라는 것을 영지민들 역시 잘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열악한 곳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 여기요! 의원님.”
의원은 하녀가 가져온 찬물에 수건을 적셔 바텐베르크의 막내 도련님, 노아 바텐베르크의 온몸을 닦았다.
그래도 열은 내릴 생각이 없었다.
10년 동안 성안 구석진 탑 안에 감금당해있던 탓에 몸이 상당히 쇠약해져 있었다.
이럴 때 걸린 홍역은 치명적일진대, 멍청한 사용인들 탓에 제때 필요한 처치도 하지 못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약이 통할 시기가 한참 지나버렸어요.”
“······.”
“···이게 무슨.”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바텐베르크가 사람들은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노아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쯧, 여긴 드나들기 힘드니까. 일단 별관 끝방으로 옮겨요.”
노아의 어머니, 제인 바텐베르크 공작 부인의 말에 하인들이 침대째 노아를 옮겼다.
이미 가망이 없다는 의원의 말처럼 노아는 미동도 없이 희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노아가 빠져나간 차디찬 방 안에 모였던 사람들은 우르르 그 방에서 나왔다.
주인이 사라진 방은 황폐했다.
방 전체에는 무엇인지 모를 종이가 여기저기 잔뜩 흩어져 있었다.
노아의 책상을 보면 무엇을 휘갈겨 쓴 흔적이 남은 종이 뭉텅이들.
그리고 얼마나 넘겨 보았는지 손때가 타고 너덜너덜해진 대본이 한가득이었다.
끼이익.
두터운 나무문은 육중한 소리와 함께 노아 바텐베르크의 흔적을 영원히 가둬버렸다.
***
‘이건··· 꿈인가.’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딘가에 떠 있는 것처럼 부유감이 들뿐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가 힘들었다.
‘누구······ 없나.’
누구든 부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올리버에게 그걸 전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나의 유일한 편이었던 올리버.
‘도련님 때문에 전 제 명에 못 살 겁니다.’
그는 이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매일 같이 나의 은밀한 이중생활을 도왔다.
낮에는 바텐베르크 공작가의 막내아들.
밤에는 오스카 극단의 이름 없는 간판 배우 황금 가면.
우리 두 사람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웅장한 바텐베르크의 성을 몰래 빠져나왔다.
하인들만 200명이 넘는 이 성에는 수많은 개구멍이 있었다.
물론, 내 형제자매들은 그런 좁고 더러운 개구멍을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연기를 위한 갈망 하나로 눈에 뵈는 게 없었기에 상관없었다.
그 꿈만 같았던 생활은 3년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올리버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 말 때문일까.
올리버는 정말 나 때문에 바텐베르크 공작저에서 쫓겨났다.
흠씬 두들겨 맞아 절름발이가 된 채로.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나의 아버지, 휴고 바텐베르크 공작 각하가 내 이중생활을 알게 된 것이다.
바텐바르크의 공자가 하잘것없는 배우 나부랭이로 살고 있다니.
이 사실을 알자마자 내 아버지는 내가 없는 사이 올리버를 불러다 가혹한 문책을 지시했다.
불쌍한 올리버.
바텐바르크 공작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하인 한 명의 목숨쯤은 파리 목숨보다도 하찮게 여기는 자였다.
다행히 아버지는 올리버의 목숨을 끊어놓지는 않았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내가 나섰기 때문에.
나는 올리버의 앞을 가로막고 아버지께 읍소했다.
연기를 관두겠노라고.
올리버를 산 채로 영지 밖으로 추방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나는 바텐베르크 성의 별관 구석진 첨탑 꼭대기 방에 감금당했다.
10년은 정말 끔찍하도록 기나긴 세월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찬란했던 3년의 기억이었다.
우연히 런던을 대표하는 챔벌린 극단에서 리차드 버비지의 연기를 처음 봤던 그 순간.
나는 내가 연기를 해야겠노라 마음먹었다.
그 길로 오스카를 만나 그의 극단에 정식으로 가입했을 때,
내 연기를 사랑해준 셰익스피어와 밤새 이야기를 나눴을 때,
수많은 사람이 무대 위 내게 보내는 엄청난 환호를 받았던 그때.
하루는 수도 없이 연습했던 단막극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밤을 지새웠다.
또 하루는 셰익스피어와 나누었던 대화를 반추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나의 연기를 리차드 버비지가 처음으로 봐주었던 날.
올리버가 내 연기를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던 날.
하루하루가 내 십 년이 되어 주었다.
어느 것 하나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 없었다.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직접 입 밖으로 그때 그 장면을 내뱉었다.
서늘한 탑 꼭대기 방에서 나는 수도 없이 대사를 읊고, 썼으며, 또 각색했다.
그렇게, 3년의 추억으로 평생을 살았다.
다시 한번만 그들의 연기를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들과 함께 대사와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객 앞에 설 수 있다면.
오직 그 순간을 바라며 이 질긴 목숨을 영위했다.
‘그런데, 올리버······ 아무래도 이제 끝인 것 같다.’
아무리 두 눈을 깜빡여도 보이는 것은 깊은 어둠뿐이었다.
물에 잠긴 듯 귀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고, 숨을 내쉬어도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따듯한 물에 잠긴 것 같았다.
서서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다시 한번, 꿈속을 거닐고 싶다고.
1623년, 노아 바텐베르크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바텐베르크 공작저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
“응애! 응애!”
시끄러운 소리.
귓가에 거슬리는 소음에 뻑뻑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으···.”
그러자 놀랍게도 귓가를 맴돌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응?
여기는 어디지?
“어머나, 우리 시우 일어났어요?”
“아무래도 시우가 우리 보고 울음을 그친 모양인데?”
“나 보고 그친 거야.”
시야에 들어오는 젊은 남녀.
두 사람은 통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의원은 어디로 간 거지?
의아한 마음에 인상을 팍 쓴 나는 살벌하게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우?”
······어라?
이상한 소리였다.
입을 텁, 하고 다물었다.
무대에 서기만 하면 뭇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내 간드러지는 미성이 아니라, 이건 무슨······.
짐승의 새끼나 낼 법한 소리가 아닌가?
이름만 대면 모르는 이가 없다는 영국의 대 공작 바텐베르크의 막내아들인 나, 노아 바텐베르크.
“으아아앙-!”
“시, 시우야! 아빠야!”
“우리 아기가 왜 또 그럴까? 아빠 얼굴 보고 놀란 거니? 응?!”
몹쓸 병에 걸려 꼼짝없이 이대로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랬는데······.
토닥, 토닥.
일정하게 내 등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
포근한 품에서 풍기는 향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귀족 가의 수많은 향수를 맡아봤건만,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이었다.
채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 그 따듯한 품 안에 안겨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