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거참,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바다 엔터테인먼트의 3팀 회의실.
삐딱하게 앉아 팔짱을 낀 고독진은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며 나를 관찰하는 중이었다.
“……후루룩.”
처음에는 대꾸를 해줬지만, 저것도 세 번째 중얼거림이었다.
나는 고독진의 말을 무시한 채 김민석 팀장이 가져다준 카모마일 차를 마셨다.
요즘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실 시간이 없었는데 아주 잘되었다.
“결국에 장진홍 감독이 찾아온단 말이지…….”
“후룩,”
“물건이야, 물건…….”
“저, 잘못한 거예요?”
결국 참다 못 해 내가 입을 열었다.
불퉁하게 묻는 내 말에 고독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아니다. 아주 잘했지. 우리 입장에서야… 뭐, 시우 네가 우리 도움 없이 일을 따온 거 아니겠니? 그것도 하고 싶은 배역을 직접.”
“그런데 왜 자꾸 그렇게 쳐다보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나 체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라는 말은 꿀떡 삼킨 채 이제 좀 그만 쳐다보라고 말했다.
“허허, 아무리 그래도 배짱이 참 두둑하다 싶어서 말이지. 일곱 살밖에 안 된 애가 오디션 보게 해달라고 거기서 세 시간 넘게 기다려? 그것도 오퍼 받은 오디션장도 아니고… 심지어 열한 살 나이 제한까지 있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줄줄이 늘어놓는 내 지난 과오.
뭐, 이제는 과오도 아니게 되었지만 말이다.
소문 좋아하는 이들에게 마케팅 수단으로 쓰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는 자신이 있었는걸요.”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에 회의실에 함께 있던 김민석 팀장이 눈을 둥그렇게 떴고, 삼촌이 못 말린다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고독진은 이거야말로 대박이라며 회의실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다.
잘 된 게 잘 된 거 아니겠는가?
내가 오디션장에 막무가내로 찾아간 뒤 딱 열흘째 되던 날.
결국 장진홍 감독에서 공식적으로 바다 엔터 쪽에 캐스팅을 문의해왔으니 말이다.
다음 날인 오늘은 장진홍 감독이 나를 꼭 만나봐야 한다고 해서 회의실에 앉아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설마하니, 장진홍 감독과 친분이 있다면서 고독진 대표까지 여기 들어와 앉아 있을 줄은 몰랐지만.
“이거이거, 상철이 형님한테 내가 거하게 뭐라도 쏴야겠는데? 이런 대어를 소개해주다니 말이야.”
“그때 저도 불러주세요.”
새침하게 말하며 남은 차를 호로록 마셨다.
그러자 고독진이 그러겠다며 또 호탕하게 웃어댄다.
“아, 다 모여계셨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앞에 다 와서 차가 막히지 뭡니까.”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장진홍 감독이 안내를 받으며 급하게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고독진이 신경 쓰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이, 됐어요. 됐어. 요즘 제일 바쁘신 분인데… 당연히 우리가 기다려야지. 어서 앉아요, 앉아.”
“고 대표님도 계시네요. 잘 지내셨어요?”
장진홍의 인사에 고독진이 극진하게 두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나야 잘 지냈지. 이번에 새로 들어온 배우님 덕분에 내 팔자가 아주 폈으니 말이야.”
“하하, 제가 시우 군한테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의 말에 장진홍이 유쾌하게 웃었다.
고럼고럼.
딱 보고 알았다니까.
장진홍이 나한테 홀라당 넘어왔다는 걸.
“저번에는 관심 없다더니.”
“에이, 대표님도…… 그런 얘기를 시우 군 앞에서 하시면 어쩝니까.”
“뭐 어때. 장 감독이 배우 보는 눈 없었단 소리지. 아니지, 이제는 생긴 건가?”
능글거리며 장진홍을 놀리는 고독진의 모습을 보며 입을 헤 벌렸다.
친분이 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가 보네.
장진홍 감독은 안경을 고쳐 쓰며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진짜로 내가 별로라는 소리를 했나 본데?
내 눈썹이 비뚜름하게 올라갈 무렵, 장진홍이 재빠르게 말을 돌렸다.
“하하하, 그보다. 시우 군. 오늘은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네.”
얼른 말하라는 듯이 내가 눈을 말똥하게 뜨며 대답했다.
귀엽다는 듯 웃은 장진홍 감독이 말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우 군을 정말 주인공 역할에 캐스팅해도 될까,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지금 대본상으로는 시우 군을 도저히 캐스팅할 수 없겠는 거예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장진홍 감독의 말이 길어지자, 나를 비롯한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을 맺은 장진홍은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된 걸 느끼고 머쓱하게 웃더니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대본을 좀… 수정할 생각이에요. 그 수정된 대본으로 저랑 같이 작품을 할래요?”
“허억,”
“와…….”
예기치 못한 장진홍의 말.
설마 대본을 수정하겠다는 말을 할 줄이야.
나를 캐스팅할 줄은 알았지만, 나를 위해 시나리오마저 수정하는 강수를 둘 줄은 몰랐다.
이렇게 감독이 직접 수정하겠다고 말하는 이상, 단순히 극 중 나이만 바꾸는 수정만 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옆에서 김민석 팀장과 우리 삼촌이 놀라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허허, 지금 시우한테 주인공을 맡기기 위해 대본을 수정한다는 소리지? 맞지, 장 감독?”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하하.”
장진홍은 쑥스럽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시우도 이번에는 적잖이 놀란 것 같네.”
그 사이, 내게 시선을 돌린 고독진 대표가 말했고, 자연스레 장진홍이 반응했다.
“‘이번에는’이요?”
“거 어제 장 감독한테 시우 캐스팅하고 싶다고 연락 왔을 때 말이야. 시우는 별로 놀라지도 않더라고. 하하.”
고독진의 말에 장진홍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라도 바라듯이 말이다.
이제 내 감독님이 될 사람인데, 저 정도 궁금증이야 풀어줄 수 있지.
“저는 감독님이 연락 주실 거 같았어요.”
당돌한 내 말에 고독진은 또 한 번 재밌다며 웃음을 터트렸고, 장진홍 감독은 얼떨떨한 얼굴이 되어서 되물었다.
“제, 제가 연락할 줄 알았다고요?”
“네. 오디션장에서 나오기 직전에 감독님이 절 보는 눈빛을 보고, 그냥…… 그럴 것 같았어요. 그래도 열흘이면 생각보다 늦게 연락 주셨네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나온 내 말에 장진홍은 허허 웃었다.
그리고 왜 열흘이나 걸린 것인지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주었다.
“그날 시우 군의 연기를 보고 나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성에 안 차더라구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다가… 시우 군을 출연시킬 수 있게 조정하면 되겠더군요. 근데 그게 또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괜찮아요. 어떻게 됐든 저를 선택해주신 거잖아요? 저는 좋아요!”
“고마워요, 시우 군.”
장진홍은 내 대답에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런 다음 덧붙였다.
“시나리오 결은 크게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수정 작업이 이루어질 거예요. 그날 시우 군이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내 작품이 좋다고 한 거니까. 전체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는 건드리지 않고, 극 중 11세의 어린 왕을 8세 정도로 조정할 예정이에요. 그 나이 차이에서 오는 디테일한 부분들이 이번 수정 작업의 주요 포인트가 되겠죠.”
어린 배우라고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장진홍이다.
마음에 든다.
“네!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내 생각보다 장진홍 감독이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해준 모양이다.
그게 보이니까 뭐… 열흘이나 걸릴 수 있겠다 싶었다.
어린아이들은 1년만 지나도 몰라보게 쑥쑥 자란다.
11살과 8살은 고작 삼 년 차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큰 차이가 날 것이다.
말투부터 시작해 먹는 것까지.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디테일한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별말씀을. 내가 더 고마워요. 시우 군 덕분에 좋은 작품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히히, 저 열심히 할게요.”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좋아요. 그럼 계약서는 오후 중에 바다 엔터 측에 보내겠습니다. 검토하시고 연락 주세요. 저는 얼른 돌아가서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럼 현장에서 봐요. 한 배우님.”
장진홍은 내게 악수를 건넸다.
현장에서 보자라…….
한 배우님이라……!
그야말로 두근거리는 말에 나는 장진홍 감독의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
나의 합류 소식을 증명하기라도 한 듯 다음날 포털사이트에는 내 이야기가 가득 올라왔다.
삼촌의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나는 신이 나서 삼촌의 노트북을 들고 내 기사를 읽었다.
[바다 엔터테인먼트의 기대주 한시우의 다음 행보…… 장진홍 감독의 신작으로 밝혀져]최근 바다 엔터에 둥지를 튼 아역 배우 한시우의 차기작이 밝혀져 화제다. 도석준, 추인영, 나영한, 김산, 김선우 등의 톱스타들과 한솥밥을 먹게 된 한시우의 첫 작품이 무엇일지 관계자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았었다.
바다 엔터 측은 한시우가 으로 대한민국 사극 영화의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는 장진홍 감독의 신작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시우가 맡은 역할은 어린 왕을 연기하는 주인공이다. 한시우는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 남태룡, 이희준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보인다. …….
-엌ㅋㅋㅋㅋㅋ대박 장진홍? 이건 되는 주식이다.
-한시우 잘 나가네 영국 소년에 이어서는 왕 역할?
-남태룡하고 이희준이랑 쓰리샷 기대된다.
└남태룡이 잘 받쳐줘서 케미 쩔 듯.
└나만 상상 안 됨? 별론디
└ㅇㅇ 너만 안 됨
-소년영국 너무 잼있게 보고 있는데^^~~ 다음에는 한복차림인가요~~? 너무 예쁘겠어요~~~
-선인장이 잘됐다고 해도 개오바 아님? 일곱 살이 뭘 안다고 사극 주인공임 개나소나 다 사극 찍네 ㅉㅉ
-장진홍도 한타하고 빠이네
└미래에서 오셨나 봐요?
└바다 엔터 직원 등판
댓글을 보고 큭큭거리고 있자니 삼촌이 나를 힐끔 보며 눈을 부라렸다.
“너! 내가 기사만 보고 댓글은 보지 말랬지! 얼른 노트북 덮어.”
“괜찮아. 꿀잼이야.”
나는 눈도 돌리지 않고 다음 기사를 클릭하며 대꾸했다.
내 말에 삼촌이 놀라서 돌아봤다.
“꿀잼? 뭔 소리야 그건?”
“으휴 삼촌. 삼촌도 인터넷 좀 봐야겠어. 신조어 몰라 신조어?”
“…아… 신조어.”
“삼촌 늙었어.”
“뭐, 뭔 소리야! 아직 팔팔하구만.”
“삼촌. 앞. 운전할 때는 앞을 봐야지.”
묘하게 당한 것 같은 기분인지 고개를 갸웃거린 삼촌이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사이 나는 다시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웃긴 댓글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찍어놓기도 했다.
이따가 남연수나 문희성한테 보내줘야지.
요즘 스케줄을 소화하러 다니면서 차 안에만 있어 심심한 내게 새로 생긴 취미였다.
바로 내 이름 검색해서 기사 훑기.
삼촌은 악플 때문에 댓글 보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웃길 뿐이다.
한국 사람들 댓글 다는 센스가 거의 셰익스피어급인 것 같다.
“대표님은 이게 좋은 태도라고 했어. 배우라면 무릇 자신의 인지도쯤은 알아야 한다고.”
나는 내 소소한 행복을 위해 고독진의 이름을 팔아넘겼다.
고독진을 언급하자, 삼촌은 끙…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기사만 보면 되잖아.”
“대중들의 반응을 보려면 댓글도 봐야지!”
“…내가 진짜 말이나 못 하면.”
“삼촌? 앞?”
결국 나는 다음 스케줄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신나게 인터넷 서핑을 했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노트북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
“스읍, 후우- 스으읍! 후우-”
나는 삼촌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열심히 복식호흡을 연마하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5월이 되었다.
오디션을 보러 간 게 3월인데 두 달 남짓 흐른 것이다.
그동안 나는 사극 연기를 위한 본격적인 훈련을 이어왔다.
지금까지 내가 현대극만 해왔기 때문에 아예 결이 다른 사극 연기를 위해서는 트레이닝이 필요했다.
그래도 연기는 괜찮았다.
오디션을 준비하기 전부터 사극을 좋아했기에, 수많은 작품을 봐왔다.
또 문희성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사극 촬영 경험이 있는 그에게 많이 배워놨으니 말이다.
바다 엔터에서 붙여준 연기 선생님이 놀라워할 정도였다.
내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 중이라 왕의 걸음걸이, 톤에 대한 수업은 일주일에 4번에서 2번으로 줄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 사는 전부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아아- 아!”
“시우야… 거의 다 왔어.”
“푸르르르. 나 목 풀어야 돼.”
어려운 것은 지금 향하는 판소리 수업이었다.
왕의 행동 궁중 예절, 말투 등을 배우기 위한 선생님은 소속사에서 붙여줬지만, 판소리는 제작사에서 붙여줬다.
그만큼 장진홍 감독이 이 판소리 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극 중 주인공이 어린 왕의 몸에 빙의하기 전 직업이 바로 소리꾼이었다.
소리꾼의 영혼이 왕에 들어오고 난 뒤, 딱 한 번 남몰래 이 소리를 내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단 한 장면을 위해 요즘 매일 열심히였다.
“아악!!!!”
“…으윽.”
덕분에 하루종일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삼촌만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