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1
11화
“후움.”
그나저나, 몇 시간 째 배우들의 연습을 보고 있자니······.
좀이 쑤시는군.
나도 모르게 의자에 붙이고 있는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더하고 싶은데.
······!
나는 이리저리 연습실을 가로지르는 배우들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대사를 자장가 삼아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
“시우야, 연극 준비는 잘되어가?”
오늘은 연습이 없는 날.
마음 같아서는 매일 밤새 연습하고 싶지만, 이 몸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잠깐 방심하면 대사를 읊다가도 눈꺼풀이 내려앉을 판이니 말이다.
그래.
더 좋은 연기를 위해선, 휴식도 잘 취해야 하는 법.
휴식을 맞이한 내 손에는 언제나처럼 TV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
요즘 매일같이 극단에 출근을 하다 보니 TV 볼 시간이 부족했다.
밀린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내 옆에 앉으면서 물었다.
“우웅. 재미써요.”
“그래? 우리 시우 거기서 뭐뭐 했으려나?”
“이찌, 내가 이케 대사를 하묜, 배우님이 이케 한다?”
“아고, 우리 시우 진짜 좋겠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TV도 마다하고 이리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줄은 몰랐는지 살짝 놀랐다가 되물었다.
“그리고, 그리고오···. 막 저쪽 또명을 이케 하고 달려가면 또명이 나 쪼차와!”
“그래? 그건 꼭 달님 같네.”
“우웅!”
눈앞에서 놓친 드라마의 장면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지만, 그거보다 어머니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게 훨씬 재밌었다.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안심이라도 하시는 듯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지는데, 어찌 재미가 없을 수 있는가.
내가 ‘황금 가면’이었을 시절 내 손짓 한 번에 감탄하는 팬들을 보던 기분과는 조금 달랐지만, 이건 또 다른 기쁨이었다.
부모님의 애정과 관심.
전생에 연기할 때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으니.
“마자, 엄마. 나 이고.”
나는 방에 들어가 오늘 강용휘가 내게 쥐여준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뭘까?”
바로 봉투를 열어보신 어머니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와, 벌써 공연일이야?”
“그래?”
어머니의 탄성에 씻고 나온 아버지도 소파로 다가왔다.
“이거 봐. 시우가 티켓을 가지고 왔어.”
“우웅! 엄마, 아빠. 그날 꼭 와야 대?”
“그럼. 당연하지.”
“바로 다음 주네? 여보, 혹시 극 촬영도 가능한가? 오랜만에 카메라 좀 잡아보는 거 어때?”
“어휴, 카메라 내려놓은 지가 언젠데.”
“우웅?”
카메라를 내려놨다고?
나를 찍으시겠다고 하루에도 열댓 번도 더 드시는데.
무슨 소리인 거지.
“시우야. 너네 엄마가 왕년에 다큐 감독이었거든. 엄마가 맨날 핸드폰으로 이렇게 찍는 거 있지? 그것처럼 시우 영상 진짜 멋있게 찍, 으풉.”
“애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왜, 말 못 할 비밀은 아니잖아?”
다큐는 또 뭐야.
찾아볼 단어가 또 늘었다.
아니면 나중에 삼촌에게 슬쩍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버지의 말을 가로막는 어머니의 눈이 마치, 내가 과거 연기를 떠올릴 때와 비슷한 것이··· 뭐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응? 하고 고개를 들었다.
일단, 말해줘야 하는 사항이 있다.
“그고! 안대! 극장에서 찍는 거 금지야.”
핸드폰으로 찍는다니까 알겠다.
이제 첫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요즘 연습실이 아니라 실제 무대에서 연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극장 곳곳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공연 중 촬영 금지.]밑에는 친절하게 영어로도 쓰여 있었기에 나도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펄쩍 뛰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상당히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알긴 아는데······ 시우 첫 공연을 못 남긴다니. 그건 좀 아쉽네.”
“그러게. 대신 가서 잘 보고 나와야겠다 그치?”
“그러네. 우리 시우 얼마나 잘하는지 엄마가 다 기억해야겠다.”
“우웅!”
어머니가 번쩍 나를 들어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
나는 부드러운 품에 폭 파고들며 크게 대답했다.
신기하기만 했다.
이 내가 부모의 품을 좋아하게 될 줄이야.
부모라는 존재가 나를 이리도 사랑해줄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었는데.
“에잇, 기분이다! 그날은 내가 치킨집 문도 일찍 닫고 극장으로 갈게!”
“그럼 안 그러려고 그랬어?”
“여보······. 나 나름 큰 결심한 건데.”
“시우야. 네 아빠가 생색내신다. 얼른 고맙다고 해드려.”
“고마쯥니다!”
아버지는 내 맑은 소리에 헤벌쭉 웃으시며 나랑 어머니를 한 번에 안아버렸다.
꺄우!
오랜만에 터진 내 큰 웃음에 부모님 역시 환히 웃었다.
***
5월의 화창한 어느 날.
드디어 첫 공연의 날이 밝았다.
음, 확실히 400년 뒤의 그린룸(이제는 이곳을 백스테이지라고 한단다)은 상당히 깨끗하군.
나는 뒷짐을 지고 하얀 원 톤으로 꾸며진 그린룸을 한 바퀴 휘 돌았다.
환한 조명이 박힌 거울이 벽에 좌르륵 놓여 있고 배우들이 그 앞에서 치장하기에 바빴다.
분주해 보이는 그들은 마지막 점검을 하며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소리는 바깥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될 우려가 있다.
무대와 가장 가까운 장소.
모습은 달라졌어도 분위기는 과거의 그린룸과 별로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극이 시작하기 전에 이 특유의 분위기는 똑같군.
둘레둘레 돌아보며 그린룸을 한창 구경하고 있는데 간단한 분장을 마친 삼촌이 다가왔다.
얼굴이 분을 과하게 칠할 필요가 없어 옷만 갈아입은 나는 진즉에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시, 시시시우야. 음료수라도 뽑아 주, 주줄주, 줄까? 떠, 떠떠떨리지······?”
쉬잇!
검지를 입 앞에 붙이고 손짓했다.
이러다가 바깥에 입장하기 시작한 관객들한테 다 들리겠다.
이곳에서의 대화 소리는 아주 작아야 한다.
“흐응.”
나는 흐린 눈으로 삼촌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긴장을 해서 몇 없는 대사라도 잘하고 내려올지가 걱정이었다.
목소리를 한껏 낮춰 삼촌에게 속삭였다.
“조기, 무대. 구경해도 대?”
“어? 무, 무대 보고 싶어?”
내가 무대 쪽을 가리키며 묻자 삼촌이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높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삼촌 품에 안겨, 그린룸에서 무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얇게 틈을 낸 구멍에 눈을 댔다.
객석은 반 정도가 차 있었다.
“와, 오, 오늘이 첫 공연인데, 꽤 많네. 저 중에 반은 아마 선우 팬들일 거야.”
삼촌이 아주 작게 소곤거리며 설명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우의 팬이라는 관객들은 여자들도 많지만, 의외로 남자들도 많았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지만, 김선우가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실력이 뛰어나 일궈낸 성과라고 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비슷하네.
‘황금 가면’이었을 시절, 나를 보러 온 관객이 반 이상이었던 것을 떠올렸다.
답답한 가면 속에서도, 반짝이던 관객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 한숨 소리에도 주목하던 그들의 눈빛.
다만 그 화려한 가면 덕에 ‘황금 가면’이라는 별칭도 얻었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건 ‘노아 바텐베르크’가 아니었다.
가면을 벗고 어둠을 틈타 ‘황금 가면’을 갈망하던 팬들 사이를 빠져나오던 나날.
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항상 타는 듯한 갈증을 참아내야만 했다.
결코 저들 앞에서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다.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은 곧 연기를 관두는 것과 직결되었으니.
“후우.”
“시우도 떨리니? 자, 이제 들어가자.”
삼촌은 작게 웃으며 나를 도로 그린룸으로 데려다주었다.
“얼마나 남아찌?”
내 말에 삼촌이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대답해주었다.
“이제 한··· 15분 남았네? 와, 진짜 시작이라니. 으윽, 배 아파.”
괜히 물어봤다.
삼촌은 극심한 긴장감에 결국 나를 남겨두고 변소로 사라졌다.
이제··· 몇 분 후면 나는 ‘한시우’로 관객들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그것도 가면 없이.
짝.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두 뺨을 내리쳤다.
기합을 넣고자 한 행동인데, 그 소리에 배우들 몇몇이 놀라서 돌아봤다.
“시우야, 뭐해?”
“떨려서 그래? 이리로 와서 앉아있으렴.”
“우웅.”
나는 배우들의 말을 들은 체 마는 체 하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게 얼마 만에 무대에 서는 것인지······.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 연약한 육체는 아직 몸이 작아서 그런지 심장박동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마치 가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은 심장박동을 느끼며 굳게 닫힌 커튼을 바라보았다.
이 두근거림은 결코 두려움은 아니었다.
바텐베르크 가의 탑에 갇힌 10년.
그 10년 동안 매일같이 갈망하고 기대했던 무대를 앞둔 지금.
셰익스피어라면 지금의 내 기분을 뭐라 표현했을까.
이 형용할 수 없는 설렘이 주는 긴장감.
지금 나는, 어서 이 긴장을 조금이라도 빨리 무대에서 터뜨리고 싶을 뿐이었다.
***
타탓.
“씨이······.”
은은하게 퍼진 주황빛 조명이 무대를 물들이고 있다.
마치 노을이 지는 것만 같은 무대 위로 영수가 타박타박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거또 모르면서 큰 소리는······.”
무대 상수에 홀로 선 영수(한시우)는 씩씩거리면서 노을빛 조명을 맞으며 하수로 가로질러 간다.
영수가 향하는 곳에는 초록색 철문이 세워져 있다.
“나뿐 사람들. 아조씨들 나빠······. 자기들이 아빠 몰 안다구. 씨이.”
영수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눈물이 가득 고여져 있다.
하지만 결코 떨어뜨리지는 않으며 방금 자신이 가로막은 판자촌 사람들을 욕하는 중이다.
탓.
그러다 무대 중앙에 와서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하늘을 한번 바라본다.
“킁, 훌쩍.”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한 차례 집어삼킨 영수는 다시 터덜거리며 철문으로 향한다.
“어른들 말이라구 다 맞는 고 아니자나! 압빠는 잘못 업써. 잘못 업눈 사람들은 곧 지브로 돌아온다고 해써. 흑, 흐윽······.”
뭐라뭐라 중얼거리던 영수는 끝내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한다.
“흐어엉. 압빠. 어디 가써. 끅, 여, 영수가 흐엉. 가디 말라고, 히끅. 했눈데······.”
결국, 영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며 엉엉 눈물을 터트린다.
덜컹.
초록색 철문 앞에 도착한 영수는 녹이 슬은 대문을 부여잡고 큰 소리로 아버지를 찾는다.
“압빠, 어디써······. 흐아아앙.”
신기하게도 울음에 뭉개지고 엉망이 된 영수의 대사는 모든 이들에게 똑똑히 박힌다.
엉엉 울면서 아버지를 찾는 영수는 초점 없는 눈으로 관객들을 훑으며 마치 아버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린다.
형편없이 일그러진 얼굴로 아버지를 찾으며 우는 모습을 보아하니 영락없는 다섯 살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서서히 조명이 사그라들고 밤이 되어도 영수가 찾는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고.
“히끅, 흐윽. 흡.”
울다 지친 영수가 털썩, 철문 앞에 주저앉는다.
핀 조명이 눈물 가득한 영수의 얼굴을 비추고.
하나 남았던 핀 조명마저 서서히 꺼지며 무대는 완전히 어두워진다.
***
암전.
잠시 찾아온 어둠.
관객석에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방금 나온 네, 다섯 살로 보이는 아이.
순간 몇몇 관객들은 정말로 아역 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하자 경악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촬영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무대극에서 저렇게 어린 배우를 쓰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영수는 아버지를 욕하는 판자촌 주민들을 혼내주고, 아버지를 찾으며 서럽게 우는 완벽한 연기로 뭇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한편, 벅찬 감동을 얻은 관객들과 다른 감정에 휩싸인 사람도 있었다.
바로 한시우에게 직접 초청받아 오늘 공연을 보러 온 그의 부모님.
영수로 분한 한시우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두 사람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영수가 서럽게 우는 장면에 돌입하자 어머니는 쉴새 없이 눈물을 쏟았다.
당황한 건 그의 남편, 한시우의 아버지였다.
평소 웬만한 영화를 보고서 눈물을 안 흘리던 제 아내가 이토록 서럽게 우는 걸 보는 날이 오다니.
그는 열심히 휴지를 건네주며 다시 불이 밝아져 오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장하다, 우리 아들.’
그 역시 휴지 한 장을 뽑아 눈가를 훔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