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할아버지? 하하하.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구나.”
“우웅, 저는 왜 부르신 거예요?”
어이가 없는 건지 아니면 정말 재미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노백찬이 웃었다.
아니 왜, 딱 손자뻘이지 않은가.
이제 감독직에서도 은퇴했으니 적절한 호칭이지.
“제자놈이 푹 빠진 꼬마가 누군지 궁금해서 말이지.”
“아아, 네.”
왜 온 거냐는 내 물음에 노백찬이 장지문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장진홍이 내 이야기를 노백찬에게 했나 본데?
저번에 나한테 노백찬을 아느냐고만 물어봤는데, 노백찬에게도 나를 아느냐고 슬쩍 말했나 보다.
“놀라지 않는구나? 저래 봬도 천만 영화를 만든 감독인데 말이야.”
“오디션 때부터 티를 내셨거든요.”
대수롭지 않은 내 대답이 신기했나 보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며 대답했다.
“하하, 티를 냈다고? 그럼 이 역할을 하게 될 줄 알았다는 말이렷다?”
“네. 비슷해요. 연락이 올 것 같았거든요.”
노백찬은 당돌한 내 말에 허허로이 웃으며 물었다.
장진홍에게도 말했듯이 같은 답을 들려주니 노백찬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허허, 재밌는 아이로구나.”
“감사해요.”
쌈박하게 감사 인사를 건네자, 노백찬이 무릎을 치며 즐거워했다.
“TV에서 보이던 모습이랑 아주 똑같구나.”
오, 를 보신 건가?
“그나저나 대본 속 캐릭터 해석에 꽤나 적극적이라던데. 진홍이가 대본을 고칠 때 피드백도 많이 해줬다고 들었다.”
“네, 재밌었어요.”
피드백을 해줬다기보다는…… 장진홍 감독이 여덟 살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물은 게 크지만.
같이 대사를 상의하면서 나도 이권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린 나이에 기특하기도 하지.”
“전 이 작품의 주인공이잖아요. 이 정도는 해야죠.”
“그것도 그렇구나.”
노백찬은 내 대답에 바로 수긍했다.
김상철이 내게 주인공이란 무엇인지를 조언해준 것처럼, 아마 노백찬도 주연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나 보다.
주인공을 운운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노백찬이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원래 나는 오늘 여기까지 찾아올 생각이 없었다.”
“그래요? 그럼 갑자기 왜…….”
그런 사람치고는 내 연기를 진짜 열심히 관람하던데….
하긴 저번에 장진홍이 노백찬의 이름을 꺼냈을 때, 만나러 온다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반응을 보면 장진홍 감독에게 언질을 준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실은 내가 재밌는 걸 찾아보고 말았거든.”
“재밌는 거요?”
“그래. 작년 레이보우 픽처스 사에서 열었던 공개 오디션 영상. 그걸 구해서 봤다.”
“아, RUN이요?”
노백찬 위치의 사람이라면 그 오디션 영상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 그게 남아 있다니.
나중에 고독진이나 김상철에게 물어봐야겠다.
나도 그 영상을 구할 수 있느냐고.
아, 제시카에게 물어도 되겠구나.
“그렇지. 그리고 진홍이가 네 이름을 꺼내기에 그것도 봤다. 영국 여행하러 다니는 거.”
“와, 예능도 보세요?”
“원래는 잘 안 보지. 그런데 그건 별로 시끄럽지도 않고 볼만 하더구나.”
“맞아요. 편집을 진짜 잘한 것 같아요.”
예상대로였다.
내 말투에도 별로 놀라지 않더니만, 역시나 를 보고 온 모양이었다.
나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연구를 하고 온 느낌이네.
“거기서 보니 영국 사람들한테도 피드백이 거침없던데…….”
나는 직감했다.
지금 나올 말이 노백찬이 꺼내고 싶어 하는 말이라는 걸.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듣고 있으니, 마저 말하시라고.
“대본에 관심이 있느냐? 제법 있는 것 같던데.”
“……!”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눈초리.
지금까지는 별생각 없었는데, 방금 튀어나온 저 말에는 살짝 놀라고 말았다.
여태까지 내 연기보다 극본해석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배우라면 다들 대본에 관심이 있죠.”
“그래. 그건 알지. 하지만,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연출하는 감독이 알아서 하라고, 어떻게 연기하는지만 알려달라고 하는 배우들도 많지.”
연막을 펼치지 말고 속내를 털어놓으라는 듯이 방글방글 웃는 노백찬.
얄미운 그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대답했다.
“캐릭터는 배우와 감독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배우와 연출, 그리고 작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죠. 같은 작품은 장진홍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도 썼으니까, 제가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구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연기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도 있죠. 그렇게 분석해서 연기를 하는 것과 아닌 건 상당히 다르니까요.”
돌려돌려 열심히 대답했다.
그런데 노백찬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별로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정녕 그게 다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뜨끔해서 시선을 살며시 피하고 말았다.
일곱 살이 이 정도 대답하면 훌륭한 거지.
여기서 뭘 더 바란단 말인가!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백이면 백 어린 나이에 훌륭하다고.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여기고 넘어가는 게 다였다.
그런데 노백찬은 아직도 날카로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삼켰다.
이런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겠구나.
이미 어린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구만.
“극본 쓰는 것 자체에 흥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묻는 게다.”
“……네?”
뜬금없이 극본이라니.
순간적으로 이 할아버지가 내 전생이라도 꿰뚫었나 싶어서 오싹했다.
하지만 그럴 일 없지.
내가 저 나이까지는 아직 살아본 적이 없어서 연륜이라는 걸 잘 모르겠지만.
그 기이한 일을 꿰뚫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또 처음이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흐음….”
“지금은 연기가 더 좋아요. 당분간은 연기에 집중하고 싶기도 하고…….”
결국 그에게는 내 속내를 잠시나마 내비치고 말았다.
지난 생, 나에게 3년간 오스카 극단에서 ‘황금가면’으로 산 세월도 있지만.
10년간 탑에 갇혀 홀로 극본 작업을 한 세월도 있다.
‘황금가면’으로 살았던 찬란한 추억이 나를 살아가게끔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생각하기 싫은 처절했던 10년의 세월도 나의 일부이긴 하니까.
매일 같이 양피지 가득 머릿속의 이야기와 대사를 쏟아내던 그때를 어찌 잊을까.
“그래. 오늘 보니 연기도 아주 훌륭하더구나.”
“예에….”
연기도? 마치 내가 쓴 극본을 본 것처럼 말씀하시네.
순간적으로, 내 극본은 보지도 않았잖아요.
하고 대거리할 뻔했다.
그랬으면 정말 제대로 잡혀서 오늘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이야기를 나눠야 했겠지.
“이놈 봐라.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내 입에서 이런 소리 나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다.”
“네, 잘 알아요. 감독님 영화 다 봤거든요. 저도 감독님 존경해요.”
“허허, 일곱 살로 알고 있는데 내 작품을 다 봤다고?”
“……몇몇 작품은 빼고요.”
청소년관람불가 작품이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내 말에 노백찬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같이 작업하면 정말 재밌을 뻔했구나.”
“그러게요.”
노백찬은 확실히 나를 배우로 탐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이미 감독에서는 은퇴를 했으니.
“오늘 좋은 연기 보여줘서 고맙다. 간만에 영감이라는 게 떠올랐어.”
“영광이네요.”
뭔가 더 말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금세 마무리 짓는 노백찬이다.
그저 그는 내 말에 흐뭇하게 미소 짓더니 품속을 뒤적였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명함 케이스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앞으로 극본에 대해 얘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거라.”
“와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내 명함을 받은 최연소 배우가 하는 말치고는 상당히 건방지구나.”
“저도 배우로서 연락드리는 거면 내일이라도 드렸어요.”
“이거 참, 그래도 기다리마.”
너무 기대는 말라고 대답하려던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노백찬의 눈에 강한 확신이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볼게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갑작스러운 노백찬과의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와 대화하는 게 재미있기도 했고, 극본에 흥미가 있냐는 물음에 가슴이 뛰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깊은 생각은 영화 촬영이 끝난 후 해야 맞다.
주인공이 딴생각에 작품에 집중하지 않아서야 쓰나.
잠시 노백찬과 대화 생각은 잊고 앞으로 남은 촬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괜히 다른 생각을 하면 집중이 흐트러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여름의 무더위가 말끔히 걷히고, 낙엽이 흩날리는 10월 말.
방금 장진홍 감독의 마지막 우렁찬 오케이 사인으로 의 모든 촬영이 끝났다.
오늘은 최다 인원이 필요한 액션씬을 촬영했다.
사실 이 장면은 비슷한 구도로 한 달 전에 촬영한 적이 있는데, 편집 사정상 오늘 바로 다음 장면을 이어서 촬영하느라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때 참여했던 단역 배우들이 그대로 나오지도 않았기에 장면 설명과 동선 정비에 시간을 많이 쏟아야 했다.
그럼에도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좌의정의 반란 무리를 제압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허투루 찍을 수야 없었다.
“끝이 났다. 끝이 났어.”
전투 최전방에서 온갖 먼지바람을 뒤집어써야 했던 남태룡이 씨익 웃었다.
나는 말없이 시원하게 적셔진 수건을 건넸다.
“오오, 전하. 제 충심에 보답해주시는 겁니까.”
“그럼요, 우의정. 덕분에 내 목숨이 이리 보전되었지 않소.”
마지막까지 선왕의 명령으로 나를 지켜주었던 우의정 역할의 남태룡.
촬영이 다 끝났는데도 재능 낭비를 하는 데 열심히다.
우리가 농담을 주고받으며 의상을 갈아입는데, 스태프들이 두터운 옷을 껴입고 장비를 정리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희도 가서 도와드려요.”
“시우 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씨, 저 힘 세거든요? 이제 조금 있으면 여덟 살이 된다구요.”
가볍게 만들었다지만, 그래도 예전 갑옷을 재현하느라 무거운 복장을 낑낑거리고 벗고 있자니 남태룡이 도와주며 코웃음을 쳤다.
아이참, 이거 또 자존심을 건드네.
“소신을 부려 먹으시옵소서.”
“우의정은 군복이나 빨리 벗게나.”
툴툴대면서 간편한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스태프들은 한 데 오래 있어서 그런지 다들 핫팩을 쥐고서 세트장을 종종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두꺼운 옷에 후덥지근하고 그늘도 얼마 없는 이 한옥 세트장에 적응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금세 계절이 바뀌다니… 세월도 참 빠르다.
“감독님! 이 옷 제가 다 접었어요.”
“오오, 시우야. 안 무거웠어? 저기 가서 좀 쉬고 있으라니까.”
“그래도 얼른 치우고 다 같이 가야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정리를 하며 바쁘게 세트장을 휘젓고 있었다.
그 김에 겸사겸사 이제는 못 볼 현장 스태프들한테 인사도 하고 말이다.
그때, 조연출 한 명이 조금은 지쳐있는 촬영팀 전체를 향해 크게 외쳤다.
“큰 거 온다. 큰 거!”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 가운데.
빵빵!
그의 뒤로 커다란 클락션 소리와 함께 커다란 트럭이 우리 세트장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무려 세 대씩이나.
“밥차… 아니 파티차 왔다! 다들 밥 먹고 합시다!”
그 모습을 보고 스태프 전원이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저 커다란 트럭 세 대가 모두 밥차라고?
누가 보낸 건지, 통 한번 진짜 크다.
과장이 아니라 저건 진짜 파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