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뉴욕으로 향하는 직항 항공편의 비행 시간은 다섯 시간 반.
그동안 나는 타츠키가 나오는 영화를 대략 세 편 정도 볼 수 있었다.
그의 할리우드 진출작과 일본에서 출연한 영화 두 편.
한 편은 비교적 짧은 독립영화였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나니 그의 태도가 얼마간 이해되었다.
드럼을 최선을 다해서 연습해, 어린 나이에 일정 경지에 다다를 수준이 된 것.
그리고 매사에 여유롭지 못한 타츠키의 태도 말이다.
일전에 남연수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태도였다.
아직 나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신중하게 작품 선택을 하는 모양인지 그가 출연한 작품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텀도 길었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르들이 하나 같이 모두 깊이 있고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오컬트 주제를 다룬 단편 영화로 데뷔를 한 뒤, 그 이후에도 인간 심리를 깊이 다룬 작품들을 선택했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은 남달라 보이긴 했는데, 어두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작품의 특성상 캐릭터 분석이 아주 깊게 요구되는 작품들이긴 했다.
아마 이번 뮤지컬 영화가 타츠키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이토록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만 해야 했던 타츠키에게는 가벼움과 유쾌함을 요하는 뮤지컬 연기가 어색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 아이가 얼마나 이번 오디션을 위해 연습을 많이 했을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이전 작품 쉽지 않은 해석을 요하는 캐릭터들을 얼마나 공들여 만들었는지 한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연기력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이만큼 연구해서 연기를 해서 그런지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자각도 있고, 자신감도 엿보였다.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제일 도드라진 작품은 가장 최근에 출연한 할리우드 작품 였다.
여기서 타츠키는 일본의 정서를 압축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 작품에서 타츠키의 연기가 보여주는 결을 보니 괜히 일본의 국민 아역 배우라고 불리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작품을 통해 확인한 타츠키의 연기는 확실히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번 오디션에서 만나지 않고 영화로 먼저 접했더라면 내가 먼저 관심을 가졌을 것 같을 정도였다.
이러니까 개드먼이 그렇게 자신만만했었구나.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다시 한번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으응, 시우?”
“아, 아이린. 일어났어?”
“웅. 지금 몇 시야?”
아이린은 눈을 부비적거리면서 잠에서 깼다.
어젯밤에도 흥분해서 잠을 쉽게 못 잤다더니, 비행기에서 아주 숙면을 취한 모양이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일러주었다.
“뉴욕에 거의 다 도착할 시간이야. 아직 더 자도 돼.”
“아니, 괜찮아. 그보다 물이 먹고 싶어.”
“알았어.”
나는 아이린의 말을 듣고 승무원을 불렀다.
물 두 잔을 받아서 아이린에게 넘겼다.
그녀가 물을 꼴깍꼴깍 마시는 걸 확인하고 타츠키 작품 목록에 시선을 두었다.
인터넷의 발달 때문에 소식을 잘 접하게 된 탓인지, 확실히 과거보다 수재가 많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물론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배우들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졌다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전생에서는 현장극인 무대극이라는 분야만 있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존재감이 다채롭게 변모한 것 같다.
입에서 입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던 몇백 년 전만 해도, 수재나 천재의 등장은 한동네에 단 한 명 나올까 말까였으니.
그 한두 명 가지고 어떻게 연기의 폭이나 다양성을 검증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 이 작품들을 찬찬히 보니 타츠키가 조금 더 궁금해졌다.
오디션에서 드럼 말고 연기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내가 분석한 타미와는 상당히 다르리라.
나중에 루카스한테 구해달라고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아이린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시우! 점점 땅이 가까워지고 있어.”
아이린의 말에 창밖을 보면 어느새, 화려한 뉴욕에 거의 다 도착해 있었다.
***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브로드웨이로 향했다.
“여기야! 여기가 바로 브로드웨이야, 시우!”
아이린은 브로드웨이 거리에 들어서자 잔뜩 흥분해서 폴짝거렸다.
그러다 넘어진다고 천천히 가라고 소리치는데 옆에서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은 참 체력도 좋아.”
“삼촌 그런 말 하니까 진짜 늙은이 같아.”
“아니거든? 나 아직 팔팔하거든?!”
어제도 늦게 자고 비행기에서도 예능을 본다고 안 잔 삼촌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피곤해서 눈 밑이 거뭇했다.
그러니까 일찍 자라니까 또 혼자서 날밤을 새운 모양이다.
“밤낮이 바뀐 걸 어떡하냐.”
“시우야, 삼촌이 저래서 평소에 운전은 잘해주니?”
“으응, 내가 옆에서 잘 깨워줘.”
“흐응…… 존단 말이지?”
어머니와 내 대화를 들은 삼촌은 펄쩍 뛰었다.
“내가 언제 졸았다고 그래!”
“지방 로케 가면 힘들어 죽으려고 하잖아.”
“……딱 한, 그래! 두 번이다 두 번!”
한번이라고 우기려던 삼촌은 내 눈초리를 보고 두 번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삐질 식은땀을 흘린 삼촌은 재빠르게 아이린을 가리키며 외쳤다.
“아이린 혼자 사라지려고 한다! 얼른 가자!”
“응?”
자신을 가리키는 말에 아이린이 무슨 소리냐고 뒤돌아봤다.
나와 어머니는 일단 알았다며 넘어가기로 했다.
“시우, 우리 공연 시간이 언제지?”
“어디 보자……. 이제 곧이야. 한 시간 정도 남았네.”
“뭘 먹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겠네. 나와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
어머니의 말에 아이린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 우왁.”
나를 부르려고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걷는 아이린이 지나가던 행인과 부딪칠 뻔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루카스가 예매해준 극장으로 향했다.
아이린은 빠르게 뛰어다니지는 못해도, 대신 나와 손잡는 것에 아주 만족했는지 별말 없이 얌전히 걸어주었다.
브로드웨이는 영국의 웨스트엔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포스터들이었다.
잘 보니, 주변 건물의 담벼락이나 전봇대 등.
붙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크게 붙어있는 다양한 형형색색의 포스터들이 눈에 확 띄었다.
심오하고 주제 의식이 강했던 작품들이 즐비했던 웨스턴엔드와 달리 비교적 가볍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도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재밌겠다. 서커스래!”
그중에서는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서커스나 가벼운 쇼 형식의 공연도 상당했다.
브로드웨이가 웨스트엔드와 크게 다른 점은 비교적 깊은 주제 의식보다 ‘쇼’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거리의 사람들도 정적인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나왔다기보다는, 흥겨운 유흥을 즐기러 나온 것처럼 모두 활발했다.
피에로 분장을 하고서 풍선 다발을 들고 있는 이들도 있고, 극장을 선전하기 위해 나와 있는 스태프들도 보통 차림이 아니었다.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간을 이용해 버스킹 공연을 벌이는 팀들도 있었다.
거리 자체가 한바탕 쇼를 펼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와, 너무 멋지다.”
“말도 안 돼! 저게 어떻게 되는 거야?”
나와 아이린은 간단한 마술을 선보이는 사람에게 팁을 건네주었다.
웨스트엔드의 격식을 차린 진중함도 좋지만, 이런 유쾌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관객이 무대를 즐겨주고 사랑해준다면, 그것으로 배우는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시우! 저기 RUN이 있어!”
아이린이 가리킨 곳에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정해진 기간 없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RUN의 포스터가 보였다.
포스터 속에는 내가 영국이나 한국에서 한 조이 분장하고는 조금 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국판 조니가 있었다.
“그러네.”
“나도 시우의 조니를 보고 싶었는데…….”
“루카스가 몇 번이고 보여줬다고 하던걸?”
내가 영국에서 공연한 실황 비디오를 루카스가 몇 번이고 틀었다는 이야기는 저번에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하자, 아이린의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직접 못 봤단 말이야. 아빠만 보고. 치사해.”
확실히, 루카스는 내 이야기가 레인보우 픽처스에 퍼지자마자 한국으로 내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었지.
이것만큼은 루카스도 아이린에게 뭐라 할 말이 없으리라.
“하하, 언젠가 내가 또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되면 꼭 아이린을 초대해줄게.”
“진짜? 약속이야!”
“그럼 약속.”
나는 아이린이 내민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어주었다.
아이린은 그 약속 하나로 기분이 싹 풀렸는지 나와 잡은 손을 앞뒤로 크게 흔들어댔다.
“여기인가 본데?”
삼촌이 미리 찾아둔 주소와 지도를 보고 한 극장을 올려다보았다.
“응, 맞는 거 같은데?”
나는 루카스가 미리 일러준 공연의 제목과 극장 옆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아아린이 감탄하는 대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극장이었다.
“이 거리에서 가장 큰 극장인 거 같지?”
“후훗, 루카스가 신경 많이 써줬나 보네. 자, 다들 들어갈까?”
“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한번 놀랐다.
로비도 영국의 웨스트엔드와는 다르게 크고 널찍했던 것이다.
우리가 카운터에 가서 루카스의 이름과 우리의 신분증을 보여주자 바로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시간에 맞춰 극장 안으로 들어가자, 별천지가 펼쳐졌다.
“세상에! 천장이 너무 높아!”
아이린은 극장의 규모만 보고도 신이 나서 외쳤다.
나와 삼촌, 어머니도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의 스케일이었다.
그리고 디자인도 색달랐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가미되어 있지만, 그와 반대로 상당히 현대적인 디자인의 객석, 무대 디자인이었다.
이런 대단한 극장에서, 그것도 가장 상석인 자리에 앉아서 무대를 볼 수 있다니…….
아이린을 제외한 우리 세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 정도로 스케일이 커지리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말이지.
“시우! 여기야!”
감탄도 잠시, 아이린은 루카스를 따라 극장에 많이 와본 듯 재빠르게 VIP 자리를 찾아 앉아서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쳤다.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쾌한 하우스뮤직과 함께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이번에 타미 역에 발탁된 나를 위해 루카스가 골라준 뮤지컬이었다.
***
“브라보-!”
길었던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극장 안은 관객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우와아아!”
옆에서 아이린은 감명받았는지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와, 영어 못 알아들었는데도 재밌었어.”
“나도 다는 못 알아들었는데, 재밌네. 감동적이야.”
“…아, 이거 감동적인 공연이야? 난 웃긴 내용인 줄 알았는데.”
삼촌의 말에 잠시 나와 어머니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어찌 됐든 좋은 공연인 것은 확실했다.
뮤지컬은 확실히 한국에서 봤던 것과 달랐다.
사방으로 무대가 뚫려있어 앞으로 발성이 잘 전달이 될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배우들의 발성도 남달랐다.
물론 극장의 구조 자체가 발성을 돕는 구조인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사방이 뚫린 무대는 오히려 다각도로 무대와 배우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서보고 싶은 무대랄까.
미국의 뮤지컬이라.
역사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역시 명불허전.
브로드웨이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쯤 되니 다른 극장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번 뉴욕 여행, 다시 태어난 나에게 또 다른 영감과 재미를 줄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