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노백찬이 말한 큰 규모의 연극 공모전.
이걸 해서 과연 나에게 무슨 득이 생기겠는가.
애초에 득이라는 게 있을지, 아니면 득이 없는 실만 클지도 모를 일이지…….
막상 내가 공모전에 참가했다고 해도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이유 없는 시기 질타를 받을 수도 있지.
물론, 만약 공모전에 참여한다면, 최선을 다해 좋은 극본을 써낼 것이다.
저번 대상 작품을 보아하니, 저거보다 잘 써낼 자신은 백 퍼센트 있었다.
나는 말없이 노백찬이 내게 내준 찻잔을 비웠다.
극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미 차는 다 식어있었다.
전생에서부터 극본은 몇백 편이고 써봤다.
탑에 갇혀있던 십 년, 한 작품을 100번 이상 퇴고해본 적도 있었다.
그때 나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길고 긴 시간이었으니까.
극본가에게 필요한 인내심과 경험 모두 갖추고 있으니 무엇보다 자신이 있긴 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있어서 문제이기도 했다.
현재 공모전은 노백찬의 말대로라면 이미 썩을 대로 썩어 고여있는 상태다.
듣자하니 연극판 사람들도 전부 알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겠지.
그곳에 내가 작품을 제출하고, 입상한다 한들.
어떤 영향을 가져올 수 있을까?
나 또한 유명인이기에 특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렇다면 이미 불공정한 피해를 받은 연극인들이 누가 고운 시선으로 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에게 득이 될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할아버지,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직…….”
득이 없어 보여 도전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노백찬이 어떤 마음으로 내게 이 말을 꺼낸 것은 아니까.
다만, 지금 나에게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니 이걸 핑계로 대고 일단 빠져나올 속셈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말을 꺼내자마자 노백찬의 주름진 얼굴에 수심이 어린다.
누가봐도 아쉬움이 역력한 얼굴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며 말을 꺼낸 노백찬은 누구보다 한국 공연계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노백찬이 지금은 은퇴한 거장 영화감독이지만, 수십 년 전 그의 시작은 연극 연출가였다.
이대로 가장 큰 공모전이 퇴색되어 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음…….”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흔들렸다.
득과 실을 따지는 것도 맞지만, 결국 정과 의리를 떼어버릴 수 없는 게 인간의 습성이지 않은가.
아마 노백찬도 이런 모든 걸 고려해보았으니 나에게 개인적인 욕심이라는 말을 붙여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것이겠지.
사실, 나 역시 공모전의 실태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개했으니 말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가 과연 얼마만큼의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이기에 확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노백찬이 기대하는 것만큼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떡하겠느냔 말이다.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결국 모질게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집어삼키고서 입을 열었다.
“일단은 제가 올해 미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요.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렇지…….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현실적인 면을 먼저 짚어내자, 노백찬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 당장 어떻게 할지 정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볼게요.”
“긍정적으로 말이냐?”
냉큼 긍정적이냐고 말을 덧붙이는 노백찬을 보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불렀다.
“할아버지.”
“알았다, 알았어, 원. ……그래도 부담은 갖지 말거라. 어린 애한테 내가 너무 부담을 지운 건가 싶구나.”
내 말에 조금 물러나 준 노백찬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해주었다.
너무 무거워진 분위기도 풀 겸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드세요?”
“이놈이.”
미간을 좁히며 안광을 번뜩이는 노백찬.
아, 이제야 언제나와 같은 노백찬으로 돌아왔다.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했던 노백찬은 은퇴하고도 저 형형한 눈빛이 가끔 살아날 때가 있었다.
노백찬은 별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더니 다 식은 찻잔을 들어 올려 비워냈다.
“새로 우려드릴게요.”
“됐다. 나도 손 있다.”
또 저러신다.
이럴 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노백찬은 입을 더 다물고 만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을 붙였다.
“그새 삐지셨어요?”
“네놈이 붓는 물은 너무 뜨겁기만 해서 별로라서 그렇다.”
투덜거리면서 적당히 데워진 찻물을 다관에 붓는 노백찬.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내 몫의 다관에도 찻물을 부어주는 걸 보고 방긋 웃었다.
노백찬네 찻잎은 항상 맛이 좋다.
가만히 차향을 음미하던 노백찬이 툭 던지듯 말했다.
“나를 이렇게 안달 나게 하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그건 아느냐?”
“노년에 이런 즐거움도 있으셔야죠.”
그렇게 말하면서 항상 불러내는 건 노백찬이 아닌가.
물론 나도 그와 이야기하는 게 즐거우니, 요즘은 문희성네보다 이곳에 더 자주 놀러 오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 문희성은 최근에 영화 촬영 준비에 들어간다고 집에 잘 없기도 하다.
“하여간 저저 말솜씨는 좋아서 말이야.”
“그래서 저 좋아하시는 거 아니셨어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말하자, 노백찬이 고개를 팩 돌리면서 엄하게 호령했다.
“됐다! 내일도 오거라!”
“저 내일은 정말 연습실 가서 연습해야 해요. 미국 가서 망신 당할 수는 없잖아요.”
“그럴 생각도 없는 놈이 엄살은… 그럼 너무 늦지 않게 오거라.”
이거 또 열흘 만에 오면 불호령이 떨어질 듯하다.
어차피 미국에 가면 또 오랫동안 못 뵈니, 그 전에 자주 찾아올 생각이긴 했다.
“네. 전화라도 자주 드릴게요.”
자신이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해본 적 없다고 중얼거리는 노백찬을 보면서 차를 홀짝였다.
저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하는 말을 정말 싫어하신 적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잘 데워진 차를 마시던 노백찬이 아련한 어조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네놈을 보면…… 내 젊은 시절이 떠올라.”
“네에? 저 할아버지 젊을 적 사진 봤는데…….”
이하생략.
내가 말끝을 흐리자 조금 진정한 듯한 노백찬의 음성에 다시 노기가 서렸다.
“봤는데, 뭐 이놈아. 봤는데! 뭐!”
아무래도 오늘 영화도 한 편 같이 봐 드리고 집에 가야겠다.
***
노백찬을 만나고 온 다음 날.
나는 바다 엔터테인먼트 연습실 마루에서 열심히 쭉쭉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극본이라…….
한번 써보는 게 나을까.
어제 노백찬이 한 이야기를 이리저리 떠올리며 매트에서 다리를 교차했다.
“……우. …우! 시우!”
한창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금발의 여성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불러도 몰라?”
“아, 미안해요. 비비안. 왜 불렀어요?”
비비안은 레인보우 픽처스에서 보내준 새로운 레슨 선생이었다.
그녀가 한국에 온 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됐다.
비비안은 현재 레인보우 픽처스의 전속 안무가였다.
원래 그녀는 무대공연을 위주로 안무를 맡아왔다고 한다.
브로드웨이 안무연출가로 일하던 그녀는 어떤 기회로 운 좋게 레인보우 픽처스에 스카우트되었다고 했다.
그 뒤로 레인보우 픽처스 본사에서 일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베테랑 안무가였다.
나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안다.
실력자들이 그 운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열흘 전.
‘반가워, 시우. 비비안이라고 부르면 돼. 내가 널 완벽한 타미로 만들어줄게.’
날 처음 보자마자 완벽을 운운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절로 자신감이 차올랐더라지.
첫 만남 때 비비안은 내 자신감을 채워준 것뿐만 아니라, 반가운 선물도 함께 들고 찾아왔었다.
바로 에 수록되는 모든 넘버와 안무의 완성본을 가지고 온 것이다.
‘와, 생각보다 훨씬 좋은데요?’
‘그렇지?’
‘…그리고 아주 어려워 보여요.’
‘엄살은. 레인보우 픽처스 직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천재라고 칭송하는 배우가 말이야.’
비비안은 내 감상을 듣고 그렇게 일축해버렸었다.
나야 당연히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노래와 안무와 함께 한국에 도착한 비비안은 다음날부터 바로 나와 개인 연습을 해왔다.
먼저 한국에서 개인 연습을 시작한 것이고, 이후 중간중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연습할 예정이란다.
그리고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단체 연습에 들어간다.
그 전까지는 일단 내 개인지도를 비비안이 맡아 타미를 대략적으로 완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뮤지컬 영화 특성상 대형을 맞춰야 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비비안이 이끄는 크루들이 한국에 잠시 방문해 단역이나 라이키, 헤이글의 대역을 서주기로 했다.
학교 때문에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나를 배려한 레인보우 픽처스의 원조였다.
물론, 이를 위한 모든 비용은 레인보우 픽처스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이 모든 계획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할리우드라는 것.
최고의 영화 산업이라는 명성답게 돈 쓰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뮤지컬이라는 종합 예술적인 장르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 정말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걸 실감했다.
아마 레인보우 픽처스 정도 되니까 이토록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거겠지.
다시 한번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굿. 시우! 거기서 표정 더 밝게! 하나둘 셋, 좋았어!”
지난 며칠 동안, 나는 비비안의 수업을 곧잘 따라 해 나갔다.
이것도 다 비비안을 만나기 전 꾸준히 댄스 레슨을 받아온 결과였다.
노백찬에게 했던 말처럼 미국 쪽 인사들에게 무시당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영국 공연을 갔을 때에도 생각한 거지만,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현지인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냥 내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좋아! 다음 턴! 잘했어, 저번보다 훨씬 깔끔한걸?”
박수를 쳐가며 박자를 맞추던 비비안도 내 안무를 칭찬해주었다.
이렇게 되도록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저런 반응을 보면 일단 몸치를 탈출한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한시우의 몸이 그나마 노아 바텐베르크보다 나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노아의 몸이었으면 과연 이 안무를 소화할 수 있었을까.
분명 배는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이제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게 스스로 느껴질 정도였다.
예전에는 한 곡이 끝나면 숨이 너무 차고,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 이제는 몸에 익었다.
호흡 정리도 되고, 여유가 생겼다.
“좋았어. 잠깐 쉴까?”
“네.”
나는 비비안이 건네는 생수를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건을 들고 있던 비비안이 생긋 웃으면서 나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얼굴도 잘생겨, 연기도 잘해. 노래도 잘하는데, 춤도 잘 추니 그야말로 럭키가이네?”
“하하….”
“레인보우 픽처스 사람들이 왜 한시우에게 껌뻑 죽는지 매일매일 알 것 같아.”
이렇게 모든 걸 다 갖추고 태어난 것은 행운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비비안을 보면서 나는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행운을 쟁취하게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아마 비비안은 모를 것이다.
이 댄스 능력을 갖추기까지 무려 4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