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미국 LA 공항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입국 절차까지 마치고 나서 출국 게이트로 향했다.
“시우야. 삼촌도 이제 대답 좀 잘하는 거 같아.”
얼마나 공항을 다니는 게 자연스러워졌는지, 영어만 들으면 얼굴색이 파래지는 삼촌이 의기양양하게 입국 심사 수속을 밟고 나올 정도였다.
“뭐라고 대답했는데?”
“엄…….”
뭐라고 쉽게 입을 못 여는 삼촌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삼촌이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하알유? 했더니. 그쪽도 하알유? 하더니 그냥 가라던데.”
“…….”
“지, 진짜야!”
“어, 그래. 여유 있던 이유가 있었네.”
오늘 입국 심사대 직원이 조금 정신이 없었나.
평소보다 줄이 길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직원이 대충 지문만 찍고 넘겼나 보다.
저럴 줄 알았지.
난 또 그사이에 삼촌의 영어가 조금이나마 유창해진 줄 알았다.
휴, 하마터면 착각할 뻔했네.
겨우 두 번째로 방문한 미국인데도 영국에 이어 공항을 하도 왔다 갔다 했더니 모든 공항이 익숙했다.
미국도 꼭 몇 번 와본 것 같을 정도였다.
“으음, 이 공기. 그리웠어.”
“거짓말.”
“야, 좀 넘어가 주면 안 되냐? 나 나름 미국 두 번째라고…….”
삼촌이랑 티격거리면서 출국 게이트로 향했다.
레인보우 픽처스에서 우리 둘에게 비즈니스 클래스를 끊어줬기 때문에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장시간 비행했는데도 몸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문을 나서는데,
“시우! 여기야!”
폴짝폴짝 뛰면서 우리를 반기는 아이린이 눈에 들어왔다.
루카스는 아이린이 뛰쳐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우리를 환영했다.
“아이린, 오랜만이야.”
“시우! 보고 싶었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린은 루카스의 손을 뿌리치고 내게 폭 안겼다.
나는 휘청이며 아이린을 받아서 꼭 안아주었다.
“잘 지냈어?”
“아니! 못 지냈어!”
아주 당당하게 대답하는 아이린을 보고 웃었다.
이렇게 혈기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잘 못 지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그렇다기에는 너무 건강해 보이는걸?”
“한국에도 결국 못 갔잖아!”
아이린은 원망스럽게 말하면서 뒤에 선 루카스를 째릿 노려보았다.
루카스도 바쁘고, 한국에 있던 나도 바빴기에 결국 아이린은 한국에 놀러 올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놀러 가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던 루카스는 딸의 시선을 받고 조용히 눈을 피해야 했다.
나는 루카스보다는 비교적 당당했다.
애초에 아이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가 미국에 6월에 오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만났으니 말이다.
루카스를 째려보던 아이린이 내게 시선을 옮겼고, 곧 다시 표정이 온화해졌다.
안정제라도 된 것 같네.
루카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기분 좋게 웃으면서 우리를 보고 말했다.
“둘이 마치 남매 같네.”
“그럼 시우를 우리 집에 데려가도 돼?”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냉큼 말하는 아이린을 보고서 루카스가 입매를 굳혔다.
“미안하다, 시우. 내가 실언을 했어. 짐은 이게 다야?”
“어어, 저랑 같이해요. 루카스.”
“루카스, 삼촌이 같이하재요.”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루카스가 끌고 온 차로 향했다.
아이린을 데려오기 위해 본사에서 보내준 차량 말고 루카스 본인 차량을 끌고 왔다고 했다.
루카스가 운전석에 앉고, 삼촌이 보조석에 앉았다.
아이린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나는 아이린과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시우, 연습 가기 전에 나랑 조금만 놀다가 가면 안 돼?”
“아이린. 그러지 않기로 했잖니.”
루카스가 운전하는 차가 부드럽게 출발하자마자 아이린이 내 팔을 꼬옥 부여잡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루카스가 놀라서 엄하게 말했다.
아이린은 아빠의 말에도 도리질을 치며 나에게 바싹 붙어 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미안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단호하게.
“아, 미안. 아이린. 내가 다음에 올 때는 꼭 함께 놀아줄게. 이번에는 연습 스케줄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히잉…….”
믿었던 나마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아아린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각오를 다지고 미국에 온 나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때로는 이렇게 강하게 나가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런 표정 지어도 이번에는 안 돼.”
“시우, 매정해졌어. 학교에 들어가더니 변한 거야?”
투정을 부리듯 말하는 아이린의 말에 루카스가 난감하다는 듯 우리가 앉은 뒷좌석을 힐끔거렸다.
아이린 입장에서는 루카스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이린, 그게 무슨 상관이니. 너도 내년에는 학교에 들어가잖니.”
루카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이린에게 말했다.
그러자 단단히 삐졌는지 내 팔을 잡고 있던 아이린의 손이 거두어졌다.
아이린은 고개를 팩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당차게 말했다.
“나도 내년에는 변할 거야. 시우에게 매달리지 않을걸?”
“정말? 내년을 두고 봐야겠는걸?”
나도 물론, 아이린과 놀고 싶은 마음은 있다.
아이린이 그 뒤로 연기에 재미는 붙였는지, 혹시 실력이 더 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번에 한국에 돌아오면서 루카스에게도 귀띔을 해놓기도 했으니, 무언가 더 하지는 않았을지 나라고 궁금하지 않겠는가.
저번 미국 여행에서 나를 가장 흥분하게 한 것이 바로 아이린의 재능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올 때 다짐한 게 있었다.
미국에 온 열흘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가겠다고 말이다.
내 단호한 거절에 아이린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불만인지 입을 비죽였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었다.
흘러가는 우리의 대화를 듣던 루카스가 픽 웃으며 말했다.
“역시 시우. 거절할 때는 아주 칼 같구나. 아이린, 시우는 이번에 일을 하러 온 거란다. 친구라면 이해해 줄 줄도 알아야지?”
“흥!”
아직 어린 아이린은 인정할 수 없는지 부루퉁한 모습을 유지했다.
“노는 것보다 연습이 우선이라니…… 어련하시겠어.”
우리 대화를 다 알아들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린의 태도를 보고 대충 유추할 수 있었는지 삼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눈치만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단 말이지.
우선 지금은 아이린은 가만히 내버려 둬야겠다고 생각하고서, 나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이린은 섭섭함에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을 것이다.
혹시 연습이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아이린과 다시 한번 연기 얘기 다시 해봐야겠다.
아, 이 이야기는 지금 꺼낼 생각이 없었다.
지금 아이린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당장 아이를 달랠 수는 있겠지만, 일정에 차질이 생겨버릴 것이다.
입 밖으로 꺼내면 약속이 될 것 같으니.
이번만큼은 일정이 먼저다.
***
“여기는……?”
나는 당연히 대본 리딩을 위해 본사로 가는 줄 알았는데, 도착한 곳은 본사가 아니었다.
루카스가 차를 주차한 곳은 처음 와보는 누군가의 집이었다.
본사에 들르기 전, 루카스의 차가 LA의 고급 주택가 지역인 브렌트우드에 들어가기에 나는 당연히 아이린을 데려다주기 위함인 줄 알았다.
실제로 루카스의 저택 역시 브렌트 우드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아이린을 먼저 데려다 주었다.
아이린은 심통이 나서 끝까지 내게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보란 듯이 대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닫으면서.
“미안, 시우.”
“어쩔 수 없죠. 제가 너무 단호하게 말한 탓도 있어요.”
어른스럽게 대답하는 날 보고 루카스는 고맙다는 듯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거대한 저택이었다.
수영장이 딸린, 어디 영화에나 나올법한 거대한 규모였다.
“루카스, 왜 이런 곳에……?”
“오늘 대본 리딩 장소가 여기야.”
“네? 여기서 대본 리딩을 한다고요?”
“그래. 할리우드 스타일을 보여줄게. 들어가자고.”
“엄……. 네.”
나는 어딘가 신난 것처럼 보이는 루카스의 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저택에서는 어딘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비슷한 분위기를 예전에 느낀 적이 있다.
바텐베르크 성에서 열리는 연회를 별채에서 들을 때 이런 느낌이었지.
안에서 파티라도 열리고 있는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루카스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사옥 같지는 않은데.”
“그러게.”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삼촌은 어마어마한 부촌의 스케일에 기가 죽은 듯했다.
어차피 루카스가 한국어를 못 알아들을 텐데도 소곤소곤 말하는 걸 보니 알 수 있었다.
나는 간절한 삼촌의 눈빛을 보고는 루카스에게 물었다.
“루카스, 그런데 여긴 어디예요?”
그런데 내 질문에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해왔다.
“여기는 레인보우 픽처스 부대표의 집이야.”
“부대표의 집이라고요……?”
뜬금없이 등장한 집주인의 정체에 내가 의문을 표했다.
회의실이 아닌 건 그렇다 쳐도, 갑자기 웬 부대표의 집이란 말인가.
분명 오늘 대본 리딩을 한다고 했는데 왜 여기로 온 거지?
“하하, 그렇게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을 거 없어. 들어가 보면 알게 될 테니까.”
“네에…….”
나는 익숙한 듯이 저택의 대문을 열어젖히는 루카스의 손짓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집 주변을 둘러싼 관목 테라스 안에서는 수영장을 끼고 바비큐 파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귀가 쿵쿵 울릴 정도의 커다란 음악이 흘러나오고, 유쾌한 분위기 속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진짜 파티 중이잖아?
아무리 봐도 미팅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 내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나와 루카스를 발견한 한 백인 남성이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 루카스! 우리의 작은 주인공을 모시고 온 건가?”
말만 들어도 유쾌해 보이는 남성은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위용이 아주 대단한 뱃살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저런 사람은 또 처음 보네.
나는 초면에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나도 모르게 빤히 그 배를 바라보고 말았다.
“이런, 잭. 대낮부터 술인가요?”
“루카스. 파티에 술이 빠질 수야 있나.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논 알코올이야. 내 주치의가 단 일주일이라도 술을 끊어보라고 해서 말이야.”
“하하, 잭이 드디어 의사의 말을 좀 들을 생각이 생겼나 보군요.”
루카스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은 잭, 이라는 남성.
곧 루카스가 우리 둘을 인사시켜 주었다.
“아, 시우. 이쪽은 레인보우 픽처스의 부대표, 잭 카키야. 잭. 이쪽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주인공, 시우예요.”
“드디어!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게 되는군. 반가워요, 시우.”
“저도 만나 뵙게 돼서 반가워요, 잭.”
이름을 들어보니 레인보우 픽처스 보도 자료를 찾아볼 때 본 적이 있던 것도 같았다.
설마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아마 왕년에 제작사를 겸했다는 인사 같은데…….
오늘 대본 리딩이 이 사람도 함께 참여하는 건가?
“자아, 그럼?”
잭은 맥주병을 든 팔을 활짝 펴며 저택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요. 그리고, 할리우드에 온 것도.”
이런 식의 환대라.
귀족식의 환대와는 거리가 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나와 루카스는 웃으며 잭이 가리키는 그 안으로 기꺼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