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요즘 나는 400년의 세월을 건너 신세계에 온 기분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한국에서 처음 눈을 뜬 이후, 두 번째 생이어서 그럴까.
경험하는 것마다 영감이 마구 떠오른다.
사소한 것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치는 게 아쉬워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열흘 동안 미국에 가 있을 때도 많은 스토리가 떠올랐다.
잊을까 봐 메모를 해둔 것도 있고, 머릿속에 잘 저장해서 돌아온 것도 있었다.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노백찬을 찾았다.
이제 노쇠한 몸으로 해외까지 나가서 여행하는 것은 힘들다고 한탄하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이국의 정취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대로 운신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잔혹한 일이었으니.
노쇠한 몸에 갇힌 노백찬이든.
탑에 갇혀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과거의 나이든.
평소보다 조금 더 생생하게 스토리를 이것저것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을까.
‘공모전은 생각해보았느냐?’
바쁜 연습 일정 탓에 솔직히 거의 잊고 있던 공모전 이야기를 노백찬이 다시 꺼내 들었다.
내가 뱉어내는 스토리를 이대로 묻어버리기 너무 아깝다는 이유로.
‘할아버지…… 제가 지금 당장 이걸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둘러대며 내 뜻을 전하려고 했다.
지금은 극본 작업보다는 당장 연기를 하고 싶었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는 극본을 쓰게 될 것 같았다.
탑에서 혼자 극본을 쓰던 세월만 십 년.
그리고 그전에도 오스카 극단에 내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쓴 극본의 힘이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이건 자신의 욕심이라고 말을 꺼낸 노백찬이 마지막 카드로 자신의 나이를 들먹였다.
순간적으로 헉, 숨을 들이켰다.
노백찬의 입에서 나온 늙었다, 라는 말의 시작부터 가슴이 철렁했다.
나도, 받아들이기는 싫었지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저걸 정말 무기로 들이밀 줄은 몰랐다.
독한 노인네인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지독했다.
호랑이 같은 사람이 저런 약한 발언으로 술수를 쓰다니.
평소 노백찬의 성정을 잘 아는 나에게 아주 끝내주게 잘 먹히는 작전이었다.
나는 노백찬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노백찬은 오스카 피트보다 더 지독한 인간이라고.
정말 지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내가 극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 노백찬이 내 곁에 없다면?
은연중에 나는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 같다.
머릿속에 있는 시놉시스를 극본으로 만드는 작업을 할 때, 내 옆에는 당연하게도 노백찬이 있을 것이라고.
막히는 구간이 있을 때 이곳 서재로 불쑥 찾아들어 질문을 하면 퉁명스럽기는 해도 내 물음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노백찬이 있을 것이라고.
입을 꾹 다물고 마음이 심란해지는 가정을 거듭하고 있을 때, 노백찬이 쐐기를 박았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쓴 극본으로 올리는 연극을 보고 싶다.’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음성이 있었다.
전생에 올리버가 내 극본을 보면서 항상 말해주던 말이었다.
‘에이, 주인님. 제가 죽기 전에 도련님 극본으로 만든 연극은 보고 죽을 겁니다.’
‘못 보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해?’
‘죽기 전에는 볼 수 있겠죠.’
새장에 갇힌 새처럼.
바텐베르크 성에, 막내 공자라는 신분에 갇힌 나를 불쌍히 여겨, 목숨을 걸고 자신의 자유를 찾아주려 했던 사람.
그러나 올리버의 말을 항상 웃어넘겼던 나는 어땠던가.
결국 그 사람의 염원은 이뤄주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
올리버가 몰래 빼돌린 극본으로 나는 오스카 극단에서 행복한 3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올리버가 대신 치르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지.
그만 그를 평생 절름발이로 살게 만들었으니.
그의 염원은 이루어 주지도 못한 주제에, 그의 인생과 내 행복한 시절을 맞바꿨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픈 기억이 그의 말 때문에 우수수 떠올랐다.
그러고 나니, 죽기 전에 내 극본으로 만들어진 연극을 보고 싶다는 노백찬의 말이 심장에 강하게 꽂힌다.
전생에 이루어 주지 못한 올리버의 한.
그리고 지금 자신의 친구이자 가족 같은 노백찬의 바람.
그 두 사람의 염원을 풀어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기 전에… 신이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은 아닐까.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차례하고 노백찬을 바라봤다.
새삼 그의 주름진 얼굴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할게요. 공모전.”
“진심이냐? 하하! 그래! 잘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욱 기뻐하는 노백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한번 해보자.
……부디 이 다짐이 400년 전 그에게도 닿기를.
***
방학이 일주일 남은 7월 초.
어느새 한국 날씨는 많이 더워져서 가까운 거리도 걸어 다니기 힘들어졌다.
“이거랑…… 이것도 챙겨야지.”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바다 엔터로도, 노백찬의 저택으로도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다.
바로 내일!
미국으로 떠나기 때문에 집에서 짐을 싸는 중이다.
두 달 동안 이어질 미국 영화 촬영 일정에 맞춰서 옷가지를 챙겼다.
어차피 호텔에 숙소를 잡아주고 촬영에 들어가면 다 준비를 해주기 때문에 크게 챙길 것은 따로 없었다.
“이것도 가져가야지.”
나는 LA의 뜨거운 햇빛을 막아줄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기면서, 마지막으로 캐리어 위에 노트 한 권을 올렸다.
노백찬에게 공모전에 나가겠다고 선언한 후, 매일 가지고 다니는 노트였다.
여기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스토리를 정리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제 슬슬 하나의 극본으로 만들 스토리를 정해야 하는데…….
미국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서 정하면 될 듯하다.
내일부터는 드디어 미국에서의 본 촬영이 시작된다.
먼저 두 달 동안 미국에서 촬영을 한 뒤, 그다음에 한국에서의 로케 촬영이 이어진다고 했다.
두 달이라는 일정을 듣고 어머니는 잠시 걱정하셨다.
일주일, 열흘도 아니고 두 달 동안 자신이 옆에 없을 것을 우려하신 것이다.
영국 공연 때문에 오래 가 있을 때는 옆에 계셨으니 말이다.
나와 삼촌은 요 며칠 동안 열심히 어필했다.
걱정할 건 하나도 없다고.
이제 제법 매니저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 삼촌도 옆에서 열심히 케어할 거라고 두 번 세 번 말해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혼자 가도 괜찮다고 한 것도 있지만.
아버지 가게가 너무 바빠진 것도 있고, 무언가 하시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현실적으로 두 달 동안 미국에 가시기는 어려운 상황이긴 했다.
“동욱이 너. 미국 가서 신난다고 시우 호텔에 넣어두고 놀러 다니고 이럼 안 된다?”
“누나도 참! 내가 놀러 가는 줄 알아? 나도 시우 매니저로 일하러 가는 거라고.”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건 여전한지 어머니는 틈만 나면 삼촌을 붙잡고 걱정을 하셨다.
삼촌은 내가 쉬는 날에도 소속사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여러모로 노력 중이었다.
나도 그걸 알고 고맙게 생각하기에 열심히 괜찮을 거라고 바람을 잡았다.
“삼촌 이제 운전도 진짜 잘하고, 내가 말 안 한 것도 미리미리 챙겨줘! 놀러 다니고 이런 거 없어 엄마.”
“그래……?”
어머니는 미국으로 떠나는 전날에도 진정이 안 되는지 나를 옆에 앉혀두고 내 손을 꼭 잡은 채였다.
나는 안심하라며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어드렸다.
“짐은 다 쌌지? 아빠가 준 고추장은 넣었고?”
팡팡. 가방 앞쪽을 두드리면서 당당하게 덧붙였다.
“그럼. 여기 맨 앞에 잘 보이는 데다가 넣었어.”
“가서 차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어두울 때… 아니다. 밝을 때도 절대 혼자 다니지 말고. 어른들 누구라도 불러서 같이 다니고. 양말은 더 챙겨가자.”
아버지는 내 캐리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것저것 당부를 하셨다.
어린아이에게 할 만한 당연한 당부들이었다.
나는 촬영 현장에서 나를 당연하게 어른으로 대하는 배우들 사이에 있다가 아버지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게 좋아 고개를 끄덕이며 다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희희치킨은 언제 온다고?”
“아, 두 달 뒤야. 아직 멀었어.”
“흠, 그럼 사람 좀 불러다가 한번 싹 청소 좀 할까?”
아버지는 할리우드 영화에 본인의 가게가 나온다니 기대가 되시는지 은근히 물으셨다.
나는 그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럴 필요 없어. 감독님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원하실걸?”
“그런가……?”
“그렇다니까.”
우리는 거실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 미국에 가서 두 달 뒤에 와서 그런가 어머니와 아버지 눈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럼 나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이제 들어가서 잘게.”
나 역시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지만, 인사를 하고 나서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면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아서였다.
그럼 아무래도 내일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겠지.
짐도 다 쌌고, 이제 자볼까 해서 준비를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싶어서 액정을 보니 발신인은 놀랍게도 강수정이었다.
“네, 여보세요?”
-시우니? 다행이다, 아직 안 자네.
“지금 막 잠들려고 했어요.”
-운이 좋았네. 내일 출국이라며? 잘 다녀와.
연례행사처럼 주변인들한테 한 차례씩 오는 안부전화였다.
“고마워요, 누나도 요즘 드라마 들어간 거 촬영 잘하고 계시죠?”
-당연하지. 돌아오면 바로 정주행해줘야 한다?
“물론이죠.”
어제 오늘 많은 사람이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남연수는 물론이고, 문희성, 김상철, 몇 시간 전에는 노백찬, 그리고 강수정까지.
이제 정말 자려고 이불을 들추다가, 멈칫했다.
그런데…… 내가 강수정한테 내일 출국이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공항에 기자가 너무 몰리길래 이제 더 이상 출국 스케줄은 알리지 않기로 얘기했었는데…….
***
“와, 진짜 넓다.”
“이게 바로 미국의 클라스인가 봐 삼촌.”
나와 삼촌은 따사로운 LA의 태양빛 아래에 서서 메인 촬영지를 올려다 보았다.
이번 작품 는 LA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쓰기로 했다.
미국이 원체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가 한국의 학교 규모와는 너무 달랐다.
영국에 있는 작은 남작의 성 정도 되는 부지가 모두 고등학교라니.
촬영장 안에 모인 배우와 스태프들도 이전 때보다도 배로 많은 것 같았다.
때도 마지막 촬영일 때는 전투씬을 위해 정말 많은 인원이 모였었는데 말이지.
레인보우 픽처스의 자본까지 더해져서 그런지 스케일이 어마무시했다.
학교 건물 말고도 오늘 단체 인트로 장면 촬영을 위해 부른 단연 배우들에게 배정된 컨테이너도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이곳이 학교가 아니라 캠핑장처럼 보일 정도였다.
의 스케일도 놀랐었는데, 여긴 낯선 건물에 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더 새롭고 감격스럽다.
전생에는 절대 생각지도 못했던 스케일이다.
일단 무대를 벗어나 이렇게 대대적으로 단체 연기를 한 적도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무대는 그 시대의 감성이 있지만, 지금 이 할리우드 감성과 비교할 바는 절대 못 된다.
이게 할리우드의 위용인가…… 이번 촬영, 시작부터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