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수많은 사람이 집결한 촬영장.
“이러다 안무 다 까먹는 거 아냐?”
“와,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
누군가는 긴장감에 연신 몸을 풀고 있었고,
“첫 촬영이라 아무래도 떨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떨리지는 않네.”
“아직 카메라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아니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와서 그런 거 아닐까?”
“브라이언이 이걸 첫 장면으로 정한 게 신의 한 수네.”
“이 장면이 진짜 영화의 시작이기도 하잖아?”
“후. 빨리 이 대단한 스케일 속에 들어가고 싶다.”
누군가는 기대감 가득한 소리로 빨리 촬영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며 대기를 하는 이들은 학생이나 선생님 역할의 단역 배우들이었다.
유쾌한 극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할리우드의 특성이 이런 건지.
배우, 스텝 할 것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대기 때부터 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배우들의 수다 소리를 들으며 내 대기 장소로 향했다.
“오, 저기 우리의 주인공이 드디어 납시었네.”
“헤이! 타미! 오늘 잘 부탁해.”
“하하, 저도 잘 부탁해요. 모두들.”
나는 학교 정문이 바로 보이는 골목 귀퉁이에 서서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와 아가사에게 배정된 컨테이너 안은 주연 배우의 것이라서 그런지 시설이 어마어마했다.
아무래도 촬영지에서 오랜 시간 있어야 하다 보니, 일반 컨테이너가 아니라 카라반을 준비해준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많은 배우들이 대기실로 카라반을 쓴다고 했다.
촬영지를 옮길 때마다 손쉽게 대기실을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안에서 숙식을 비롯한 거의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니, 파파라치나 언론에 노출될 위험성도 줄어들고 말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저 멀리 보이는 제임스 초등학교라는 명패를 쳐다보았다.
극 중에서 타미가 다니게 되는 제임스 초등학교.
드디어 이 학교에서 벌어질 대장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두 레디!”
그리고 저 멀리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멀리서 브라이언이 메가폰에다 대고 소리쳤다.
“……액션!”
***
제임스 초등학교의 평화로운 등굣길.
크게 솟은 학교의 메인 건물을 전경으로, 몇백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제이스! 왜 이렇게 헐떡여?”
“아…… 오늘 오 분만 더 잔다는 거 방금 일어났어?”
“방금…? 그렇다기에는 너무 멀쩡한데?”
등굣길에는 삼삼오오 친한 친구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제이, 오늘 숙제 너무 어렵지 않았어?”
“……오늘 숙제가 있었어?”
“오, 저런…. 2교시야 얼른 해. 금방 할 수 있어.”
초등학생들의 짧은 다리로 총총 등교하는 모습.
LA의 따스한 햇빛이 거리를 비추고 활기찬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다.
하지만, 장면의 따스한 면이 있다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
그야말로 청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쾌활한 아이들의 모습을 비춘 카메라는 서서히 뒤로 빠져 학교로 향하는 다른 골목길을 비춘다.
그 골목으로 가면 터덜터덜 혼자 걷는 타미(한시우)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우뚝 멈춰선 타미가 노래를 시작한다.
“지저귀는 노랫소리…….”
잔뜩 풀죽은 얼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세상의 절망은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땅만을 보고 걷는다.
어두운 골목을 벗어난 타미의 곁으로 차가 한 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빠앙!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가까스로 차를 피한 타미는 주춤거리면서 학교 정문을 지나 모두가 왁자지껄한 등굣길에 오른다.
“뛰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 ……그 안에 침묵 같은 나.”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듯한 가사가 끝나고, 타미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진다.
그리고 등에 진 배낭의 어깨끈을 꼭 쥐고 땅을 바라보고 있던 타미의 모습도 바뀐다.
고개를 들고, 점차 표정이 환해진다.
춤을 추듯 성큼성큼 주변 아이들에게 다가간 타미가 밝은 얼굴로 말한다.
“안녕?”
아까와는 다르게 높다란 톤의 타미의 노랫소리.
놀랍게도 타미의 인사를 들은 아이가 화음을 맞춰 화답한다.
“오, 타미. 안녕?”
“타미! 좋은 아침.”
지금까지 마치 이 길에 타미가 없던 것처럼 그를 무시하던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타미를 보고 인사한다.
“안녕, 존. 좋은 아침.”
“타미, 아침은 뭘 먹었어?”
“언제나처럼, 토스트지.”
“타미, 오늘 아침에는 기분이 좋아 보이네.”
“내가 언제는 안 그런 적 있어?”
“타미! 오늘 음악 시간에 어떤 악기 가져왔어?”
“조금 이따 직접 확인해봐!”
타미는 정신없이 휘릭 턴을 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주변 아이들은 모두가 타미를 안다는 듯 그에게 적극적으로 아는 체를 한다.
심지어 저기 길 끝에 있는 아이들도.
기분 좋은 듯한 미소로 타미는 자신만만하게 모든 아이들과 즐겁게 대화한다.
타미! 타미!
너무 많은 아이들이 타미를 부르짖어 노랫소리처럼 타미의 이름이 연호된다.
그리고 박자에 맞춰 타미를 중심으로 군무를 추며 등굣길을 가로지르는 아이들.
아이들의 인파는 점차 커지며, 모두가 타미를 부르며 멜로디에 맞춰 턴을 한다.
타미!
마지막으로 타미의 이름을 외치며, 학교 건물에서 큰 종소리가 들린다.
딩동댕동-
그러자, 지금까지 즐겁게 춤을 췄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이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학생들.
타미는 등굣길 한복판에 서서 잠시 학교 건물에 달린 커다란 종을 응시하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즐거운 노래도, 다 같이 발맞춰 춤추던 상황도, 친구들과의 살가운 대화 소리도 모두 타미의 상상 속에서 있었던 환상이다.
타미는 무거운 발걸음을 터덜거리며 옮긴다.
그에 맞춰 신나는 멜로디로 전환되었던 노래도 다시 잔잔하고 암울하게 변한다.
이어지는 타미의 3분가량의 솔로 넘버.
자신이 처한 암울한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 여전히 바라는 희망.
그 희망이 언젠가는, 제발 언젠가는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넘버였다.
“그래도 괜찮아. 모든 게 꿈이라 해도…….”
라는 가사를 마지막으로 노래가 끝나는가 싶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타미를 부른다.
“어이! 거기 꼬맹이!”
“……!”
타미는 혹시 자신을 부르는 말인가 싶어서 화색이 되며 뒤를 돌아본다.
“비켜! 비켜비켜비켜!”
하지만, 그곳에는 지각인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어가는 선생, 헤이글(딘)이 보일 뿐이다.
타미의 기대와는 달리, 방해되니까 비키라며 자신을 휙 지나쳐 가는 헤이글의 모습.
타미는 그런 헤이글의 모습에 고개를 젓는다.
제임스 초등학교에서 소문난 괴짜 선생, 헤이글.
어쩌면 그와 엮이지 않는 것은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내 학교 전경으로 다시 빠져나가는 카메라.
등교를 마치고 모든 아이들이 학교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는 모습, 어느새 학교 앞 정원은 텅 비고 만다.
***
모두의 걱정과 기대를 받았던 대형 군무가 들어간 인트로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나를 포함한 장면 속 모든 배우들이 노래를 하면서 완벽하게 군무를 춰야 하는 씬이지만, 브라이언은 이 장면을 원테이크로 가길 원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부분이 생기면 다시 처음부터 찍어야 했다.
때문에 첫 장면이지만 모두가 기합이 바짝 들어간 상태였는데, 이 인트로를 단 세 번만에 오케이를 받아 낸 것이다.
세 번이라 해도 워낙 대형 장면이라 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오늘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아주 훌륭한 출발이었다.
이 장면을 끝내고 인트로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타미 역을 맡은 나에게 공을 돌렸다.
실제로 두 번의 촬영을 더 한 것도 독무와 연기, 독창이 있는 내가 아니라 다른 단역 배우들의 사소한 디테일 때문에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대단해! 어린 나이인데도 어쩜 그렇게 흔들림이 없지?”
“연습이랑 실전은 다르다던데 시우는 실전이 더 나은 거 같아.”
그야말로 완벽.
나는 모두의 찬사를 들으면서 주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쾌조의 컨디션으로 시작한 미국 촬영.
어느새 첫 촬영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역시 오늘도 우리는 제임스 초등학교에 모여서 촬영 대기 중이었다.
이번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 그 스케일이 남다른 굵직한 촬영이 몇 개씩이나 있었고, 그에 따라 어마어마한 대기 시간을 요했다.
덕분에 우리는 오전 촬영을 끝낸 후, 긴 대기 시간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이번 대기 시간에는 반가운 손님, 밥차가 있었다.
“대기하는 분들 지금 식사합시다!”
밥차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컨테이너의 문이 벌컥 열리며 많은 수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쏟아져나왔다.
다음 촬영 장소인 수영장에 모여있는 인원 말고는 지금 식사를 해두어야 했다.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최대한 겹치지 않게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편리하니까.
“오, 랍스터-”
한 스태프의 말처럼 고소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을 했다.
촬영장에는 랍스터를 메인으로 한 밥차가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처음 이곳의 밥차를 봤을 때 하마터면 촌스럽게 감탄을 할 뻔했다.
랍스터며 소고기며, 역시 할리우드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화려한 식단 때문이었다.
흐음. 오늘 역시 할리우드 스타일의 제대로 된 식단이군.
그 앞에 서있는 스태프들의 수를 헤아려서 나는 가장 줄이 짧은 밥차 앞에 섰다.
LA의 햇볕은 아주 대단해서 선글라스 없이 나오면 힘들 정도였다.
잠깐 나오는 건 상관없는데 요즘은 촬영 때문에 야외에 있는 시간이 길어 꼭 쓰고 있는 편이었다.
안 그러면 오후에 눈이 피로할 지경이었으니.
“오우, 시우. 감자 더 줄까?”
“네. 저 베이컨도 듬뿍 주세요.”
“물론이죠. 자, 많이 먹고 많이 크라고.”
“감사합니다.”
나름 한국에서는 내 또래 중에 큰 편에 속했는데 미국에 오니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고기를 많이 먹는 애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가.
단역 아역 배우들을 쭉 살펴봐도, 내 키는 평균이거나 잘 봐줘야 평균보다 살짝 큰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밥차 스태프들은 나를 보면 꼭 음식을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나야 좋지.
나는 포슬포슬한 감자 샐러드와 두툼한 베이컨, 그리고 랍스터 구이를 접시 가득 받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루가 멀다고 먹다 보니 이미 너무나 익숙해졌다.
나는 음료수도 받아서 벤치에 올려두었다.
“많이 받아왔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아가사가 옆에 와서 앉았다.
나는 살짝 옆으로 앉아 아가사가 넓게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응, 랍스터가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말이야.”
“랍스터 보다 감자가 많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
우리는 속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해산물이 정말 자주 나오는 거 같아. 여름이라 조금 걱정이야.”
“그래? 그랬던가. 그래도 이것처럼 버터구이나 찜으로 나오면 안심되지 않아?”
어른스러운 말투로 조곤조곤 말하는 아가사의 말에 나는 어제 메뉴가 뭐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딱히 해산물만 나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아, 어제는 오징어를 이용한 음식이 메인이긴 했다.
“내일은 스테이크였으면 좋겠어.”
“하하, 그랬으면 좋겠네.”
이제보니 여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스테이크가 먹고 싶은 눈치네.
어른스러운 말투로 말을 하긴 하지만, 아가사도 애는 애인가 보다.
이런 해산물보다는 고기가 당기는 모양이다.
“와, 배부르다.”
“그러게.”
“우리 잠깐 해변으로 산책갈래?”
“좋아.”
우리는 접시를 반납하고, 걸어서 10분인 인근 해변으로 나갔다.
비어있는 썬베드 두 개를 발견해서 그 위에 누웠다.
따끈한 햇살을 받으며 소화를 시키고 있자니,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었다.
“하하, 귀여워라.”
“어린애들이 선탠을 즐기나 보네.”
지나가는 행인이 나란히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속삭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만히 누워 있다가 극본 생각이 나서 메모장을 꺼냈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든 메모장을 휴대하는 편이었다.
메모장을 꺼내 보는데, 시야가 어두웠다.
에잇, 왜 이렇게 안 보여.
메모장에 최대한 얼굴을 붙이고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데, 아가사가 옆에서 의아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뭐하는 거야? 왜 메모장에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 가져가?”
“아. 글씨가 잘 안 보여서.”
잠시 대꾸가 없던 아가사가 짧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시우. 선글라스를 벗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