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LA에서의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나와 헤이글, 라이키의 첫 만남 촬영이 끝났을 때는 전 스태프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장에서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세 사람이 함께하는 넘버였기 때문이다.
이 생생함을 관객들이 직접 봐야 하는 건데,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후시 녹음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다니엘이 통탄해할 지경이었다.
“뭘 봐, 이 촌뜨기야.”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만 돌아갔다 하면 양아치로 변모하는 아가사의 연기는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아가사가 연기하는 라이키는 극 중 5학년으로, 엄청난 수재라는 이유로 제임스 초등학교를 들썩인 아이였다.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타미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4년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수재 중의 수재였다.
하지만, 어느 날 머리를 탈색하고 밝은 하늘색으로 염색하고 나타난 라이키는 다른 아이가 된다.
하늘색 머리에 양 귀에는 피어싱이 주렁주렁.
항상 얌전하게만 보였던 조금 야무진 전교 1등은 파격적으로 반항을 시작했다.
원체 머리가 좋아서 공부에 긴 시간을 쏟지 않았던 라이키는 이제는 아예 게임기를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수업 시간에도, 방과 후에도, 등하교 시간에도 그녀의 손에서 게임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라이키의 성적은 크게 떨어지지 않아, 선생님들도 그녀에게 뭐라 제지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놓지 않는 아이한테 어떤 제재를 가한단 말인가.
결국 교장은 라이키에게 친절을 가장해 명령한다.
어떠한 것도 터치하지 않겠으니, 대신 동아리 하나를 무조건 가입하라고.
“동아리?”
하지만 머리가 좋은 라이키는 대번에 눈치챈다.
어느 동아리에 들어가든 교장의 입김이 닿은 고문 선생이 그를 성심성의껏 개조하리라고.
그래서 라이키는 제임스 초등학교에서도 꼴통 선생으로 악명이 높은 헤이글이 고문으로 있는 밴드 동아리에 들어간다.
놀랍게도 부원이 모두 사라져 교장의 뇌리에서도 잊혀졌던 작고 비인기인 동아리인 Dynamite에 말이다.
물론 헤이글도 라이키를 반기지 않았다.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위해 만들었을 뿐인 Dynamite에 학교 전체의 관심을 받는 라이키가 들어오는 걸 별로 원하지 않았으니까.
라이키는 그것도 간파하고서 헤이글에게 제안한다.
“이대로 가면 이 망할 동아리는 폐부야. 나라도 데리고 있으면 교장이 절대 없앤다고 못 할걸?”
헤이글은 라이키의 속셈을 알고서도 Dynamite를 지키기 위해 결국 그녀의 딜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Dynamite는 헤이글의 안락한 안식처이자, 라이키의 눈속임용 동아리였는데….
거기에 내가 맡은 타미가 등장한 것이다.
반에서 지독하게 따돌림을 당해 학교 내에서 갈 데가 없어진 작은 동양인 아이가.
“……라, 라이키. 나 수학 좀 알려줘.”
그리고 이 작은 아이의 등장으로 이 작은 밴드부는 점차 바뀌기 시작한다.
Dynamite에 들어오고 난 뒤, 자신만의 공간을 찾았다는 생각에 타미는 점차 대담해져 헤이글과 라이키를 변화시킨다.
“헤이글, 나는 그럼… 드럼을 배워봐도 돼요?”
“어..어? 그래 타미. 한번 해보지 뭐.”
타미의 작은 시도로 점차 바뀌는 두 사람.
셋은 점차 의욕적으로 밴드 연습을 시작한다.
항상 삐딱하게 남들이 시키는 걸 하기 싫어서 엇나가기만 했던 라이키가 건반에 흥미를 생긴다.
어릴 적 요조숙녀를 만들겠다는 어머니의 바람으로 배웠던 피아노지만, 라이키는 그때와는 다르게 완전히 자유로운 연주를 할 수 있는 전자건반을 택했다.
헤이글은 두 사람의 성원에 힘입어 어느 순간 포기했던 보컬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다.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선생.
하늘색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전자건반을 연주하는 전교 1등.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으며 드럼을 치는 작은 동양인 외톨이.
이 셋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나가며, 함께 음악을 완성한다.
그리고 마침내,
“좋아, 그럼 파이팅 한번 하고 나갈까?”
“좋아요.”
“오늘만큼은, 뭐.”
세 사람은 학교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밴드 공연을 위해 모여 손을 포갠다.
헤이글의 커다란 손 위에 얹어지는 고사리 같은 두 사람의 손.
“하나, 두울, Dynamite!”
“이예!”
“…예에.”
***
“컷! 오케이!”
밴드 공연은 예전에 찍어놨기에, 이 장면이 미국에서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세 시간 만에 파이팅 장면을 오케이 받은 우리 셋은 브라이언의 마지막 외침에 소리를 질렀다.
“이얏호! 드디어 끝이다!”
“와아-”
“수고하셨습니다!”
딘이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아가사는 어느새 반항적인 눈빛을 싹 지우고서는 손뼉을 작게 쳤다.
나는 한국에서 들인 버릇 그대로 스태프들과 동료 배우들에게 수고하셨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멋져!”
“타미, 수고했어!”
“라이키, 헤이글 멋지다!”
마지막 촬영이기에 퇴근을 하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조연, 단역 동료 배우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해주었다.
“어이- 이게 완전 마지막 촬영은 아닌 거 알지?”
“알죠. 하지만 1차 대장정이 끝났는데 일단 축하하게는 해줘요!”
아직 한국에서의 촬영과 이후 추가될 수 있는 촬영 스케줄이 남았다.
그럼에도 일단 예정되었던 두 달 동안의 촬영이 모두 무사히 끝난 것은 가히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헤이! 다들 이거 불자고!”
갑자기 다니엘이 어디서 꺼내왔는지 모를 거대한 3단 케이크를 끌고 나타났다.
나와 딘, 아가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씨익 웃고 케이크 위에 꽂힌 촛불의 불을 훅- 껐다.
“이예! Dynamite!”
“Dynamite!!”
다니엘의 선창에 이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뒤이어 외쳤다.
우리가 끈 촛불의 모양은 빠알간 다이너마이트였다.
점화되기 직전의 다이너마이트가 축하 케이크 위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
“워후, 전세기라서 그런가. 끝내주는구만.”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다니엘이 휘파람을 불며 전세기 안을 둘러보았다.
나와 삼촌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가는 인원이 확 늘어나게 되자, 레인보우 픽처스 쪽에서 전세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시우, 오렌지 주스 마실래?”
“아, 고마워. 아가사.”
이런, 지난 두 달 내내 아가사에게 너무 챙김을 받았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서 집에 가면 아가사의 빈자리가 느껴질 것 같은 수준이었다.
“드디어 그 치킨을 다시 만날 수 있겠구만.”
“브라이언, 일하러 가는 거 맞죠?”
“그러엄. 당연하지. 너희들도 시우네 집 치킨을 맛보면 내 심정이 이해가 될 거야.”
전세기에는 나와 삼촌, 그리고 감독인 브라이언, 다니엘, 주연 배우인 딘과 아가사를 비롯한 주요 스태프 몇 명이 타고 있었다.
바로 이어질 한국에서의 촬영 때문이었다.
최소한의 인원만 추려서 가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한국 촬영에 동원되는 인원은 100명 남짓이었다.
아무리 줄였다고는 해도 어마어마한 인원이었다.
레인보우 픽처스라고는 해도 100명 모두에게 전세기를 마련해주기는 어렵고.
우리는 먼저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고, 후발대는 다른 비행편을 타고 오기로 했다.
“한국은 처음이야. 하지만, 시우의 고향이라니 너무 기대 돼.”
“수정된 대본 속 타미의 고향도 한국이잖아.”
“한국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수도도 아름답다고 했어. 한 리버? 거기서 수영해도 되나?”
이번에 한국에 가는 스태프들은 한국에 안 가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한국에서의 촬영을 기대하는 중이었다.
“시우는 한국에서 슈퍼스타 아니야?”
“와우, 가면 바로 인파에 둘러싸이는 건가?”
스태프들의 들뜬 목소리에 나는 웃으면서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진정시켰다.
그러다가 갑자기 앞 좌석에 앉은 브라이언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맞다. 시우, 그 배우와 함께 촬영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이것도 다 시우 네 덕이네.”
“그렇죠? 그분도 좋아하셨어요.”
“이거 한국에서의 촬영도 기대되는군.”
브라이언은 다행이라며 엄지를 한번 치켜들고 돌아앉았다.
“시우, 이렇게 한국이랑 미국 오가는 게 너무 힘들지는 않아?”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자 옆자리에 앉은 아가사가 조곤조곤 물어왔다.
일단 예정되어 있던 미국에서의 촬영이 끝났을 뿐.
추가 촬영 일정이 잡히면 나는 또 언제든 미국으로 가서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다만, 촬영과 촬영 사이의 텀이 너무 길기 때문에 미국에 체류하면서 촬영을 진행하는 건 무리였다.
학교도 가야 하고.
“으응, 괜찮아. 이번 촬영은 일을 한다는 인식이 워낙 약해서.”
“인식이 약해……?”
내 말에 언뜻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아가사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응, 이번 촬영은 그냥 재밌거든. 힘들다기보다. 그래서 일한다고 하기 민망하달까.”
“정말 시우다운 생각이네.”
“현장 분위기도 좋고. 그리고 아가사. 활기차게 사는 게 오히려 더 힘이 난다고. 쉬면 오히려 난 축 처지던걸?”
아가사는 내 말에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 눈 좀 붙이자.”
“그래. 한국은 아직 멀었으니.”
나는 아가사가 건네는 담요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좋은 점이 한 가지 더 있지.
무뎌졌던 소중함이 조금 더 각별해진다는 것이다.
수 시간 후, 드디어 창밖으로 그리웠던 한국 땅이 보였다.
***
한창 더울 때 미국으로 향했는데, 어느새 가을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9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촬영 일정상, 이미 청염 초등학교의 여름방학은 끝난 채였다.
금요일 늦은 밤에 돌아왔지만, 다음날에 나는 등교를 해야 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2학기 첫 등교를 했다.
다행인 점은 그나마 오늘이 토요일이라 일찍 끝난다는 점이랄까?
1학년 때부터 촬영이다 뭐다, 너무 빠졌기에 최소 등교 일수를 맞춰야 해서 갈 수 있을 땐 꼭 가야 했다.
“어! 시우다.”
“시우야!”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랜만에 보는 반 아이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상하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애들은 항상 나만 보면 반가워한다.
나는 적당히 대꾸를 해주고 자리에 앉았다.
촬영할 때는 이보다 더 빨리 일어나기도 하는데, 피곤한 얼굴로 앉아 있자니 순식간에 수업이 다 끝났다.
“안녕히 계세요-”
종례가 끝나고 아이들은 잽싸게 가방을 챙겨 떠났다.
나도 가방을 챙기고 있으려니 한솔이 내게 다가왔다.
“여어- 미국은 좋았냐?”
“아, 맞다. 이거 선물.”
한솔은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걸 안 좋아해서 쉬는 시간에는 내 곁에 얼씬도 안 했다.
그러나 이제 하교 시간이 되어 다른 애들이 썰물처럼 교실을 나간 뒤에 다가온 것이다.
나도 그걸 알기에 지금까지 기다렸다.
“오옷! 뭐야, 이거 엄청 희귀한 건데, 어떻게 구했어?”
“네가 팬이라기에 돌아다녀 봤어.”
“와, 너무 고맙다! 안 그래도 우리 아빠가 스피커랑 턴테이블 며칠 전에 새로 샀는데 그걸로 들어야겠어.”
미국에서 사 들고 온 기념선물, 한솔이 좋아하는 시에트론의 사인이 담긴 LP판이었다.
한솔은 예상대로 LP판을 꼭 끌어안고 기뻐했다.
역시 사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뒷문이 술렁거렸다.
나와 한솔은 뭔가 싶어서 뒤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일찍이 교실을 나갔던 애들이 집에는 안 가고 뒷문과 복도에 모여서 무언가를 보고 속닥이고 있었다.
“와, 누구야……?”
“인형 같다…….”
“누가 말 좀 걸어봐.”
나와 한솔은 뭐지? 싶어서 애들이 내다 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아가사?”
인형 같은 외모로 얌전히 서 있는 아가사가 있었다.
외국인인데다가, 또래보다 큰 키에 조막만 한 얼굴과 오목조목 차 있는 이목구비.
아이들에게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아가사는 무표정으로 복도를 두리번거리다가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우-”
그리고 이쪽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