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빠르게 인터뷰를 정리한 노백찬은 연극 시간이 다 됐다는 핑계를 대며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북적이는 로비를 벗어나 복도 안쪽으로 빠지는데, 노백찬의 눈이 커졌다.
“아, 형님. 오셨군요.”
한 남자가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노백찬은 그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 주름이 잔뜩 질 정도로 활짝 웃으며 반가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하, 이게 누군가!”
“형님 오랜만입니다. 이거이거, 안 본 사이 더 멋지게 늙으셨네요.”
반가워하며 다가간 노백찬의 손을 양손으로 덥썩 붙잡는 사내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아니, 연락도 없이. 한국에는 언제 들어온 거야.”
“얼마 안 됐습니다.”
“최성주 자네도 못 본 새 주름이 생겼네?”
노백찬은 놀리듯이 말하자, 최성주라 불린 사내는 자신의 볼을 쓸며 겸연쩍게 말했다.
“하하, 저도 이제 60이 다 되어갑니다.”
“젊을 때 노발대발하던 걸 보던 게 엊그제 같은 게 말이야.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참…… 감회가 새롭구만.”
아련한 눈빛으로 최성주의 손등을 툭툭 두드리는 노백찬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한국엔 왜 온 거지?”
“세상이 이렇게 공예창으로 떠들썩한데 안 올 수 있겠습니까?”
“허허, 자네. 방금 들은 겐가?”
“네. 다른 분도 아니고 형님이 인터뷰를 하는 진풍경이라니……. 제가 놓칠 리가 있겠습니까.”
최성주의 말에 노백찬이 허허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거 쑥스럽구만.”
“얘기 잘만 하시던걸요. 형님 기세가 여전하시더군요. 무엇보다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최성주의 말대로 노백찬의 표정은 정정하기만 했다.
그의 말과는 다르게 쑥스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래. 외국 생활은 할 만하던가? 한국이 좁아 해외로 간다더니, 이제 적응은 다 된 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고향이 그립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공예창 공모전이 미래에 대성할 줄 알았으면 해외로 안 나갔을 겁니다.”
능글맞은 성격대로 너스레를 떠는 최성주를 보고 노백찬은 말없이 웃음 지었다.
최성주의 존재는 그의 개인적인 욕심에 불이 붙은 이유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 연극은 불모지 중의 불모지 같은 영역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드라마며 영화가 흥행하면서 연극이 발붙일 곳이 점점 없어진다지만, 한국은 유독 연극계가 척박하기만 했다.
자신 역시 연극판에서 시작했기에, 노백찬은 항상 그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중에서 한국 연극계에 염증을 느낀 후배 중 한 명이 바로 최성주였다.
최성주는 20년 전 한국 연극계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돌연 미국으로 떠난 연출가였다.
그의 넘치는 재능에 반해, 한국에서는 무엇 하나 속 시원히 일을 벌일 수가 없었다.
이 현실에 좌절을 느낀 최성주는 가진 것 하나 없이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최성주가 노백찬을 찾은 적이 있었다.
한창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노백찬은 오랜만에 보는 최성주를 반갑게 맞았다.
‘형님, 한국은 더 이상 가망이 없습니다. 저는 브로드웨이에 부딪쳐 볼까 합니다.’
‘자네…….’
차마 최성주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노백찬 역시 한국에서 연극만을 계속하는 걸로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 못해 영화 쪽으로 눈을 돌린 이였기에.
그저 안타까웠다.
고국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꿈을 펼쳐야 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조금 더 수월하게 꿈을 꾸고,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최성주 같이 재능이 넘치는 이들이 하나둘 한국을 떠나거나 꿈을 접는 것을 보고 노백찬이 내도록 고심한 생각이었다.
이런 이들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한시우에게 개인적인 욕심이라며 등을 떠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지만, 노백찬은 그 어린아이가 이토록 훌륭하게 공예창을 이끌어준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요즘은 뭘 하고 지내는가? 한국에는 쉬러 돌아온 게야? 출국은 언젠가.”
최성주가 브로드웨이에 잘 자리 잡았다는 소식은 뉴스나 지인들에게 건너건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연출가로 명성을 쌓고 있는 그였기에 공예창을 볼 겸 쉬러 온 건가 싶었다.
그런데, 노백찬의 말을 듣고 최성주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 다름이 아니라…… 제가 지금 세계연극제의 연출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세연제…! 이번 개최국이 프랑스던가?”
“네, 맞습니다.”
최성주는 노백찬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연극제는 전 세계 연극 중에 내로라하는 연극들을 초청해 공연하는 축제였다.
경쟁을 위한 행사는 아니지만, 세연제에 오르는 공연은 전 세계 각지에서 선발한 연출위원들에게 엄중한 평가를 받아 통과된 작품만 오를 수 있다.
“자네가 벌써 위원직을 맡을 때가 되었다니…….”
“허허, 형님. 저도 이제 연출가로서는 슬슬 은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요. 작품 활동에서 멀어진 지 몇 년 됐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자리 잡은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만.”
“그때 형님이 격려해주신 덕분입니다.”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최성주를 잡을 수 없으니, 노백찬은 대신 가서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에서 눈치 볼 것을 평생 다 봤다고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는 그러지 말라고.
“늙은 사람이 몇 마디 말한 게 뭐 그리 도움이 됐으리라고.”
“안 그런 거 잘 아시잖습니까.”
최성주는 길게 말하지 않고 노백찬의 손을 한 번 더 힘주어 잡았다.
가만히 그를 보던 노백찬이 최성주에게 물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세연제의 연출위원이 됐다는 말을 들으니,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오늘 이 공연을 보러 온 이유가?”
“네, 맞습니다. 초연작 초청 부분에 한시우 군의 가 후보군으로 올라서 검증차 보러 온 겁니다.”
“초연작 부문이라…….”
그저 한국 연극계의 부흥을 노리고 한시우에게 제안한 일이었거늘.
세계연극제의 연출위원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노백찬은 답지 않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형님은 잘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뭐? 뭐를 말인가.”
최성주의 말에 노백찬은 또 뭐냐며 놀라서 물었다.
남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노백찬의 모습을 귀중한 것이었다.
최성주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걸치고 말을 이었다.
“한시우 군 말입니다. 에 한시우 군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미국에서도 한시우 군에 대한 소문이 아주 무성합니다. 예전에 공연했던 RUN도 다시 각광을 받고 있고요.”
“허허…… 그랬던가.”
“예에. 이러다가 이제 오는 6월에 영화가 개봉되면 인기가 더 대단해질 것 같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그 애가 그거 찍는다고 고생을 좀 했어야 말이지.”
자신을 잘 찾지도 못하면서 연습한 결과물이었다.
한국과 미국이 좀 먼가?
학업 활동도 병행하며 그 먼 거리를 오가면서 촬영했는데, 그 정도 영향력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하, 형님께서 이렇게 챙기는 제자가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이거, 형님이 이토록 챙기는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얼른 오는 건데 말이죠. 공예창 이야기가 들썩이기에 뭔가 했더니, 또 이 친구의 이름이 들리지 뭡니까?”
“신기해서 찾아온 겐가?”
아까와는 다르게 노백찬의 목소리에 떨떠름함이 가미됐다.
흥미 때문에 찾아온 거냐는 눈초리에 최성주가 대번에 손을 내저었다.
“레인보우 픽처스에서 보장하는 배우가 직접 쓰고 출연한 극. 단순히 신기해서 초청 후보군에 올라간 게 아닙니다. 세계연극제 협회 쪽에서도 꽤나 예의주시하고 있는 후보 중 하나라고요.”
“거참, 일이 점점 커지는구만.”
노백찬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흡족한 미소를 만면 가득히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최성주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걱정스러운 표정이 아니시네요.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님이 인터뷰에서 직접 이름을 언급할 정도이니 걸출한 인재란 소리겠죠.”
“기대해도 좋다네. 그럼, 끝나고 잠깐 보지.”
최성주의 볼일을 다 들은 노백찬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제 몸을 돌려 사라지려는 노백찬에게 최성주가 인사말을 건넸다.
“네, 알겠습니다. 몸조심하시고요.”
“그 말 이제 되돌려줄 나이가 된 것 같구만.”
“허허, 아까부터 젊은 사람 취급하시더니 이러깁니까?”
최성주는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리며 사라지는 노백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알던 노백찬은 자신감이 있어도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기세등등한 모습은 처음 본다.
“좋아. 막판에 기대가 더 생기는데?”
“미스터 최. 이제 들어가나?”
“네. 이제 입장해보죠.”
최성주는 로비에서 그의 이야기를 끝나길 기다리던 두 명의 외국인 일행과 함께 극장으로 들어갔다.
***
공예창 연극제의 마지막 공연이 성공리에 끝났다.
그 바로 다음 날, 나는 노백찬의 집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처럼 서재에 노백찬과 마주 앉아 있는데, 오늘은 다른 손님이 한 명 더 있었다.
노백찬이 소개해주기로, 그 역시 연극 연출을 하는 최성주라고 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는 아니고,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잘 나가던 연출가란다.
“며칠 좀 쉬고 오지 뭐가 급하다고 이리 바로 오누.”
노백찬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굴 가득히 기특하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마주 앉은 최성주는 그런 노백찬의 얼굴을 신기하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 침착하고 호랑이 같았던 성품의 노백찬이 저런 얼굴을 다 짓다니, 라는 표정이었다.
“할아버지가 엄청 의미심장하게 말을 하셨잖아요.”
“흐음, 내가 그랬나?”
“그러셨어요.”
나는 투덜거리면서 차를 한 모금 후루룩 마셨다.
찻잔을 탁 내려놓고는 최성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세계연극제요?”
“그래. 나는 거기 올라갈 연극을 선별하는 역할을 맡은 연출위원이란다.”
“헤에…….”
최성주는 아홉 살인 내가 노백찬과 똑같은 차를 후룩후룩 맛있게 먹으니 신기한지 나를 요리조리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차 마시는 아이 첨 보시나…….
“크흠, 아, 세계연극제는 유럽연극연합에서 진행하는 연극제로 매년 유럽 내의 다른 국가를 돌아다니며 개최하는 축제란다. 경쟁을 하는 건 아니고, 세계 각지에 이렇게 좋은 연극이 있다는 걸 발표하거나 알리는 자리에 가깝지.”
“거기에 저 같은 초연작도 올라갈 수 있나요?”
딱 들어보니 명성이 굉장한 축제인 것 같은데 말이다.
노백찬이 우려할 정도로 연극 쪽으로는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의 공연을 바로 초청하는 게 가능한 건가?
내가 현실적인 문제를 짚자, 최성주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따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단다. 유서 깊은 극단이 상영하는 고전 연극을 상영하는 장과 시우 네가 만든 공연처럼 초연극인데 작품성이 좋은 공연을 올리는 프로그램이 나뉘어 있는 셈이지.”
유럽에서 주최하는 유서 깊은 연극제라…….
내가 고민하는 눈치자 최성주가 씨익 웃으며 정식으로 제안해왔다.
“올해는 프랑스에서 열린단다. 어떠냐. 세계연극제에 한번 참여해보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