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7
17화
6월이 되니 한국이란 나라는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비상철또 극단은 1주일간 단체 휴가라는 명목으로 아예 극장을 닫았다.
연습실에 가지도 못하니, 나도 나름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집에서 내 이전 조국인 영국에서 나온 마법사 영화 시리즈나 쭉 다시 보려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하게 됐다.
쭙- 쭈웁-
아버지가 들려준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중이다.
“시우야, 덥지 않니?”
“우웅, 괜차나.”
치킨집 안에서 열심히 닭을 튀기던 아버지가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며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 아이스크림을 다시 입에 물었다.
“흐흥.”
아이스크림 이거 물건이다.
나는 입안 가득 밀려 들어오는 초코향에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시원하고 달달하고··· 자꾸 생각나는 게 아주 요물이다.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초콜릿을 우유랑 섞어서 만들었다는데 맛이 기가 막힌다.
역시 다시 태어나길 잘했군.
이토록 맛있는 얼음이 있다니.
심지어 이 얼음은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나는 힘차게 밑부분을 꽉꽉 주물러 아이스크림을 흡입했다.
아이스크림도 있고.
참 좋은 세상이다.
띠리리-
“네, 기쁨을 드리는 빛나는 치킨! 희희치킨입니다. 아, 네. 반반이요? 저희가 지금 주문이 많이 밀려서 50분 정도 걸립니다. 네, 네 경기 시작 전에는 무조건 가져다 드리도록 할게요!”
어머니는 정신없이 전화를 받으시는 중이었다.
뭐라더라, 오늘이 월드컵이란다.
세계 각국의 축구 선수들이 공놀이를 하는 행사인데.
이상하게 이 경기를 보면서 치킨을 먹는 게 관례란다.
그래서 오늘 아버지네 치킨 가게는 낮부터 손님들에게서 전화가 빗발쳤다.
경기 시간에 맞춰서 가져다줄 수 있냐느니.
거기 가게에 큰 스크린이 있냐느니.
온갖 문의가 밀려들었다.
덕분에 어머니와 삼촌까지 치킨집에 나와서 돕는 중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나 역시 가게로 함께 나왔다.
혼자 TV를 봐도 좋은데······.
아무래도 어머니가 내 속내를 간파하신 것 같다.
입이 비죽 나온 나를 가게 앞 파라솔 그늘에 앉혀두신 걸 보면.
대신 아버지가 나를 달래느라 아이스크림을 쥐어주셨다.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아서 다리를 동당거리며 얌전히 세 사람이 일하는 걸 구경 중이었다.
“어? 희희 치킨? 우리 오늘 여기서 경기 볼래?”
“그래, 들어가자. 저기 스크린도 있네.”
“축구는 치킨 먹으면서 봐야지.”
“어서 오세요. 두 분이세요?”
오, 손님이다.
삼촌이 바로 튀어나와서 손님을 맞았다.
입구로 들어서려는 손님을 빤히 바라보니, 그들 역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서서히 입가에 가느다란 호를 그리며 말이다.
쭙, 쭈웁-
“와, 사장님. 댁네 아드님이에요?”
“네, 귀엽죠? 여기 사장님 아들이에요. 제 조카기도 하고. 흐흐.”
“엄청 귀여운데요? 아가야, 몇 살?”
“다섯 쨜.”
허억.
내가 나이만 말했을 뿐인데, 막 가게로 들어가려던 손님 두 명이 심장께를 붙잡고 비틀거린다.
“야, 오늘은 무조건 여기다.”
이 정도 반응은 이제 일상이다.
별생각 없이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으려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의 말이 들려왔다.
“헉. 저기 봐. 저기 아이스크림 쥐고 있는 애. 너무 귀엽지 않아?”
그들은 모두 월드컵인지 뭔지를 응원한다고 붉은색 옷을 맞춰 입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그들이 쓰고 있는 악마 뿔 모양 머리띠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의식인 건가?
“와······. 진짜 인형 같이 생겼네. 아가야. 여기서 뭐해?”
“응? 여기 치킨집이네. 들어갈까?”
오호라.
이것 봐라?
나는 그들의 반응을 듣고서 생각을 달리했다.
“띠킨 마시써! 기쁘믈 드리는 빛나는 띠킨! 희희띠킨입니다아-”
내 우렁찬 고함에 한 명 두 명 고개를 돌려 우리 가게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는 귀엽다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거, 먹힌다.
나는 방긋방긋 웃으며 손님들에게 마시써요- 하고 말했다.
행인들은 아이스크림을 꼭 쥐고 방긋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다들 사르르 얼굴이 풀렸다.
“여기 어때?”
“좋은데? 아가야, 여기 맛있어?”
“마시써!”
나는 냉큼 대답했다.
그러자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웃으며 줄줄이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아버지네 가게는 금방 가득 찼다.
“여기 바깥에 앉아도 되나요?”
“네네! 지금 펴 드릴게요.”
와, 월드컵인지 뭔지 정말 굉장하다.
가게 안이 가득 차서 이제 끝이구나 했는데 사람들이 더 찾아왔다.
그사이에 주문 전화도 계속 걸려오고 말이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걸 보고 끊임없이 손님이 찾아와 결국 내 주변에도 테이블과 의자를 깔았다.
삼촌이 열심히 파라솔을 펼치는 동안 나는 열심히 영업을 했다.
“진짜 마시써요.”
“그래? 하하, 사장님. 아드님이 엄청 귀엽고 똘똘하네요.”
“네? 아, 감사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킨집은 안과 바깥 모두 시끌시끌해졌다.
나는 열심히 장사하는 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게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여기 500cc 하나 더 주세요!”
“네!”
“저희는 반반 치킨 추가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엄청 바쁜데도 기쁘다는 듯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음, 다행이군.
역시 방긋방긋 웃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 광경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효도 한번 쉽게 했다.
그나저나, 바글바글 모여있는 붉은 옷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붉은 악마라는 표현이 절로 떠올랐다.
아무래도 확실했다.
여기에는 나만 모르는 무언가 의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 어어?”
“와아아아!”
“골! 이겼드아아악!”
윽! 뭐냐!
나는 갑자기 치킨집과 주변 가게에서 갑자기 들리는 함성에 놀라 두 귀를 막았다.
이렇게 일제히 모든 이가 소리를 지르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대한민국 2 : 토고 1] 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캄캄한 밤하늘 밑으로 곳곳에 화려한 네온사인이 밝게 비추고.
그 사이로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는 밤이었다.
***
팔락.
나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김상철이 주고 간 대본을 넘겨보았다.
이번에 강용휘가 올릴지도 모른다는 극이라는데 이것도 참 재미있었다.
여기서 제일 하고 싶은 역할은······.
음, 이 녀석이군.
주인공도 끌리지만, 이 대본에서 가장 재밌어 보이는 건 이 조연 캐릭터였다.
그래봤자 이 몸은 아직 다섯 살이라 안 되겠지만.
머릿속으로 이 배역을 연기하면 어떨까, 저 배역은?
하고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고개를 들었다.
“왜 안 오지.”
회의실로 나를 불러낸 김상철은 딱 한 마디만 던지고 나가서는 소식이 없다.
‘널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단다.’
그렇게 말하고서 무슨 악당처럼 웃고 나갔는데,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얼굴이 두꺼비라 그런가.
김상철은 무슨 말을 하든 좀 악당스러운 면이 있었다.
막상 대화를 해보면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긴 하지만.
호록.
나는 열리지 않는 회의실의 문을 힐긋거리며 김상철이 놓아주고 간 카모마일 티를 홀짝였다.
과거, 노아였을 시절에는 누군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해도 여의치 않았다.
오스카 극단 내의 사람들은 ‘황금 가면’이 노아 바텐베르크라는 걸 알았고, 비밀을 지켜주기로 굳게 맹세한 이들이라 상관없었지만, 그 외에 사람들에게 나서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던 탓이었다.
누군가가 ‘황금 가면’을 애타게 찾고 있더라.
런던 저잣거리에 이런 소문이 퍼지면 누구보다 내가 가장 궁금했다.
명망 높은 귀족의 평론가?
아니면 대본을 보여주고 싶은 극작가?
과연 그들이 ‘황금 가면’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결국 몇 날 며칠 올리버를 괴롭혀 소문의 누군가를 알아내도, 거기까지였다.
내가 바로 ‘황금 가면’이다! 하고 나설 수 없으니······.
그때 풀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꼭 물을 것이다.
나를 왜 만나고 싶었는지, 내 공연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떠한 점이 궁금한 것인지.
그런데 굳게 닫힌 회의실 문은 열릴 낌새가 보이질 않았다.
대본이나 마저 읽고 있어야겠다.
문에 가 있는 시선을 거두고 막 다음 장을 펼치려 했을 때였다.
달칵.
“우웅?”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멈칫 몸을 굳히고 말았다.
환한 빛과 함께 회의실 안으로 들어선 이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이였기에.
다름 아닌 그자였다.
리처드 버비지, 그의 환생과도 같은 남자.
순간, 그의 찬란한 외모가 지금 들어오는 이의 위에 겹친 듯했다.
***
회의실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성큼성큼 들어와 내 맞은편에 앉은 남자, 그는 다름 아닌 배우 문희성이었다.
실물로 본 그는 비디오로 본 것보다 훨씬 커다랬다.
180cm가 넘는 키에 근육으로 다져진 큰 풍채.
그 앞에 앉아있는 자그마한 나.
그야말로 언밸런스한 조합이었다.
나는 나보다 세 배는 커 보이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눈을 빛냈다.
문희성? 문희성이 날 보고 싶어 한단 거였어?
나는 머릿속으로 그에게 뭘 먼저 물을까 궁리했다.
먼저 만나자고한 것은 그였지만, 막상 만나니 내가 묻고 싶은 게 산더미다.
얼마 전 끝까지 다 본 드라마 ? 아니면 ?
아니지, 가 먼저다.
그 드라마를 보고 한국 문화를 많이 배울 수 있었지.
영화 에서나 ······.
아! 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도 물어야 한다.
아냐, 아니지.
역시 여기서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를 어떻게 해석한 거냐고 물어야 할까?
나는 베싯 새어 나온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벌써부터 즐겁다.
리처드와 버금갈 정도의 실력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좋아, 우선은 로미오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
“음, 시우 군. 이라고 했지?”
“우웅. 한시우입니다. 안냐세요.”
반사적으로 배꼽 인사가 튀어나왔다.
아차, 싶어서 고개를 들자 문희성이 귀엽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 시우 군. 나는 문희성이야. 혹시 알려나?”
“우웅. 로미오 해써요!”
“어? 아아, 상철이 형이 그걸 보여줬나 보구나. 어때, 볼만했니?”
볼만했냐고?
그 정도가 아니었다.
“아조씨는 어떤 로미오를 하구시펐어요?”
“어? 어떤 로미오?”
“우웅. 로미오 여러 가지 이짜나요. 슬픈 로미오, 화난 로미오, 아니면 바부 같은 로미오?”
나는 갸웃갸웃 고개를 기울이며 로미오에 대한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문희성은 놀란 눈으로 입을 딱 다물었다.
그 비디오에서 보기에는 일단 슬픈 노선을 탄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기에는 결말 부근에 줄리엣의 죽음을 볼 때의 시선이 조금 이상했다.
“역시, 내가 제대로 봤군.”
“우웅?”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듣지 못했다.
뭐냐는 듯이 눈을 깜빡이자 문희성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하, 로미오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들려줄게. 그보다, 시우 군. 에서 말야. 아직도 그 공연에 대한 소문이 대단하단다.”
아, 그거 보고 찾아온 거구나.
문희성이 갑자기 나를 찾아온 것에 대한 의문이 조금 풀렸다.
나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마지막 공연 때 한 대사 생각나니?”
“우웅, 애드립 한 거요?”
“······그래. 애드립이 맞았던 모양이구나.”
“녜. 이섭이 아조씨가 그날 엄청 슬픈 일이 이써가지구. 제가 그러케 했어요.”
“시우가 생각해서 뱉은 거라는 거지?”
“움? 다녕하죠. 근데 연극은 원래 그럴 수바께 업서요. 사람들이 하눈 고니까. 맨날맨날 연기가 쪼금씩 다르고, 또오 무슨 일이 이러나도 안 이상해요. 나눈 우리 공연이 무··· 무우······. 에이씨.”
뭐였더라.
단어를 까먹었다.
요즘 대본을 잘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의 사전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중인데 조금만 어려운 단어를 쓰려고 하면 이 몸은 금세 까먹고 만다.
“무사하길?”
“아, 웅! 무사하길 바라써요. 배우라면 다뇬한 고에요!”
휴, 무사히 말을 마쳤다.
나는 만족해하며 호록, 카모마일 차를 들이켰다.
한편, 문희성은 그런 나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나는 방금 뭔가 틀린 말이 있었나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닌데, 제대로 말했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문희성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시우야, 내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우리 번호 교환할까?”
“우웅! 조아요.”
바라던 바였다.
근데··· 나 번호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