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어제 공연을 보고 확정되었나 보구만.”
최성주의 제안에 노백찬이 예상했다는 듯이 물었다.
맞다.
사실 내가 오늘 노백찬의 집에 부리나케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어제 공연을 마치자마자 노백찬에게 연락이 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더니 노백찬이 그랬다.
‘오늘 굉장한 인물이 시우 네 연극을 보러 왔노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집에 찾아오면 그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데, 내가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있었겠느냐고.
나는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차를 홀짝거리는 노백찬을 곁눈질로 보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정말 이래서 연륜을 이길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오나 보다.
뭐, 노백찬의 집에 와보니 확실히 어마어마한 인물이 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최성주는 노백찬의 말에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형님. 저와 같이 본 두 위원 모두 찬성했습니다.”
……두 사람이 더 있었어?
나는 단원들이 어제 이 사실을 모르고 공연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리허설 때부터 문희성, 강수정 같은 사람들이 관객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배우들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연극제가 시작되자 쟁쟁한 평론가며, 배우들이 속속들이 찾아와 난리도 아니었다.
얼굴이 알려질 만큼 유명인사들이 객석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못 하겠다고 울상을 짓는 배우도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김상철은 여섯 번의 공연 내내 약국에 가서 청심환을 엄청나게 사 와야 했다.
“저까지 만장일치로 이 연극은 세연제에 소개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 들었거든요. 시우 군이 허락하면 제가 세계연극협회에 신청을 할 겁니다. 연출위원 세 사람이 추천을 한 작품이니 통과될 확률이 99.9%겠지만요.”
자신이 찬 최성주의 말에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물론, 나와 같이 공연을 올린 사람들에게도 물어봐야겠지만…….
이토록 좋은 기회가 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
“시우야, 어떠냐. 저놈의 말을 들어보니.”
“으음, 좋아요. 강 감독님하고도 말을 해봐야겠지만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죠.”
“하하, 세계 무대라는 데 긴장하는 기색도 없구나.”
무덤덤한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최성주가 신기해하며 말했다.
“으응, 제가 비행기는 꽤 타봤거든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최성주와 노백찬이 잠시 서로를 마주 보더니 곧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형님. 어디서 젊은 적 형님보다 더한 애를 제자로 삼게 되신 겁니까?”
“하하하, 나라고 알고 들였겠느냐.”
휴, 이번에는 또 프랑스다.
나는 불어 연습이나 조금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
꼴꼴꼴-
서울 도심지의 한 포장마차다.
구석진 자리에 홀로 앉은 남자의 앞에는 퉁퉁 불어 터진 우동 한 사발과 소주 두 어병이 끝이었다.
그리고 그의 술잔은 빠르게 채워졌다가 비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멀거니 내려다보고 있는 상 위에는 티켓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해당 티켓에 적힌 날짜는 바로 어제.
3월 1일.
공예창 연극제 마지막 공연의 티켓이었다.
“후우.”
혼자서 쉬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남연수의 부친 남진용이었다.
그가 술을 찾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남연수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는 회식 때조차 술을 입에 대본 적 없었다.
혹여 술김에 약한 소리를 하게 될까 봐.
약한 맘을 먹게 될까 봐 독하게 버텨왔다.
그러나 한시우가 직접 쓰고 연기한 연극을 보고 난 후 마음이 울렁거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왜 이리 착잡하고 입맛이 쓴지 알 수가 없다.
“…….”
쪼로록.
남진용은 재차 빈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극이 주는 메시지는 알고 있다.
어른에 대한 경고이자, 경각심을 주려는 내용.
사실 이런 메시지를 주려는 극이 여태껏 없던 것이 아니다.
머리를 세게 때릴 정도로 새로운 메시지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니.
남진용은 단순히 극이 주는 메시지 때문에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저, 진짜 웃음을 보이며 행복해하던 강기동과 나카모토의 모습이 꼭 예전의 연수를 보는 것 같아서.
남진용이 벌써 몇 년 동안이나 본 적 없던 그 웃음이 떠올라서다.
‘괜찮아요, 아빠.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정답이잖아요.’
항상 괜찮다며 넘기는 아이이기에, 아마 알고도 모른 척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가 자신에게 보이는 웃음이 가짜 웃음이라는 것을.
“지수야…….”
남진용은 떠나버린 아내.
지난 몇 년간 입에도 담지 못했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면서 술병에 남은 술을 마저 잔 속에 부었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잔도 하나 더 주시구요.”
“……!”
그때, 누군가 남진용의 앞자리에 의자를 끌고 앉으며 주문했다.
낯선 이의 등장에 남진용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도대체 뭘 기대했을까.
남진용은 새 술병을 받아다가 새로 받은 빈 술잔에 술을 채웠다.
“감사합니다.”
그의 눈앞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남연수의 매니저 김성후였다.
“여기 식기도 일 인분 더 가져다주세요. 아, 국수도 두 개 말아주세요!”
김성후는 포장마차 사장에게 익숙하게 자신의 자리 세팅을 부탁했다.
그리고 남진용이 따라준 술잔을 받고서 입을 다물었다.
김성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남진용이 괴롭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그는 어쭙잖은 충고나 하려고 이 자리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김성후가 여기 온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남진용이 조금이라도 약하거나 무너진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그걸로 당신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조금 틈을 보여도 괜찮다고.
있는 힘을 다해 악에 받쳐 사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니,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자.”
“아, 네.”
남진용이 들어 올린 술잔에 김성후는 양손으로 술잔을 부딪쳤다.
소주 한잔을 꺾어 삼킨 남진용이 입을 열었다.
“연수는 어디에 두고 여길 왔어.”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아랫사람에게 보인 것이 민망한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괜스레 타박을 하는데, 벌써 꽤나 마셔서 그런지 혀가 꼬인 발음이 튀어나왔다.
“집에 안전하게 내려주고 오는 길입니다. 오늘따라 연수가 많이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요. 다른 데 안 들리고 일찍 집에 데려다줬습니다.”
“…….”
착실한 김성후의 보고에 남진용이 한동안 답이 없다가 이내 나지막이 물었다.
“성후야.”
언제나처럼 부르는 김 매니저라는 딱딱한 호칭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김성후는 오늘 이 자리에 고심 끝에 나오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네, …남 PD님.”
그래서 그런지 김성후 역시 예전처럼 그를 조금 친근하게 불러보았다.
남진용은 또 혼자서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더니 물었다.
“너는…… 연수가 옛날처럼 웃는 거 본 적 있냐. 그, 예전에 지 엄마한테 보여주던 그 표정 말이야.”
“……아.”
예상치 못한 질문에 조금 당황하던 김성후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성후의 술잔에도 술을 채우던 남진용이 놀라서 멈칫했다.
그 바람에 상 위로 소주가 조금 넘쳤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정말……?”
“아, 그게……. 시우랑 있으면 그렇게 웃대요. 그 예전에 형수님한테 보여줬던 그 표정으로 말입니다.”
김성후의 말에 남진용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리고, 술잔을 쥔 남진용의 손이 세차게 흔들렸다.
***
“하아…….”
“으윽…….”
달칵.
“너희 뭐하냐……?”
나와 강용휘가 테이블에 널린 서류를 보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김상철이 어이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공예창 연극제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안 지난 시점.
나는 최성주에게 제안을 받고서 세계연극제에 참여하자고 강용휘에게 알렸다.
세계연극협회 측에서도 우리의 참여가 받아들여졌고, 우리 나카모토 팀은 최종적으로 세계연극제에 참가가 확정되었다.
일단 매스컴에는 당장 알리지 않기로 했다.
공예창 연극제의 성공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세계연극제 참여가 알려진다면 애써 지펴놓은 불씨가 사그라들까 봐였다.
한동안은 공모전에서 입상한 다른 작품들과 함께 국내에서 충분한 관심을 모은 다음, 발표하기로 입을 맞췄다.
세계연극협회 측에서도 아직 모든 팀의 참석이 확정된 것은 아니니, 당장 발표되는 건 아니라는 답변을 주었다.
하지만, 발표는 발표고 우리는 빠르게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세계연극제가 프랑스에서 열리는 건 5월 말.
5일간 열리는 연극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시 준비를 해도 빠듯했다.
이미 연습이 충분히 된 상태였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렇게 급하게 참가 여부를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와 강용휘는 세계 무대로 가기 위한 또 하나의 장애물에 부딪혀 있었다.
“하, 형. 형이 좀 말려줘 봐요. 한시우 저거 엄청 깐깐해.”
“감독님. 이건 깐깐해야 할 문제죠. 저희는 한국어로 연기하는데, 저쪽은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외국인이잖아요.”
“그런데 여기 있는 거 다 마음에 안 든다며.”
강용휘는 인상을 쓴 채 테이블 가득 널려 있는 대본을 가리켰다.
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외로 돌렸다.
아니, 마음에 안 드는 걸 어쩌냔 말인가.
“뭐 때문에 그래……?”
“자막이요.”
“자막?”
“네. 영어 자막.”
“그거 전문가들한테 맡겼잖아.”
연습을 시작하기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세연제에서 쓰일 영어로 된 자막이다.
참석이 확정된 다음, 우리는 유명하다는 전문가들에게 의 대본을 맡겼다.
강용휘와 김상철이 업계에 유명한 사람들을 소개해주었기에 번역가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대여섯 개의 번역된 대본을 받아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번역본이 없다.
단 한 개도.
번역의 문제는 어느 예술영역이나 끊임없이 회자되는 문제였다.
워낙 전 세계가 서로의 문화와 작품을 교류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알았지만, 실제로 부딪혀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뭔가 다 어색해요.”
“어어…… 그러냐?”
“아까부터 저래요. 시우가 영어 번역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계속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퇴짜 놓고 있다고요.”
“하지만…….”
나는 입을 비죽 내민 채 무언가를 항변하려고 했다.
그러자 강용휘가 척 손을 내밀면서 비장하게 말했다.
“아니, 됐다. 괜찮아. 난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극본 번역은 너한테 맡길게. 차라리 그게 낫겠다.”
“아니, 이걸 좀 보시라니까요.”
“……하아.”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싸매는 강용휘를 보고 내가 가본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것 좀 보세요. 다른 것보다 이게 제일 낫거든요? 그런데 이런 대사 톤을 못 살린다고요. 단어 하나에도 작품의 결과 대사톤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렇게. 주어를 앞에 쓰느냐, 뒤에 쓰느냐에 따라 다르잖아요?”
“……어, 그러냐.”
강용휘도 안다.
대본을 쓰던 사람이니까.
주어 하나, 목적어 하나의 위치로도 대사가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부분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걸.
다만, 영어를 몰라서 공감해주지 못할 뿐이었다.
나는 한창 설명을 하다가, 강용휘의 넋이 나간 표정을 보고 가본을 탁 덮었다.
“……어쩔 수 없네요.”
다른 할 일이 많아서 이건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제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