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영화는 어땠어, 어린 천재.”
피에르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 물어왔다.
음료가 채 나오기도 전에 빠르게 묻는 걸 보니, 상당히 궁금한가 보다.
전 세계한테서 천재 소리를 듣는 피에르에게 천재라는 호칭으로 불리니까 기분이 되게 이상하네.
“굉장했어요.”
물론, 사양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스토리가 일단 정말, 와…… 재밌었어요. 그런 엔딩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신 거예요?”
일단 가장 감탄을 했던 의 반전이 돋보이는 엔딩.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글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 다들 그런 뒤통수 정도는 살면서 한두 번쯤 맞아볼 법하잖아.”
피에르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맞는 말이었다.
그가 영화 말미에 삽입한 반전은 억지스럽지도 않았고, 사회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보면 마주할 법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걸 이렇게 영화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게 포인트겠지만.
“그 반전을 이토록 충격적으로 느끼게끔 연출한 게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특히 감명받은 장면은… 중반부에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동네를 떠날 때예요. 거기서 주인공이 가진 해방감과 절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그걸 원테이크로 촬영하다니. 생각지도 못했어요.”
“하하, 알아주니 고맙네. 거기는 특히 담아내기 고생했지만, 내가 아끼는 장면 중 하나거든.”
“소름이 돋았어요. 선곡도 완벽했거든요.”
내가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자, 딘이 내게 주스를 살짝 밀어주며 말했다.
“시우, 알겠으니 조금 진정하고 말해. 지금 얼굴이 완전 달아올랐다고.”
“후아, 좋아요. 제가 너무 들뜨고 말았네요.”
나는 순순히 인정하며 딘이 밀어준 주스를 몇 모금 마셨다.
마침 목이 말랐는지 토마토 주스가 아주 달게 넘어갔다.
“뭐, 나는 시우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서 별로 놀랍지는 않네.”
“정말? 잠깐. 시우 네가 올해 몇 살이지?”
“여덟 살이에요.”
한국 나이로는 아홉 살이지만, 이들에게 나는 아직 여덟 살이었다.
내가 여덟 살이라고 하자 피에르가 작게 입을 벌렸다.
“이런 평론가다운 면모를 뽐내는데, 겨우 여덟 살?!”
“피에르도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낭뜨에 입성했잖아요.”
“오, 시우. 그거랑은 천지 차이지!”
하지만 나는 속에 서른 넘은 아저씨가 잠들어 있는걸.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꿀떡 삼키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피에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딘에게 말했다.
“딘, 네 말이 맞아. 시우는 정말 천재야.”
“피에르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잠깐, 그럼 지금까지 내 말을 허투루 들었다는 거야?”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딘.”
피에르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저었다.
두 손을 든 딘은 못 살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해주겠는가.
씨익 웃고 말자, 딘이 이마를 감싸쥐며 항복을 선언했다.
“너, 이씨…… 하아. 됐다. 말을 말아야지.”
이틈을 틈타 나는 재빨리 피에르에게 상체를 들이밀고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피에르. 궁금한 게 있어요.”
“오, 천재님의 질문인가. 그럼 뭐든 대답해줘야지.”
딘의 사나운 눈초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이기에 피에르는 기쁘게 내 질문을 기다렸다.
“제가 느끼기에는 메신저에 대한 복선이 초반부에 나왔던 거 같은데요.”
“이를테면?”
“우선, 주인공이 처음으로 옆 동네에 갔을 때…….”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자,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피에르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오, 맞아. 하지만, 완전히 맞는 건 아니야. 내가 완전히 의도하고 쓴 부분은 아니거든.”
“정말요? 이게 무심결에 나올 수 있는 구성인가요?”
말도 안 돼.
아마 내 표정이 이 심정을 그대로 말해주었을 것이다.
피에르는 난처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으음… 내가 작업하는 방식이 약간 그래. 먼저 내가 느낀 것에 대해 풀어놓고 그다음에 스토리 라인을 정돈해 나가지. 그러면서 심어진 복선인 것 같은데?”
“감독조차 눈치채지 못한 걸 짚어낸 거야? 역시 너다운 관찰력이네.”
“아뇨. 이걸 의도하지 않고 써낸 피에르가 더 놀라운 것 같아요.”
그 뒤로 우리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영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나누었다.
대부분 내가 질문하고 피에르가 대답하거나, 반대로 피에르가 질문하고 내가 대답하는 식이었다.
내 말을 잠자코 듣던 피에르는 이번 세계연극제에 내가 직접 쓴 극본으로 공연을 올린다니까 동질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평소 영감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편은 아니야. 그냥 꿈이나 평소 지나가는 찰나의 생각들이 작품이 되는 거라. 시우 너는 어때?”
“저도 비슷해요. 다만, 그걸 영감이라고 여기고 조금 더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달까…….”
그사이에 메모도 필수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샛길로 샐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샛길로 샌 생각들도 결국 다른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될 때가 많아서 무엇 하나 놓치는 것 자체가 아까웠다.
“흐음, 그래? 영감을 정제하는 시간이 필요한 편이구나.”
“피에르가 천재라서 그래요.”
그런 시간 따위 필요하지 않다는 얼굴을 한 그를 보고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는 너도 만만치 않다니까 그러네. 아, 그리고 내가 연기를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했잖아. 나한테는 연기가 하나의 과정인 거 같아.”
“연기가요?”
이건 또 아예 새로운 생각이었다.
연출은 몰라도 연기는 하는 나이기에 피에르의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복선이나 스토리를 그냥 감으로 아는 것도 연기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산물이지. 연기에 들어가기 전 이런저런 궁리를 하잖아? 여기서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놀라는 게 좋을까. 이 부분이 아니라 여기서 놀라는 건 어떨까. 하면서.”
“맞아요.”
“나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연출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 나중에는 연기보다는 연출에 욕심이 생겨 영화를 찍게 된거고 말이야. 물론 주연배우도 내가 맡았지만.”
“호오, 호오!”
피에르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거기에 나 혼자서 탑에 갇혀 극을 썼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라 아주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혼자 연기를 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복선, 반전을 줄 수 있을만한 요소가 떠오를 때도 있고.
캐릭터가 겪을 감정 등에 대해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연기를 해나가게 되니까.
이건 아마 내가 하는 연기가 스스로 쓴 극본에 의거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캐릭터가 왜 반전을 느끼는지.
반전을 느낄 때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지 극본가가 연기를 할 배우보다 먼저 알게 되니 말이다.
이런 연구가 선행되지 않으면, 반전을 하나도 모르는 배역을 연기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내 연기를 보게 될 관객들이 어떤 걸 극적인 반전으로 여길지 궁리하게 된다.
그게 또 극본에 반영되고 말이다.
“끊임없는 굴레에 빠지게 되는 거네요.”
“바로 그거지! 시우와 나는 대화가 잘 통하는걸?”
“그러게요. 잊어버린 형제를 만난 느낌이에요.”
“하하! 이거 영광이군.”
피에르의 주도로 우리 세 사람은 신이 나서 건배를 했다.
그 사이 어느새 딘은 술을 더 시켰고, 간단한 요리를 두어 개 시킨 상태였다.
“둘 다 아주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구만.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쓸쓸하게 맥주잔을 돌리면서 말하는 딘의 말에 내가 대번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리가요. 딘의 존재감이 잊기 쉬운 존재감은 아니죠.”
“뭐?”
딘이 그게 무슨 뜻이냐며 한쪽 눈썹을 비뚜름하게 올렸다.
나는 마구 웃으면서 대답하는 걸 이리저리 피했다.
공예창 연극제가 끝난 후에 또 쉴틈 없이 프랑스 렌으로 와, 세계연극제를 준비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게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딘과 농담 따먹기를 주고받는데 피에르가 요리로 배를 좀 채우고 다시 물어왔다.
“시우, 네가 평소에 좋아하는 감독은 누구야?”
“으음, 두 사람이 알만한 미국 감독으로는…… ‘어텀 갈리우드’와 ‘루틴 세이지’를 좋아해요.”
“터프하구만!”
액션 영화의 장인이라 불리는 어텀 갈리우드와 심리물에 액션을 첨가하는 루틴 세이지 감독을 언급하자, 딘이 제법이라는 듯이 내 머리를 부볐다.
으윽, 강용휘 못지 않게 험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사람이 바로 딘이었다.
“아! 맞아. 한국하면 떠오르는 감독이 있어. 공승조 감독.”
“알아요! 피에르, 한국 영화도 봐요?”
“응, 그 사람의 연출기법이 특히 하다는 소문을 들어서 말이야. 특유의 수직관계를 내포하는 카메라 연출법. 배울 게 많은 작품이 많더라고.”
피에르는 어쩐지 한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며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낭뜨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피에르의 극찬이라니.
“호오, 저도 돌아가면 피에르 말을 참고삼아 다시 봐야겠어요.”
“꼭 그래 줘. 한 번 볼 때 안 보인 게 두 번 보면 확 보이고, 세 번 보면 또 다른 영화라고.”
“나도 공 감독의 영화는 몇 편 봤어. 확실히 흥미로운 연출이 많았지.”
딘 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가? 나는 흐릿한 기억 속의 공승조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며 주스를 홀짝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다시 봐야겠다.
“으음, 공승조 감독의 영화라면 저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
“크하, 수작이지. 안 되겠어. 공승조 이야기를 하려면 맥주를 한 잔 더 마셔야 해.”
피에르의 새로운 맥주가 나오고서 우리는 끊임없이 영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우리 대화에 끼어들며 맞장구를 치던 딘은 점점 말이 없어지더니, 결국 쩌억 크게 하품을 했다.
“이봐,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이제 그만 시우를 호텔로 데려다 주자고.”
손목시계를 확인한 딘이 놀라서 피에르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크, 벌써 호텔 밖으로 나온 지 세 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그 장면 속 시계 초침 소리가 말이야. 그냥 나온 게 아닌 거 같더라고.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하지만, 나는 어딘가 아쉬워서 피에르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피에르 역시 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여전히 영화 이야기 삼매경이었다.
“하, 이 영화 바보들.”
딘은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조금은 진절머리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헉, 그래서요? 콜백이 정말 왔나요?”
“놀라지 마, 시우. 바로 다음 날 아침에…….”
피에르와 나는 방금 막 만난 사람들처럼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낭뜨에서 보낸 2박 3일 중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늘은 낭뜨 영화제의 폐막식이 있는 날이었다.
나와 삼촌은 폐막식을 보고 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끝까지 보지는 못할 것 같네. 기차 시간이 빠듯해.”
“으음, 그럼 중간에 슬며시 빠져나가지 뭐.”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레드카펫을 바라보았다.
얼마 있지 않아, 입구에서 큰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수많은 플래시가 터지며, 정신없는 셔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레드카펫과 사정없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마치 장전된 총을 쥐듯 비장한 표정으로 큰 카메라를 짊어지고 있는 기자들.
나와 삼촌이 속한 눈을 빛내는 대중들까지.
전부 얼마 전 백룡 영화제에서도 봤던 풍경들이다.
그러나 조금 달라 보이는 건 이곳이 낭뜨여서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