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8
18화
현재 대한민국에서 배우 문희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20대 초반.
그는 준수한 외모 못지않은 출중한 실력으로 일찍이 연극판을 평정했다.
또래에 그만큼 빛나는 배우들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독 운이 좋았던 것일까.
그는 금세 연극계를 넘어 방송 쪽으로 나가 활약했다.
30살이 되던 해.
문희성은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탑배우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굵직한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각종 연기대상에서 심심하면 수상자로 얼굴을 내밀었다.
들어오는 작품을 닥치는 대로 맡아서 하던 그는 30대 중반 무렵에서야 작품 선택에 심사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여유를 가지게 된 그는 자신의 시작점인 대학로를 잊지 않았다.
4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오랜만이네.’
문희성은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한, 두 번은 꼭 대학로의 연극을 보러왔다.
그에게 있어서 이곳은 노다지였다.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동료 배우들, 혹은 연극계로 돌아간 배우들이 산재해 있는 곳.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문희성은 항상 그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문희성은 익숙한 걸음으로 ‘비상철또 777’로 향했다.
자신의 후배이자, 존경할만한 형님인 김상철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김상철은 자신이 막 방송계로 진출할 무렵,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였다.
외모가 걸려 주연을 맡지는 못하지만 걸출한 연기력으로 두 사람은 금방 의기투합을 했다.
자신보다 김상철이 연기를 늦게 시작해 따지자면 후배였지만, 나이는 김상철이 더 많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형, 아우로 부르며 가깝게 지냈다.
둘의 사이는 김상철이 연기를 잠시 접고 극단을 차린 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비상철또 777을 찾은 것은 꽤 간만이었다.
바쁜 스케줄 속에 짬이 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데 무시할 수 없는 소문이 들려와서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상철이 다섯 살짜리 배우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아무리 김상철과 그가 데리고 있는 강용휘가 공연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린다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다른 연기도 아니고 무대 연기를 시킨다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연기 판에 오래 있었던 문희성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리고 김선우.
그 슈퍼 루키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했지만.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제 2의 문희성이 등장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단다.
안 그래도 신경 쓰는 신인이었기에 한번 보러 가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김선우가 깜찍한 다섯 살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문희성은 바쁜 시간을 쪼개 이곳에 오고 말았다.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고 했다.
극단 앞은 이미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그를 알아보는 이는 다행히 없었다.
“성인 한 명. 볼 수 있습니까?”
“자리가··· 아, 마침 안 좋은 자리가 하나 나긴 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상관없습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매표소 앞에 섰다.
표가 없으면 어쩌지 싶었는데, 기적처럼 취소표가 나와 표를 살 수 있었다.
자리는 맨 뒤에서 두 번째.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처음 김상철이 극단을 차린다고 했을 때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의 꿈을 응원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꽉 찬 극장을 보는 것만으로 이미 기다린 시간의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곧, 공연이 시작되고 문희성은 한시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본 극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고 재미있는 극이었다.
강용휘가 썼다더니 역시나였다.
그리고 극을 이끌어 나가는 김선우는 소문대로 대단한 능력자였다.
빛나는 외모도 외모지만, 확실히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재능이라는 게 멀리서도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었던 배우의 등장.
다섯 살의 어린 배우는 김선우에 못지 않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더 지켜봐야 할 터였다.
아직은 너무 어리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생각으로 극을 지켜보고 있는데, 사건이 터졌다.
중반부터 눈빛이 위태로워 보인던 아버지 역의 배우가 대사를 잊은 것이다.
‘저런.’
마지막 공연인데, 아쉽게 되었다.
맥이 빠져 사태를 관망하던 문희성은 금세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할모니가 그래써.”
어린 배우의 입이 열리고 문희성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미 정상에 앉아, 오래전에 잠잠해졌다고 생각한 20대의 열정이 탄산처럼 튀어오르고 있었다.
***
“요즘 재밌는 배우가 들어왔다며?”
문희성은 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나서 김상철의 사무실을 찾았다.
“이미 봐놓고서 또 그런다. 하여간 음흉하기는.”
“나보고 음흉하다고 하는 사람은 형밖에 없을 거다. 그보다 진짜 다섯 살이야?”
“보면 몰라? 하긴, 나도 처음에는 보고도 못 믿었다.”
김상철은 그렇게 말하고서 한시우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예뻐 죽겠다는 것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졌다.
극 올리기 전에 연습에도 의젓하게 참여하고, 무대에 서기 시작하고서는 더욱 빛을 발했다고.
실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가 없었다.
바로 방금 직접 보고 오는 길이 아닌가.
“형, 나 그 애 좀 만나보고 싶은데.”
몸속에서 터지기 시작한 탄산은 문희성을 들썩이게 했다.
***
나는 식탁에 앉아 심각한 표정의 어머니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봤다.
으음.
이런 불편한 분위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이 모든 일은 내가 꺼낸 한 장의 쪽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파로 달려가려던 나는 멈칫 멈추었다.
왜 그러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자까만! 하고 소리치고 방으로 들어가 아까 문희성에게 받아온 쪽지를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식탁에 도로 앉혀졌다.
······나 드라마 봐야 되는데.
“그러니까, 시우야.”
“우웅.”
나는 시계를 힐끌거리며 이미 드라마가 시작되었음을 깨닫고 다소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이게, 후우······.”
“여, 여보 진정해. 자,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 또 들이마시고! 내쉬고.”
“후우, 하. 후우, 하.”
뭐 하는 거지.
나는 흐린눈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겨우 진정한 어머니가 다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으셨다.
“시우야, 이게 그. 후우, 그러니까···… 진짜 문희성 배우님의 번호라는 거지?”
“우웅. 마자.”
배우님이라니.
극존칭에 나는 새삼 어머니와 문희성의 로미오를 봤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혼이 나간 듯이 문희성을 쳐다보더니 정말 좋아하시나 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가면’이 연기 중에 객석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면, 맨 앞에 앉아 있던 귀부인들이 꼭 저런 표정을 짓곤 했었다.
아마 어머니도 같은 심정이실 것이다.
“그래서, 이걸 내 핸드폰에 저장하라는 거지?”
“우웅, 문희성 아조씨한테는 엄마 번호 알려줘써요.”
일단 어머니께 허락을 구하지 않았으니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뭐······?”
“여, 여보! 정신 차려!”
어머니는 내 말에 현기증이 나신 듯이 아버지에게 쓰러지듯 기댔다.
깜짝 놀란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축하며 냉수를 한잔 떠다 주셨다.
예나 지금이나 배우들의 인기란 어마어마한 모양이었다.
“나눈 핸드폰이 업으니까······. 잘모테써요?”
“으응? 아냐아냐. 잘했어. 시우야! 아주 잘했어!”
“여보······?”
“흐흠, 아니. 시우 보호자로서 문희성씨와 연락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그런 거지···?”
유독 슬퍼보이는 눈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잠시 바라봐준 다음 어머니에게 말했다.
“구래서 문희성 아조씨가 엄마랑 나랑 한번 보자고 해써요.”
“뭐?”
“그게 정말이야?”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이 더 크게 뜨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웅. 그래도 대?”
내 질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놀란 표정 그래도 서로를 마주보고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슬쩍 식탁 의자에서 내려왔다.
살금살금.
쉽사리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 않다.
일단 드라마를 봐야겠다.
나는 냉큼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TV를 틀었다.
요새 한창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를 찾았다.
이미 중반부까지 진행된 걸 보고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누르며 영상에 집중했다.
한편,
식탁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뭐라 숙덕거리고 있었다.
“진짜일까?”
“그래도 이렇게 번호까지 받아온 걸 보면······ 진짜지 않을까?”
“시우가 좀 똑똑하긴 하지만, 아직 다섯 살인데. 사람을 잘못 알아본 거 아닐까?”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설마. 문희성은 나랑도 TV로 진짜 많이 봤어.”
“그건 TV로 본 거잖아.”
“백 번도 넘게 봤어.”
그렇지.
백 번도 넘게 보긴 했다.
어떤 연극은 어머니가 먼저 또 보자고 할 정도였다.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백 번도 넘게 봤다고?”
“아, 아니. 시우가 연기 공부한다고 해서 본거지! 아무튼, 우리 시우 똑똑하잖아. 지금은 늦었으니까 내가 내일 낮에 연락해볼게.”
“알았어. 나중에 나한테도 진짜 문희성인지 알려줘야 해?”
“그럼. 당연하지. 당신 이제 얼른 씻어야지. 피곤하겠다.”
“응, 알았어.”
휴, 드디어 부모님이 이야기를 마치셨다.
이제 좀 조용히 드라마를 볼 수 있겠군.
나는 내일 어떤 파란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온 정신을 집중해 TV를 바라보았다.
***
“시우야, 들어가면 인사 잘하고 알았지?”
“우웅!”
“별일이다, 정말. 내가 문희성네 집엘 다 와보고.”
“빠리 들어가자, 엄마.”
“으응. 그래.”
어머니는 내가 문희성의 번호를 받아온 다음날, 바로 연락을 하셨다.
그러자 문희성은 그날 바로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왔었다.
유명 배우라더니, 별로 안 바쁜가?
의아함도 잠시, 급한 김에 아버지의 치킨집을 닫고 그곳에서 넷이 첫 만남을 가졌다.
어디 가게에 들어가기에는 문희성의 유명세가 너무 대단했다.
나는 두 번째로 보기에 문희성이 마냥 반가울 뿐이었지만, 두 분은 아니었나 보다.
진짜 문희성이라는 걸 알고 어머니는 완전히 굳어버리셨으며 그나마 아버지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것도 더듬거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제가 밖에서 시우 군을 만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저희 집으로 초대를 좀 해도 될까요? 시우 군이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요.”
“네, 넷?!”
그날 문희성의 충격적인 발언과 함께 나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문희성의 집 앞에 서 있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처음 번호교환을 하고서 겨우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진짜, 안 바쁜가 이 사람?
“시우야, 그리고······. 엄마 문희성 씨 사인 하나만 받아다 줘.”
“우웅. 알아써.”
이럴 때 보면 어머니도 소녀 같다.
저번에 치킨집에 왔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잊으셨는지 내 말에 어머니는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좋아하셨다.
띵동.
벨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희성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시우 군, 그리고 시우 군 어머니. 잘 오셨습니다.”
“아니에요. 저희 시우 오늘 잘 부탁드려요. 저는 요 앞 카페에 있을게요.”
“네, 걱정마세요. 이야기 마치면 제가 거기로 데려가겠습니다.”
“아, 네. 그럼 시우야 배우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우웅. 걱정마라.”
나는 어머니에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 문희성의 손을 잡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바텐베르크 가의 성이 떠오를 만큼 거대한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