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가을 냄새가 솔솔 나는 시월의 첫째 주.
촬영이 한창인 남양주의 한 촬영장.
하움은 조용히 발밑의 평온한 세상을 내려다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저 발밑에 보이는 시골 마을의 풍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저 사람들도 각자 고통을 가지고 있을까?”
하움 역시 누군가가 바라볼 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부잣집 도련님이지 않은가.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멋들어진 그림 같은 저택에 사는 아이.
저택에서 특별 교육을 받느라 학교도 나오지 않고, 넓은 마당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사는 아이.
연예인처럼 빼어난 외모를 지닌 어머니와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아버지 밑에서 따뜻한 애정을 한가득 받으며 사는 아이.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허영과 사치만이 결혼의 이유인 어머니가 자신을 키우기 귀찮아, 영국에 있는 사립 중학교에 자신을 보내려고 카탈로그를 뒤적인다는 걸.
큰 저택에 아이가 뛰어놀거나 먼지를 일으키는 걸 싫어하는 아버지 덕분에 자신은 끄트머리 방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한다는 걸.
이 나라의 의무교육은 믿을 수 없다며 저택에서 허구한 날 혹독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마당에서 뛰어논 것은 다섯 살 무렵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폭력과 험한 말만이 아이를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고립과 억압, 또 역설적이게도 그런 와중 느껴지는 무관심.
하움은 집사가 의무적으로 가져다주는 포춘쿠키만을 기다릴 정도로 타인의 애정에 목마른 아이였다.
자신은 A라고 칭한 마법사는 하움에게 뭘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황금 티켓은 무엇이든 원하는 걸 이루어주는 특급 서비스라며.
뭐든지 원하는 걸 말하라고 했다.
하움은 신나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오는 말은 없었다.
목이 퍼석거리는 것처럼 말라붙어 무슨 말이든 꺼내기가 힘들었다.
이상하다.
항상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작 입 밖으로 소원을 꺼내려고 하니 아무것도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당황한 하움이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A가 말했다.
“뭘 원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 내가 마법을 보여줄게.”
그렇게 해서 지금 하움은 어디인지도 모를 외딴 시골 마을 상공 위에 떠 있었다.
여기까지는 마법사와 함께 왔다.
오늘 길에는 난생처음 버스라는 것도 타보았다.
시골 구석구석을 마법사와 구경한 하움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움의 발밑에는 아기자기한 집이 몇 채 모여 있었다.
마을 회관으로 보이는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부침개를 부치고 서로 입에 넣어주며 정답게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가족도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지 못해 안달이다.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며 박장대소를 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하늘 위에 떠 있는 하움에게까지 닿았다.
저들은 해야 하는 일도 없고, 그저 즐겁게만 보이네.
당장 이 마법이 끝나면 내일까지 해둬야 하는 숙제가 떠오른 하움의 마음이 울적해졌다.
“어, 어어……?!”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발밑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움은 이 마법도 끝이구나 싶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제나 마법의 끝은 똑같았다.
발밑이 무너지는 듯한 서늘한 공포.
그게 느껴지면 두 눈을 감았다.
풀썩.
그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움은 자신의 방 침대 위에 안전하게 누워 있었다.
“어때. 이번 마법은?”
“……좋았어요. 꿈만 같았어요.”
“하지만, 꿈은 아니지.”
“내일은 또 다른 곳을 보여주실 건가요?”
“그럼. 네가 원하는 걸 말해줄 때까지.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란다.”
마법사 A는 달콤하게 웃으며 하움의 귓가에 속삭인다.
그리고 하움이 웃으며 그에게 손을 뻗으면, 어느새 그는 하움의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
“어, 어어……?!”
휘청.
와이어에 매달려있는데, 순간적으로 팽팽한 와이어가 느슨해지며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쩌렁쩌렁한 임수호의 외침이 들려왔다.
“컷!”
풀썩.
나는 힘을 풀고 뒤에 대기 중이던 에어매트에 쓰러졌다.
순간적으로 와이어에서 힘을 풀었으니 다시 당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몸에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너무 컸다.
그래서 하움이 휘청이는 장면까지만 촬영한 뒤에는 이렇게 매트에 눕듯이 떨어지는 편이 더 안전했다.
“이번 장면도 아주 좋았어. 점점 와이어에 익숙해져 가는걸?”
“와, 정말요?”
“그럼. 와이어에서 힘 푸는 연습을 많이 한 보람이 있네.”
와이어를 알려주는 무술 감독님의 칭찬을 들으며 나는 몸에서 와이어를 착용하기 위한 장비를 주섬주섬 풀렀다.
“시우야! 어디 다친 곳은 없지?”
그동안 저 멀리서 임수호가 뛰어와서 물었다.
저 멀리서 메인 모니터를 바라보며 확성기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던 임수호였다.
그는 이번 작품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 나나 김선우가 와이어 액션을 할 때면 꼭 와서 몸은 괜찮냐고 확인하곤 했다.
자신은 그냥 판타지 장르를 쓰고 싶었을 뿐인데, 직접 촬영에 들어가 보니 배우들이 생각보다 고생하는 것 같다고 시무룩해했다.
나와 김선우는 그런 임수호의 마음을 알기에 매번 괜찮다고 몸이 멀쩡한 걸 보여주곤 했다.
마법사와 시골에 왔다는 설정 때문에 오늘 촬영지는 남양주의 한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저번에 와서 김선우와의 촬영은 마쳤다.
오늘은 내가 와이어를 사용한 액션씬을 촬영하는 날이라 촬영장에 나와 단역 배우들밖에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 와이어 액션 장면이 오늘 촬영의 마지막이었기에 스태프들이 촬영 종료를 알리며 외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장비를 다 풀어낸 나도 촬영 현장을 한 바퀴 돌며 인사를 마쳤다.
“시우야, 잠시만.”
그다음에는 임수호의 물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모니터링은 마쳤어. 장면은 잘 나왔는데……. 이게 A와 하움의 첫 외출이잖아?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해서 조금 더 연출 효과를 강하게 넣어볼까 하는 데 어떨까.”
“좋은 것 같은데요? 신나던 하움이 회의적인 생각으로 넘어갈 때 동화적인 연출이 삽입되면 더 극적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그렇지?! 비눗방울이나 이런 반짝이 효과가 좋을 거 같은데…….”
장면이 생각보다 더 잘 나와서 신난 임수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옆에서 기다리던 삼촌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 그럼 그렇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임수호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삼촌을 돌아보았다.
“왜 그래?”
“전화 왔어.”
“누군데?”
“성후 씨.”
남연수의 매니저 이름에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물론 전화를 건 것은 김성후가 아니라… 그의 담당 배우인 남연수일 것이다.
“여보세요?”
-어! 시우야!
역시나.
수화기 너머로 잔뜩 들뜬 남연수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어, 형. 촬영 중 아니야?”
-맞아! 너희 오늘 남양주에서 촬영이라면서.
남연수는 우리보다 약간 늦게 공승조 감독의 신작 촬영에 합류했다.
그래도 한달 정도 차이라 촬영 기간은 비슷하지 않을까 예상 중이었다.
저쪽은 완벽주의로 유명한 대작을 찍고 있고, 이쪽은 이래저래 품이 많이 들어가는 판타지물이니 말이다.
“어, 맞아. 우리 방금 끝났어.”
-끄, 끝났어……?
그런데 내 말에 남연수의 목소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응. 방금. 왜?”
-…아니 우리도 오늘 남양주에서 촬영 중이거든. 그래서 너랑 같은 곳이다 싶어서 끝나고 같이 밥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나 얼른 촬영 마무리할게!
“그게 형 마음대로 돼? 괜히 조급해하지 말고 침착하게 촬영 마무리해. NG 내지 말고.”
-으응, 알았어.
그럼 오늘 못 보는 거냐고 풀이 죽어 중얼거리는 남연수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아니면 내가 오늘 거기로 놀러 갈까? 폐 안 되려나?”
-어?! 진짜? 나는 엄청 좋지! 공 감독님한테 여쭤볼게. 근데 시우 너라면 아마 괜찮다고 하실 거야!
다시 반짝 살아난 남연수가 당장이라도 공승조 감독에게 물어보겠다며 성화였다.
아, 나 커피차나 밥차 같은 거 준비 못 했는데.
“알았어. 물어봐 줘. 촬영장 위치 우리 삼촌한테 보내주고. 응, 공 감독님께도 한번 인사 드려야지.”
남연수와 짧은 통화를 끊고 삼촌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러자 눈을 반짝거리는 삼촌이 잔뜩 흥분해서 내게 말했다.
“우리 공승조 감독님 촬영장 가는 거야?!”
“엉. 연수 형이 물어본다는 데 아마 될 거래.”
“우와! 하, 너무 좋은데…… 심장이 또 나대기 시작한다. 후, 하, 후우, 하아….”
삼촌은 또 나보다 더 설레서 심호흡을 하고 난리가 났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옆에서 임수호의 촉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 승조 감독님……?”
…잊고 있었다.
여기 배우와 감독에 진심인 팬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잠시 다른 스태프들은 듣지 않았나 확인하고서 그를 향해 물었다.
“으음, 감독님도… 같이 가실래요?”
“어, 어!!”
임수호 감독이 목이 떨어져라 끄덕이는 것은 거의 정해진 수순이었다.
***
“시우야!”
남연수 네 촬영장에 도착하자, 남연수가 저 멀리서 버선발로 뛰쳐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어! 임수호 감독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수 군.”
임수호는 남연수와 촬영장의 모습을 보고 이건 꿈이라며 중얼거렸다.
나는 삼촌에게 임수호를 잘 챙기라고 한 번 더 눈짓하고 남연수를 따라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연수네 촬영장은 아름다운 느낌이 드는 수목원이었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느낌을 내기 위한 장소였다.
오늘은 남연수의 단독 촬영인 듯 다른 주연 배우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하게 내가 구경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랜만에 뵙네요.”
“하하, 이거. 시우 군을 촬영장에서 다 만나게 되네요.”
공승조는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 저번에 인사드렸던 지! 동욱입니다.”
“네, 반가워요.”
“저, 저는! 이번에 시우 군과 촬영 중인 이, 이이임수호 감독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삼촌은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군기가 바짝 들어가서 인사를 마쳤다.
아니, 그나저나 삼촌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임수호 감독은 평소보다 더 얼어서 황송하다는 듯이 공승조 감독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남연수가 참지 못하고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순간, 괜히 데려온 건가 5초 정도 생각했다.
“임수호 감독! 안 그래도 내가 많이 궁금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어, 그. 저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공승조가 악수를 청하자 임수호는 손바닥을 바지에 벅벅 문지른 후에 공승조 감독의 손을 공손히 잡았다.
“재밌는 분이시네.”
“그런 것 같아요.”
공승조 감독과 남연수가 히죽거리면서 임수호 감독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임수호 감독은 수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
그 모습을 흐린 눈으로 보고 있는데, 공승조 감독이 내게 말했다.
“이거, 내 영화 오디션은 안 오고 임 감독한테 갔다길래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까 시우 군. 임수호 감독님 얼굴 보고 간 거 아니야? 임 감독님 엄청 잘생겼는데?”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고 뭐라 대꾸하려던 순간, 임수호 감독이 먼저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