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와이어에 묶인 김선우가 창문 너머로 풀썩 쓰러진다.
나는 급하게 창가로 달려가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아씨, 저 형 또 저러네.
하움을 맡은 나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놀래야 하는데 자꾸 밑에 에어 매트리스에 떨어진 김선우가 나를 웃기려고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서 겨우겨우 촬영을 마쳤다.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마법사가 없는 장면은 아까 촬영을 해놓았기에 이번 하움과 마법사의 씬은 이게 마지막이었다.
임수호의 오케이 소리가 들리고 스태프들이 모두 긴장의 끈을 놓은 채 만세를 외쳤다.
와이어 액션이 있는 장면은 몇 번을 촬영해도 배우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전 스태프가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컸다.
“수고하셨습니다!”
다행히 김선우는 멀쩡하게 웃으며 스태프의 부축을 받아 에어 매트리스 위에 섰다.
그 모습까지 지켜본 나는 창가에서 떨어져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고생했어, 시우야.”
“네! 저희 예쁘게 찍어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1층 마당으로 내려오면서 마주치는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얼른 마당으로 들어섰다.
“형!”
“어, 시우야.”
“아까 그 표정들은 뭐야. 나 NG 날 뻔했잖아!”
“하하, 시우 네가 그럴 리가 있나. 결국 안 났잖아.”
“형은 꼭 내가 실수하기를 바라는 사람 같더라?”
“에이, 내가? 나도 얼른 퇴근해서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고.”
능글맞은 김선우의 말에 옆에서 장비를 정리하던 스태프들이 상처라는 듯 말을 보탰다.
“선우 너…… 우리는 단지 일 관계일 뿐이라는 거지? 그렇게 빨리 마치고 가고 싶었니?”
“정말 상처다, 상처야…….”
아저씨들이 몸을 베베 꼬면서 하는 말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가 빵 터졌다.
그러면서 손을 착실하게 와이어 장비를 착착 정리하고 있다.
이상하게 이번 촬영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다들 배우가 되어가는 것 같다니까.
“오늘은 뭐 드시러 갈 거예요? 내일 촬영 쉬잖아요.”
내가 와이어를 알려준 무술 감독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물었다.
그러자 감독님은 귀찮은 내색도 하지 않고 생각하다가 대답해줬다.
“글쎄다……. 오늘 같은 날 한잔 안 해주면 섭섭하니까. 애들 데리고 좀 적시러 가야지?”
“우와아. 좋겠다.”
“시우 넌 아홉 살짜리가 뭐가 좋겠다냐!”
부러움에 탄성을 내지르자 감독님 제자 중 한 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노아일 적에는 집이 엄해서 뒤풀이 같은 데 못 따라가, 여기서는 아직 미성년자라 술집에 못 따라가.
애로사항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촬영도 다 마쳤겠다, 스태프들과 어울려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삼촌이 급하게 나를 찾아 쫓아왔다.
“시우야!”
“어, 삼촌. 왜 그래?”
차에 가서 스케줄 정리하고 있겠다더니 내 촬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달려왔나 보다.
굳이 그럴 필요없는데 말이다.
내가 워낙 촬영장에서 잘 논다는 걸 아는 삼촌이 저렇게 뛰어오다니 드문 일이었다.
“허억, 허억……. 여, 여기.”
“응? 뭔데.”
삼촌은 다급하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장진홍 감독님한테 아까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빨리 걸어봐야 할 것 같아. 뭔가 굉장히 다급해 보이셨어. 평소보다 목소리도 안 좋으시고…….”
“……뭐지?”
그럴 일이 없는데?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른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익숙하게 장진홍 감독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달칵.
“아, 여보세요? 감독님, 무슨 일…….”
-시우야! 큰일 났다!
그러자 장진홍 감독의 다급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넘어왔다.
생각보다 너무 큰 소리가 나서 나는 스태프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삼촌과 급하게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형, 나 먼저 가볼게.”
“어어, 다음 촬영에 봐.”
김선우에게도 작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통화에 집중했다.
“감독님. 무슨 일이신데요? 저 방금 촬영 끝났어요.”
-그래? 그럼 당장 이리로 와야겠다, 여기 주소가…….
그리고 장진홍은 한 병원의 주소를 불러주었다.
그와 함께 그가 전해준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빠르게 차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차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춰 세우고 말았을 정도였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감독님, 장난하시는 거죠?”
생전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에 표정이 경직되었다.
내 이런 표정은 처음 본다는 듯 삼촌이 더 당황해 옆에서 물었다.
“시, 시우야. 무슨 일이야. 어……?!”
그러다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이 툭 하고 떨어졌다.
-시우야, 시우야!
“시우야…! 이거, 일단 얼른 차에 타자.”
수화기 너머 들리는 장진홍 감독의 다급한 목소리와 당황한 삼촌이 나를 부르는 소리.
하지만, 발밑이 순간 꺼진 듯한 감각과 함께 양쪽 귀가 멍해졌다.
***
삐- 삐-
서울에 있는 대한 대학 병원.
급하게 이쪽으로 달려온 나는 적막한 VIP 병실로 안내되었다.
병실에는 기계음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 사람의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았다.
밖에 삼촌이 서 있고, 나는 홀로 어두운 표정을 하고서 병실 안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내 앞에 누워 있는 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하, 할아버지……!”
나는 눈을 뜬 노백찬의 얼굴을 보고 다급하게 너스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서 재빠르게 병실 안 소파에 피곤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장진홍 감독을 불렀다.
“감독님! 할아버지가 눈을 뜨셨어요.”
“어, 어?! 스, 스승님…!”
나와 장진홍 감독이 걱정스럽게 침대를 바라보자 천천히 눈을 끔뻑이고 있는 노백찬이 상황을 파악하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끄응, 소리를 내는 그를 만류하려고 내가 손을 뻗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소란, 들은……. 나 멀쩡하다 이놈들아.”
노백찬은 전보다 확 기세가 꺾인 목소리로 타박을 하며 기어이 병상에서 기대어 앉았다.
우리의 호출을 듣고 온 간호사가 의식을 차려서 다행이라며 일단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남기고 병실에서 나섰다.
실려 오고 나서 했던 검사 결과는 이르면 새벽, 아니면 내일 오전에 나올 거라고 했다.
“아, 참 괜찮다니까 다 오바들은.”
침상에 누워있는 노백찬이 간호사가 한 이야기 못 들었냐며 우리보고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와 장진홍 감독은 찌푸려진 얼굴로 병상 옆 의자에 몸을 앉혔다.
촬영 현장에서 장진홍 감독에게 노백찬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러자 보인 건 쓰러져서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는 노백찬의 모습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다행히 의식이 돌아왔으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완전히 놓여지지가 않았다.
“너는 초상났냐. 표정 좀 펴거라. 나 멀쩡하다.”
“네, 그래 보이시네요.”
노백찬의 말에 애써 표정을 펴 보았다.
분명 팔팔하고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내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처럼 말하고 웃는 노백찬이지만, 팔과 몸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전과는 다른 것이다.
목소리로는 괜찮은 척을 해도 몸은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애써 괜찮아 보이려는 노백찬이기에 나도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꼭 조심하세요. 집에도 상태 봐주실 분 더 구하시고요.”
“알았다, 알았어. 진홍아. 얘는 왜 불렀냐. 잔소리 너무 들어서 귀가 아프게.”
“안 부르셨으면 서운해하셨을 거면서 또 그러신다.”
옆에서 나와 자신이 먹을 음료수를 챙겨온 장진홍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하나도 안 부르고 나만 불렀다는 말에 노백찬이 평소 나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새삼 와닿았다.
노백찬 역시 내가 병실에 있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고 말이다.
저런 말은 정말 그의 작은 심술이었다.
투덜거리는 노백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내 얼굴에 제대로 된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도, 아직 멀쩡하신가 보다.
그 모습을 보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시우 너…… 혹시 촬영하다가 급하게 온 거냐.”
“아, 아뇨, 마침 촬영 다 끝난 참이었어요. 걱정 마세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 하나 쓰러진 걸로 그 많은 사람한테 폐 끼치면 안 되지.”
병상에 누워서도 천상 감독은 감독인지, 촬영 걱정이 먼저다.
“그쪽 촬영은 어떻게 되어가니. 요즘 통 이야기를 듣지 못했구나.”
“어휴, 그저께 전화로 이야기해드렸잖아요.”
“이번 껀 못 들었다.”
건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촬영장 얘기를 하는 것이 노백찬의 기쁨인 것을 잘 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오늘 촬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도 와이어 액션이 있었어요. 아, 저는 없고 선우 형만 있었어요.”
“그러냐. 이제 적응은 다 되었나 보지? 몇 시에 병원에 왔느냐.”
와이어 액션을 배우기 위해 액션 스쿨에 왔다 갔다 하면서 고생한 나와 김선우를 잘 아는 노백찬이다.
내가 배에 크게 멍이 들었을 때는 우리 아버지만큼이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멍에 잘 듣는 연고를 구해주시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좋은 장면을 위해 포기하지 않을 걸 아니까, 그저 응원을 해주셨다.
“네. 형은 적응 다 되어서 이제 저 연기 방해할 정도로 장난치고 그래요. 일찍 끝났어요. 장진홍 감독님한테 전화 받고 한 시간 안 되어서 여기 왔거든요.”
“일찍 왔구나.”
그 뒤로도 오늘 어떤 씬을 찍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지 줄줄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오늘 찍은 장면에 미술팀 스태프분들이 진짜 열심히 해주셔서 하움 방이 굉장했어요. 할아버지도 보면 좋아하셨을 텐데…….”
노백찬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내 촬영 이야기였기 때문에.
간간이 질문을 던지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노백찬이 베개에 기대며 말했다.
“언젠가 한 번 임수호 감독도 한번 보고 싶구나. 궁금하네, 그 청년.”
“무슨…… 일단 쾌차하시기나 하세요. 그다음에 얼마든지 자리 마련할 테니까요.”
“또또 잔소리. 알았다, 알았어. 걱정하지 말거라.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아.”
“그 자만이 문제라고요, 할아버지는.”
“얼씨구? 진홍아, 이놈 치워라. 머리 아프다.”
더 이상 잔소리는 듣기 싫다는 듯이 노백찬이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러자 드러난 그의 어깨 부근의 살이 빠져서 푹 들어가 있어 또 울컥했다.
장진홍은 우스갯소리로 자꾸 채근하는 노백찬의 말에 제대로 듣는 척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시우 곧 집 갈 겁니다.”
“저놈이. 스승 말을 이제 어디로 듣는 건지…….”
“걱정되니까 그렇죠…….”
농담을 하는 두 사람을 보고서 내가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이렇게 풀이 죽은 내 모습을 처음 본 두 사람은 일순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러다가 노백찬이 살포시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나를 불렀다.
“시우야.”
“……네.”
“걱정 말거라. 지금 네가 하는 것들. 임수호 영화든 애니메이션 영화든 다 극장에서 보기 전에는 멀쩡할 거니까.”
“…….”
노백찬은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지만, 그 말에 또 금세 마음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지금 촬영하는 영화,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은 끽해봐야 1~2년 안에 개봉하지 않나.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