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
2화
번쩍.
“우······.”
실컷 자고 눈을 떴다.
이토록 깊은 잠은 오래간만이었다.
탑에 갇힌 후로 제대로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
또 그 이상한 짐승의 소리가 나올까 봐 입을 열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문 채로 이곳은 어디일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낮은 천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 시야 끝에 막혀 있는 벽 또한.
이상하다.
오래도록 갇혀 있던 첨탑은 아니었다.
그곳은 이렇게 따듯한 온기가 가득하지 않았지.
그렇다고 바텐베르크 성 본관에 위치한 아늑한 내 방은 또 아니었다.
이토록 좁고 낮은 천장일 리가 없었으니까.
‘설마··· 이제는 하인의 방으로 나를 쫓아내신 거라던가.’
아버지의 가차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상당히 힘이 실리는 가설이었다.
끙,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이, 이게 무슨 일인가!
목이 안 돌아가?!
바둥바둥.
보드라운 침대보가 분명 등 뒤에 느껴졌다.
그런데 목! 내 목!
목이 부러진 것인가!
어찌 옆이 보이질 않는단 말인가!
“으아아앙!”
분한 마음에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냥 소리나 한 번 지를 생각이었는데, 감정 기복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에 나도 모르게 목놓고 엉엉 울어 젖혔다.
“아유, 우리 시우 일어났어?”
그러자 방문이 열리더니 방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방금 전 나를 안고 재운 여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너, 너는······!
위험하다.
저 사람에게 안기면 또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최대한의 저항으로 이리저리 팔다리를 휘저었다.
응······?
그런데 내 시야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짤막한 팔, 그리고 그 끝에 달린 통통한 손.
분명 모양은 손이었다.
손이긴 손인데··· 인형들에게나 붙어있을 것만 같은 자그마한 손이었다.
‘설마······.’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손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그러자 눈앞의 자그마한 손이 작게 오므려지는 것이 아닌가.
질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두 눈을 감았다.
그러던 중 어느새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여자가 두 팔을 뻗었다.
“보자보자, 우리 시우가 왜 그럴까?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맘마?”
Mama······?
저번처럼 나를 덥석 들어서 안은 여자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이 여자, 지금 Mama라고 하지 않았나?
한 가지 가설이 번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 사람 지금 내 엄마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가?
나는 소리 없이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다.
어디 할 짓이 없어서 공작 부인을 사칭한단 말인가······!
***
“끄윽.”
“우리 시우 트림도 했겠다. 잘 누워 있어. 엄마 싱크대에 이거 두고 올게?”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양껏 배를 채우고 나니 아까 복받쳤던 그 감정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있었다.
주물주물.
주물주물주물.
나는 지금 아주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일단 이 짤막하고 작은 팔다리가 내 것이라는 가정하에, 겨우겨우 내 발에 손을 뻗는 것에 성공했다.
살이 올라 보드라운 두 발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믿기지 않지만,
인정하기는 더욱 싫지만,
나는, 지금.
아기다.
“아우.”
하도 오래 잡고 있었더니 두 팔이 저렸다.
어찌 된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노아 바텐베르크는 알 수 없는 이곳에서 아기로 다시 태어났다.
도대체 왜?
겨우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까닭일까.
그토록 나를 외면하셨던 신이 이제야 나에게 시선을 돌리신 거란 말인가.
도통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스읍!”
통제가 되지 않는 침을 삼키려고 버둥거렸다.
아기의 몸은 정말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목도 내 마음대로 안 되질 않나.
누워만 있었는데 배가 고프질 않나.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침이 줄줄 나와 바텐베르크 공자인 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옆에서 흰 손이 뻗어 나와 내 입가를 부드러운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이번 생의 내 어머니였다.
“오늘 우리 시우 이상하네. 안 졸리니?”
“우우.”
일단 나의 새어머니이신 것 같은데···
어머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우! 우우!”
“음? 우리 시우가 왜 그럴까 오늘? 낮잠도 얼마 안 잤는데.”
어머니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벽에 걸린 동그란 무언가를 힐긋거렸다.
저건 또 무언가.
그리고 어머니가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저 언어.
저 언어도 도대체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자아, 우리 시우 잘까? 많이 자야 그만큼 쑥쑥 크는 거랍니다.”
“우!”
싫소! 이거 놓으시오!
나를 또 들고 안으려 해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래, 대답도 잘하지. 우리 아들.”
다소 딱딱한 억양인 걸로 보아 독일어인가 생각했지만, 그렇다기에는 단어 하나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영어는, 아니고.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그렇다고 불어는 절대 아닐 것이다.
“자장, 자장, 자장.”
그런데, 제법······.
‘듣기 좋은 멜로디군.’
어머니의 모국어를 유추하던 나는 또다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
“으우웅?”
시끌시끌한 소리에 눈이 절로 떠졌다.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만큼 자고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게 이 몸한테는 퍽이나 불만스러운 일이었는지 또다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응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으으, 으······.”
······내가 눈물 연기를 할 적에 이렇게 자유자재로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면 참 수월했을 터인데.
“으아아아앙!”
“시우야!”
“와, 시우 일어났다!”
그런데, 내 울음소리에 화답하는 이가 한, 두 명이 아닌데?
꿈뻑.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 남자애 맞아?”
“쌍꺼풀도 없는데 눈 큰 것 봐.”
“이렇게 애기인데 원래 콧대가 보이는 건가?“
“다행이다, 얘. 너희 남편 안 닮아서 애가 둥글둥글하니 예쁘게 생겼네.”
꿈뻑.
“······성희 씨, 그건 저 없을 때 말씀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뭐 어때. 성희 말이 맞지.”
시끄럽다.
“우우!!”
“시우야······!”
아무래도 내 아버지인 것 같은 남자가 내 호통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혼나고 좋아해? 왜?
“와, 시우 얘 좀 봐라. 너희 아빠라고 지금 편드는 거니?”
“웅?”
뭔 소리야.
알아듣지 못해서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낯선 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마치 클라이막스 때의 남자주인공을 보던 관객처럼 사르르 풀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시우야.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 귀여운 놈. 이모가 다 들어줄게. 뭐 사줄까, 응?”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내 방에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원래는 어머니나 아버지 정도만 내려다보고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낯선 인물이 가득이었다.
“꺄우! 우!”
정신 사나우니까 이만 나가라!
“시우가 대답해줬어.”
“얘 봐라. 이미 시우의 포로가 됐네. 그런데 진짜 귀엽다···.”
내가 뭐라고 외치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낯선 여자 두 명이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우야, 이모들한테 유모차랑 보행기랑 모빌 사달라고 하자?”
“야, 지연화. 너 지금 아들로 장사하니? 시우야, 너희 엄마 아주 도둑이야. 도둑. 집들이 선물 안 사왔다고 이렇게 구박을 한다?”
“꺄! 꺄우! 우우···.”
영어로 말하지도 않을 거면 싹 다 꺼지란 말이다!
다행히 낯선 이들은 내 방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집을 떠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나저나.
시우. 시우?
아무래도 그게 내 이름인 듯했다.
어머니가 몇 번 저리 발음하는 걸 듣기는 했는데, 낯선 이까지 시우, 시우 하는 걸 듣자 하니 맞는 것 같았다.
“시우는 자?”
“너희가 가야 자지. 애가 생각보다 예민해. 조용히 놀고 얼른 가.”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벽 너머로 뭐라뭐라 떠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걸 보니 우리 집, 아무래도 그리 큰 집이 아닌 듯하다.
“그래도 애가 그렇게 보채지도 않고 순하네.”
“그렇지? 많이 울지도 않아서 다행이야.”
낯선 이들 사이에 뒤섞인 내 새로운 부모의 목소리를 듣다가 어느새 나는,
또 잠이 들어버렸다.
***
그렇게 하루, 또 하루.
요 며칠 나는 어린 시절의 바텐베르크의 성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우야!”
“시우야~ 삼촌이야.”
“그만 좀 나와 너는, 시우가 네 얼굴 보고 울음이라도 터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어쩜 엄마를 똑 닮았네.”
새로운 부모님은 공작 부인인 우리 어머니보다 손님이 많은 것 같았다.
매일매일 어찌나 다양한 사람들이 집을 방문하는지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항상 새로운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우.”
그게 썩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어서 나는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허억, 시우가 방금 웃어줬어.”
“···웃은 건가?”
물론 아직 제대로 안면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기는 하다만.
“시우야, 이거 봐라.”
그러다 내 긍지 높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꺄아! 꺄!”
뭐, 뭣 하는 거냐!
지금 웃는 거냐? 어? 나는 별로 즐겁지 않단 말이다!
저번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여성이 내 침대 위에 알록달록한 무언가가 실에 잔뜩 매달린 것을 걸어준 것이다.
띠리리- 리리- 리리리-
깜찍, 아니 정신 사나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그 형형색색한 무언가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는데···.
이 몸은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그것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다.
“꺄하! 꺄우, 꺄!”
“성희야.”
“응? 시우가 진짜 좋아한다, 그지.”
“이런 걸 뭐하러 사왔냐고 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고맙다. 우리 시우 저렇게 많이 웃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
“에이, 뭐 이런 걸 가지고.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우리가 지금까지 장난감 하나 제대로 못 사줘서 시우가 안 웃은 걸까.”
“······연화야.”
옆에서 어머니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나는 눈물을 삼키며 내 통제를 벗어난 몸이 신나서 들썩거리는 걸 견뎌야 했다.
“아이고, 시우 신난 것 좀 봐. 모빌이 그렇게 좋아? 제일 잘 팔린다는 걸로 사 오길 잘했네.”
“우? 꺄우?”
“……허억, 이모 심장 아프다 시우야.”
이것 봐라?
낯선 여성이 나를 보고 얼굴이 사르르 풀어졌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 몸이 멋대로 방실대는 건 별로였지만, 몸이 신나니 마음도 절로 자비로워지는 게.
방긋.
공연이 끝난 뒤 극장가를 서성이던 팬들에게 지어주던 미소를 날려주었다.
“이모가 다음에는 더 좋은 거 사다 줄게. 웃는 것 좀 봐. 모델 시켜야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성공인 것 같았다.
그 뒤로 사람들이 올 때마다 방긋거려줬더니 다들 심장께를 움켜쥐며 뭐라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마치 오스카 극단에서 땀 흘리며 열연했을 때랑 비슷한 반응이지 않은가.
“아우.”
흠, 아기로 다시 태어난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
시간이 흘러 나는 혼신을 다해 뒤집기를 성공했다.
그리고 수월하게 두 팔로 내 배를 밀게 되고, 드디어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아우! 아!”
······비록 그게 사족보행일지라도.
나는 기어 다니게 된 이후로 드디어 그 작은 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
방에서 벗어나자, 바텐베르크 성의 하인들이 쓰던 방보다도 작은 응접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말도 안 돼.
“······우?”
여기서 그 많은 손님들이 하하호호 떠들었단 말인가?
소파라고는 저 낡고 작은 두 칸짜리 밖에 없는 이곳에서?
“우리 시우 잠깐 TV 보고 있을래? 엄마가 이유식만 얼른 퍼올게.”
그리고 나는 운명처럼 한 상자를 만나고야 말았다.
슉-
-으악!
-크윽, 너 이 자식······. 조선의 주먹이라는 이름이 영 헛것은 아니군.
-잔말 말고 덤벼라.
나도 모르게 사족보행을 멈추고 상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수많은 배우가 상자 속에 있었다.
솔직히 새로운 부모님을 지금껏 하층계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새로운 삶은 영 녹록지 않을 거라는 각오를 다질 정도로.
그런데 응접실 한켠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수많은 배우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배우를 집안으로 부르다니!
그건 귀족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연기, 그것을 향한 갈망이 들끓는다.
그리고 그 갈망이 비로소 입을 향해 터져 나왔다.
“으애!”
마음은 호수인데, 튀어나오는 것은 이슬이다.
마음과 말이 일치되지 않는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