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시우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복도 저편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남연수가 내 모습이 보이자 신이 나서 달려왔다.
저러다 자칫 넘어지겠다 싶어서 나도 얼른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 남연수 곁으로 다가갔다.
“연수 형, 오랜만이야.”
“와아, 시우랑 현장에서 보는 게 얼마 만이야. 아, 동욱이 형. 안녕하세요.”
“그래, 연수야. 오랜만이네?”
남연수는 내게 막 달려오다가 삼촌을 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고서는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정말 신난다는 듯이 내 손을 꼭 잡고 붕붕 흔드는 남연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인을 보고 반가워하는 강아지가 생각났다.
오늘 나는 VBS 방송국에 와 있었다.
저번에 남진용이 출연을 부탁한 드라마 ‘어프로치’ 대본 리딩 날이 오늘이었던 것이다.
“형, 이제 개학 한 달 남았는데 학교는?”
“으응, 또 조퇴하고 그래야지. ……그나마 아빠가 감독이라 스케줄 조정이 쉬울 것 같아.”
뒷말은 괜히 주변 누군가가 들을세라 남연수가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그래도 그 어투에 서려 있는 설렘을 지울 수는 없었다.
“아빠 작품에 출연하는 거 좋은가 봐?”
“응! 아, ……요즘 아빠가 되게 부드러워지셨거든. 아, 아주 조금이지만. 조금.”
나와 만난 이후로 뭔지는 모르겠지만 남진용도 굉장히 노력한 모양이었다.
남연수가 몸을 배배 꼬며 아버지의 변화를 내게 보고하는 걸 보아하니.
“그래? 잘 됐네.”
“응! 거기다가 시우 너랑 같이 촬영도 할 수 있고…… 나 이번 드라마 되게 좋아. 느낌이 좋달까?”
“그냥 형이 촬영하기 편해서 그런 거 아냐?”
“아니야! 나도 김영희 작가님 팬이라고……!”
농담으로 하는 말에도 발끈하는 남연수를 매달고 대본 리딩장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한시우입니다.”
나는 문에 들어서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주연 배우 두 사람은 물론이고, 조연들도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연수랑 둘이 친하다더니 정말인가 보네.”
“헤헤, 시우랑 저 진짜 친하다니까요!”
남연수는 아주 제 세상을 만났다는 듯이 웃으며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 쟤가 네 상대역이야?”
“어, 어!”
그러다 대본 리딩장 테이블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인형 같은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 유혜미, 맞지?”
“어, 아, 안녕하세요……! 헉, 한시우다.”
유혜미는 딱딱하게 굳어서 얼어있다가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내 존재가 좀 놀랍기는 하지.
“혜미야. 긴장 많이 돼?”
그러자 내 옆에 있던 남연수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유혜미를 보고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보고 뻐끔거리던 유혜미가 그 말에 얼굴이 발갛게 물들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네 뭐하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팔짱을 끼고 둘이 하는 짓을 쳐다보았다.
“휴, 연수 오빠처럼 유명한 배우 상대역이라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긴장돼……. 주인공 배우분들도 너무 스타잖아.”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유혜미는 아직 경험이 많이 없는지 대본 리딩장이 힘든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럴 수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착한 남연수가 그 모습을 또 그냥 못 두고 본다.
“괜찮아! 내가 NG 안 나게 잘해줄게. 나만 믿어.”
“저, 정말……?”
“정말이지! 오늘 대본 리딩 하는 것부터 보라고.”
……남연수 네가 이렇게 믿음직한 캐릭터였나?
또 그 말을 듣고 어두웠던 유혜미의 얼굴이 조금 밝아져 있었다.
나는 청춘의 빛이 흘러나오는 두 사람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이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하는 짓 좀 보게.
“시우야.”
뭐라고 훼방을 놓을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
안 그래도 출연자 명단을 받아봤을 때부터 만나기를 고대한 사람이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한국 RUN 공연을 함께했던 배우 노영희.
“잘 지내셨어요?”
“그럼. 우리 시우는 그새 엄청 자랐구나. 이제 열 살인가?”
“네! 할머니도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나는 변함없이 정정해 보이는 노영희의 모습에 기쁘게 인사를 했다.
노영희도 훌쩍 자란 내 모습을 보며 대견하다며 말해주었다.
화기애애하게 아는 얼굴들과 근황 이야기를 하는데, 대본 리딩장 문이 열렸다.
“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회의실에 들어온 것은 이번 드라마의 총연출을 맡은 남진용과 드라마작가 김영희였다.
남연수가 그의 아들인 것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이 정해지고 판세가 바뀌었다.
이미 아는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이 작품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따로 들어왔네.”
“지금은 일하는 중이잖아.”
남진용과 남연수.
그 둘의 처음 보는 조합에 어색해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작게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남연수 옆 내 지정석에 앉았다.
“남 PD님. 이번에 아드님이랑 작품 하셔서 좋겠어요? 왜 저한테 미리 말씀 안 하셨어요~ 몰랐잖아요.”
그러던 중, 리딩을 시작하기 전 주연 배우 중에 남진용과 친분이 있어 보이는 이가 서글서글하게 물었다.
섭섭하다는 듯한 어조여서 딱히 그를 비난하려는 어조는 아닌 듯했다.
그래, 차라리 뒷말을 하는 것보다 저게 나을 수도 있지.
남진용은 그의 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리고 좌중을 압도하는 눈빛으로 회의실을 전체적으로 한번 훑어본 후 입을 열었다.
“다들 뭐 때문에 떠들썩한지는 알겠습니다. 대본 리딩 하기 전에 이거 하나 짚고 넘어갑시다.”
연출과 작가를 소개하지도 않고 남진용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배우들을 한번 휘 둘러보았다.
VBS에서 굵직한 작품을 가장 많이 배출한 PD.
이제 CP 자리에 오를 만도 한데, 직접 작품 만드는 것에 대한 의지가 대단해서 아직도 현장을 뛰는 살아있는 신화.
잘은 몰랐는데 적어도 VBS 내에서 남진용이 가지는 위상은 대단했다.
그런 그가 눈을 차갑게 빛내며 주위를 둘러보자 그의 카리스마에 모든 이가 입을 다물었다.
“연수가 내 아들인 건 극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모두 작품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해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사실 저 말이 맞다.
오랜 기간 동안 남연수의 아버지로 그가 나서지 않은 것은 반대로 말하면 남연수를 자신의 위치로 밀어준 적이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이에 대해서도 호사가들은 몰래 접선을 한 게 아니냐는 둥, 방송가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알았으니 특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라는 둥 말이 많겠지만 말이다.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VBS 드라마국 PD 남진용입니다.”
굳어 있던 배우들은 그의 소개에 겨우 풀어져서 박수를 보냈다.
역시 남진용은 저런 사람이다.
방송국 사람들에게는 호랑이 같은 선배이자, 배우들에게도 쉽지 않은 감독.
“그래도 참 오래도록 잘 속였네요. 깜빡 속았어.”
이게 바로 연륜인가.
그의 서슬 퍼런 말에도 노영희가 호호 웃으며 덧붙였다.
연예계에서 원로 배우에 속하는 노영희의 말에 남진용이 움찔했다.
“애가 저랑 안 닮아서, 큼큼. 예쁘게 생겼잖습니까. 그니까 안 들켰죠.”
“뭐? 호호호! 남 PD 참 재밌네.”
그 말에 노영희만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외의 주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전부 놀라서 경악하고, 유일하게 남연수의 매니저만 뒤에서 큭큭거리며 웃었다.
……저번부터 생각했지만, 남진용은 생각보다 팔불출이다.
옆을 살짝 보자 남연수는 놀란 듯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그런 남연수를 향해 입 모양으로 잘됐다, 하며 웃었다.
남연수도 약간 붉어진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다들 아시다시피, 저희 스타 작가님 김영희 작가님입니다.”
“안녕하세요. 남 PD님이 맡은 작품치고 분위기가 좋네요.”
“……크흠! 그럼 대본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
“여기선 이렇게 하는 게 맞다니까.”
“아니지. 누가 어드레스를 그렇게 하냐?”
대본 리딩에 들어가고, 나와 남연수가 등장하는 장면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주인공의 아역 시절을 연기하는 남연수와 그의 라이벌로 그려지는 소꿉친구의 아역 시절을 연기하게 된 나.
지금 우리 두 사람은 티격거리는 어린 시절을 연기하고 있었다.
골프 프로의 세계에서 활동하게 되는 미래의 두 사람의 어린 시절.
그렇다 보니 두 사람 다 골프에 재능을 가지고서 골프 연습을 하는 이야기가 주였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일찍이 골프를 시작한 내가 또래보다 뒤늦게 골프를 시작한 주인공을 고깝게 여기는 장면.
그렇지만 주인공의 성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시종일관 부딪친다.
“아, 그거 내 클럽이랑 똑같은 브랜드잖아!”
“이 클럽 네 거냐? 아무나 사서 쓰는 거지. 유난은.”
원래 남연수 성격과는 다르게 비뚤어진 성격의 역할을 맡은 남연수가 나를 비웃는 대사를 던졌다.
그에 파르르 떨면서 악을 쓰는 대사를 뱉는 게 내 역할이었다.
평소랑 완전히 다른 성격이라 조금 재밌네.
그러면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신기한 마음에 주인공 곁을 완전히 떠나지는 못한다.
“너, 너는 왜 그립을 그렇게 쥐어? 이렇게 쥐는 거야.”
“아 그래? 오오, 이렇게 하니까 허리가 좀 편한 거 같아.”
“너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거냐?”
“딱히 없는데? 혼자 막 휘두르거나 했어.”
“허어……?”
투닥거리면서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두 사람.
“어어, 어?! 어디로 공을 날리는 거야!”
그러다가 주인공이 잘못 휘두른 골프채에 골프공이 영 딴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걸 보고서 내가 매섭게 남연수를 노려보며 장면이 끝났다.
“좋습니다.”
남진용의 말에 우리 둘은 숨을 돌렸다.
나는 목이 건조해지지 않게 얼른 생수 한 모금을 입 안에 머금었다.
남연수는 전과 달리 나와 가끔 눈도 맞추고 표정도 자유롭게 했다.
처음 대본 리딩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대본에 집착하지 않아서 나오는 훨씬 여유로운 모습이랄까.
나는 남연수에게 슬쩍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걸 보고 남연수는 생긋 웃으며 짝 작게 테이블 밑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와, 두 사람 합이 끝내준다. 대본 리딩 전에 따로 연습한 거 아니지?”
“너무 잘한다. 둘이 함께하니까 캐릭터가 확 살아난 거 같아.”
“드라마로 볼 땐 몰랐는데, 둘이 진짜 형제 같은데? 어쩜 호흡이 그렇게 척척이야?”
“헤헤, 시우가 저한테 되게 잘 맞춰주거든요.”
“오오, 형이라 이건가? 연수 기특하네.”
배우들은 우리 둘의 연기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칭찬 세례에도 남연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잘 받아쳐 낸다.
사회생활도 잘하네 이제.
흐뭇하게 남연수를 보고 있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남연수를 지켜보고 있는 남진용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보면 참 요령 없는 양반이다.
안 보는 척 힐끔힐끔 보는데도 어색함이 느껴지니 말이다.
“흠, 두 사람은 다 괜찮습니다. 둘의 티키타카를 좀 더 살려도 좋겠네.”
남진용이 괜한 헛기침과 함께 나와 남연수의 리딩을 칭찬했다.
그러자 남연수가 신나서 다음 장면에 대해 뭐라뭐라 소곤거리며 제안해왔다.
살짝 눈을 들어 확인하자, 그 모습을 남진용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